ORIGINAL FICTION
제31화 — 돈으로 온 나라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아르카디아 상선단의 첫 공식통신은 짧았다.
[미확인 대규모 문명권에 통상·외교 접촉을 요청한다.]
외교장관 마리안 세르는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보호국 협상과 대외질서를 맡아온, 돌려 말하되 결론은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군사적 경고도 없고, 영토주장도 없습니다.”
“상인이라며.”
“아직은 자칭입니다.”
제국 정보원을 이끄는 에일린 아르카가 끼어들었다. 의심할 이유가 하나라도 남으면 먼저 확인하는 쪽의 사람이었다.
“상선 27척. 호위함 6척. 무장수준은 세르마크보다 높지만 제국 기준으로는 낮습니다. 다만 항법장치가 흥미롭습니다.”
“얼마나?”
“VI급 평균을 넘습니다. 특정 부분은 VII급 가능성.”
나는 의자에 기대었다.
로하르와 세르마크는 평가가 빨랐다. 아르카디아는 달랐다.
기억 속에서 그들은 분명 ‘상업국가’였다. 하지만 내가 예전 화면에서 봤던 몇 줄짜리 특성은 이제 신뢰할 수 없는 요약에 불과했다.
“먼저 함대는 멈춰.”
수백 년 전쟁경력을 가진 제국대함대사령관 아델라인 베르크가 물었다.
“차단합니까?”
“아니. 들어오게 해.”
“무장한 채로?”
“상선 호위함 여섯 척 갖고 뭘 하겠어.”
아델라인이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는 강했다. 그래서 경계와 공포를 구분할 수 있었다.
◆접촉지점은 제9자유항 외곽으로 정했다.
아르카디아 상선단이 먼저 요구한 것은 외교의전이 아니었다.
[귀국 통화와 결제수단 간 교환비율을 알고 싶다.]
마리안이 나를 쳐다봤다.
“정말 돈부터 묻는군요.”
“일관성 있네.”
제국 재무원이 시험환율표를 보냈다.
아르카디아 측은 11분 만에 다시 질문했다.
[귀 통화가 어떤 실물자산 또는 에너지 단위에 연동됩니까?]
재무장관이 답했다.
“아무것도요.”
“설명해.”
“제국의 조세능력, 생산력, 중앙은행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법정통화입니다.”
상대방은 한동안 조용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통화발행기관의 준비자산 비율은?]
재무장관이 웃었다.
“저쪽 금융사는 꽤 보수적이군요.”
아르카디아는 화폐를 인사말처럼 사용했다.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묻기 전에 우리 돈이 왜 가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그 태도가 싫지 않았다. 가식이 없었다.
다만 호감과 거래는 별개였다. 아르카디아가 가진 항법자료와 시장망은 가치가 있었고, 우리 기술과 시장도 그들에게는 훨씬 컸다. 공짜로 양보할 이유는 없었다. 조건이 맞을 때까지는 느긋하게 보고, 맞는 순간에는 바로 계약으로 묶으면 된다.
◆첫 사절은 인간형에 가까웠다.
이름은 리에나 메르체.
아르카디아 성간공화국 외교통상청의 변경통상위원.
키는 아틀라스 평균보다 조금 작았고 피부는 옅은 청동색이었다. 눈동자 둘레에 금빛 막이 한 겹 더 있었다.
리에나는 앉자마자 말했다.
“귀국이 최근 이 회랑의 전쟁을 중단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정복하셨습니까?”
“일부는 보호국. 일부는 감독국.”
“차이는?”
“현지정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
그녀가 아주 잠깐 미소 지었다.
“직설적이시군요.”
“돌려 말하면 내용이 바뀌나?”
“보통은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그럼 자네가 분위기 담당해.”
마리안이 옆에서 헛기침했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리에나는 계속했다.
“아르카디아는 독립국의 상업권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독립을 절대가치로 보지 않아.”
회의실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리에나는 내 얼굴을 유심히 봤다.
아틀라스 본토 사람이면 대부분 바로 알아봤을 얼굴. 그녀에게는 아직 낯선 사람이었다.
“실례지만.”
“말해.”
“귀하의 직위가 정확히 무엇입니까?”
마리안이 입을 열려는 순간 나는 손을 들었다.
“황제.”
리에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3초.
4초.
그녀가 마리안을 봤다. 마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에나는 다시 나를 봤다.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상인이 첫 질문으로 환율을 물을 줄은 몰랐어.”
그제야 그녀가 일어났다.
예법 데이터가 급히 번역기에 내려오는 게 보였다.
나는 손짓했다.
“앉아. 이미 앉아서 시작했는데 지금 와서 바꿀 필요 없어.”
그녀는 천천히 앉았다.
황제 얼굴은 제국 안에서는 너무 유명했다. 제국 밖에서는 그냥 젊어 보이는 아틀라스 남자였다.
◆리에나가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이 아니었다.
지도였다.
엘리시온 회랑 바깥 600광년 규모.
확인된 국가 43개.
정기교역망에 연결된 국가 19개.
그중 아르카디아와 직접 조약을 맺은 국가는 11개.
나는 지도를 확대했다.
우리가 재측량으로 아직 밝히지 못한 공간이 색으로 채워졌다.
“대단절 이전 지도와는?”
오르테가가 비교했다.
“일치율 2.1퍼센트 미만입니다.”
거의 다른 우주였다.
지도 한쪽에는 아르카디아 본권이 표시돼 있었다.
직할성계 68개.
연합회원권역까지 포함하면 113개.
인구 약 2,900억.
상선 등록량은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군함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VII급?”
오르테가가 고개를 저었다.
“총체평가는 VI+에서 VII- 사이로 보입니다. 다만 금융·항법·상업정보망은 VII급 상위 가능성.”
“제국하고 비교하면.”
“국가 전체로는 비교가 어렵습니다.”
리에나가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 평가체계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나중에.”
“저희가 낮은 등급입니까?”
나는 숨기지 않았다.
“현재 임시평가로는 우리보다 아래야.”
그녀가 놀라기보다 계산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상인이었다.
“얼마나 아래입니까?”
“그걸 알려주면 협상에서 손해잖아.”
리에나가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황제께서도 거래를 하시는군요.”
“황제 일이 거래의 연속이지.”
◆아르카디아 상단은 첫날부터 상품견본을 꺼냈다.
고밀도 생체섬유.
저온 양자메모리.
액체상태로 보관되는 자가복원 합금.
그리고 이름 모를 향신료.
오르테가는 앞의 세 개보다 마지막 것에 관심을 보였다.
“이건 뭡니까?”
리에나가 말했다.
“식재료입니다.”
“생물학적 독성은?”
“저희 종족에게는 없습니다.”
“아틀라스인에게는?”
“그러니까 거래 전에 검역하자는 겁니다.”
좋았다.
아무리 하위문명이라도 배울 건 있었다.
제국 검역청은 즉시 샘플을 가져갔다.
세 시간 뒤 결과가 나왔다.
먹을 수 있었다.
맛은 지나치게 강했다.
세라는 한 번 먹고 물을 세 잔 마셨다.
나는 두 번 먹었다.
“괜찮은데.”
“폐하 입맛은 정책판단 기준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첫날 회담의 마지막 질문은 내가 했다.
“아르카디아는 우리를 어떻게 봐?”
리에나는 잠시 생각했다.
“정확히 말해도 됩니까?”
“그래.”
“지나치게 큰 미확인 세력.”
“좋은 뜻은 아니군.”
“상인에게 모르는 큰 고객은 기회이자 위험입니다.”
“군사적으로는?”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왜?”
“제9자유항에서 귀국 구축함 4척의 기동기록을 봤습니다.”
에일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리에나는 곧바로 덧붙였다.
“공개 항로관측자료입니다.”
“그리고 세르마크 함대가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도 봤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판단은 빠르네.”
“상인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좋아.”
나는 회담을 끝냈다.
“통상은 열어. 대신 하나.”
“무엇입니까?”
“우리 보호권역 안에서 무기 장사하지 마.”
리에나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그건 큰 시장입니다.”
“그래서 말하는 거야.”
“거부하면요?”
“안 들어오면 돼.”
아르카디아는 선택할 수 있었다.
제국은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래할 문은 열어뒀다.
◆리에나가 떠난 뒤 세라가 물었다.
“보호국 후보로 보십니까?”
“아직.”
“의외네요.”
“113개 성계에 2,900억이면 바로 삼킬 규모는 아니지.”
“못 삼키는 건 아니고요?”
“못이 아니라 왜 지금.”
나는 아르카디아 지도를 봤다.
전략항로.
상업망.
정보.
우리가 아직 모르는 바깥세계.
지금 필요한 건 국경선을 하나 더 그리는 일이 아니었다.
저 상인들이 알고 있는 우주를 먼저 사는 것.
정복은 정보를 얻은 뒤에도 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아르카디아 상선단은 자유항에 정박했다.
현지 상점들은 즉시 가격표를 세 종류로 바꿨다.
로하르 화폐.
제국 크레딧.
아르카디아 상업권.
세르마크 출신 상인이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전쟁 끝난 지 1년도 안 됐는데 돈은 벌써 세 나라가 섞였군.”
옆의 로하르 상인이 답했다.
“돈이 총보다 빠르잖아.”
맞는 말이었다.
제국함대가 회랑을 멈춰 세웠다면.
그다음부터 세계를 바꾸는 건 상인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르카디아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라처럼 보였다.
◆아르카디아 상선이 실제로 부두에 닿자 현장 분위기는 보고서와 달랐다.
제국 검역관들이 먼저 올라갔다.
선원들은 무장을 선내 보관함에 봉인했고, 화물목록을 제출했다.
리에나는 말했다.
“전부 열어보실 겁니까?”
검역관이 답했다.
“생물학적 위험 화물만.”
“밀수는요?”
“세관이 봅니다.”
“간첩은?”
뒤에 있던 에일린 요원이 말했다.
“저희가 봅니다.”
리에나가 웃었다.
“부처가 잘 나뉘어 있군요.”
“그래야 책임도 나뉩니다.”
제국은 강했지만 행정권을 한 기관에 몰아주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황제에게 권력이 집중된 것과 실무기관이 서로 견제하는 건 모순이 아니었다.
◆첫날 저녁 자유항 식당에는 아르카디아 선원들이 몰렸다.
로하르 요리를 주문하고 너무 맵다며 물을 찾고.
세르마크 노동자들과 술값을 두고 실랑이하고.
제국 주둔군에게 함선사진을 보여달라고 졸랐다.
뉴스는 그 모습을 생중계했다.
본토 시청자들은 ‘외교’보다 이런 장면에 더 오래 머물렀다.
대단절 이후 외계인이 다시 제국 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
그게 사람들에게는 정상화의 증거였다.
◆밤늦게 세라가 통상시험 전망치를 보여줬다.
“보호권역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2.4포인트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르카디아 하나 때문에?”
“거래보다 연결효과가 큽니다.”
로하르 농산물이 아르카디아 상선을 타고 더 멀리 간다.
세르마크 조선소가 민간선박을 만든다.
벨로아 금융이 중개한다.
하나의 외부국가가 들어오자 보호권역 내부도 더 빨리 묶였다.
나는 보고서 끝에 적었다.
[통상은 편입을 대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편입을 안정시킨다.]
총으로 만든 질서에 돈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아르카디아 상선의 첫 출항허가는 황실명이 아니라 항만청장이 전자서명했다.
리에나는 그 사실을 보고 말했다.
“황제께서 다 정하는 줄 알았습니다.”
나는 답했다.
“내가 다 하면 제국이 하루도 못 굴러가.”
강한 황권과 거대한 관료제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필요로 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