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0화 — 첫 제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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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절 이후 27년째.
외부우주 재개방령을 선포한 지 8개월.
엘리시온 회랑의 지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로하르 왕국.
[아틀라스 제국 보호국]
세르마크 군정연합.
[아틀라스 제국 군축감독국]
제9자유항.
[제국 안전항로 협정국]
벨로아 상업연맹.
[특혜통상·항로보장 협상 중]
카르디아 제후권.
[안전보장협정 검토]
제국의 깃발이 모든 행성에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중요한 건 누가 전쟁을 결정하고.
누가 항로를 지키고.
누가 최종질서를 정하는지였다.
그 답은 이미 아틀라스 제국이었다.
◆상원은 신규 권역명칭을 승인했다.
[엘리시온 외부보호권역]
직할령이 아니었다.
여러 보호국·감독국·협정국을 묶은 상급행정구역단.
제국 행정지도에서는 옅은 금색으로 표시됐다.
본토의 짙은 청색과 달랐다.
나는 지도를 보고 말했다.
“색 구분 좋네.”
행정원장이 물었다.
“향후 정식 제국령화가 진행되면 청색으로 전환합니다.”
“전부 전환한다고 생각하지 마.”
“예?”
“전략가치 없고 현지정부 잘 굴러가면 그냥 금색으로 천 년 있어도 돼.”
행정원장이 잠깐 멈췄다.
“명문화할까요?”
“해.”
그날 새로운 영토원칙이 공식화됐다.
[제국권 편입과 직할령화는 별개다.]
[보호국의 최종목표를 자동적인 직할병합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제국의 팽창은 지도를 한 색으로 칠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통제 가능한 질서를 넓히는 작업이었다.
◆첫 권역선포식은 제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동시시청 5조 9천억.
당일 재송출과 요약망까지 합치면 본토·정식 제국령 시민 대부분이 봤고, 로하르와 세르마크, 주변국 시청자까지 더해졌다.
나는 황좌전이 아니라 엘리시온 회랑 A-17 관문성계의 제국기지에서 연설했다.
뒤에는 새로 세운 항로관제탑.
앞에는 로하르군과 세르마크 지역방위군이 함께 서 있었다.
8개월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이던 군대였다.
“27년 전 대단절은 제국의 외부세계를 끊었습니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을 찾았습니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삼백종 거리의 노인.
사라진 대사.
본토로 응답을 요구하던 마지막 영상.
그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다른 것을 얻었습니다.”
카메라가 로하르와 세르마크 장병을 비췄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도시.”
“새로운 책임.”
잠시 멈췄다.
“아틀라스 제국은 외부우주를 정복하기 위해서만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 문장 다음을 일부러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필요한 곳에서는 정복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토망 반응량이 순간적으로 뛰었다.
세라가 나중에 뭐라고 할 게 분명했다.
그래도 계속했다.
“우리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데 구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명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중립이라는 말 뒤에 숨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보다 나은 것을 만나면 배우고.”
“우리보다 낮은 것을 만나면 끌어올리고.”
“우리를 위협하면 제거합니다.”
“그것이 앞으로 제국이 별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함성이 터졌다.
본토에서는 지지와 비판이 동시에 나왔다.
로하르에서는 안도와 불안.
세르마크에서는 냉소와 체념.
나는 모두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연설 뒤 로하르 장교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얼굴을 알아보고도 한참 망설였다.
“폐하… 맞으십니까?”
나는 황제정복을 입고 있었다.
“이 옷 입고 아니면 더 문제 아닌가?”
장교가 굳었다.
옆에 있던 세르마크 병사가 작게 웃었다.
카시안이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같이 근무할 만해?”
로하르 장교가 세르마크 병사를 봤다.
“아직은 싫습니다.”
세르마크 병사도 말했다.
“저도.”
“좋네.”
둘이 당황했다.
“좋다고요?”
“싫어해도 안 쏘잖아.”
나는 두 사람 어깨를 한 번씩 두드리고 지나갔다.
평화란 서로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싫어해도 죽이지 않는 것.
그다음은 시간이 할 일이었다.
◆황궁으로 복귀한 지 4시간 뒤.
에일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선단 확인됐습니다.”
“어디 소속?”
“아르카디아 성간공화국.”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멈췄다.
기억 속 이름과 같았다.
내가 게임이라 믿었던 시절.
플레이어블 국가 중 하나.
상업.
외교.
중개.
돈으로 전쟁을 피하고 필요하면 돈으로 전쟁을 사던 나라.
하지만 나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등급.”
“임시 VI+에서 VII-.”
“영토.”
“확인 중. 최소 수백 성계권 거래망.”
“군사.”
“상선 호위만 보면 회랑국가보다 크게 우위. 제국과는 비교불가.”
나는 의자에 앉았다.
이번에는 로하르와 달랐다.
조금 더 큰 상대.
조금 더 복잡한 국가.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이름이 있는 나라.
에일린이 물었다.
“접촉합니까?”
나는 잠깐 창밖을 봤다.
첫 제국권은 완성됐다.
이제 다음 우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아직?”
“우리가 먼저 가면 급해 보이잖아.”
“그럼?”
나는 웃었다.
“오게 해.”
제국은 더 이상 고립돼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찾아오는 국가가 생길 차례였다.
◆엘리시온 외부보호권역 선포는 본토 젊은 세대에게 특히 큰 사건이었다.
100세 이하 아틀라스인은 대단절 이전 외계인을 직접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게 로하르와 세르마크는 ‘돌아온 과거’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일상이었다.
대학에서는 외계언어학 지원자가 세 배 늘었다.
군사학교에서는 보호권역행정 전공이 신설됐다.
기업은 로하르 소비자 취향을 분석했다.
연예기획사는 외계인 출연자를 찾으려 했다가 정부에서 너무 빠르다고 제동을 걸었다.
제국은 문화적으로도 다시 다종족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본토 인구는 사실상 전부 아틀라스인이었지만.
외부권역이 열리면 그 상태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권역선포식 뒤 바렌 노크도 참석했다.
그는 황실기를 보며 말했다.
“세르마크 국기는 저 아래 있군.”
나는 봤다.
의전순서상 제국기 아래 보호국·감독국 국기가 놓였다.
“불만?”
“있다.”
“말해.”
“언젠가 같은 높이에 두고 싶다.”
“제국과 동급이 되면.”
“그 말 또 하는군.”
“기준이 명확하잖아.”
바렌은 웃었다.
“우리가 VIII급이 되기 전에 세르마크가 제국에 더 깊게 들어갈 것 같은데.”
“그럴 가능성이 높지.”
“그럼 영원히 같은 높이는 못 되겠군.”
“제국 안에서 올라가는 길도 있어.”
바렌은 그 의미를 묻지 않았다.
보호국 출신이 시민권을 얻고.
공훈을 세우고.
제국 장군과 상원의원이 되는 길.
좁지만 존재했다.
세르마크에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있었다.
◆아르카디아 문장을 확인한 뒤 나는 오래된 기억을 혼자 열었다.
예전 화면에서 아르카디아는 초반에 상대하기 편한 국가였다.
교역보너스.
외교보너스.
용병함대.
돈.
단순한 몇 줄.
그러나 로하르를 겪고 나니 그 기억을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실제 국가는 수백억, 수천억 사람의 삶이다.
‘상업국가’ 한 단어 안에 얼마나 많은 파벌과 역사와 모순이 있을지 모른다.
나는 개인기록을 닫았다.
게임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다.
황제의 공식기록에는 필요 없는 기억이었다.
에일린이 다시 물었다.
“아르카디아가 먼저 접촉하지 않으면요?”
“그럼 우리가 가야지.”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사흘.”
“짧군요.”
“상인국가라며.”
나는 문장을 가리켰다.
“저쪽도 이미 우리를 봤을 거야.”
예상은 맞았다.
21시간 뒤.
아르카디아 상선단에서 공식통신이 왔다.
[미확인 대규모 문명권에 통상·외교 접촉을 요청한다.]
나는 메시지를 읽었다.
첫 제국권이 완성된 바로 다음 날.
두 번째 세계가 문을 두드렸다.
◆권역선포가 끝난 뒤 나는 A-17 기지의 전망대에 혼자 잠깐 남았다.
창밖에는 로하르 수송선과 세르마크 화물선이 같은 항로를 쓰고 있었다.
몇 달 전이라면 서로 쐈을 배들.
지금은 제국 관제신호에 맞춰 줄을 서서 지나갔다.
제국의 지배라는 게 결국 저 모습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그것보다 서로 죽이지 않고 같은 규칙으로 움직이는가.
나는 그걸 더 중요하게 봤다.
카시안이 뒤에서 말했다.
“폐하, 복귀시간입니다.”
“알아.”
“10분 지났습니다.”
“황제인데 10분 정도는.”
“황제라서 일정이 더 많습니다.”
나는 결국 돌아섰다.
제국을 넓히면 황제 일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더 빨리 늘고 있었다.
◆권역 출범자료에는 처음으로 영토색이 네 종류로 나뉘었다.
본토 직할령.
제국 군사·항로 직할구역.
보호국.
군축감독국.
한 색으로 칠하는 것보다 복잡했다.
하지만 실제 권력구조를 더 정확하게 보여줬다.
세라는 지도를 보며 말했다.
“아이들이 외우기 어려워지겠네요.”
“교육부가 알아서 하겠지.”
“제국을 더 넓히실 때마다 교육과정도 늘어납니다.”
그건 생각 못 한 비용이었다.
제국은 행정비뿐 아니라 교과서 페이지도 먹고 자랐다.
◆새 보호권역에는 총독을 두지 않았다.
로하르 국왕, 세르마크 고등감독관, 벨로아 연락정부가 각각 존재했다.
그 위에 제국 권역조정관만 하나 두었다.
중앙집권이라고 모든 지방정부를 없앨 필요는 없었다.
핵심권한만 중앙으로 모으면 나머지는 여러 모양으로 남아도 됐다.
◆아르카디아의 첫 메시지에는 재미있는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귀 문명권의 통상규모와 화폐체계를 확인하고 싶다.]
마리안이 웃었다.
“역시 상인국가군요.”
“인사보다 돈부터?”
“통상국에게는 돈이 인사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답신 첫 문장을 정했다.
[아틀라스 제국은 통상을 환영한다.]
두 번째.
[단, 귀국의 정치적·군사적 지위평가와 통상협상은 별개로 진행한다.]
마리안이 나를 봤다.
“벌써 평가 얘기를 넣으십니까?”
“습관 들여야지.”
로하르와 세르마크는 시작일 뿐이었다.
앞으로 만나는 모든 나라가 같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들은 무엇을 잘하는가.
얼마나 강한가.
그리고.
제국질서 안에서 어떤 자리에 놓이는 것이 가장 적합한가.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