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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8화 — 보호국의 하루

별의 제국 · 28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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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르 보호국이 된 지 6개월.

전쟁은 없었다.

73년 만에 처음이었다.

처음 한 달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국경도시에서는 밤마다 대피가방을 문 옆에 뒀다.

아이들은 공습경보가 울리지 않는 걸 이상해했다.

세르마크 함대가 움직였다는 소문만 나도 식료품점이 비었다.

6개월이 지나자 조금씩 달라졌다.

대피가방이 창고로 들어갔다.

야간열차가 다시 운행했다.

국경마을 결혼식이 늘었다.

보험회사는 ‘전쟁위험 할증’을 삭제했다.

사람들은 거대한 정치보다 이런 걸 먼저 느꼈다.

벨하임의 한 평범한 가족이 제국 다큐멘터리에 나왔다.

아버지는 항만노동자.

어머니는 학교교사.

아이 둘.

보호국화 전에는 아버지 월급의 18퍼센트가 전쟁특별세였다.

지금은 6퍼센트.

대신 제국보호분담금이 3퍼센트 붙었다.

그래도 총부담은 줄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제국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습니다.”

“왜요?”

“우리 나라 위에 다른 나라가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이 징집될 가능성이 줄었습니다.”

그녀가 잠깐 웃었다.

“그건 좋습니다.”

나는 그 영상을 꽤 오래 봤다.

이런 반응이 현실적이었다.

황실기를 흔들며 제국 만세를 외칠 필요는 없었다.

전쟁이 없어졌고 삶이 나아졌다면 통치는 일단 성공이었다.

반대로 부작용도 생겼다.

제국 의료기술이 들어오자 기존 민간보험업체 일부가 파산위기에 몰렸다.

제국은행의 낮은 이자가 현지은행을 압박했다.

제국기업 취업준비 때문에 대학생들이 로하르 역사수업보다 제국어 자격증에 매달렸다.

세리아가 이 문제를 하원에서 제기했다.

“문화는 법으로만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국 교육차관이 답했다.

“그래서 보호국 교육자치를 보장했습니다.”

“경제가 방향을 정하는데 법적 자치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경제를 이용해 로하르 문화를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결국 예산이 나왔다.

로하르어 디지털아카이브.

문학번역사업.

역사자료 복원.

지역예술기금.

제국이 동화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토착문화를 보존하는 이상한 모습이었다.

모순처럼 보였지만 제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와 행정은 통합할 수 있다.

음식과 언어와 노래까지 같아질 필요는 없다.

군대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로하르군 장교 18,000명이 제국군 교육과정에 지원했다.

기초선발을 통과한 사람은 37명.

현지에서는 너무 적다고 불평했다.

제국군은 기준을 낮추지 않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띈 사람은 리아 카르멘.

24세.

평민 출신 항법장교.

공간전술 시험에서 제국 생도 평균에 근접했다.

아틀라스인이 아닌데도.

라울이 그녀 자료를 보고 말했다.

“관찰가치 있습니다.”

“시민권?”

“너무 이릅니다.”

“나도 알아.”

비아틀라스 정식 시민권은 몇 번 잘했다고 주지 않았다.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의 공훈이 필요했다.

리아에게는 이제 시작이었다.

그래도 이름은 기록됐다.

이런 한 명이 나중에 종족 전체의 길을 만들기도 했다.

세르마크에서도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다.

군수공장이 상선공장으로 바뀌면서 처음에는 노동자들이 욕했다.

“전함 만들던 내가 화물선 외벽이나 붙이고 있다.”

3개월 뒤에는 다른 말을 했다.

“적어도 야간비상동원이 없어졌다.”

사람은 체제보다 수면시간에 먼저 적응한다.

제국 감독단은 세르마크 사회를 빨리 민주화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민간행정부 분리.

법원의 군부독립.

연좌제 폐지.

예산공개.

그 정도부터 시작했다.

정치체제는 현지인이 나중에 바꿀 문제였다.

제국의 관심은 세르마크가 다시 전쟁기계가 되지 않는 데 있었다.

6개월 보고 마지막 줄.

[로하르-세르마크 국경 군사충돌: 0]

나는 그 숫자에 승인표시를 했다.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73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숫자였다.

전쟁이 멈춘 뒤 가장 먼저 줄어든 직업도 있었다.

장례업.

국경행성의 한 장례업자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기자가 물었다.

“힘드시겠군요.”

“아닙니다.”

그가 웃었다.

“이런 식으로 망하면 좋죠.”

그 영상은 로하르에서 크게 퍼졌다.

평화의 경제효과를 어떤 통계보다 잘 보여줬다.

반대로 군수공장 노동자는 불안했다.

로하르도 군축이 예정돼 있었다.

제국은 세르마크에서 했던 것처럼 민수전환기금을 만들었다.

전쟁을 끝내는 데는 함대를 멈추는 것보다 전쟁으로 먹고살던 사람들에게 다른 일을 주는 게 더 중요했다.

학교에서도 변화가 보였다.

로하르 아이들은 새 과목 ‘제국기초’를 배우기 시작했다.

황실사.

보호국법.

제국어 기초.

문명등급 개념.

대단절 역사.

세리아는 교과서 초안을 보고 한 문장을 문제 삼았다.

[아틀라스 제국은 하위문명을 보호하고 발전시킬 문명적 책임을 가진다.]

“이건 교육이 아니라 선전입니다.”

제국 교육관이 답했다.

“제국의 공식 국가관입니다.”

“그러니까 선전이죠.”

논쟁 끝에 문장은 바뀌었다.

[아틀라스 제국은 하위문명에 대한 보호·개도정책을 문명적 책임으로 규정한다. 이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존재한다.]

나는 수정안을 보고 승인했다.

우리 생각을 가르칠 수는 있었다.

그걸 우주의 객관적 진리처럼 쓰는 건 다른 문제였다.

6개월째 처음으로 로하르와 세르마크 청년들이 같은 제국대학 예비과정에 들어갔다.

첫날부터 싸움이 났다.

주먹질은 아니었다.

기숙사 주방에서 누가 전쟁을 먼저 시작했는지 두고 3시간 논쟁했다.

제국인 룸메이트가 결국 말했다.

“둘 다 시끄러우니까 설거지부터 해.”

그 장면을 누군가 촬영해 올렸다.

댓글에는 이런 말이 달렸다.

[제국통합의 첫 단계: 공동설거지.]

나는 그걸 보고 웃었다.

거대한 역사도 가끔 주방에서 시작됐다.

의료개도사업의 첫 실패도 있었다.

제국식 자동진단기를 너무 빨리 도입한 지방병원에서 오진사고가 발생했다.

기계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현지 의료진이 경고등급 의미를 잘못 이해했다.

환자 세 명이 중태에 빠졌다.

다행히 모두 살아남았다.

제국 의료원은 즉시 장비배치를 중단했다.

“기술이 좋으면 바로 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로하르 보건관이 말했다.

제국 의사가 답했다.

“좋은 기술도 훈련 없이 쓰면 나쁜 기술입니다.”

이 사건 이후 개도속도가 조정됐다.

제국이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면 보호국이 먼저 다친다.

실패사례도 공개됐다.

황실은 숨기지 않았다.

사람들이 제국을 믿게 하려면 성공만 보여주는 것보다 실수했을 때 고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오래 갔다.

전쟁이 멈춘 뒤 가장 먼저 폭발한 산업은 결혼중개업이었다.

73년 동안 국경 때문에 갈라졌던 로하르·세르마크 가족들이 다시 왕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국 항로망은 처음 한 달 동안 가족방문 신청만 수천만 건을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법 문제가 쏟아졌다.

어느 나라 혼인법을 적용할 것인가.

아이의 국적은 무엇인가.

감독국민과 보호국민이 결혼하면 이동권은 어떻게 되는가.

제국 법무원은 임시규칙을 만들었다.

[가족결합은 군사·안보사유가 없는 한 우선허가.]

이 조항 하나가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변화였다.

전쟁을 끝낸다는 건 함대가 멈추는 것만이 아니었다.

26년 만에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아이에게는 국경문 하나 열리는 일이었다.

제국어 열풍도 예상보다 빨랐다.

취업.

대학.

군사유학.

본토여행.

이유는 전부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로하르 학계는 토착어 쇠퇴를 걱정했다.

보호국 교육부는 초등교육의 최소 60퍼센트를 로하르어로 유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제국은 승인했다.

“제국어 보급이 느려집니다.”

한 관료가 말했다.

나는 물었다.

“100년 뒤 다들 할 텐데 왜 급해?”

장수명 제국은 동화를 세대 단위로 기다릴 수 있었다.

언어 하나 없애서 얻는 행정편의보다 살아 있는 문화 하나 남기는 편이 더 가치 있을 수도 있었다.

리아 카르멘은 제국 군사대학 예비과정에 최종합격했다.

합격통지서 아래 작은 문장이 붙었다.

[본 과정 이수는 제국 시민권을 보장하지 않음.]

그녀는 한참 그 문장을 봤다.

보호국민에게 제국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안쪽 문은 여전히 멀었다.

생활비도 변했다.

제국기업과 주둔군이 몰린 벨하임 중심지는 임대료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젊은 로하르인은 임금이 오른다고 좋아했고, 오래된 주민은 집값 때문에 화를 냈다.

보호국정부는 외국인·제국기업의 주거용 토지매입을 일부 제한했다.

본토 부동산업계가 항의했다.

황실은 로하르 편을 들었다.

보호국을 안정시키러 와서 수도 주민을 외곽으로 밀어내면 정책목표와 반대였다.

반대로 지방도시는 처음으로 인구가 늘었다.

제국 고속항로와 원격의료망이 깔리자 왕도에 살 이유가 줄었다.

작은 도시 대학에 본토 교수들이 원격강의를 열었다.

농촌 병원에서도 제국 전문의의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개도는 거대한 우주항만만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어떤 아이가 수도까지 가지 않고 좋은 수업을 받게 되는 것.

그게 주민에게는 더 직접적인 제국이었다.

로하르 왕도에서는 제국식 24시간 상점도 처음 생겼다.

장수명 사회의 생활리듬을 그대로 들여온 업종이었다.

처음에는 누가 새벽에 물건을 사느냐고 비웃었다.

한 달 뒤 야간근무자와 학생들 때문에 지점이 세 개로 늘었다.

반대로 제국 상인들은 로하르의 긴 점심휴식과 가족식사 문화를 배웠다.

서로를 동화시키는 방향은 하나만이 아니었다.

생활은 제국정책보다 늘 먼저 적응했다.

로하르 젊은층 사이에서는 제국식 이름을 흉내 내는 유행도 생겼다.

세리아는 싫어했다.

“문화적 열등감입니다.”

나는 물었다.

“100년 뒤에도 그러면 문제고, 유행이면 지나가지 않을까?”

“폐하는 너무 느긋합니다.”

“우리 수명 생각해.”

그녀는 그 말을 제일 싫어했다.

짧은 수명문명에게 아틀라스의 느긋함은 때때로 오만처럼 보였다.

나는 그 차이를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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