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3화 — 세르마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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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마크 내전은 4일 만에 끝났다.
제국이 직접 싸운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나머지는 세르마크인들이 했다.
바렌 노크의 비상정부가 수도행정망을 장악했고.
하르드 레칸이 현실파 함대를 통합했다.
제국은 통신과 정찰을 제공했다.
강경파가 민간도시에 대량포격을 준비한 경우에만 개입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수도 궤도에서 왔다.
강경파 기함 17척이 항복협상을 거부하고 군정평의회청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하르드는 발포하지 못했다.
자기 수도 위였기 때문이다.
아델라인은 3초 만에 허가를 요청했다.
“무장제거.”
내가 답했다.
“실행.”
17척의 포문이 동시에 죽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강경파 총사령관 드라벤 토르가 체포됐다.
그는 제국군이 아니라 세르마크 헌병에게 잡혔다.
의도한 결과였다.
◆드라벤 재판을 어디서 할지가 첫 정치문제가 됐다.
로하르는 제국 재판을 요구했다.
제국 시민 3명을 죽인 공격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세르마크는 자국 재판을 주장했다.
하원 일부도 제국 법정 회부를 요구했다.
나는 절충하지 않았다.
“세르마크에서 재판.”
법무장관이 물었다.
“제국 시민 살해혐의도 포함됩니까?”
“포함.”
“형량에 제국이 개입합니까?”
“최소기준만.”
“왜 제국 법정이 아닙니까?”
“세르마크한테 자기 강경파 정리할 기회를 줘야지.”
새 정부가 정통성을 얻으려면 자기 법으로 전임 강경파를 심판해야 했다.
제국이 다 해버리면 바렌은 외세가 세운 꼭두각시가 된다.
그건 통치에 불리했다.
대신 제국 법무관이 참관했다.
증거도 제공했다.
재판과정은 공개됐다.
드라벤은 반역.
민간인 공격음모.
제국 시설 공격.
불법 쿠데타.
군법 위반.
모두 유죄.
세르마크 법정은 종신복역형을 선고했다.
그들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사실상 평생이었다.
제국 내 강경여론은 사형을 원했다.
나는 개입하지 않았다.
이미 전쟁은 끝났다.
죽이는 것보다 살아서 실패를 보는 편이 어떤 사람에게는 더 긴 처벌이었다.
◆바렌은 비상정부 대표로 나와 정식협상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가 먼저 말했다.
“우리는 패배했다.”
“강경파가.”
“세르마크가.”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패배를 인정해야 다음을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좋아. 다음을 말해.”
“세르마크를 보호국으로 만들 생각인가?”
“아직은 아니야.”
바렌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지금 바로 보호국으로 만들면 반발이 너무 커.”
“그걸 신경 쓰나?”
“통치비용이니까.”
“역시 낭만이 없군.”
“알렌도 같은 말 하더라.”
나는 초안을 띄웠다.
[세르마크 군축감독국 협정]
국가명 유지.
현 군정행정체계 유지.
비상정부 존속 후 5년 내 정부개편.
전쟁권 제국 귀속.
외교협정은 제국 승인.
대형함대 규모 70퍼센트 감축.
전략폭격무기 폐기.
군수산업 일부 민수전환.
제국 군사감독단 상주.
주요 항로 공동관리.
대신 세르마크 영토보전.
로하르의 보복공격 금지.
제국 시장 제한접근.
기반시설 지원.
“보호국과 뭐가 다르지?”
바렌이 물었다.
“왕이 없잖아.”
“농담인가?”
“절반은.”
나는 설명했다.
로하르는 제국 보호를 자발적으로 요청했고 국내절차로 비준했다.
세르마크는 무력충돌 끝에 감독체제가 들어간다.
법적 지위가 달라야 했다.
“잘하면 나중에 보호국이나 자치령으로 바꿀 수 있어.”
“못하면?”
“감독 더 길게.”
“직할령?”
“그럴 가치가 생기면.”
바렌이 웃었다.
“우리 나라가 직할할 가치도 없다는 말은 여전히 모욕적이군.”
“전략가치 낮은 게 평화롭다는 뜻일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진 않겠지만.”
“맞아.”
◆협상은 19시간 걸렸다.
세르마크는 함대감축비율을 70에서 55퍼센트까지 줄였다.
제국 감독단의 수사권도 제한했다.
대신 항로권은 거의 전부 넘겼다.
바렌은 끝까지 군사학교 자율성을 지켰다.
나는 허용했다.
쓸 만한 군사문화는 남겨두는 편이 낫다.
마지막 서명 전 바렌이 말했다.
“황제.”
“왜.”
“당신은 우리를 동등하게 보지 않지.”
“응.”
“언젠가 볼 수 있나?”
나는 생각했다.
“동등해지면.”
바렌은 그 답을 한동안 씹었다.
“제국답군.”
“칭찬으로 들을게.”
그날.
세르마크는 독립국으로 남았다.
하지만 더 이상 마음대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는 아니었다.
◆드라벤 토르 재판은 세르마크 사회 전체에 생중계됐다.
제국은 요구하지 않았다.
바렌이 공개를 선택했다.
“왜?”
내가 물었다.
“숨기면 당신들이 만든 재판이라고 할 테니까.”
“공개해도 그러지 않을까?”
“적어도 증거는 보게 된다.”
재판에는 제국이 확보한 공격함대 명령기록이 제출됐다.
제17보급소 좌표.
민간인 존재 확인.
공격승인.
자폭돌입 명령.
드라벤은 명령을 부정하지 않았다.
“제국을 몰아내기 위해 필요했다.”
검사가 물었다.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봤나?”
“국가가 굴복하는 것보다 싸우는 편이 낫다.”
“승산과 무관하게?”
“명예는 확률로 계산하지 않는다.”
이 발언은 세르마크에서 엄청난 논쟁을 만들었다.
일부는 영웅이라 불렀다.
다수는 자기 자식 목숨으로 남의 명예를 산 사람이라고 욕했다.
제국은 그 논쟁에 끼어들지 않았다.
세르마크가 스스로 자기 전쟁문화를 평가할 필요가 있었다.
◆바렌 정부가 가장 먼저 한 국내개혁은 의외로 군축이 아니었다.
전사자 통계를 공개했다.
73년 동안 세르마크가 숨겨온 숫자.
전사 320만.
부상·장애 900만 이상.
민간 직접피해 수천만.
경제손실은 계산불가.
광장 전광판에 숫자가 뜨자 시민들이 조용해졌다.
전쟁은 오래 지속될수록 죽음이 일상이 된다.
숫자를 한 번에 보여주면 다시 비정상이 된다.
나는 그 결정을 높게 평가했다.
“바렌 정치도 할 줄 아네.”
마리안이 말했다.
“살아남으려면 배워야죠.”
“우리한테?”
“상황에게.”
그 말이 더 맞았다.
◆감독국 협상에서 세르마크가 끝까지 지킨 권한 중 하나는 지역교육이었다.
제국은 허용했다.
대신 군국주의 선전과 종족혐오 교육은 개편대상으로 넣었다.
바렌이 물었다.
“무엇이 역사교육이고 무엇이 선전인지 누가 정하지?”
“공동위원회.”
“의견이 다르면?”
“제국 최고위원.”
“결국 당신들이군.”
“보호권역은 원래 그래.”
바렌은 한숨을 쉬었다.
새 질서는 매일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총을 내려놓은 뒤 더 어려운 협상이 시작됐다.
◆바렌 정부가 정통성을 얻기 위해 한 두 번째 조치는 5년 후 정부형태를 국민에게 묻겠다는 약속이었다.
군정연합을 유지할지.
민간공화정을 만들지.
혼합체제로 갈지.
제국은 특정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마리안이 물었다.
“공화정이 더 안정적이지 않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친숙한 제도가 아니라 굴러가는 제도야.”
하위문명 개도라고 해서 모든 나라를 아틀라스식으로 복사할 생각은 없었다.
군부가 정치에서 빠지고.
전쟁결정권이 제국에 있고.
법원이 어느 정도 독립하고.
세금이 투명하면.
그 뒤 의회 형태는 세르마크인이 정해도 됐다.
제국의 중앙집권은 중요한 것만 중앙에 모으는 체제였다.
사소한 것까지 같게 만드는 체제는 아니었다.
◆감독국을 만드는 첫 주에 가장 어려운 일은 장군을 잡는 게 아니었다.
중간관료를 남길지 자를지 정하는 일이었다.
세르마크에는 군정과 행정이 너무 깊게 섞여 있었다.
세무서장도 예비대령.
항만청장도 퇴역장군.
대학총장도 군 연구위원.
전부 제거하면 국가가 멈췄다.
전부 남기면 군정이 이름만 바뀌었다.
리안 테모르는 세 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전쟁범죄 가담 여부.]
[정치적 충성보다 직무능력.]
[민간통제 수용 여부.]
그 기준으로 첫 8만 명을 심사했다.
해임 11퍼센트.
직위전환 27퍼센트.
유임 62퍼센트.
로하르 강경파는 너무 관대하다고 비판했다.
나는 그대로 승인했다.
국가를 점령했다고 기억까지 새로 생산할 수는 없다.
어제 세금을 걷던 사람이 오늘도 세금을 걷게 하는 편이 낫다.
다만 총을 쥔 손은 바뀌어야 했다.
◆세르마크 군정연합이라는 국호를 바꾸자는 주장도 나왔다.
바렌은 거부했다.
“이름은 우리가 바꾸겠습니다.”
제국은 수용했다.
국호 하나까지 황제가 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헌장에는 한 줄이 들어갔다.
[전쟁권은 제국 감독 아래 둔다.]
그 한 줄이 국호보다 훨씬 중요했다.
◆5년 후 국민투표 약속은 제국에도 위험부담이 있었다.
반제국 정권이 합법적으로 당선될 수도 있었다.
마리안이 물었다.
“그때 보호감독체제 탈퇴를 공약하면요?”
“내정정부는 바꿀 수 있어도 감독조약은 못 바꿔.”
“그럼 주권선거가 아니라고 비판하겠군요.”
“맞지.”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세르마크는 독립국과 제국령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주민은 시장과 의회를 선택할 수 있었다.
전쟁을 다시 시작할 권리까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제국이 가져간 자치는 바로 그 부분이었다.
◆감독협정에는 세르마크 국경을 보장하는 조항도 들어갔다.
군대를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주변국에게 뜯어먹히게 둘 수는 없었다.
로하르 일부 정치인은 불만을 표시했다.
“적을 보호해줍니까?”
나는 답했다.
“우리가 무장을 줄였으면 우리가 책임져야지.”
군축은 약자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폭력을 중앙집중하는 일이었다.
세르마크는 전쟁권을 잃는 대신 외부침공에 대해 제국 보증을 얻었다.
◆드라벤의 가족은 재판 뒤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세르마크 시민들이 몰려가 집을 부수려 했기 때문이다.
제국 감독군은 보호를 승인했다.
“반역자 가족인데?”
세르마크 헌병이 물었다.
“가족이 명령했나?”
“아니다.”
“그럼 보호.”
연좌제를 없애겠다는 말이 실제로 적용된 첫 사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강경파 지도자의 가족이 새 제도의 첫 수혜자가 됐다.
이 사건은 세르마크 사람들에게 제국법이 무엇인지 어떤 연설보다 빠르게 알려줬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