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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2화 — 제3원정함대

별의 제국 · 22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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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원정함대가 엘리시온 회랑에 진입했을 때 로하르와 세르마크의 장거리관측망이 동시에 포화됐다.

함대 선두에는 기함 아르테미시아가 있었다.

전장 12.4킬로미터.

로하르 최대전함의 일곱 배가 넘었다.

그 뒤로 전투순양함, 전함, 중순양함, 전자전함이 층을 이루며 나타났다.

418척.

제국 기준으로는 원정함대 하나.

회랑 기준으로는 문명 하나가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로하르 방송국은 몇 시간 동안 함선 숫자만 세었다.

세르마크 선전망은 처음에는 영상조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자기 군 레이더에도 똑같이 잡히자 방송문구가 바뀌었다.

[대규모 외부군 침공]

나는 그 표현을 보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네.”

마리안이 나를 봤다.

“공식적으로는 안정화지원군입니다.”

“저쪽 입장에선 침공이지.”

“굳이 인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은 사실이잖아.”

제국은 세르마크의 허락 없이 들어왔다.

군사력을 제한하고.

정부구조까지 바꾸려 했다.

침공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

다만 점령과 약탈이 목적이 아니라는 차이가 있었다.

현지인이 그 차이를 충분하다고 느낄지는 별개였다.

아델라인 베르크가 직접 지휘했다.

그녀가 세르마크 전 함대망에 공개통신을 걸었다.

“아틀라스 제국 제3원정함대 대함대장 아델라인 베르크다.”

통역이 회랑 공용어로 반복됐다.

“귀함대 중 합법 세르마크 정부의 지휘를 따르는 함선은 현 위치를 유지하라.”

“강경파 지휘부 소속 함선은 무장을 해제하고 기관출력을 10퍼센트 이하로 낮춰라.”

“전투행위를 하지 않는 함선에는 사격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도망쳐도 추격한다.”

라울이 영상을 보며 말했다.

“아델라인답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면 충분히 친절하지.”

강경파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2,700척을 모았다.

제4전선군 주력.

수도 방위대 일부.

충성 군수함.

이들은 카르만 회랑에 방어진을 만들었다.

기뢰.

소행성 요새.

장거리포.

전자전.

세르마크 기준으로는 잘 만든 진지였다.

아델라인도 인정했다.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몇 점?”

“자기 기술수준 기준 83점.”

“우리 기준.”

“전술연습 표적장.”

말이 너무 잔인했지만 사실이었다.

제국함대는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공간센서로 기뢰좌표를 전부 읽고.

전자전함이 지휘망을 분리하고.

무인기가 요새의 전력선을 끊었다.

세르마크가 사격하기 전에 절반의 장거리포가 먹통이 됐다.

그제야 강경파가 발포했다.

수만 발의 탄환과 광선이 날아왔다.

제국 방어망이 받아냈다.

아르테미시아 함교에서 경보가 울렸다.

[방어장 부하 0.7퍼센트]

아델라인이 말했다.

“반격.”

그 한마디 뒤.

전장이 꺼지기 시작했다.

제국의 목표는 격침이 아니었다.

세르마크 함선을 나중에 지역치안군으로 다시 써야 했다.

그래서 엔진과 무기만 정밀하게 잘랐다.

문제가 되는 함선만 파괴했다.

자폭돌입.

민간행성 방향 미사일발사.

항복함 공격.

이런 경우에는 즉시 격침했다.

그렇지 않은 함선은 살렸다.

30분.

강경파 2,700척 중 1,900척 전투불능.

320척 항복.

140척 격침.

나머지는 도주.

제국 손실.

전투함 0.

중상 7.

경상 83.

사망 0.

세르마크 현실파 함대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하르드 레칸이 나중에 말했다.

“그날 우리가 본 건 함대가 아니었다.”

“그럼?”

“격차였다.”

바렌 노크는 제국 기함에 올라왔다.

그가 아델라인을 처음 직접 만났다.

두 사람은 꽤 오래 서로를 봤다.

바렌이 먼저 말했다.

“당신이 지휘했나?”

“그렇다.”

“우리 2,700척을 30분 만에.”

“정확히는 29분 41초.”

바렌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걸 정정할 필요가 있나?”

“기록은 정확해야 하니까.”

“황제도 그런가?”

“더하다.”

아델라인은 바렌에게 새로운 작전지도를 보여줬다.

강경파 잔존함대가 수도권으로 후퇴 중이었다.

“당신들이 처리해.”

바렌이 놀랐다.

“제국이 추격하지 않고?”

“우리가 다 하면 세르마크군이 남는 의미가 없지.”

“질 경우는?”

“안 지게 만들어준다.”

그게 새로운 질서의 첫 시험이었다.

제국이 모든 싸움을 대신하지 않는다.

현지인이 자기 지역을 지키게 한다.

대신 질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보호국과 감독국을 운영하는 제국의 기본방식이었다.

제3원정함대를 실제로 본 로하르 시민들의 반응은 방송보다 컸다.

함대가 초광속에서 빠져나올 때 벨하임 밤하늘에 인공별처럼 수백 개의 빛이 생겼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겁먹었다.

한 아이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저게 다 우리를 지켜주는 거야?”

어머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켜주는 함대이면서.

원하면 자기 나라를 하루 안에 끝낼 수도 있는 함대였다.

보호와 지배가 같은 선체에 실려 있었다.

세리아는 그 장면을 왕궁 창문에서 봤다.

그녀가 나중에 일기에 썼다.

[그날 로하르의 주권이 문서에 서명되기 전에 이미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문장은 훗날 보호국 역사책에서 유명해졌다.

전투가 끝난 뒤 제국 구조함은 세르마크 부상자를 먼저 수용했다.

로하르 방송 일부가 불만을 표했다.

“왜 적군을 치료하는가?”

제국군 의료사령부는 짧게 답했다.

[전투불능자는 현재 위협이 아니다.]

[의료순서는 국적이 아니라 중증도다.]

이 원칙은 로하르군에도 강제로 적용됐다.

나중에 한 로하르 장교가 전장에서 자기 병사보다 중상을 입은 세르마크 포로가 먼저 치료받는 걸 보고 항의했다.

제국 의무관이 물었다.

“귀하의 병사는 20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저자는 적이다.”

“그래도 3분 뒤 죽습니다.”

로하르 장교는 결국 물러섰다.

이런 사소한 장면이 제국의 질서를 설명했다.

적을 죽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죽일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부터는 다르게 다뤘다.

아델라인은 전투 뒤 세르마크 전술보고서를 직접 읽었다.

“기뢰배치가 괜찮았어.”

내가 말했다.

“예.”

“그런데 왜 그렇게 쉽게 졌지?”

“정보격차.”

그녀가 지도에 표시했다.

“기뢰 자체는 좋았습니다. 우리가 위치를 전부 알았다는 게 문제죠.”

“센서기술.”

“그리고 지휘망. 저들은 정보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우리는 모든 함선이 거의 동시에 공유합니다.”

기술격차는 단순 화력차가 아니었다.

아델라인은 세르마크 방어진 일부를 제국 사관학교 전술교재에 넣었다.

[낮은 기술수준에서의 효율적 방어진 구축 사례]

패배한 적도 교사가 될 수 있었다.

강경파 함대에서 항복한 승조원은 90만 명이 넘었다.

제국은 이들을 전부 수용할 시설을 몇 시간 만에 만들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신원확인 후 대부분 세르마크 현실파 정부에 넘겼다.

중대범죄 혐의자만 별도구금.

하급승조원은 원대복귀 또는 전역심사.

“반란군인데 그냥 돌려보냅니까?”

로하르 측이 물었다.

“명령받고 탄 사람까지 다 감옥에 넣으면 세르마크 노동인구가 사라집니다.”

제국은 조직책임과 개인책임을 구분했다.

명령을 내린 사람.

민간표적을 선택한 사람.

자폭공격을 지시한 사람.

이들은 잡았다.

기관실에서 명령대로 엔진을 돌린 기술자까지 같은 죄로 취급하진 않았다.

점령 이후 가장 중요한 건 적을 얼마나 많이 처벌하느냐가 아니라 내일 누가 도시를 운영하느냐였다.

전투를 본 로하르 장교들이 가장 놀란 건 거대한 전함보다 보급함대였다.

수리선.

의료선.

연료정제선.

무인기 공장선.

함대 뒤에 작은 도시가 따라왔다.

테렌이 물었다.

“이 전력을 전부 전투마다 데려옵니까?”

아델라인이 답했다.

“전투가 길어질 가능성이 있으면.”

“우리 함대보다 지원함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래 싸울 수 있는 거다.”

제국군의 진짜 격차는 포 한 발의 위력보다 체계 전체에 있었다.

세르마크가 함선을 한 척 잃으면 조선소로 돌아가야 했다.

제국함은 전선에서 부품을 갈고 다시 나왔다.

하위문명이 제국 함포만 복제한다고 격차가 줄지 않는 이유였다.

전투종료 뒤 아델라인은 세르마크 궤도조선소를 폭격하자는 요청을 거절했다.

강경파가 이용하던 시설이었다.

“적 군수시설입니다.”

한 참모가 말했다.

“내일부터 민간선 수리할 시설이기도 하지.”

“다시 군함을 만들면요?”

“감독하면 돼.”

파괴는 빨랐다.

통치는 그다음 날부터 시작된다.

제국은 점령할 지역의 수도·전력망·조선소를 가능한 한 남겼다.

부숴놓고 다시 짓는 건 낭비였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전쟁방식이기도 했다.

약한 군대는 적의 생산능력을 없애야 산다.

강한 군대는 그 생산능력을 나중에 자기 질서 안에서 쓸 수 있었다.

세르마크 병사들이 항복하면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하나였다.

“우리를 로하르에 넘깁니까?”

제국군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 순간 항복속도가 더 빨라졌다.

73년 적대국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보장.

그 작은 조건이 수십만 명의 무의미한 마지막 저항을 없앴다.

전투가 끝난 뒤 제국 구조선은 아군보다 세르마크 탈출포드를 더 많이 끌어왔다.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로하르 방송은 처음엔 그 장면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델라인의 답은 간단했다.

“전투 끝났잖아.”

적이 무기를 내려놓는 순간 구조대상으로 바뀌었다.

그 규칙은 이후 보호권역군의 첫 공동교리가 됐다.

아델라인은 전투 뒤 로하르 장교들을 기함에 초대했다.

거대한 함교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전투기록을 같이 복기했다.

테렌 바르크가 말했다.

“우리가 저 함대를 상대했다면 승리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델라인이 답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다.”

테렌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을 겁니다.”

“그 생각부터 버려.”

“왜요?”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지 않는 것도 군사능력이다.”

그녀는 세르마크가 제국에 한 실수를 그대로 지적했다.

로하르도 보호국이 됐다고 제국 힘을 자기 힘처럼 착각하면 안 됐다.

보호는 의존과 달랐다.

제국은 지역군이 자기 수준에서 현명해지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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