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0화 — 최후통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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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르 보호조약 서명일은 11일 뒤로 잡혔다.
세르마크에는 그보다 먼저 최후통첩이 갔다.
[72시간 이내 제4전선군 중화기 운용정지.]
[전쟁중지선 후방 3개 성계로 철수.]
[제국 감독단 수용.]
[대형전함 신규건조 10년 동결.]
[전략폭격무기 해체.]
[군정평의회 내전 발생 시 제국은 민간보호를 명분으로 개입.]
[거부 시 제국이 직접 군사감축을 실시한다.]
세르마크 전체가 들끓었다.
강경파는 굴복이라고 불렀다.
현실파는 생존이라고 불렀다.
평화파는 너무 늦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일반 시민 반응은 더 복잡했다.
73년 전쟁에 지친 사람들은 끝내길 원했다.
하지만 외국 황제가 자기 군대를 줄이라고 명령한다는 사실은 자존심을 건드렸다.
두 감정은 동시에 존재했다.
◆바렌 노크가 다시 나와 연결됐다.
이번에는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황제.”
“상장.”
“조건을 완화할 수 있나?”
“어느 것.”
“대형전함 건조동결.”
“왜 필요하지?”
“국가방위.”
“누구한테서?”
바렌이 멈췄다.
“로하르.”
“로하르는 곧 우리 보호국이야.”
“…그게 문제다.”
“그럼 로하르가 세르마크를 침공하면 우리가 막습니다.”
“당신들을 믿으라고?”
“선택은 자유.”
“믿지 않으면?”
“전함은 어차피 못 만듭니다.”
바렌이 이를 악물었다.
“협상이 아니군.”
“일부는.”
“어느 부분이 협상이지?”
“함대규모. 현지군 구조. 감독단 권한. 경제개방 속도. 귀국 정부형태.”
“외교권은?”
“제한.”
“전쟁권.”
“제국 승인.”
“핵심은 전부 정해졌군.”
“전쟁을 끝내려면 핵심을 건드려야 하니까.”
바렌은 화면 밖을 잠깐 봤다.
“우리 강경파는 싸우려 한다.”
“알아.”
“그들이 공격하면 세르마크 전체를 적으로 보나?”
“아니.”
바렌이 다시 나를 봤다.
“정말인가?”
“개인과 국가를 구분하는 건 기본이야.”
“그럼 강경파만 제거?”
“가능하면.”
“가능하지 않으면?”
“범위가 넓어지겠지.”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드 레칸도 같은 생각이다.”
“싸우지 말자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지 말자고.”
“좋은 군인이네.”
바렌이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 제국에서는 적장도 칭찬하나?”
“쓸 만하면.”
◆세르마크 강경파는 최후통첩 만료 19시간 전에 움직였다.
제4전선군 통신망이 수도지휘망과 분리됐다.
강경파 장성들이 ‘국가비상군사위원회’를 선언.
군정평의회 의장 체포 시도.
바렌 노크 체포명령.
하르드 레칸 체포명령.
수도 일부 군부대가 충돌했다.
에일린이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쿠데타 개시.”
“바렌은?”
“안전가옥 이동.”
“하르드.”
“제2함대가 그를 보호.”
“제17보급소.”
“제4전선군 소속 공격함대 출항. 31척.”
내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목표 확정?”
“예.”
“우리 시설.”
“예.”
전쟁실이 조용해졌다.
라울이 말했다.
“요격함대 준비됐습니다.”
“먼저 경고.”
“이미 4회.”
“민간인 철수.”
“진행 중. 78퍼센트.”
나는 공격함대 항적을 봤다.
31척.
그들이 제국을 몰아낼 수 있다고 정말 믿는지.
아니면 질 걸 알면서도 국내정치를 위해 피를 원하는지.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마지막 통신 보내.”
[귀 함대는 즉시 회항하라.]
[제국 시설에 대한 발포는 세르마크 전체가 아닌 해당 지휘계통의 적대행위로 규정한다.]
[회항하면 처벌은 세르마크 국내절차에 맡긴다.]
[발포하면 제국이 직접 처리한다.]
통신이 전달됐다.
31척은 계속 왔다.
그리고 사거리 안에 들어오자.
먼저 쐈다.
나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좋아.”
목소리가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차가웠다.
“이제 우리가 한다.”
◆최후통첩이 공개되자 세르마크 수도에서는 사재기가 시작됐다.
전쟁이 더 커질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었다.
식량점 앞 줄.
연료가격 상승.
학교 휴교.
군인가족의 대피.
제국은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바렌에게 별도메시지를 보냈다.
“민간경제 안정이 필요하면 식량지원 가능.”
그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시혜를 받지 않는다.”
“돈 받고 팔아.”
“…”
“그럼 무역이지.”
바렌은 결국 받아들였다.
벨로아 상선을 통해 곡물이 들어갔다.
제국은 직접 공짜배급하지 않았다.
세르마크 통화로 판매하고 가격상한만 걸었다.
국가자존심과 민생을 동시에 살리는 방법이었다.
마리안이 말했다.
“폐하께서 외교를 배우셨군요.”
“원래 잘했어.”
“그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쿠데타 직전 하르드 레칸은 부하 제독들을 모았다.
정보원 도청기록이 나중에 공개됐다.
“제국과 싸우자는 자는 손을 들어라.”
몇 명이 들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그대로 두고.”
손이 거의 다 내려갔다.
하르드가 말했다.
“그럼 싸우지 않는다.”
강경파 장교가 반발했다.
“명예는?”
“죽는다고 명예가 생기나?”
“굴복은 치욕이다.”
“나라가 사라지는 건 더 큰 치욕이다.”
이 논쟁이 세르마크 내부의 핵심이었다.
제국에 굴복하느냐.
아니면 질 걸 알면서 싸우느냐.
하르드는 첫 번째를 선택했다.
그 선택이 나중에 그를 ‘매국노’라고 부르는 사람과 ‘세르마크를 살린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동시에 만들었다.
◆강경파 공격함대가 출항했을 때 제국은 이미 항적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선제공격을 허가하지 않았다.
라울이 불만을 표시했다.
“공격의도가 명백합니다.”
“아직 발포 안 했어.”
“시민위험이 있습니다.”
“대피시키고 방어해.”
“굳이 맞고 시작해야 합니까?”
나는 잠깐 생각했다.
“이번에는.”
세르마크 사회가 다음 200년 동안 기억할 사건이었다.
제국이 먼저 때렸다는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군사적으로는 불필요한 절제였다.
정치적으로는 필요했다.
그 선택 때문에 위험이 0이 아니게 됐다.
그리고 결국.
그 대가는 세 명의 시민이 치르게 됐다.
◆강경파의 공격계획이 확정된 직후 황실근위는 내 위치를 옮기자고 건의했다.
“왜?”
황제의 신변을 맡는 황실근위사령관 카시안 레이가 답했다.
“세르마크 정보기관이 폐하의 현장방문 가능성을 탐색 중입니다.”
“난 황궁에 있는데.”
“그들이 그 사실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내가 보급소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가능성을 버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제국 시민도 길에서 나를 보면 ‘황제가 왜 여기 있겠어’라고 생각하는데.
외국 정보기관은 반대로 모든 곳에 황제가 있을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었다.
카시안은 진지했다.
“폐하는 국가자산입니다.”
“사람이라고 해.”
“둘 다입니다.”
그 말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틀리진 않았다.
황제 개인의 자유는 수조 명의 이해관계보다 작았다.
나는 위치이동은 거부하고 경호만 강화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보급소에서 포격이 시작됐다.
◆보급소 공격 몇 시간 전, 바렌은 강경파 지휘관 한 명에게 마지막 설득통신을 보냈다.
“돌아와라.”
“겁먹었나?”
“그렇다.”
상대가 비웃었다.
바렌은 말했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보고 겁먹지 않는 건 용기가 아니라 병이다.”
그 통신은 나중에 공개됐다.
세르마크 군사학교에서 수십 년 동안 토론되는 문장이 됐다.
용기와 무모함의 경계.
제국이 들어온 뒤 세르마크가 가장 먼저 다시 정의해야 한 군사개념이었다.
◆공격함대가 첫 포격을 준비할 때 제국 정보망은 이미 발사관 개방까지 보고 있었다.
라울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도 선제차단을 안 합니까?”
“민간대피율.”
“92퍼센트.”
“방어장.”
“최대출력.”
“그럼 기다려.”
이 판단이 옳았는지는 이후에도 오래 논쟁이 됐다.
군사적으로는 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세르마크 현실파에게 결정적인 명분을 줬다.
황제의 결정은 가끔 정답이 아니라 어떤 위험을 선택할지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위험에는 실제 사람이 있었다.
◆제17보급소 공격 직전까지도 세르마크 일반시민 대부분은 제국함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강경파 선전은 그 틈을 이용했다.
[아틀라스는 소수 특수함에 의존한다.]
[장기전에서는 후퇴한다.]
[본토는 멀고 보급이 어렵다.]
틀린 정보였다.
하지만 믿고 싶은 사람에게는 충분했다.
나는 3원정함대 이동준비를 일부러 숨기지 않았다.
대규모 함대의 존재 자체가 전쟁억지였다.
그럼에도 강경파는 공격했다.
에일린이 말했다.
“정보문제가 아니라 신념문제입니다.”
“무슨 신념.”
“제국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신념.”
상대가 현실보다 자기 서사를 믿기 시작하면 설득은 어려워진다.
그때부터 필요한 건 말이 아니라 결과였다.
◆제17보급소에는 군인보다 민간기술자가 더 많았다.
정비창.
연료관리.
항로관제.
구조선 승무원.
그래서 공격징후가 확인되자 기지사령관은 전투배치보다 먼저 비필수인원 대피명령을 검토했다.
당시 규정은 아직 ‘발포확인 후’였다.
그 몇 분의 차이가 나중에 세 사람의 이름으로 남게 된다.
누구도 그때는 몰랐다.
규정은 대개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충분해 보였다.
◆바렌은 공격함대 출항 사실을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통신을 보냈다.
[귀 함대는 세르마크 중앙정부의 명령을 받지 않았다. 귀환하라.]
답은 없었다.
하르드는 옆에서 말했다.
“이제 저들은 우리 군대도 아닙니다.”
바렌이 씁쓸하게 답했다.
“하지만 죽으면 우리 국민이지.”
그 문장이 세르마크 현실파가 앞으로 떠안을 문제를 보여줬다.
강경파를 제거하는 건 쉽다.
강경파였던 사람들까지 사회에서 지우는 건 불가능했다.
제국이 곧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포격이 시작된 직후 나는 한 번 더 라울에게 확인했다.
“공격한 31척만.”
“예.”
“수도나 다른 부대 건드리지 마.”
“명령 이해했습니다.”
정밀하게 잘라내는 전쟁.
제국이 회랑에서 처음 보여줄 전쟁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의 대가는 세 사람의 이름으로 남았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