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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9화 — 선택지

별의 제국 · 19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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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르에 최종 보호조건이 전달됐다.

문서만 1,400페이지.

부속합의까지 합치면 9,000페이지가 넘었다.

나는 요약본 47페이지를 받았다.

“왜 보호국 하나 만드는데 책이 생기지?”

세라가 말했다.

“200년짜리 관계를 10페이지로 정하면 더 위험합니다.”

“그래도 9천은 많잖아.”

“항로관할권만 312페이지입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핵심은 간단했다.

로하르는 국가명과 왕실을 유지한다.

국왕은 내정수반.

국민의회와 귀족평의회도 유지.

그러나 외교정책은 제국 외무원과 조정.

독자적 전쟁선포 불가.

제국군 기지 허용.

전략무기 제한.

초광속 간선망은 제국 관리.

제국 최고법원이 보호조약 관련 최종심을 가진다.

보호국민은 상급행정구역 내부 이동자유.

다른 제국권역 장기이주는 허가제.

하원의석은 제한배정.

상원은 정식 제국 시민만.

제국어는 고등행정·군사에서 단계적 도입.

통화는 50년 이상 로하르 화폐를 유지하되 제국통화와 고정교환체계 구축.

경제완충 10년.

전략산업은 20년.

왕실과 현지기업이 준비할 시간을 줬다.

제국이 마음만 먹으면 내일부터 전부 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로하르 경제가 제국기업에 먹힌다.

보호국을 망가뜨리면서 보호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국민투표를 할 것인지가 로하르 내부에서 가장 큰 논쟁이 됐다.

왕실은 의회비준만으로 충분하다고 봤다.

세리아는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에리안 왕자는 반대했다.

“전쟁 중입니다. 선전전이 벌어집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국가의 외교권을 넘기는 일입니다.”

“세르마크가 투표장에 미사일을 쏘면?”

“제국이 막겠죠.”

“그럼 이미 제국 보호를 받고 있잖아.”

왕실회의가 8시간 싸웠다.

결국 절충.

국민의회·귀족평의회 비준.

그 뒤 전국 자문투표.

법적으로 구속력은 없지만 찬성 50퍼센트 미만이면 재협상.

나는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굳이 기다려야 합니까?”

라울이 물었다.

“며칠인데 뭐.”

“세르마크가 그 사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 빨리 자기 운명 정하겠지.”

제국이 강하다고 모든 절차를 없앨 이유는 없었다.

현지인이 최소한 자기 결정에 참여했다고 느끼는 건 통치비용을 크게 줄였다.

투표결과.

찬성 68.4퍼센트.

반대 29.1.

무효·기권 2.5.

지역차는 컸다.

세르마크 국경지역은 찬성 80퍼센트를 넘었다.

안전한 내륙 귀족행성은 반대가 높았다.

사람은 위험이 가까울수록 보호를 원했다.

세리아는 결과를 인정했다.

그녀는 반대운동을 이끌었지만 투표 뒤 첫 성명에서 말했다.

[나는 보호조약에 반대했다.]

[그러나 로하르의 절차가 결정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제국에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조약이 로하르 시민에게 가장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나는 성명을 읽고 세라에게 말했다.

“저 사람 데려오고 싶다.”

“로하르 왕녀입니다.”

“알아.”

“벌써 외국인재 욕심내지 마십시오.”

“외국인 아니게 될 수도 있잖아.”

세라는 한숨을 쉬었다.

세르마크에서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제4전선군 사령부가 군정평의회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외부제국의 굴욕적 명령 거부]

[로하르 보호국화는 세르마크 포위전략]

[함대감축 불가]

강경파 장성 11명이 공동성명을 냈다.

바렌 노크와 하르드 레칸은 서명하지 않았다.

에일린이 보고했다.

“내부충돌 가능성 71퍼센트.”

“쿠데타?”

“강경파가 먼저 움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목표.”

“군정평의회 장악. 현실파 체포. 그리고 제국에 제한공격을 가해 후퇴를 유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한테 공격해서 우리가 후퇴한다고?”

“그들은 평가함대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240척 41초도 봤는데.”

“그걸 특수무기로 해석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정보가 부족하면 희망이 전략이 되는군.”

에일린은 웃지 않았다.

“공격목표로 제17외곽보급소가 거론됩니다.”

“우리 시설?”

“예.”

“민간인 있어?”

“기술자와 항만요원 3,200명.”

나는 표정이 굳었다.

“경계 올려.”

“선제체포를 요청할까요?”

“아니.”

“왜요?”

“세르마크가 아직 자기 사람을 정리할 기회를 줘.”

“공격하면?”

나는 짧게 답했다.

“그때는 우리가 정리한다.”

보호국 국민투표 기간에는 제국이 선거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시험받았다.

친제국단체가 제국기업에서 불법후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금액은 크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즉시 조사하라고 했다.

“우리 편인데요.”

기업대표가 항변했다.

“그래서 더 조사해.”

“보호조약 찬성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돈 줘서 찬성표 사면 나중에 누가 결과 믿어?”

해당기업은 보호국 사업참여 5년 제한을 받았다.

친제국단체도 벌금을 냈다.

이 사건이 오히려 투표신뢰를 올렸다.

반대파가 말했다.

“적어도 제국이 자기 편 부정행위까지 덮지는 않는다.”

통치에서 공정성은 완벽한 중립보다 중요할 때가 있었다.

투표 당일 제국군은 투표소 500킬로미터 밖에 배치됐다.

치안은 로하르 경찰이 맡았다.

세리아가 그 점은 공개적으로 높게 평가했다.

“제국 총구 아래 투표라고 부를 근거는 줄었습니다.”

에리안은 반대로 말했다.

“세르마크 총구가 사라진 것 자체가 제국군 때문입니다.”

둘 다 맞았다.

결과가 68.4퍼센트 찬성으로 나오자 친제국파는 축제를 벌였다.

제국 공보원은 ‘합병 찬성’이라는 표현을 정정했다.

[보호조약 찬성.]

[정식 제국령 편입과 다름.]

이 구분을 초반부터 확실히 해두는 것이 중요했다.

보호국은 제국권 안에 들어오지만 직할령은 아니다.

왕실도 남고.

토착법도 남고.

국민 대부분은 제국 시민이 아니다.

대신 중요한 주권을 중앙에 넘긴다.

강경파 통신을 분석하던 에일린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찾았다.

제17보급소의 방어구조 정보 일부가 세르마크에 넘어가 있었다.

“내부유출?”

“가능성 낮습니다.”

“그럼?”

“로하르 상업망을 통해 간접수집한 것 같습니다.”

제국이 회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현지 정보상들이 제국시설을 돈으로 팔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적응 진짜 빠르네.”

“시장경제는 문명등급과 무관하게 빠릅니다.”

보급소 방어에는 문제없는 수준의 정보였다.

그래도 에일린은 역정보를 섞었다.

강경파는 잘못된 취약점을 진짜라고 믿게 됐다.

그 결정이 곧 공격계획에 영향을 줬다.

제국은 공격을 기다리면서도 손 놓고 있지 않았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밤, 벨하임 광장에서는 찬반 양쪽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찬성파는 제국기와 로하르 왕실기를 같이 흔들었다.

반대파는 로하르기만 들었다.

제국군은 광장 바깥에만 있었다.

두 집단 사이를 로하르 경찰이 막았다.

욕설은 오갔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나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좋네.”

세라가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물었다.

“무엇이요?”

“우리 군 없어도 자기들끼리 관리하잖아.”

보호국의 가치는 스스로 굴러가는 데 있었다.

제국군이 모든 시위와 교통사고까지 관리해야 한다면 그건 보호국이 아니라 점령지였다.

로하르는 적어도 그 단계는 아니었다.

투표 뒤 왕실은 반대 29.1퍼센트를 어떻게 다룰지도 고민했다.

에리안은 ‘국민결정이 끝났으니 따르라’는 성명을 제안했다.

세리아가 반대했다.

“29퍼센트는 사라진 사람이 아닙니다.”

알렌은 그녀 쪽을 택했다.

최종 왕실성명에는 이렇게 적혔다.

[찬성은 보호조약을 결정했다. 반대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려준다.]

나는 그 문장을 높게 평가했다.

보호국이 안정되려면 반대파를 패배한 적으로 만들지 않아야 했다.

제국은 현지정부가 이런 정치적 균형을 스스로 잡는 나라를 선호했다.

그게 직할통치가 필요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로하르 보호국 협상팀은 마지막 순간에 ‘왕국’이라는 국호 보장을 요구했다.

제국 법무원은 별 의미 없다고 봤다.

나는 승인했다.

“이름 하나로 협정이 쉬워지면 싼 값이잖아.”

국호.

왕관.

국기.

이런 상징은 중앙통제에 큰 비용이 없었다.

반대로 사람들에게는 정체성의 핵심이었다.

제국은 권력을 가져가고 상징은 가능한 한 남겼다.

실용적인 지배는 모든 것을 빼앗는 것과 달랐다.

보호조약 서명 직전 로하르군 일부에서 반란조짐이 포착됐다.

규모는 작았다.

젊은 장교 70여 명이 ‘주권수호위원회’를 만들고 무장시위를 검토했다.

제국 정보원은 명단을 알렌에게 넘겼다.

“제국군이 체포할까요?”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군인입니다.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

왕국 헌병이 먼저 움직였다.

대부분은 실제 범죄 전에 해산명령을 따랐다.

주동자 몇 명만 체포됐다.

나는 결과를 보고 만족했다.

로하르 정부가 자기 반대세력을 법으로 다룰 수 있다면 제국군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보호국의 자치는 이런 데서 시험됐다.

투표기간에는 본토 단체의 정치자금 유입도 전면 금지됐다.

친제국 시민단체든 반제국 단체든 같았다.

“우리한테 유리한 캠페인도 막습니까?”

한 로하르 친제국 의원이 물었다.

마리안이 답했다.

“당신들이 선택했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선택하는 순간만큼은 당신들 돈으로 싸우십시오.”

제국은 결과를 원했지만 절차가 결과의 정당성을 갉아먹게 두고 싶진 않았다.

반대운동도 보호를 받았다.

투표소 앞에는 제국군이 아니라 로하르 경찰이 섰고, 제국군은 멀리서 치안붕괴에만 대비했다.

선택지가 진짜 선택처럼 보이려면 총구는 최대한 화면 밖에 있어야 했다.

세리아는 체포된 장교들의 공개재판을 요구했다.

“반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밀리에 사라졌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됩니다.”

알렌은 받아들였다.

제국도 반대하지 않았다.

결국 대부분은 무장음모가 아닌 불법군사조직 혐의로 경징계·전역처분을 받았다.

보호국 시대 첫 정치범이 대량으로 생기는 사태를 피했다.

강한 통치는 많이 잡아가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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