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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5화 —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별의 제국 · 15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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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마크에 준 72시간 동안 로하르는 더 빨리 움직였다.

알렌 4세가 공식적으로 보호협상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원조’나 ‘중재’가 아니었다.

보호국화 협상.

왕국 귀족평의회 찬성 58퍼센트.

국민의회 찬성 69퍼센트.

아직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로하르 사회가 갈라졌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제국을 받아들이자는 쪽.

왕국을 지키기 위해 제국을 막아야 한다는 쪽.

재미있는 건 둘 다 로하르를 사랑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본토에서는 첫 외부보호국 가능성이 공개됐다.

황제 발표가 아니었다.

의회자료가 먼저 공개됐다.

그런데도 제국망 접속이 폭증했다.

26년 만의 첫 보호국.

대단절 전에 보호국과 살았던 세대에게는 잃어버린 제국질서가 돌아오는 사건이었다.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책 속 제도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상원에서는 즉시 의석문제가 나왔다.

“보호국이 상급행정구역을 구성하면 상원의원은 누가 되는가?”

답은 기존법에 있었다.

최소 1석.

단, 정식 제국 시민만 가능.

보호국 왕족도 자동으로 못 앉는다.

하원은 제한대표.

정식 제국령의 동일 인구 대표권 대비 3분의 1 이하.

로하르가 800억이 넘는 인구라 해도 본토와 똑같은 수의 의원을 보내지는 못한다.

하원 자유권파가 반발했다.

“세금을 내고 제국법의 영향을 받는데 대표권은 절반이라니.”

시민권파가 반박했다.

“보호국민은 제국 시민이 아니다.”

“그럼 제국이 외교권을 가져갈 근거는?”

“보호조약.”

“강제된 조약이라면?”

논쟁은 길어졌다.

나는 중계를 보다가 껐다.

세라가 물었다.

“관심 없으십니까?”

“결론 날 때 불러.”

“황제께서 만든 문제입니다.”

“의회가 해결하라고 있는 거잖아.”

나는 모든 일을 직접 결정할 생각이 없었다.

황권이 강하다고 황제가 지방버스 노선까지 정하면 국가는 망한다.

보호국 초안은 예상보다 강했다.

로하르 외교권은 제국에 위임.

대규모 전쟁권 상실.

제국군 기지 설치.

초광속 항로 통제.

전략무기 개발 제한.

대외군사동맹 금지.

대신 왕실 존속.

헌법과 국민의회 유지.

지방세 유지.

로하르어 공식언어 유지.

교육·문화 자치.

민사법 상당부분 유지.

제국 시장 단계적 접근.

의료·산업·교육 개도지원.

기간은 200년 후 전면재심.

로하르 기준으로는 긴 시간이었다.

제국 기준으로는 짧았다.

알렌이 조항을 읽다가 말했다.

“외교권을 전부 가져가시는군요.”

“외교정책 두 개가 있으면 보호권역이 굴러가지 않습니다.”

“군대도.”

“현지군은 유지합니다. 다만 대외전쟁은 제국 승인이 필요합니다.”

“전략무기.”

“제한.”

“제국기업에는?”

“10년 완충규제를 둡니다.”

알렌이 고개를 들었다.

“왜요?”

“바로 열면 귀국 기업 절반이 5년 안에 사라질 수 있으니까.”

제국기업과 로하르 기업의 규모차는 너무 컸다.

완전개방은 자유무역이 아니라 포식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제국은 로하르 경제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살아 있는 보호국이 세금도 내고 시장도 된다.

“왕실 재산은?”

“합법취득분은 보장.”

“귀족령.”

“현지법에 따르되 강제노동과 일부 특권은 재심.”

알렌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국은 우리 문화를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문화와 착취는 구분합니다.”

“그 기준은 누가 정합니까?”

“처음에는 우리.”

“솔직하시군요.”

“나중에는 공동위원회.”

“그 위에는?”

“제국 최고법원.”

알렌은 한참 조항을 내려다봤다.

“정말 자치국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국 기준으론 꽤 많이 남겨주는 겁니다.”

“우리 기준은 다릅니다.”

“그래서 협상하는 거고.”

나는 이 말을 하고 잠깐 웃었다.

협상은 했다.

다만 로하르가 완전히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협상은 아니었다.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걸 숨길 필요도 없었다.

그날 밤.

세르마크에서 답이 왔다.

정식 정부답변.

[제국 안정화령 일부 수용.]

[민간회랑 인정.]

[현 군사분계선 일시정전 동의.]

[제국 감독단 거부.]

[함대감축 거부.]

[외교권 제한 거부.]

절반짜리 수용이었다.

마리안은 말했다.

“현실파가 상당히 밀어붙인 것 같습니다.”

“강경파는?”

“제4전선군과 수도 군사위원 일부가 반발.”

“쿠데타 가능성.”

“있습니다.”

나는 답변서를 읽고 말했다.

“민간회랑 수용은 인정해.”

“나머지는?”

“재협상.”

라울이 물었다.

“강제로 하지 않습니까?”

“아직.”

“이유는?”

“저쪽 안에서 바꿀 사람이 있잖아.”

함대를 부수는 것보다 현지 엘리트가 스스로 구조를 바꾸게 만드는 편이 싸고 오래 갔다.

제국은 정복할 힘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정복할 필요는 없었다.

보호국 초안이 유출되자 로하르 거리에서는 조항별 시위가 벌어졌다.

왕정폐지파는 오히려 제국에 왕실특권 축소를 요구했다.

귀족들은 제국이 자기 봉토법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상인들은 관세율부터 물었다.

학생들은 본토대학 입학자격에 관심을 보였다.

노동조합은 제국기업 최저임금 적용을 요구했다.

하나의 ‘주권’ 논쟁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사람마다 관심사가 달랐다.

나는 현지 여론요약을 보며 말했다.

“좋네.”

세라가 물었다.

“또 뭐가 좋으십니까?”

“사람들이 조약을 자기 삶 문제로 보기 시작했잖아.”

국가정체성만으로 싸우는 논쟁은 끝이 없었다.

세금.

교육.

집값.

취업.

병원.

구체적인 문제가 나오면 협상할 수 있다.

로하르 귀족평의회에서는 가장 민감한 질문이 나왔다.

“제국은 우리의 작위를 인정하는가?”

마리안이 답했다.

“로하르 국내작위로 인정합니다.”

“제국 귀족과 동급인가?”

“아닙니다.”

“왜?”

“제국 작위는 제국 황제가 수여합니다.”

회의장이 술렁였다.

로하르 공작이 제국 남작보다 높은가 낮은가.

답은 비교불가였다.

로하르 공작은 로하르 국내서열.

제국 남작은 제국 공식작위.

보호국 귀족이 제국 가문명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일부 귀족은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일부는 오히려 새로운 목표를 봤다.

제국에서 공을 세우면 별도 제국작위를 받을 수 있는가.

“가능은 합니다.”

마리안이 말했다.

“왕족도?”

“공훈이 충분하면.”

그날부터 몇몇 젊은 로하르 귀족의 눈빛이 바뀌었다.

제국은 기존 신분을 깎으면서 동시에 더 높은 사다리를 보여줬다.

영리한 방식이었다.

세르마크 답변이 온 날, 에일린은 별도로 강경파 통신을 가져왔다.

[제국 함선은 많지 않다.]

[무장해제 기술은 특수장비일 가능성.]

[보급시설 타격 후 철수하면 장기개입 의지를 꺾을 수 있다.]

나는 통신문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 정치의지를 시험한다고?”

“그들의 경험으로는 외부강대국이 장기비용을 부담하지 못하고 철수한 사례가 많습니다.”

“우리 수명부터 조사했으면 생각이 달라졌겠네.”

아틀라스 제국은 20년 개입을 장기로 느끼지 않았다.

100년도 관리 가능한 정책기간이었다.

짧은 수명의 문명이 제국의 인내심을 오판하면 위험했다.

나는 정보원에 지시했다.

“우리 장기주둔 능력 일부 공개해.”

“억지효과?”

“응. 우리가 지쳐서 갈 거라고 착각하지 않게.”

전쟁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상대가 헛된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로하르 보호국 논쟁은 왕실 가족 자체도 갈랐다.

에리안 왕자는 찬성.

세리아 왕녀는 반대.

왕비는 중립.

왕세자는 끝까지 말을 아꼈다.

알렌이 나중에 내게 말했다.

“가족회의가 국무회의보다 힘듭니다.”

“황실도 똑같아.”

“폐하도 그런 적이 있습니까?”

“내 즉위 초에 황자·황녀들이 나라 절반씩 끌고 싸웠어.”

“가족싸움 규모가 다르군요.”

“그래서 가족이라고 봐주진 않았지.”

알렌은 그 말을 듣고 조용해졌다.

왕실을 유지시켜 주는 제국이 동시에 필요하면 왕실을 제거할 수 있는 제국이라는 사실.

보호는 영구보증이 아니라 성과계약이기도 했다.

최종 보호초안에는 ‘문명개도위원회’ 설치조항도 들어갔다.

이름부터 로하르 일부에서 반발을 샀다.

“우리를 미개하다고 부르는 겁니까?”

마리안이 답했다.

“제국보다 낮은 분야를 올리는 위원회입니다.”

“이름을 협력위원회로 바꾸면 안 됩니까?”

“가능합니다.”

결국 공식명칭은 [제국-로하르 공동발전위원회]가 됐다.

내용은 같았다.

의료.

교육.

산업.

법무.

군제.

단어 하나 바꾸는 데도 현지 자존심이 걸렸다.

제국은 목표를 양보하지 않으면서 표현은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었다.

세르마크 강경파는 로하르 보호국화가 ‘포위’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지도상 제국기지는 실제로 세르마크를 포위하지 않았다.

정보원은 일부러 전체 배치도를 공개했다.

거짓 선전이 숫자로 반박되자 강경파는 다른 주장을 꺼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포위할 것이다.]

나는 보고서를 읽고 말했다.

“미래예측까지 반박하긴 어렵네.”

에일린이 답했다.

“그래서 행동으로 쌓아야 합니다.”

신뢰는 한 번의 문서로 만들 수 없었다.

특히 우리가 실제로 압도적으로 강할수록 더 그랬다.

로하르 왕실경비대는 보호국화 뒤 황궁 경비권이 제국군으로 넘어가는지 물었다.

대답은 아니었다.

궁전 안쪽은 계속 로하르 경비대가 맡는다.

제국근위는 황제가 방문하거나 제국시설을 지킬 때만 들어온다.

“왜 다 가져가지 않습니까?”

“필요 없으니까.”

제국은 권한을 좋아했지만 불필요한 업무까지 좋아하진 않았다.

보호국화 초안에는 황실이 직접 얻는 영지나 재산이 하나도 없었다.

로하르 귀족들은 그걸 의아해했다.

“정복군주는 보통 토지를 요구합니다.”

마리안이 답했다.

“황실은 본토에 충분히 많습니다.”

실제로 황실은 행성단위 자산과 기업지분을 보유했다.

로하르 궁전 하나 더 얻는다고 의미가 없었다.

제국이 원하는 건 생산적인 질서였다.

세금.

항로.

안보.

인재.

그게 영토문서보다 중요했다.

이 사실은 현지 엘리트에게 제국의 욕망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욕심의 규모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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