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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4화 — 회랑 안정화령

별의 제국 · 14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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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 안정화 기본안은 17개 국가 모두에게 보내졌다.

로하르와 세르마크만의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주변국들이 더 크게 놀랐다.

제국 문서에는 자신들까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시온 회랑 전역을 임시 안정화권역으로 지정한다.]

[국가 간 대규모 무력분쟁 발생 시 제국은 강제중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민간항로와 난민회랑의 안전을 제국이 보장한다.]

[전략급 생화학무기·행성폭격무기의 사용을 금지한다.]

[회랑 외부세력의 군사개입은 사전통보를 요구한다.]

벨로아 상업연맹은 3시간 만에 동의했다.

이유는 평화주의가 아니었다.

보험료 때문이었다.

제국이 항로안전을 보장한다고 발표한 뒤 벨로아 상선보험료가 하루 만에 22퍼센트 떨어졌다.

상인들은 이념보다 숫자에 빨랐다.

카르디아 제후권은 조건부 수용.

라사드 성왕국은 ‘외부 이교제국의 오만’이라며 반발.

제9자유항은 제국함 입항료를 받을 수 있냐고 먼저 물었다.

나는 보고서를 보며 말했다.

“쟤들은 마음에 드는데.”

세라가 물었다.

“어느 국가 말씀이십니까?”

“자유항. 제일 솔직해.”

본토 정치권 반응도 갈렸다.

상원 원로파는 지나치게 빠른 팽창을 우려했다.

하원 개척파는 오히려 늦다고 했다.

황실 직속 전략회의에서 아우구스트 재상이 물었다.

“폐하께서는 회랑 전체를 제국 영토로 만들 생각입니까?”

“아니.”

회의실 몇 명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다 먹을 필요 없잖아.”

나는 지도를 띄웠다.

엘리시온 회랑 190광년.

수십 개 정착성계.

수백억에서 수천억의 현지인.

“여기 전부 직할령으로 만들면 관료 얼마나 필요해?”

행정원장이 계산했다.

“제국 표준 직접행정을 적용하려면 초기 1,200만 명 이상.”

“현지언어 교육하고 법 바꾸고 세금망 연결하고.”

“예.”

“전략자원은?”

“현재까지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아틀라스인 정착자는?”

“0.”

“그럼 왜 직할하지?”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지배는 넓게. 직할은 필요한 데만.”

내가 말했다.

“왕이 말을 잘 들으면 왕을 써. 공화정부가 유능하면 그대로 써. 우리한테 중요한 건 깃발 색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질서야.”

아우구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국 체제를 대규모로 부활시키실 생각이군요.”

“대단절 전에도 잘 썼잖아.”

제국의 보호국은 완전독립국과 달랐다.

외교권은 제국.

국방도 제국.

초광속 항로.

전략자원.

전략기술.

대외무역표준.

최고사법의 일부.

권역 간 이동정책.

이런 핵심은 중앙이 쥐었다.

현지정부는 지방치안, 문화, 도시행정, 교육, 일부세금과 민사법을 맡았다.

겉으로는 나라가 남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제국 내부의 제한적 자치구역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현지 왕실과 엘리트에게는 완전병합보다 훨씬 받아들이기 쉬웠다.

제국에는 더 싸고.

세르마크는 안정화령을 거부했다.

대신 사절을 보냈다.

이름은 바렌 노크.

계급은 상장.

군정연합 외교군사위원.

그는 수도로 오지 않았다.

중립공간을 요구했다.

나는 굳이 고집하지 않았다.

회담은 평가함대 기함에서 열렸다.

나도 홀로그램으로 참석했다.

바렌은 카르 바젠과 달랐다.

목소리가 낮고 말이 짧았다.

“황제.”

“노크 상장.”

“귀국의 힘은 확인했다.”

“다행이군요.”

“그러나 힘이 있다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세르마크는 힘이 있어서 로하르 국경을 점령했죠?”

바렌의 눈이 조금 좁아졌다.

“우리에게도 역사적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조사합니다.”

“귀국이 무슨 자격으로?”

나는 잠깐 생각했다.

“끝낼 능력이 있는 자격.”

“그건 정복자의 논리다.”

“맞습니다.”

바렌이 멈췄다.

내가 부정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복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차이가 있나?”

“큽니다. 세르마크 행정을 다 부수고 우리 관료를 보낼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무엇을 원하지?”

“전쟁권을 가져갑니다.”

바렌이 처음으로 표정을 크게 바꿨다.

“불가능하다.”

“외교권도 상당부분.”

“거부한다.”

“군수산업은 규모제한.”

“거부한다.”

“제국 감독단 상주.”

“거부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방식으로 가죠.”

바렌이 나를 노려봤다.

“협박인가?”

“선택지 설명입니다.”

“거절의 선택도 있나?”

“물론.”

“결과는?”

“귀국 군사력을 우리가 직접 줄입니다.”

침묵.

바렌은 오래된 군인이었다.

허세와 실제 힘을 구별할 줄 알았다.

그는 이미 240척이 41초 만에 멈추는 걸 봤다.

“시간을 달라.”

“72시간.”

“너무 짧다.”

“73년 싸웠잖아.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썼다고 봅니다.”

바렌은 웃지 않았다.

그래도 통신을 끊기 전 마지막으로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가 생각한 종류의 제국이 아니군.”

“어떤 종류를 생각했는데?”

“우리 땅을 빼앗으러 온 자들.”

나는 대답했다.

“땅이 필요하면 빼앗을 수도 있죠.”

바렌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가치가 없어서 안 하는 겁니다.”

그 말이 세르마크에서 얼마나 큰 모욕으로 받아들여질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실이었다.

회랑 안정화령을 발표하기 전, 나는 상·하원 합동대표단을 불렀다.

법적으로 황제 단독으로도 외부군사안정화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래도 예산과 장기통치에는 의회 협력이 필요했다.

상원의원 하나가 물었다.

“폐하, 이게 사실상 보호권 설정 아닙니까?”

“맞습니다.”

“의회 동의 없이?”

“임시 5년은 황제권한.”

하원의원이 끼어들었다.

“5년 뒤에는?”

“정식 권역으로 전환할 거면 표결.”

“그럼 지금은 군사행정?”

“임시 안정화.”

자유권파 의원 레아 폰트가 말했다.

“현지 주민의 동의절차가 없습니다.”

“국가별로 다르게 받습니다.”

“세르마크가 거부하면 강제로?”

“예.”

회의장이 잠깐 조용해졌다.

나는 덧붙였다.

“국민투표를 할 수 있는 사회에는 투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군정강경파가 민간행성을 포격하는 상황에서 투표부터 기다리진 않습니다.”

레아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 기준도 결국 제국이 정합니다.”

“현재는 그렇습니다.”

“위험한 권한입니다.”

“그래서 5년 뒤 의회가 다시 보는 겁니다.”

황권과 의회 사이의 선은 늘 이런 식이었다.

황제는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의회는 오래 남는 구조를 승인했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제국은 지나치게 느리거나 위험해졌다.

안정화령이 발표되자 주변 15개 국가가 하루 안에 비상회의를 열었다.

가장 현실적인 반응은 벨로아였다.

그들은 제국 함대의 전력을 계산하고 6시간 만에 결론을 냈다.

[군사대응 비현실적]

[경제적 접근 우선]

그리고 외교사절단을 준비했다.

카르디아 제후들은 서로 제국과 먼저 접촉하려고 경쟁했다.

라사드 성왕국은 반대로 종교선언을 냈다.

[별바깥의 거만한 자들이 신성한 질서를 침해한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물었다.

“저긴 등급 몇?”

“IV+.”

“그냥 놔둬.”

“도발하면?”

“그때 처리.”

모든 하위문명을 즉시 보호국화할 필요는 없었다.

전략가치도 낮고.

우리 항로를 위협하지도 않고.

내부에서 알아서 사는 국가라면 관찰만 해도 됐다.

제국의 팽창은 무차별 병합이 아니라 선택적 질서확장이었다.

바렌과 회담 뒤 마리안이 내게 말했다.

“마지막 표현은 굳이 하실 필요 없었습니다.”

“땅이 가치 없다는 거?”

“예.”

“사실인데.”

“외교에서는 사실을 다 말하지 않는 것도 기술입니다.”

“그래서 네가 있잖아.”

“폐하가 먼저 다 말한 뒤 제가 뭘 합니까?”

“부드럽게 번역해.”

“통역AI가 이미 정확하게 번역했습니다.”

나는 웃었다.

마리안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녀가 나중에 세르마크에 별도메시지를 보냈다는 걸 알았다.

[제국이 귀국 영토를 직할병합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같은 문장이.

마리안 손을 거치면 모욕에서 안심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외교원이 필요했다.

안정화령이 시행되자 제국 함대는 중립감시선을 설치했다.

로하르와 세르마크 함선 모두 5분마다 위치신호를 제출해야 했다.

양국 군인들은 처음에는 굴욕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고가 줄었다.

상대 함대가 어디 있는지 실시간으로 보이니 오판이 줄었기 때문이다.

어느 로하르 구축함이 항법고장으로 세르마크 쪽에 접근했을 때도 제국 감시망이 먼저 양쪽에 알려 교전을 막았다.

아무도 영웅이 되지 않았다.

아무도 죽지도 않았다.

나는 그 사건보고서에 가장 높은 평가를 줬다.

전쟁을 막는 시스템은 성공해도 뉴스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가치 있었다.

임시 안정화권역이라는 이름은 5년짜리였지만, 제국 관료들은 이미 200년 계획을 만들고 있었다.

마리안이 그 문서를 보고 웃었다.

“임시라면서요.”

“제국에서 임시가 5년이잖아.”

아틀라스인의 시간감각은 현지국가와 계속 충돌했다.

로하르 사람에게 5년은 정권 한 주기.

제국에게는 담당관이 업무를 익히는 기간에 가까웠다.

그래서 모든 대외정책 문서에는 현지종족의 수명과 세대주기를 따로 적게 했다.

같은 20년 정책이라도 누구에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랐다.

안정화령 발표 뒤 가장 먼저 제국에 연락한 건 왕도 장군도 아니었다.

회랑의 보험조합이었다.

[제국이 선포한 항로의 손실을 실제로 보증합니까?]

재무원이 답했다.

[제국 함대가 통제하는 구간에 한함.]

그날 보험료가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권위는 연설보다 보험료에서 더 빨리 증명되기도 했다.

라사드 성왕국은 안정화령을 거부한 뒤 국경을 닫았다.

제국은 억지로 열지 않았다.

마리안이 물었다.

“종교국가인데 관찰만 합니까?”

“우리 항로 안 건드리잖아.”

“내부 인권문제는 있습니다.”

“수준.”

“심각하지만 대량학살 단계는 아닙니다.”

“그럼 기록하고 지켜봐.”

제국은 하위문명이라고 전부 즉시 개입하지 않았다.

개입능력이 있다는 것과 모든 문제를 자기 문제로 만드는 것은 달랐다.

전략가치가 낮고 외부위협이 적으면 느린 개도접촉도 가능했다.

선택적 팽창.

그 원칙이 회랑에서 처음 시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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