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3화 — 73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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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원인보다 기억으로 오래 간다.
로하르-세르마크 전쟁은 그 전형이었다.
제국 조사단이 양국 자료를 모두 모아 첫 통합전쟁사를 만든 데 9일이 걸렸다.
분량은 83만 페이지.
나는 요약본 612페이지만 받았다.
그래도 많았다.
“더 줄일 수 없나?”
에일린이 말했다.
“줄이면 중요한 인과관계가 빠집니다.”
“612페이지 안 읽는다고 황제 자격 박탈되나?”
“아니지만 잘못 결정하실 가능성은 올라갑니다.”
“줘.”
결국 읽었다.
◆73년 전.
로하르 왕실의 방계공주가 세르마크 국경군 사령관과 결혼했다.
당시에는 평화혼인이었다.
문제는 로하르 왕위계승자가 사고로 죽으면서 시작됐다.
방계공주의 아들이 왕위계승권을 주장했다.
세르마크는 지지했다.
로하르는 외세개입이라 반발했다.
처음 충돌은 작은 국경분쟁이었다.
그다음 광산이 발견됐다.
고출력 반응로에 쓰는 희귀동위원소.
양측 모두 필요했다.
민족이 섞여 살던 국경행성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로하르 민병대가 세르마크계 주민을 학살했다.
세르마크군이 보복했다.
더 많이 죽였다.
로하르가 다시 공격했다.
세르마크가 도시를 폭격했다.
이후로는 누가 먼저였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73년 동안 양쪽 모두 충분히 잘못했다.
나는 보고서 중간에서 물었다.
“로하르가 우리한테 자기 민병대 학살 얘기 했나?”
에일린이 답했다.
“처음 제출자료에서는 축소했습니다.”
“세르마크는?”
“자기 도시폭격 피해는 강조하고 보복학살은 누락.”
“똑같군.”
“정도 차이는 있습니다.”
“누가 더 나빠?”
“시기별로 다릅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현실은 깔끔하지 않았다.
◆제국 조사단은 양국 교과서도 비교했다.
같은 전투.
로하르에서는 ‘국경방위대전’.
세르마크에서는 ‘제3해방작전’.
같은 장군.
한쪽에서는 영웅.
다른 쪽에서는 학살자.
한쪽 기념비의 희생자 숫자와 다른 쪽 기록은 세 배 차이.
“역사통합교육은 어려울 겁니다.”
마리안이 말했다.
“할 필요 있나?”
“보호권역으로 묶으려면 공동기억이 필요합니다.”
“공동기억 말고 공동규칙부터 만들자.”
“둘은 결국 연결됩니다.”
“그건 100년 뒤에.”
나는 전쟁의 원인을 하나로 정리할 생각이 없었다.
양쪽 사람에게 자기 가족의 죽음은 실제였다.
제국이 들어왔다고 그 기억이 사라지진 않는다.
할 수 있는 건 다음 세대가 같은 이유로 또 죽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세르마크 사회는 흥미로웠다.
19개 군정행정구.
각 구역 총독은 군장교이면서 행정관.
교육률은 높았다.
기초공학과 군수과학 투자도 컸다.
민간언론은 제한됐고 종교는 국가허가 아래 관리됐다.
선거는 없었지만 지역성과평가로 관료가 교체됐다.
“이 부분은 쓸 만한데.”
나는 말했다.
성과지표 기반 총독평가.
제국에도 비슷한 체계는 있었지만 세르마크는 경쟁을 더 노골적으로 사용했다.
문제는 통계조작이었다.
생산량을 올리기 위해 품질을 낮추고.
징병률 목표를 맞추려고 병약자까지 끌고 가고.
교육성취도를 높이려고 시험난도를 낮췄다.
“역시 지표 하나 걸면 숫자를 망치는 건 종족 공통인가.”
세라가 말했다.
“제국도 6천 년 전에 비슷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져올 건 경쟁구조만.”
“예.”
하위문명이라고 무시할 필요는 없었다.
좋은 제도는 좋았다.
제국이 더 잘 사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양국 군사상황은 더 명확했다.
세르마크가 조금 강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길 만큼은 아니었다.
로하르를 점령하면 보급선이 길어지고.
로하르가 반격하면 세르마크 공업성이 노출됐다.
양쪽 모두 상대를 끝낼 힘이 부족했다.
그런데 항복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73년.
“제국 없으면 앞으로 얼마나 더 싸우지?”
아델라인이 답했다.
“현재 추세라면 30년 후에도 전쟁 중일 확률이 높습니다.”
“100년?”
“가능합니다.”
“그럼 끝내자.”
말은 간단했다.
문제는 끝내는 방식이었다.
단순히 휴전시키면 10년 뒤 다시 싸울 수 있었다.
양국 군대를 모두 없애면 치안이 무너진다.
한쪽을 완전히 정복하면 반발이 크다.
둘 다 제국령으로 만들 이유는 더 없었다.
전략가치도 아직 제한적이고 아틀라스인 정착자도 없었다.
직할관료를 수백억 인구에 깔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답은 보호와 감독이었다.
로하르는 왕실을 남긴 보호국.
세르마크는 군정을 개편한 감독국 또는 보호령.
둘 다 외교와 전쟁권은 제국이 가져간다.
현지행정은 최대한 남긴다.
“폐하.”
마리안이 내 표정을 읽었다.
“결론 내리셨습니까?”
“거의.”
“양국에 협상안을 보낼까요?”
“협상안이라고 부르지 마.”
“그럼?”
“회랑 안정화 기본안.”
“이름이 더 제국적이군요.”
“우리가 안정화하니까.”
문서 첫 줄을 적었다.
[엘리시온 회랑의 73년 전쟁은 제국이 종료한다.]
그 아래.
[양국의 역사적 청구권은 별도심사한다.]
[현 군사분계선은 임시선일 뿐 영토확정선이 아니다.]
[민간인 거주권을 우선보호한다.]
[독자적 대규모 군사행동권은 정지한다.]
[제국 조사단의 군·행정시설 접근을 허용한다.]
세라가 읽더니 말했다.
“세르마크는 절대 처음부터 수용하지 않을 겁니다.”
“알아.”
“그럼 왜 보냅니까?”
“나중에 우리가 너무 빨리 때렸다고 못 하게.”
마리안이 웃었다.
“그건 외교적으로 중요합니다.”
나는 문서를 승인했다.
73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양국만의 전쟁도 아니었다.
◆전쟁피해 통계는 숫자보다 더 복잡했다.
직접 전사자.
폭격사망자.
기아.
질병.
피난 중 사망.
출산율 감소.
산업붕괴.
교육중단.
제국 인구학자들은 73년 전쟁이 양국 합계 최소 110억 명의 ‘기대인구 손실’을 만들었다고 계산했다.
실제 죽은 사람보다 훨씬 큰 숫자였다.
나는 보고서를 읽고 물었다.
“이건 양쪽에 공개해.”
에일린이 말했다.
“선전전으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산방식까지 같이 공개.”
“서로 상대 탓이라고 할 겁니다.”
“하게 둬.”
중요한 건 전쟁비용을 숨기지 않는 것이었다.
로하르에서는 처음으로 ‘전쟁을 계속했을 경우 20년 후 인구전망’이 방송됐다.
세르마크에서도 같은 자료가 퍼졌다.
양국 모두 반전여론이 조금씩 올라갔다.
제국이 쏜 포탄보다 통계표가 더 불편한 무기가 되기도 했다.
◆조사단은 전쟁범죄도 따로 분류했다.
로하르 민병대 학살 41건.
세르마크 정규군의 민간폭격 63건.
양쪽 포로학대.
강제이주.
민족차별.
그러나 사건 대부분이 수십 년 전이었다.
가해자 상당수가 이미 죽었다.
“전부 재판할 수 있나?”
법무원이 답했다.
“법적으로 가능해도 사회적으로는 위험합니다.”
“그럼?”
“중대사건 우선. 나머지는 진상기록과 배상기금.”
나는 승인했다.
정의도 행정능력 안에서 해야 했다.
과거 73년 모든 잘못을 한꺼번에 심판하려 들면 평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양국 절반이 피고인이 된다.
그 대신 기록은 지우지 않았다.
피해자 이름.
지휘계통.
명령문.
가능한 한 남겼다.
제국은 용서할 수는 있어도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았다.
◆전쟁사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상한 문장이 하나 있었다.
[전쟁 48년차, 양국이 사실상 종전합의에 접근했으나 미확인 외부상단의 무기공급 증가로 협상 붕괴.]
나는 그 줄을 다시 읽었다.
“외부상단?”
에일린이 말했다.
“벨로아를 경유한 거래입니다. 실제 공급자는 확인 중.”
“누가 25년 동안 전쟁 팔아먹은 건가?”
“가능성 있습니다.”
새로운 우주는 단순히 로하르와 세르마크 둘만의 세계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 전쟁으로 돈을 벌었고.
누군가는 전쟁이 끝나는 걸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나는 자료에 표시했다.
“이건 계속 파.”
전쟁을 끝내는 것과.
전쟁이 왜 계속됐는지 밝히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전쟁사 분석 중 가장 기묘한 건 양국 병사들의 비공식 교류였다.
공식적으로는 서로를 증오했지만, 국경 일부에서는 수십 년간 암묵적 휴전이 반복됐다.
명절 밤에는 포격을 멈추고.
부상자를 서로 넘겨주고.
어떤 전선에서는 양측 장교가 비밀통신으로 포격시간을 조정해 민간인 대피를 허용했다.
“이런 기록 왜 교과서에는 없지?”
내가 물었다.
에일린이 답했다.
“영웅서사에 맞지 않으니까요.”
나는 이 자료를 공개하라고 했다.
증오만 73년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전선의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상대도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제국이 평화를 처음 발명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양쪽이 스스로 하지 못한 걸 강제로 지속시키는 역할을 맡는 것이었다.
◆전쟁기록을 다 읽은 날 나는 알렌과 바렌에게 같은 문장을 따로 보냈다.
[제국은 어느 한쪽을 무죄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로하르 쪽에서는 불쾌하다는 답이 왔다.
세르마크에서도 불쾌하다는 답이 왔다.
나는 세라에게 말했다.
“둘 다 싫어하면 균형은 맞나?”
“외교는 양쪽을 똑같이 화나게 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래도 사실은 같잖아.”
제국이 해야 할 일은 양쪽의 역사서에 좋은 나라로 적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을 끝내고 다시 시작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전쟁사 조사팀은 전사자 명부도 양쪽에서 받아 비교했다.
같은 국경도시의 가족이 서로 다른 군복을 입고 죽은 사례가 수천 건 나왔다.
73년이면 적대도 세습된다.
그러나 혈연과 거래와 이주는 국경선을 무시했다.
제국은 그래서 영토선보다 주민등록과 생활권을 먼저 봤다.
종전선 하나 잘못 그으면 다음 전쟁의 씨앗이 될 수 있었다.
◆전쟁비용을 계산한 재무원은 더 냉정한 결론을 냈다.
제국이 양국을 20년간 개도·안정화하는 비용보다, 전쟁이 20년 더 이어져 발생할 회랑 전체 경제손실이 훨씬 컸다.
아우구스트 재상이 말했다.
“도덕을 빼도 개입이 이익입니다.”
“그 말 좋네.”
“공식연설에는 쓰지 마십시오.”
“왜?”
“사람을 돈으로만 본다고 오해받습니다.”
나는 웃었다.
제국은 도덕과 이익이 같은 방향을 가는 정책을 가장 좋아했다.
평화를 만들면서 시장도 커진다면 굳이 둘 중 하나만 이유로 삼을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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