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1화 — 구조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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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중지선이 발효된 다음 날.
로하르 난민 24,817명은 제국 의료함에서 임시거주구로 옮겨졌다.
거주구라고 해도 그들이 알던 임시수용소와는 달랐다.
평가함대 지원함 두 척이 외부모듈을 펼치자 11시간 만에 완전 밀폐형 주거구역이 만들어졌다.
개인침실.
공용주방.
진료소.
어린이 교육실.
중력조절구역.
식품생산기.
상수재순환망.
로하르 관리들은 처음에 그것을 장기주둔기지라고 생각했다.
제국 행정관이 설명했다.
“임시거주구입니다.”
“얼마 동안 사용할 시설입니까?”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그런데 건설비가…”
“회수 가능합니다.”
모듈형 구조물은 해체해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다.
기술격차란 가끔 거대한 전함보다 이런 곳에서 더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첫 문화충돌은 주거배정에서 일어났다.
로하르 귀족 한 명이 자신과 가족에게 별도구역을 요구했다.
“나는 베르칸 백작이다.”
제국 행정관이 번역을 다시 확인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 평민과 같은 구역에 배정될 수 없다.”
“왜요?”
백작은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 말하지 않았나. 나는 귀족이다.”
“현재 배정기준은 가족단위, 의료필요, 생물환경, 보안위험입니다. 작위는 기준에 없습니다.”
“왕국에서 백작은—”
“여기는 제국 시설입니다.”
행정관은 화내지 않았다.
그냥 다음 사람을 불렀다.
이 사건은 몇 시간 만에 난민 전체에 퍼졌다.
로하르 평민들은 통쾌해했고.
귀족들은 불쾌해했다.
나는 보고서를 보고 세라에게 물었다.
“저 행정관 누구야?”
“엘리나 소브. 144세. 제4재난대응청.”
“잘했네.”
“귀족외교 측면에서는 조금 더 부드러울 수 있었습니다.”
“규칙 설명했잖아.”
“그래도 ‘왜요?’는 상당히 직접적이었습니다.”
“나 마음에 드는데.”
세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국은 로하르인을 평등한 제국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간 이하로 다루지도 않았다.
이 구분은 중요했다.
제국 시민에게만 적용되는 정치권리와 복지, 이동자유, 법적 보호가 있었다.
보호국민은 그보다 아래였다.
외국인은 더 아래였다.
그러나 응급의료와 기본생명권 같은 것은 신분과 무관하게 지켰다.
로하르 난민 중 중상자 311명은 전원 제국식 재생치료를 받았다.
치료비를 청구하지 않았다.
대신 의료데이터 활용동의를 받았다.
외계생리학 자료가 제국에도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하르 의사들은 충격을 받았다.
한 의사가 제국 의료원에게 물었다.
“이 장비를 우리에게 판매할 수 있습니까?”
“현 상태 그대로는 안 됩니다.”
“가격 때문입니까?”
“기술격차 때문입니다.”
“우리가 쓸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까?”
“운용은 가능합니다. 유지·복제·안전관리 체계가 없습니다.”
의사는 불쾌해했다.
제국 의료원은 설명을 이어갔다.
“대신 귀국 기술수준에 맞춘 장비는 설계할 수 있습니다.”
“성능이 낮은 걸 일부러?”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최고성능으로.”
그게 제국의 개도정책이었다.
최신기술을 던져주고 알아서 쓰라고 하지 않았다.
받는 사회가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서 주고, 그다음 단계로 올라갈 교육체계를 같이 만들었다.
◆언어문제도 바로 생겼다.
통번역AI는 하루 만에 실용대화를 처리할 만큼 로하르어를 배웠다.
그러자 난민들 사이에서 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늘었다.
“강제교육은 하지 마.”
나는 말했다.
교육원이 확인했다.
“선택강좌만 운영하겠습니다.”
“대신 자료는 충분히 줘.”
“예.”
세라가 물었다.
“보호국화를 생각하신다면 제국어 조기보급이 유리하지 않습니까?”
“강제로 시작하면 200년 뒤에도 싫어해.”
“자발적으로 배우게 만들겠다?”
“제국어를 알면 취업이 되고, 대학 갈 수 있고, 장사할 수 있으면 알아서 배워.”
언어는 총보다 오래 남았다.
그걸 억지로 밀어붙일 필요는 없었다.
◆난민구역에서 첫 아이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임신 34주 상태로 구조된 사람이었다.
전쟁스트레스 때문에 조산위험이 높았지만 제국 의료진이 안정시켰다.
아이 이름은 로하르어로 ‘새벽’을 뜻하는 리엔.
부모는 출생지를 적는 항목에서 잠깐 멈췄다.
아틀라스 평가함대 임시거주구.
국적은 로하르.
출생지는 제국시설.
법무관들이 신이 났다.
새로운 유형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고서를 보고 말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런 걸 좋아하지?”
세라가 답했다.
“법무관은 선례를 좋아합니다.”
“이해 못 하겠어.”
“과학자들이 미지현상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건 좀 이해된다.”
아이는 건강했다.
로하르 언론이 그 소식을 받아갔다.
몇 시간 뒤 사진이 회랑 전체로 퍼졌다.
제국 의료진 품에 안긴 작은 로하르 아기.
세르마크 선전망은 연출이라고 주장했다.
로하르 왕실은 기적이라고 불렀다.
제국은 둘 다 정정했다.
[일반적인 조산관리 사례임.]
그 문장이 오히려 더 큰 충격을 줬다.
그들에게 기적 같은 일이 우리에게는 일반진료였다.
◆그날 저녁 알렌 4세에게서 통신이 왔다.
“폐하.”
“국왕.”
“난민들을 돌봐주신 것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그건 됐고.”
나는 화면을 바꿨다.
로하르 정부조직도가 떴다.
“이제 본론으로 갑시다.”
알렌의 표정이 굳었다.
“제국 조사단을 로하르 수도와 주요 군사·산업시설에 파견하겠습니다.”
“감사단입니까?”
“평가단.”
“거부할 수 있습니까?”
나는 잠깐 그를 봤다.
“거부는 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귀국의 정보를 다른 방식으로 수집하겠죠.”
알렌은 웃지 않았다.
“선택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선택은 맞습니다.”
“결과가 다를 뿐?”
“맞습니다.”
국왕은 한동안 생각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은 판단입니다.”
“제국은 우리를 보호국으로 만들 생각입니까?”
나는 이번에도 솔직하게 답했다.
“후보 중 하나입니다.”
“다른 후보는?”
“독립 안전보장국. 제국보호령. 상황이 나쁘면 군정감독.”
알렌이 쓴웃음을 지었다.
“완전한 독립은 후보가 아닙니까?”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선호하지 않는다.”
“현재 상태가 계속될 거라면.”
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그는 내 말을 이해했다.
제국이 온 이상.
로하르의 전쟁은 끝을 향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뒤 로하르가 어떤 나라로 남느냐였다.
◆난민구역의 경제도 며칠 만에 생겼다.
사람은 피난 와도 거래한다.
누군가는 자기가 가져온 로하르 과자를 팔았고.
누군가는 제국 배급식량을 다른 맛으로 조리해 돈을 받았다.
어떤 귀족은 자기 보석을 팔아 더 넓은 가족실을 구하려 했다.
행정관이 막았다.
“주거배정은 돈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내 돈인데?”
“그건 귀하의 재산이고, 여기는 재난시설입니다.”
로하르 상인 하나가 이 장면을 보고 제국관리에게 물었다.
“제국에서는 돈이 힘이 아닙니까?”
“힘입니다.”
“그런데 왜 안 통합니까?”
“돈이 적용되는 영역이 있고 아닌 영역이 있으니까요.”
그 상인은 그 대답을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나중에 그는 보호국화 이후 제국법 강의를 가장 먼저 신청한 사람 중 하나가 됐다.
◆난민 신원복구과정에서 로하르의 분산신분망 장점이 더 잘 드러났다.
중앙망과 연결이 끊긴 사람도 가족노드와 지역기록을 이용해 신원을 복원할 수 있었다.
제국 행정원이 직접 기술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로하르 관리가 당황했다.
“제국이 우리 기술을 배웁니까?”
“아이디어를 봅니다.”
“당신들은 우리보다 수천 년 앞선 것처럼 보이는데.”
“앞섰다고 모든 문제를 먼저 생각한 건 아니니까요.”
이 사례는 본토 언론에서도 꽤 크게 다뤄졌다.
제국 우월주의자들 일부는 불쾌해했다.
[왜 하위문명 기술을 칭찬하나.]
과학원은 공식답변을 냈다.
[좋은 설계는 좋은 설계다.]
[문명등급은 개별 아이디어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 문장을 승인했다.
제국이 강한 이유 중 하나는 자존심 때문에 쓸 만한 걸 버리지 않는 데 있었다.
◆난민 중에는 제국을 신으로 보는 사람도 생겼다.
죽어가던 가족을 살렸고.
세르마크 전함을 순식간에 멈췄고.
몇 시간 만에 도시를 만들었다.
로하르 종교집단 하나가 제국 의료함 앞에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보고를 받고 즉시 말했다.
“그건 말려.”
“강제로?”
“아니. 우리가 신 아니라고 설명해.”
제국 사회는 종교를 개인신념으로는 허용했지만 국가정책에 끌고 들어오는 걸 싫어했다.
하위문명이 황제를 신격화하는 사례는 대단절 전에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황실은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통치에는 편할 수 있다.
하지만 황제가 신이라고 믿는 사회는 다음 황제도 신이어야 한다.
그건 장기적으로 귀찮았다.
“그리고 의료진 사진에 후광 효과 넣은 방송 편집한 놈 찾아.”
세라가 말했다.
“로하르 민간방송입니다.”
“삭제요청만 해.”
“예.”
제국은 보호국을 만들려 했지 종교를 만들려는 게 아니었다.
◆난민구역에서 처음으로 작은 범죄도 발생했다.
제국 의료용 진통제가 암시장에 나왔다.
범인은 로하르 난민이 아니라 제국 계약직 운송원이었다.
그는 희귀 외계약품처럼 비싸게 팔 생각이었다.
실제로는 제국에서 흔한 약이었다.
나는 보고서를 보고 말했다.
“첫 외계범죄가 우리 사람 짓이네.”
세라가 답했다.
“통계적으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범인은 제국법으로 처벌됐다.
로하르 언론은 그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제국이 현지인만 감시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사람도 잡는다는 점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보호국 통치는 공정해 보이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실제로 자기 편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오래 갔다.
◆난민구역 운영 10일째에는 로하르 관리들이 일부 행정을 넘겨받았다.
제국이 계속 직접 배급표와 주거배정을 관리하면 보호가 아니라 의존이 된다.
엘리나 소브는 로하르 공무원들에게 시스템을 넘기며 말했다.
“틀려도 됩니다. 대신 기록하세요.”
“제국 기준에 못 미치면?”
“고치면 됩니다.”
개도는 완벽한 답을 대신 해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