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6화 — 난민선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세 척의 난민선은 느렸다.
제국함 기준으로 보면 멈춰 있는 것에 가까웠다.
고속순양함 카스토르가 초광속에서 빠져나오자 상대 함선의 반응은 더 느렸다.
경고신호.
급격한 방향전환 시도.
실패.
엔진불꽃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카스토르 함장 미라 켈은 먼저 통신을 보냈다.
[정체를 밝히시오. 구조가 필요합니까?]
당연히 답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이었다.
통번역AI가 실시간으로 패턴을 쪼갰다.
소리.
문장.
반복어.
긴급통신이라는 점은 금방 드러났다.
[도움]
[민간]
[부상]
[추격]
정확한 문법은 몰라도 의미는 충분했다.
미라가 말했다.
“구조의사 확인.”
뒤따라오던 추격함 12척이 나타난 것은 그 직후였다.
상대는 제국함을 보자 속도를 줄였다.
그러나 물러나지는 않았다.
함선 형상은 난민선보다 훨씬 공격적이었다.
무기구획이 선명했고, 전방포문이 열렸다.
카스토르는 경고했다.
[현재 선박들은 아틀라스 제국의 구조대상입니다. 무장을 비활성화하고 거리를 유지하십시오.]
상대 통신이 돌아왔다.
해독률 19퍼센트.
[우리… 반역… 도주함… 인도…]
미라가 황궁에 실시간보고를 올렸다.
나는 답했다.
“거절.”
“추격대가 무기조준 중입니다.”
“한 번 더 경고.”
“예.”
카스토르가 제국어와 임시해독 언어를 동시에 송신했다.
[구조 중인 함선에 대한 공격을 금지합니다. 사격 시 귀 함대의 무장을 제거합니다.]
잠깐 정적.
그리고 12척 중 선두함이 발사했다.
질량탄 6발.
광자포 2문.
목표는 난민선.
카스토르의 방어장이 펼쳐졌다.
공간이 얇게 일그러졌다.
질량탄이 궤도를 잃고 빗나갔다.
광자포는 방어장 표면에서 흩어졌다.
미라가 말했다.
“적대행위 확인.”
카스토르가 반격했다.
8초.
그게 전부였다.
첫 2초에 상대 함대의 사격통제센서가 전부 죽었다.
다음 3초에 주포 전력선이 차단됐다.
마지막 3초에 추진기관 출력이 12퍼센트 이하로 제한됐다.
폭발은 거의 없었다.
함선은 그대로 떠 있었다.
승조원도 대부분 살아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전투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제국 전쟁실에서 누군가 말했다.
“V급 확정이군.”
아델라인이 바로 정정했다.
“저 12척만 보면 그렇습니다.”
“전체 문명은 아직 모른다?”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은 싫었다.
한 부대가 약하다고 국가 전체가 약하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저 장면 하나로 적어도 현재 접촉부대와의 군사격차는 확실해졌다.
◆난민선 내부는 엉망이었다.
평가함대 의료진이 승선했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공기였다.
산소농도.
독성물질.
미생물.
제국 표준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아틀라스인이 방호복을 입고 활동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발견했다.
인간형.
팔 둘.
다리 둘.
얼굴구조도 놀랄 정도로 비슷했다.
다만 눈동자가 세로로 길고, 피부에는 엷은 금속성 반점이 있었다.
“근연종 가능성?”
오르테가가 중얼거렸다.
생명분석이 돌아갔다.
유전구조는 전혀 같지 않았다.
겉모습이 비슷할 뿐이었다.
“수렴진화.”
“가능성이 큽니다.”
난민선 세 척에서 생존자 24,817명이 확인됐다.
사망자 63.
중상자 311.
경상자는 너무 많아 별도집계가 필요했다.
의료함이 붙자 외계인들은 처음에는 두려워했다.
당연했다.
자기들을 추격하던 함선보다 훨씬 큰 배가 갑자기 나타나 추격대를 8초 만에 무력화했다.
도와준다고 해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의료기술은 더 큰 충격이었다.
외계인 의사가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환자를 제국 의료원이 12분 만에 안정시켰다.
찢어진 장기를 재생시키고.
뼈를 복원하고.
감염을 제거했다.
외계인 의료진 몇 명은 치료보다 치료장비를 더 오래 바라봤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 격차면 ‘기술교류’라는 표현부터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건네는 것 하나가 상대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조심한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무엇을 얼마나 줄지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첫 환자가 의식을 되찾은 것은 구조 9시간 뒤였다.
이름은 카렌 벨.
로하르 왕국 해군 소령.
통번역AI가 언어데이터를 충분히 모은 뒤였다.
카렌이 눈을 뜨자 처음 본 것은 제국 의료함의 흰 천장이었다.
그다음은 의료원.
그리고 유리아스 제독.
그는 겁먹은 표정으로 주변을 봤다.
“여긴…”
통역이 약간 늦게 따라왔다.
유리아스가 답했다.
“아틀라스 제국 평가함대 의료함입니다.”
카렌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틀라스?”
“국가명입니다.”
“어느 동맹 소속입니까?”
“어느 동맹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카렌의 얼굴이 굳었다.
“세르마크는?”
“귀하들을 추격한 함대라면 무력화했습니다.”
“격침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유리아스는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귀하의 국가는 로하르 왕국입니까?”
“예.”
“세르마크와 전쟁 중?”
카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73년째입니다.”
유리아스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변했다.
“73년.”
“그렇습니다.”
“왜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까?”
질문의 뉘앙스가 통역을 거치며 조금 이상해졌다.
카렌의 얼굴에 불쾌함이 스쳤다.
“우리도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럼 왜 못 끝냈는지 묻는 겁니다.”
유리아스는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제국 기준으로 V급 문명 둘이 73년간 지역전쟁을 반복한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비효율이었다.
카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유리아스가 잠깐 생각했다.
“지금은 구조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중에는?”
“그건 폐하께서 결정하십니다.”
“폐하?”
“아틀라스 황제.”
카렌은 처음 듣는 이름을 되뇌었다.
그 순간 의료함 외부창 너머로 전투순양함 한 척이 지나갔다.
카렌의 눈이 커졌다.
난민선보다 수십 배 큰 함선.
표면에는 포문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가 아주 작게 물었다.
“저것도… 탐사선입니까?”
유리아스는 대답했다.
“호위함입니다.”
카렌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날 밤.
평가함대가 보내온 첫 공식 문명평가가 황궁에 도착했다.
[로하르 왕국 — 임시 종합등급 V]
[세르마크 군정연합 — 임시 종합등급 V+ ~ VI-]
[엘리시온 회랑 — 다국가 분쟁권역 추정]
나는 마지막 줄을 봤다.
다국가.
전쟁.
난민.
그리고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분쟁.
마리안이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카렌의 인터뷰 영상을 다시 봤다.
“일단 가보자.”
“접촉하러요?”
“아니.”
“그러면요?”
“정리할 수 있는지 보러.”
◆추격함 승조원들도 구조했다.
세르마크 군인들은 처음에는 포로가 된 줄 알고 긴장했다.
제국 해병대가 무기를 걷고 의료검사를 한 뒤 식사를 줬다.
한 세르마크 장교가 물었다.
“우리를 심문하지 않나?”
“할 겁니다.”
“고문은?”
통역이 잘못됐나 싶어 제국 장교가 다시 확인했다.
“왜 합니까?”
“정보를 얻으려면.”
“거짓말이 늘어나는데요.”
세르마크 장교는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제국 정보기관은 정신침습 기술도 있었지만 법적 제한이 엄격했다.
특히 외국군 포로에게 무제한 적용할 수 없었다.
강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선을 정해둘 필요가 있었다.
포로들은 개별실에 수용됐다.
의료.
식사.
통역.
변호지원.
제국 기준으로는 평범한 절차였다.
세르마크 기준으로는 기괴하게 관대한 포로수용이었다.
그 소문이 나중에 세르마크군 전체에 퍼졌다.
항복하면 살아남는다는 확신은 전쟁에서 생각보다 강한 무기였다.
◆카렌의 인터뷰는 길어졌다.
그는 처음에는 군사기밀 제공을 거부했다.
유리아스도 억지로 묻지 않았다.
대신 공개정보부터 물었다.
왕국 인구.
수도.
왕 이름.
전쟁기간.
주변국.
로하르 종족의 생물학.
카렌이 어느 순간 물었다.
“왜 군사정보를 강요하지 않습니까?”
“필요하면 다른 방법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왜 나한테 묻죠?”
“당신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고 싶으니까.”
정보에는 사실과 관점이 함께 들어 있었다.
위성사진만으로는 로하르인이 왜 세르마크를 두려워하는지 알 수 없다.
항로지도만으로는 73년 전쟁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제국은 기술격차가 클수록 오히려 현지인의 이야기를 더 들었다.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사실이 현지사회를 자동으로 이해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카렌이 말했다.
“세르마크는 괴물들이 아닙니다.”
유리아스가 조금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당신들을 쫓아왔는데도?”
“그들의 군대가 우리를 죽였습니다. 그래도 그 나라 전체가 같은 건 아닙니다.”
유리아스는 그 문장을 황궁 보고서에 따로 표시했다.
나도 표시했다.
쓸 만한 장교였다.
◆난민선 격납고에서는 더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로하르 식품이 제국 영양합성기와 맞지 않았다.
필수아미노산은 비슷했지만 향과 식감이 전혀 달랐다.
제국 식품공학자가 하루 만에 로하르 식재료를 분석해 모사식을 만들었다.
첫 시식 반응은 나빴다.
“맛이 너무 깨끗합니다.”
로하르인이 말했다.
“깨끗한 게 왜 문제죠?”
“집에서 먹는 맛이 안 납니다.”
결국 합성기에 일부러 미량의 발효향과 광물맛을 넣었다.
만족도가 크게 올랐다.
나는 보고서를 읽고 웃었다.
문명을 만난다는 건 초광속기관을 비교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가끔은 물맛과 수프냄새부터 맞추는 일이었다.
◆첫 외계생존자 구조보고가 본토에 도착했을 때 의료원 내부에서는 작은 논쟁이 있었다.
“종족명을 아직 모르는데 환자기록에 뭐라고 씁니까?”
“미확인 인간형 가형.”
“사람한테 가형이 뭡니까.”
“그럼 로하르인?”
“본인이 로하르라고 확인하기 전입니다.”
결국 임시표기는 [외부지성체 구조자 001]이 됐다.
몇 시간 뒤 카렌이 깨어나 자기 이름을 말하자 기록은 곧바로 바뀌었다.
나는 그 사소한 수정이 마음에 들었다.
국가가 모르는 사람을 번호로 부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름을 알게 된 뒤에도 번호로 남겨두면 안 된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