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5화 — 재개방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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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함대가 떠난 지 사흘째.
제국은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아직 외계인 한 명 만나지도 않았는데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외곽산업지수 7.4퍼센트 상승.
장거리함선 제조기업 평균 13퍼센트 상승.
생명유지장치·개척모듈·통번역AI 관련주는 하루 거래제한선에 걸렸다.
심지어 외계음식 복원기업까지 올랐다.
나는 재무원 보고서를 읽다가 웃었다.
“이건 왜 오르는데?”
재무장관 이리온 카스가 답했다.
“새 외계종족과 접촉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새 종족이 우리 음식을 사는 것도 아닌데?”
“시장은 논리보다 기대를 먼저 가격에 반영합니다.”
“그럴듯한 표현이네.”
“실제로는 사람들이 흥분했다는 뜻입니다.”
맞았다.
외부우주 재개방령 이후 제국망에는 온갖 이야기가 쏟아졌다.
[옛 보호국을 찾을 수 있을까?]
[새 개척특허는 언제 열리나?]
[외계인 다시 볼 수 있나?]
[황제께서 이번엔 어디까지 나가려는 거지?]
[대단절 이전 외국어 배우면 쓸모 있나?]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음모론도 있었다.
[황실은 이미 외계문명을 찾았다.]
[대단절은 사실 황실이 일으켰다.]
[전임 황제가 외부인을 희생해 본토를 보존했다.]
[현 황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마지막 글을 보고 화면을 껐다.
알기는커녕 나도 알고 싶었다.
◆재개방령의 실무는 황제의 멋있는 연설과 달랐다.
첫 주부터 법률 218건이 수정대상에 올랐다.
옛 외부개척권은 살아 있는가.
대단절 전에 귀족가문이 갖고 있던 특허는 새 우주에서도 유효한가.
사라진 보호국이 다시 발견될 경우 옛 조약은 자동부활하는가.
새 외계문명의 자원을 본토기업이 먼저 발견하면 채굴권은 누구 것인가.
신규 행정구역에 하원의석을 언제 배정할 것인가.
“그래서 황제령 하나 내렸는데 법무원이 9천 페이지를 보낸 거군.”
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께서 별을 열면 법무원은 조항을 엽니다.”
“듣기만 해도 재미없네.”
“국가는 재미로 운영하지 않습니다.”
“알아.”
나는 첫 원칙을 승인했다.
[옛 외부권역 권리의 자동부활 금지.]
대단절 이전 영토권·개척권·기업특허는 역사적 권리로 보존하되, 새로 확인된 우주에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별 자체가 다르다.
어떤 가문이 80년 전에 광산행성 채굴권을 갖고 있었다고 해서 전혀 다른 항성계의 행성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귀족원에서 반발이 나왔다.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별이 달라졌는데 문서만 같다고 땅이 생기나?”
그 말로 끝냈다.
두 번째 원칙.
[외부개척권 신규심사.]
평민.
기업.
상단.
귀족.
협동조합.
군 전역자.
연구조직.
누구든 조건만 맞으면 신청할 수 있었다.
제국에서는 개척이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귀족을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성계를 개척하고.
도시를 세우고.
수십 년간 제대로 운영하고.
전략적 공훈을 쌓으면 공식 가문명을 받을 수 있다.
그 뒤 더 큰 공을 세우면 작위도 가능했다.
돈만으로는 안 됐다.
하지만 돈은 시작할 기회를 샀다.
그래서 상인들이 별을 좋아했다.
◆하원 회의는 더 시끄러웠다.
75만 명에 가까운 의원 전체가 한 공간에 모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부분은 권역별 의사망과 위원회를 통해 참여했다.
오늘은 개척대표위원회와 대외권역위원회 합동회의였다.
나는 직접 나가지 않고 황궁에서 중계를 봤다.
한 의원이 말했다.
“과거 보호국의 실종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새로운 외부확장은 시기상조입니다.”
다른 의원이 바로 반박했다.
“26년 조사해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본토만 보고 살자는 겁니까?”
“새로운 문명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권리도—”
“아직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발견 즉시 영유권부터 주장하자는 건 위험합니다.”
이 부분은 맞았다.
제국은 확장적이었지만 무작정 깃발 꽂는 나라는 아니었다.
이미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그 사회를 어떻게 다룰지 판단해야 했다.
단순히 ‘내 땅’이라고 선언하는 건 행정이 아니라 낙서였다.
다만 판단의 기본값이 현대적 의미의 완전독립 존중은 아니었다.
우리보다 훨씬 낮은 문명이 있고, 그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 제국에도 그들에게도 유리하다면 보호국화를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걸 두고 하원 자유권파는 제국주의라고 불렀다.
문명통합파는 책임이라고 불렀다.
나는 둘 다 절반씩 맞다고 생각했다.
◆닷새째.
평가함대에서 첫 중간보고가 왔다.
[초광속항적 다수]
[최소 3종 이상의 항법특성]
[인공 전파 41개]
[고에너지 폭발 흔적]
[추정 전투잔해 발견]
나는 마지막 줄을 두 번 읽었다.
“전쟁 확정?”
에일린이 답했다.
“전투 흔적은 확정에 가깝습니다. 다만 국가 간 전쟁인지, 해적행위인지 아직 모릅니다.”
“잔해 회수했어?”
“진행 중.”
“생존자.”
“아직 없음.”
화면에 잔해 사진이 떠올랐다.
함선 외피.
금속은 평범했다.
제국 기준으로는 오래된 합금.
장갑 배치도 효율이 낮았다.
무기흔적을 분석한 아델라인이 말했다.
“광자계열 포격과 질량탄 혼용. 방어막 출력은 낮습니다.”
“등급.”
“군사기술만 보면 V급 전후.”
오르테가도 동의했다.
“초광속기관은 V 초반. 재료공학은 IV 후반.”
마리안이 물었다.
“그렇다면 접촉방침을 바꾸십니까?”
“어떻게?”
“처음에는 미확인 상위문명 가능성도 고려했습니다.”
“아직은 고려해.”
“하지만?”
“V급이면 전쟁 난민이 있든, 국가가 있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지.”
라울이 미묘하게 웃었다.
“군사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나는 그를 봤다.
“군대 보내고 싶어?”
“평가대상을 직접 보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너한테 직접 본다는 건 포탄 궤적 보는 거잖아.”
“상대가 쏘면 그렇습니다.”
평가함대의 고속순양함 하나가 잔해지대를 통과했다.
그때 새로운 경보가 떴다.
[미확인 함선 3척]
[추력 불안정]
[구조신호 추정]
전쟁실이 조용해졌다.
영상이 확대됐다.
작은 함선 세 척.
한 척은 엔진이 거의 죽어 있었고.
다른 한 척은 선체 절반이 날아갔다.
세 번째 함선 뒤에는 더 큰 초광속항적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유리아스 제독의 통신이 들어왔다.
“폐하. 구조신호 확인했습니다.”
“언어 해독?”
“불완전합니다. 반복패턴은 명확합니다.”
“추격자는?”
“12척. 무장상태.”
마리안이 화면을 봤다.
“첫 접촉이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요?”
“첫 평가야.”
그리고 유리아스에게 말했다.
“구조해.”
“추격함이 방해하면?”
“무장부터 없애.”
“격침 허가?”
“필요 없으면 죽이지 마.”
“명 받들겠습니다.”
화면 속 32척의 제국함이 방향을 틀었다.
26년 만에.
우리는 살아 있는 외계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외부개척권 신청폭주는 사회현상까지 만들었다.
대학에서는 ‘개척행정학’ 강좌가 하루 만에 마감됐다.
퇴역군인 협동조합들이 공동개척회사를 만들었다.
일부 귀족가문은 500년 만에 처음으로 자녀를 개척원에 보냈다.
왜냐하면 새 별에서 공을 세우면 오래된 가문도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흥상인은 공식 가문명을 노렸다.
제국에서 가문명은 단순한 성씨가 아니었다.
국가가 인정하는 공훈의 상징.
잘못하면 빼앗길 수 있고.
먼 친척은 쓸 수 없으며.
새로운 공훈으로 새 가문을 만들 수도 있었다.
“외부우주 열리면 귀족 숫자도 늘겠네.”
내가 말했다.
세라가 답했다.
“작위를 남발하지 않으신다면요.”
“나 그렇게 많이 줬어?”
“25년간 신규 귀족 37가문.”
“7조 명 중 37이면 적잖아.”
“그래서 귀합니다.”
그게 의도였다.
별 하나 발견했다고 귀족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도시를 세우고.
주민을 지키고.
수십 년 버티고.
제국에 지속적인 가치를 만들어야 했다.
◆상원에서는 옛 귀족가문의 특허권 복원 문제로 또 싸움이 났다.
한 공작가는 대단절 전에 자기 집안이 소유했던 외곽 광산권의 ‘방향’에 새로 발견되는 모든 광물자원에 우선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법무원의견을 읽고 바로 기각했다.
“방향이 땅이냐?”
그 문장이 하원 밈이 됐다.
며칠 뒤 개척청 건물 앞에 누군가 붙여놓은 표어도 있었다.
[방향은 땅이 아니다. 직접 가서 찾아라.]
마음에 들었다.
제국은 오래된 공훈을 존중했다.
하지만 과거가 미래를 자동으로 소유하게 두진 않았다.
새 우주는 새 경쟁이었다.
◆그러는 사이 평가함대는 잔해에서 중요한 정보를 하나 더 찾았다.
파손된 함선 내부에 민간화물 목록이 남아 있었다.
곡물.
의약품.
공업촉매.
그리고 ‘제8거주구 피난민용’이라는 번역 가능한 표식.
단순 군함잔해가 아니었다.
전쟁이 민간인 이동까지 만들고 있었다.
에일린이 말했다.
“추격함이 난민선을 쫓는 이유가 포로회수인지, 군사정보 때문인지, 민족청소인지 아직 모릅니다.”
“그러니까 생존자부터.”
“예.”
그 직후.
미확인 함선 세 척이 구조신호를 보냈다.
◆그날 저녁 황실주방에서도 재개방령 이야기가 나왔다.
조리장 하나가 말했다.
“새 외계향신료가 들어오면 메뉴를 다시 짜야겠습니다.”
나는 물었다.
“벌써 음식 생각해?”
“대단절 전에는 황실연회 음식의 17퍼센트가 보호국 식재료였습니다.”
몰랐던 사실이었다.
“다 사라졌어?”
“대체재를 만들었습니다. 맛은 다릅니다.”
대단절은 거대한 전략사건이면서 동시에 식탁의 맛까지 바꾼 사건이었다.
새 우주가 열리면 함대만 돌아오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음식.
노래.
말.
사람.
그 모든 것이 제국 안으로 다시 들어올 것이다.
미확인 함선의 구조신호가 잡힌 순간, 황궁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장도 의회도 개척특허도 잠시 뒤로 밀렸다.
지도 위 세 개의 작은 점.
그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
26년간 외부우주에서 한 번도 확인하지 못한 것.
나는 화면을 확대했다.
“이번엔 살아 있어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