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4화 — 평가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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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함대라는 이름은 외무원이 싫어했다.
“처음부터 상대를 평가대상으로 규정하는 표현입니다.”
마리안 세르가 말했다.
나는 별의 전쟁실 중앙에 앉아 있었다.
“평가하러 가는데 평가함대지.”
“탐사외교단 정도가 더 부드럽습니다.”
“누가 듣는데?”
“우리 스스로 듣습니다.”
“그럼 더 정확해야지.”
마리안은 350세였다.
외무원장.
말을 부드럽게 만드는 데는 제국에서 그보다 뛰어난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했다.
내가 너무 직선으로 밀어붙일 때 방향을 바꾸지는 못해도 모서리는 깎아줬다.
“폐하의 기본입장은 압니다.”
마리안이 말했다.
“하위문명을 영구적인 완전독립국으로 놔두는 것이 반드시 선이라고 보지 않으시죠.”
“맞아.”
“그렇더라도 첫 접촉 단계에서 지나치게 노골적이면 불필요한 저항을 만듭니다.”
“그래서 네가 가는 거잖아.”
마리안이 잠깐 말을 멈췄다.
“제가요?”
“응.”
“직접?”
“왜. 외무원장이 외교하러 가는 게 이상해?”
“폐하께서는 방금 상대가 외교대상인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네가 보고 오라고.”
“이럴 때는 논리적으로 반박하기가 어렵군요.”
나는 웃었다.
별지도 위에 평가함대 구성이 떴다.
총 32척.
전투순양함 6.
고속순양함 12.
과학함 4.
정보함 2.
의료함 2.
보급함 6.
제국 대함대 기준으로는 먼지 같은 숫자였다.
그래도 임시 V급 문명을 상대로는 충분할 가능성이 높았다.
라울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미지문명입니다.”
그가 말했다.
“관측한 항행기술이 낮다는 이유로 전체 군사력을 낮게 보는 건 위험합니다.”
“그래서 전투순양함 여섯 척 붙였잖아.”
“최소 한 개 전투전단을 더.”
“그럼 첫 만남부터 수도함급 수백 척 들이밀게?”
“그게 더 안전합니다.”
“우리한테는.”
아델라인이 라울 쪽을 봤다.
“상대가 VIII급인데 일부러 낮은 흔적을 뿌렸다면 수백 척도 의미 없습니다.”
라울이 답했다.
“그래서 더 많이 가야 합니다.”
“상위문명 앞에서 숫자 몇백 늘리는 건 자신감이 아니라 소음입니다.”
둘의 말이 모두 맞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함대구성을 조금 바꿨다.
“전투순양함 여섯 유지. 대신 3함대가 본토 경계에서 대기.”
라울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접촉규칙.”
나는 화면을 열었다.
외무원이 올린 초안 제목은 [미지문명 평화접촉 규정]이었다.
첫 줄부터 지웠다.
마리안의 시선이 따라왔다.
“왜 지우십니까?”
“평화가 목적이 아니니까.”
“그럼 전쟁입니까?”
“아니.”
나는 새 제목을 적었다.
[미확인 문명 평가 및 초기대응 규정]
“먼저 상대가 뭔지 본다.”
항목을 하나씩 말했다.
“선제공격은 하지 않는다. 이유는 도덕이 아니라 정보가 없어서.”
라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을 받으면 즉시 무장해제. 단, 상위문명 징후가 있으면 후퇴.”
아델라인이 말했다.
“합리적입니다.”
“민간구조요청은 가능한 범위에서 수용.”
마리안이 적었다.
“국가주권은?”
“등급 판정 이후.”
“즉 처음부터 자동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도시 하나 세운 부족이 국가라고 선언했다고 우리가 그걸 제국과 같은 의미의 주권국으로 취급해야 할 이유가 있어?”
“국가가 아니라 문명 규모의 이야기입니다.”
“원리는 같아.”
제국은 모든 타자에게 적대적인 나라는 아니었다.
오히려 외계기술과 인재를 잘 받아들였다.
대단절 전에는 보호국 출신 장교와 연구자들이 본토에서 일했다.
비아틀라스 정식 시민도 드물지만 존재했다.
하지만 개방성과 평등은 다른 개념이었다.
제국은 쓸 만한 것은 배웠다.
좋은 사람은 데려왔다.
그러면서도 정치적 핵심은 철저히 아틀라스 중심이었다.
“VI 이하라면?”
마리안이 물었다.
“현지통치능력 평가.”
“유능하면.”
“보호국.”
“무능하면.”
“보호령.”
“적대하면.”
“무장해제하고 다시 평가.”
“정복과 보호의 경계가 상당히 얇군요.”
“현지인 입장에선 그렇겠지.”
“폐하께서는 그 비판을 신경 쓰십니까?”
나는 잠깐 생각했다.
“신경은 써.”
“그런데도 하신다?”
“효과가 더 중요하면.”
마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생각을 바꾸려고 들기보다, 그 생각이 실제 정책이 되었을 때 생길 마찰을 계산했다.
그래서 유능했다.
◆평가함대 출항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아우렐리움 외곽의 제17심우주항에서 조용히 진행됐다.
함대지휘관은 제독 유리아스 켄.
318세.
외계보호권역 근무경력은 없었다.
그가 성인이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단절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신 대단절 이후 장거리 정찰에서 잔뼈가 굵었다.
나는 홀로그램으로 그와 연결했다.
“임무 이해했나?”
“예, 폐하. 대상문명 탐색, 위협도 평가, 문명등급 임시판정, 필요시 접촉.”
“하나 빠졌어.”
유리아스가 잠깐 생각했다.
“어떤 것입니까?”
“사람을 봐.”
“사람이라 하시면.”
“국가 이름, 함선 숫자, 무기 출력만 보지 말고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 보라고.”
그는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외계인이라고 신기해하지 마.”
유리아스가 아주 조금 웃었다.
“제가 어릴 때는 보호국 사절들이 수도에 흔했습니다.”
“그래?”
“옆집 가족이 세르디안 종족이었습니다.”
“대단절 때?”
표정이 굳었다.
“사라졌습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다녀와.”
“명 받들겠습니다.”
32척의 함선이 순서대로 초광속항로에 들어갔다.
빛이 늘어나고.
공간이 접혔다.
한 척씩 사라졌다.
나는 마지막 함선이 없어질 때까지 화면을 봤다.
어릴 때였다면 탐험이 시작된다는 사실 자체에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지금은 달랐다.
저 함대 뒤에 따라올 예산과 법과 군대와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새 문명이 나오면.
우리는 그들과 무엇을 할 것인가.
교역할 것인가.
보호할 것인가.
편입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아직 답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제국은 다시 우주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화면 너머가 아니었다.
◆초기대응 규정을 만드는 데만 7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선제공격’이라는 단어였다.
라울은 미확인 함선이 일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무장을 선제차단할 권한을 원했다.
마리안은 반대했다.
“우리가 상위문명을 만났는데 센서가 뒤떨어져서 상대 함선을 공격으로 오인하면 어떡합니까?”
라울이 답했다.
“상위문명이면 우리가 먼저 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그건 군사적으로만 그렇습니다.”
“죽고 난 뒤 외교할 생각입니까?”
둘이 또 시작했다.
나는 규정을 고쳤다.
미확인 상태에서는 방어우선.
상대가 명백하게 공격준비를 하면 차단 가능.
문명등급이 VI 이하로 확정된 뒤에는 현장지휘관 재량 확대.
VII 이상 가능성이 있으면 황궁 승인범위 확대.
VIII 동급 가능성이 있으면 모든 강제조치 최소화.
IX 이상 징후가 있으면 접촉보다 관측과 생존 우선.
“등급에 따라 예의도 달라지는군요.”
마리안이 말했다.
“힘에 따라 위험이 달라지니까.”
“윤리가 아니라 위험관리.”
“국가외교는 대부분 그래.”
그녀는 부정하지 않았다.
◆평가함대 승조원 선발에도 지원자가 몰렸다.
정원 8만 명.
지원 1,900만.
대단절 이후 첫 장거리 외부문명 탐사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떨어졌다.
최종승조원 중에는 대단절 실종자 가족도 많았다.
유리아스 제독의 옆집 친구.
과학함 생물학자 리나 벡의 배우자는 외계종족은 아니었지만 대단절 당시 외부연구소에서 사라졌다.
통역팀 책임자 아론 세트는 어린 시절 외계 보호국 보모에게 자랐다.
나는 승조원 명단을 보다가 물었다.
“실종자 가족 비율 너무 높은 거 아냐?”
세라가 답했다.
“선발상 가산점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원동기가 강한 겁니다.”
그 말은 조금 무거웠다.
탐사는 국가사업이지만.
함선 안 사람들에겐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는 과학을 위해.
누군가는 명예를 위해.
누군가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기 위해 갔다.
그래서 나는 출항식 마지막에 말했다.
“영웅이 되려고 하지 마라.”
승조원들이 나를 봤다.
“보고 살아서 돌아와.”
“우리가 모르는 걸 하나라도 더 가지고.”
그게 탐사대에게 내가 원한 전부였다.
◆평가함대에는 외교관보다 행정관이 더 많이 탔다.
마리안이 그 구성을 보고 말했다.
“아직 국가도 못 찾았는데 세무관까지 데려갑니까?”
“국가 찾으면 필요하잖아.”
“폐하께서는 접촉보다 통치를 먼저 상상하십니다.”
“외교만 하고 끝낼 수도 있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무관.
법무관.
보호권역 전문가.
언어학자.
군사교관.
재난의료팀.
이들은 침략군의 구성원이기도 하고 개발원조단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제국식 팽창은 둘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함대가 질서를 만들고.
행정관이 그 뒤를 오래 남겼다.
◆평가함대 출항식에는 대단절 전 외계 보호국에서 근무했던 퇴역자들도 초청됐다.
그중 한 명은 812세의 전직 보호국 주재관이었다.
그가 젊은 외교관들에게 말했다.
“낮은 문명이라고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강해서 더 어렵다.”
누군가 이유를 물었다.
“상대가 우리 말 한마디를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 말은 이번 원정의 성격을 정확히 짚었다.
힘이 부족하면 허세를 조심해야 한다.
힘이 넘치면 말의 무게를 조심해야 했다.
나는 평가함대 지침 맨 아래에 한 줄을 추가했다.
[우월성은 판단자료다. 무례함의 면허가 아니다.]
◆출항 직전 마리안은 평가함대 공보관에게 마지막 지침을 줬다.
“상대를 원시적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실제로 낮은 등급이어도요?”
“내부평가와 상대에게 하는 말은 다릅니다.”
그녀가 나를 한 번 봤다.
“특히 폐하 표현을 그대로 따라 하지 마세요.”
“내가 뭐.”
“폐하께서는 상대 수도에서도 ‘직할할 가치가 없다’고 말씀하실 분입니다.”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외교에는 사실을 말하는 능력만큼 언제 말하지 않을지 아는 능력도 필요했다.
그래서 평가함대에는 군함뿐 아니라 말 잘하는 사람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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