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화 — 지도 밖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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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권역 재측량청의 중앙실은 황궁보다 더 조용했다.
수만 명이 일하는 시설인데도 사람이 적어 보였다.
이유는 공간이었다.
지름 18킬로미터짜리 구형 관측실 한가운데에 새로운 우주지도가 떠 있었기 때문이다.
본토 천백여 성계는 중앙에 작은 빛덩어리처럼 모여 있었다.
그 밖에는 탐사선이 새로 확인한 항성들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옛 제국지도는 반투명하게 겹쳐져 있었다.
두 지도는 거의 맞지 않았다.
나는 중앙 플랫폼에서 그 모습을 올려다봤다.
“볼 때마다 기분 나쁘군.”
오르테가 칼리스가 내 옆에서 말했다.
“과학자에게는 흥미롭습니다.”
“네가 과학자라 다행이다.”
“폐하께서 황제라 다행입니다. 제가 황제였으면 예산의 절반을 여기에 썼을 겁니다.”
“그럼 네가 황제가 아닌 것도 다행이고.”
오르테가는 웃었다.
612세.
중앙과학원 총재.
대단절 이전에도 외부문명 연구를 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손을 움직이자 옛 지도에 색이 들어왔다.
푸른색은 직할 외곽령.
초록은 보호국.
노랑은 준보호국과 우호권.
화면의 절반 가까이가 여러 색으로 덮였다.
“대단절 직전 제국이 공식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던 비아틀라스 정치체는 418개였습니다.”
“그중 보호국은?”
“정식 보호국 77. 준보호국 113. 나머지는 조약권·무역권·안전보장국.”
지금 지도에는 하나도 없었다.
오르테가가 다른 자료를 띄웠다.
“본토 밖 상시거주 아틀라스인은 약 1,820억.”
나는 숫자를 알고 있었다.
그래도 볼 때마다 무거웠다.
“본토 내 비아틀라스 지성체는?”
“약 96억.”
“둘 다 47초 안에 사라졌지.”
“예.”
“비지성 외계생물은 남고.”
“대부분.”
“세포샘플도.”
“남았습니다.”
“그러면 종족선택은 아니야.”
“적어도 생물학적 분류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가 본토 경계선을 확대했다.
대단절 때 사라진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외부와 연결되던 초광속 중계망.
경계 밖 함대.
이동 중이던 수송선.
몇몇 항로문.
그런데 본토 안에 설치된 외계대사관 건물이나 상업시설은 그대로였다.
“본토가 통째로 이동했다는 가설이 제일 간단하지 않나?”
“그렇다면 본토 안 외계인이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본토 밖 아틀라스인도.”
“예.”
“종족과 위치를 동시에 골랐다는 건데.”
“그게 가장 불쾌한 부분입니다.”
나는 오르테가를 봤다.
“과학자가 불쾌하다고 말하네.”
“우주가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대개 과학자에게 불쾌합니다.”
“의도한 존재가 있으면?”
“더 불쾌합니다.”
지도 한쪽에서 작은 빛이 깜빡였다.
어제 포착한 인공신호 방향이었다.
평가함대가 이미 출발했다.
함대라고 부르지만 규모는 작았다.
고속정찰순양함 12척.
과학함 4척.
정보분석함 2척.
지원함 8척.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전투순양함 6척.
아틀라스 기준으로는 탐사대였다.
외부 문명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인지 아직 몰랐다.
“신호에 언어구조는?”
“없습니다. 항행비콘에 가까워 보입니다.”
“출력.”
“낮습니다.”
“초광속 흔적.”
“관측됨. 다만 효율은 제국 표준보다 크게 떨어집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등급.”
“아직 너무 이릅니다.”
“범위라도.”
오르테가가 잠깐 계산창을 봤다.
“항행기술만 보면 IV 후반에서 V 초반.”
생각보다 낮았다.
아틀라스 제국은 VIII급 상위권.
문명등급은 단순 기술순위가 아니었다.
산업.
행정.
군사.
정보.
인구.
영토.
에너지.
우주활동 규모를 합쳐 평가했다.
V급이면 초기 성간문명.
별 몇십 개를 오가고, 행성 간 전쟁을 할 수 있지만 거대한 성간질서를 만들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동급은 아니군.”
“현재 관측만으로는 그렇습니다.”
“좋아.”
오르테가가 나를 봤다.
“왜 늘 그 말씀을 하실 때 불안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동급 아니면 선택지가 많아지잖아.”
“그 말이군요.”
제국의 대외정책은 간단했다.
강한 문명과는 외교한다.
비슷한 문명과는 경쟁한다.
낮은 문명은 평가한다.
그리고 필요하면 보호하고, 개도하고, 편입한다.
나는 모든 문명의 독립이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을 100년씩 반복하고, 질병으로 수십억이 죽고, 귀족이 곡물창고를 독점해 굶어 죽는 사회가 있다면 ‘그들의 자주성’이라는 말만 반복할 이유가 없었다.
제국이 더 나은 질서를 줄 수 있다면 주는 것이 맞다.
그게 현지인에게 제국주의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 이유는 아니었다.
오르테가가 물었다.
“만약 V급 문명이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상태 봐서.”
“독립국으로 수교?”
“필요하면.”
“필요 없으면?”
“보호국.”
“처음 만난 날부터 너무 빠른 결론 아닙니까?”
“처음 만났다고 상대가 갑자기 동급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는 웃지 않았다.
“그래서 외무원에서 폐하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합니다.”
“마리안이 또 뭐라고 했어?”
“‘황제께서는 협상을 잘하시지만 협상 자체를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칭찬이네.”
“그렇게 받아들이실 줄 알았습니다.”
◆재측량청 아래층에는 ‘실종공간’ 기록실이 있었다.
대단절 전 마지막 47초 동안 들어온 신호를 보존한 곳이었다.
나는 가끔 이곳에 왔다.
오늘도 한 기록을 열었다.
[제7보호권역 외교중계소]
화면에 외계인 여성이 나타났다.
피부가 은빛이었고 귀 뒤쪽에 얇은 호흡막이 있었다.
그녀는 제국어로 말했다.
“중계오류 확인. 별 좌표가…”
영상이 흔들렸다.
“본토, 응답 바랍니다.”
그리고 끊겼다.
26년째 같은 마지막 문장이 반복되고 있었다.
본토, 응답 바랍니다.
우리는 응답했다.
그들이 없었다.
나는 영상을 닫았다.
“폐하.”
에일린 아르카가 뒤에서 불렀다.
정보원장이 직접 이곳까지 내려온 걸 보면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뭐 찾았어?”
“새 신호와 관련된 부가자료입니다.”
그녀가 화면을 띄웠다.
인공신호가 포착된 방향 근처.
짧은 고에너지 방출.
여러 번.
규칙적이지 않았다.
“무기?”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쟁 중?”
“그것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조금 웃었다.
“우주가 바뀌어도 하는 건 똑같군.”
“누가 이기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건 가서 보면 되고.”
에일린이 내 표정을 살폈다.
“폐하.”
“응.”
“만약 저들이 V급이고 서로 전쟁 중이라면.”
“그래서?”
“개입하실 겁니까?”
나는 화면의 폭발흔적을 바라봤다.
“먼저 왜 싸우는지 본다.”
“그다음은요?”
“끝낼 수 있으면 끝내.”
“그들의 동의 없이도?”
나는 그녀를 봤다.
“전쟁은 동의받고 시작했나?”
에일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 우주가 어떤 곳이든.
제국은 그저 구경꾼으로 남을 생각이 없었다.
◆대단절 가설은 26년 동안 4만 개가 넘게 제출됐다.
대부분은 폐기됐다.
남은 주류가설은 여섯 개.
본토 전이설.
외부권역 절단설.
시공간 위상전이설.
보존권역설.
상위문명 공격설.
그리고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인과선택설.
나는 보존권역설을 싫어했다.
누군가 우리를 ‘보존’했다면 왜 그랬는지 생각해야 하니까.
좋은 의도라는 보장은 없었다.
동물을 멸종위기에서 살리려고 우리에 넣는 사람도 보존자다.
“구향성 기록과 연관은?”
내가 물었다.
오르테가가 고개를 저었다.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아틀라스인의 공식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사건은 ‘대항행’이었다.
정체를 잃어버린 어떤 고향행성.
대재난.
수십 년 항행.
그리고 아우렐리움 정착.
그 이전 기록은 너무 적었다.
구향성의 이름도.
좌표도.
재난 원인도 모른다.
제국력 1년은 고향을 떠난 날이 아니라 현재 수도성계에 정착한 날이었다.
“혹시 이번 대단절도 선조들이 겪은 일과 비슷한 거라면?”
오르테가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증거가 없습니다.”
“가설로는?”
“흥미롭지만 위험합니다. 기록이 부족한 두 미스터리를 연결하면 어떤 이야기도 만들 수 있습니다.”
역시 과학자다운 대답이었다.
“좋아. 연결하지 마.”
“예.”
나는 개인적으로 다른 기억도 갖고 있었다.
21세기 지구.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화면.
본토.
플레이어블 국가.
버그.
그 기억과 지금 현실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대단절은 내가 기억하는 어떤 이벤트와도 정확히 맞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다.
증거 없는 황제의 기억은 가설보다 위험했다.
◆재측량청은 외부탐사 우선순위를 312개 방향으로 나눴다.
과학자들은 항성밀도와 인공신호 가능성을 봤고.
군은 방어축을 봤고.
개척원은 자원과 항로를 봤다.
외무원은 옛 보호국 좌표와의 유사성을 봤다.
모두가 다른 우주를 보고 있었다.
나는 최종예산을 세 배로 늘렸다.
재상 아우구스트가 말했다.
“의회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하원은 좋아할걸.”
“재정위원회는 아닙니다.”
“그럼 설명해.”
“무엇을요?”
“제국 밖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게 가장 비싼 위험이라고.”
그 한 줄이 다음 날 예산설명자료 첫 문장이 됐다.
◆회의가 끝난 뒤 에일린이 따로 남았다.
“폐하, 개인적으로 하나 묻겠습니다.”
“뭔데.”
“이번 우주가 폐하께 낯섭니까?”
심장이 아주 조금 빨라졌다.
그녀는 내가 가진 모든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대단절 이전부터 이상할 만큼 외부우주에 관심이 많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낯설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전부?”
“적어도 지금 보이는 건.”
에일린은 더 묻지 않았다.
정보원장은 상대가 답하지 않을 질문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나간 뒤 개인기록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내 기억이 도움이 될 때가 올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국가정보로 쓰려면 먼저 현실에서 검증해야 했다.
황제의 기억도 증거는 아니었다.
재측량청을 나서며 나는 뒤를 돌아봤다.
검은 지도는 아직 대부분 비어 있었다.
26년 동안 두려움의 색이었던 검정이 이제는 가능성의 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