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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화 — 침묵의 47초

별의 제국 · 2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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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연설이 끝난 뒤 수도 전체가 47초 동안 조용해졌다.

대단절 추모는 종교의식이 아니었다.

아틀라스 제국에는 국가가 인정하는 국교도 없었고, 초월적 존재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문화도 오래전에 주류사회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매년 같은 시각이면 제국 전역의 공공망은 47초 동안 말을 멈췄다.

열차는 운행했지만 안내방송이 꺼졌고.

조선소의 용접기는 계속 불꽃을 뿜었지만 음악이 멈췄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함대에서는 전투배치 중이 아니라면 모든 승조원이 잠깐 손을 놓았다.

사라진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나는 공식행사가 끝난 뒤 황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디 가십니까?”

세라가 물었다.

“외국인 거리.”

“지금요?”

“응.”

“경호계획이 없습니다.”

“카시안 있잖아.”

내 오른쪽에 서 있던 카시안 레이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황실근위 제3대기대가 이미 이동 중입니다.”

세라가 그를 봤다.

“언제 지시받으셨습니까?”

“폐하께서 외국인 거리라는 단어를 말씀하시기 4초 전입니다.”

“왜요?”

“폐하께서 행사 뒤 정장용 외투를 벗으셨습니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역시 내 경호대장이야.”

세라는 한숨을 쉬었다.

수도 제7권역의 ‘삼백종 거리’는 이름과 달리 현재 외계인이 한 명도 없었다.

대단절 전에는 312개 비아틀라스 종족의 상점과 문화원, 식당, 대사관 부속관이 모여 있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지금도 간판은 남아 있었다.

팔이 네 개 달린 종족이 쓰던 넓은 출입구.

수중종족용 침수식 식당.

저중력종족이 편하게 이동하도록 천장이 높게 설계된 상가.

주인은 사라졌지만 건물은 남았다.

제국은 상당 부분을 보존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렇다고 박물관처럼 멈춰 세운 것은 아니었다.

아틀라스인 상인들이 외계음식을 재현해 팔았고, 사라진 보호국의 음악이 아직 카페에서 흘러나왔다.

대단절 이전에 그들을 직접 알던 세대가 너무 많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경호원 몇 명만 보이게 두고 거리를 걸었다.

국가행사 정복 대신 짙은 회색 외투를 입었다.

변장이라고 부를 수준은 아니었다.

얼굴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나가는 시민들은 나를 한 번씩 보고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한 대학생은 친구 팔을 치며 속삭였다.

“야, 저 사람 진짜 닮았다.”

“누구?”

“폐하.”

친구가 나를 힐끗 봤다.

“미쳤냐. 황제가 왜 여기 걸어 다녀?”

“그렇지?”

둘은 그냥 지나갔다.

카시안이 뒤에서 아무 표정 없이 말했다.

“신원공개를 할까요?”

“하지 마.”

“알겠습니다.”

“재밌잖아.”

“폐하께서는 그렇겠지요.”

거리를 조금 더 걷자 오래된 식당 하나가 나왔다.

[라세인 식탁]

라세인.

옛 보호국 종족 이름이었다.

나는 문을 열었다.

주방 안에서 700세는 넘어 보이는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한 분?”

“그래.”

노인은 나를 보다가 멈췄다.

눈이 가늘어졌다.

“어디서 많이…”

“그런 말 자주 들어.”

“배우요?”

“비슷한 일 하지.”

카시안이 문밖에서 얼굴을 돌렸다.

노인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자리에 안내했다.

메뉴판에는 라세인식 향신육과 발효곡물 요리가 있었다.

“진짜 라세인 음식이야?”

“진짜라 하면 화낼 사람이 많지.”

노인이 냄비를 올리며 말했다.

“내 스승이 라세인이었어. 나는 아틀라스인이고.”

“대단절 전에?”

손이 잠깐 멈췄다.

“그렇지.”

노인은 대답하고 다시 냄비를 저었다.

“그 친구가 가게를 했지. 나는 직원이었고. 어느 날 아침에 나왔더니 앞치마만 떨어져 있더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화장실 간 줄 알았어.”

노인이 웃었다.

“웃기지? 우주 전체가 뒤집힌 날인데 나는 스승이 화장실 간 줄 알았다니까.”

“그 뒤에는?”

“기다렸지.”

“얼마나?”

“26년.”

냄비에서 향이 올라왔다.

“사망처리 안 했어?”

“대단절 실종자는 법적으로 죽은 게 아니잖아.”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돌아오면 가게 돌려줘야지.”

그 한마디가 내가 오늘 연설에서 했던 말보다 더 무거웠다.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겠다.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다.

실제로 수조 명의 시민 중 많은 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연설 봤어?”

“봤지.”

“어땠어?”

“황제가 별을 다시 연다더군.”

노인이 그릇을 내 앞에 놓았다.

“젊어서 그런지 겁이 없어.”

나는 숟가락을 들다가 멈췄다.

“젊어?”

“백이십둘인가 그렇잖아.”

“그래도 스물다섯 해 황제 했는데.”

“내 나이 되면 그 정도는 젊은 거야.”

“황제한테도?”

“황제면 뭐 시간이 다르게 가나?”

그 순간 문밖에서 작은 소란이 났다.

근위대가 주변 인파를 정리하다가 한 시민이 황실문장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노인이 창밖을 봤다.

검은 제복.

황실근위.

그리고 다시 나를 봤다.

숟가락을 들고 있던 내 손.

얼굴.

카시안.

노인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설마.”

“음식 식는다.”

“폐, 폐하?”

나는 한 숟가락 먹었다.

맵고 시고 씁쓸했다.

“이거 맛있네.”

노인은 그대로 굳었다.

“앉아.”

“제가 어떻게…”

“26년 기다린 사람한테 황제가 서 있으라고 할 순 없잖아.”

노인은 한참 뒤에야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물었다.

“라세인 보호국은 어디 있었지?”

“옛 제7외부권역.”

“가보고 싶어?”

“당연하지.”

“별이 다 바뀌었는데도?”

“찾기 전엔 모르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황궁으로 돌아오는 길.

세라가 기다렸다는 듯 보고서를 내밀었다.

“외부우주 재개방령 발표 이후 개척면허 예비신청 1,900만 건.”

“하루도 안 됐는데?”

“정확히는 세 시간입니다.”

“귀족은?”

“별도 3만 8천 가문.”

“기업.”

“등록폭주로 집계지연 중입니다.”

나는 차창 밖의 외국인 거리를 바라봤다.

제국 시민은 슬퍼하면서도 빨랐다.

누군가는 옛 친구를 찾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새 시장을 찾고 싶어 했다.

둘은 모순이 아니었다.

세라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재측량청에서 추가 보고입니다.”

“또 별이 틀렸어?”

“그건 이제 새롭지 않습니다.”

그녀가 광판을 띄웠다.

본토 경계 62광년.

무인탐사기 하나가 포착한 미세한 전자기파.

자연잡음과 다른 일정한 반복패턴.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인공신호?”

“확률 82퍼센트.”

“방향은?”

“기존 어느 보호국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세인 식당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가 찾는 사람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살아 있는 누군가였다.

“탐사정 보내.”

“과학탐사?”

나는 고개를 저었다.

“평가함대.”

세라가 아주 작게 눈썹을 올렸다.

“이미 외교대상을 전제하지 않으시는군요.”

“누군지도 모르는데 외교부터 정할 이유 없잖아.”

나는 광판의 작은 신호를 바라봤다.

“먼저 알아봐야지.”

“뭘요?”

“저들이 우리와 이야기할 상대인지.”

그리고 덧붙였다.

“아니면 우리가 보호해야 할 상대인지.”

삼백종 거리에는 법적으로 주인이 사라진 건물이 수천 채 있었다.

제국은 그걸 국유화하지 않았다.

대단절 실종자 특별신탁.

주인이 돌아올 가능성을 법적으로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26년 동안 임대수익은 신탁계정에 쌓였다.

사라진 외계인 기업의 주식도.

공동소유 부동산도.

은행예금도.

“돌아오면 진짜 다 돌려줍니까?”

나는 거리 관리관에게 물었다.

“법적으로는 그렇습니다.”

“26년 이자까지?”

“관리비와 세금 공제 후 전액.”

“황실보다 착하네.”

관리관은 내가 농담하는지 판단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거리 끝에는 옛 바하론 보호국 대사관이 있었다.

건물은 봉인된 채였다.

문 앞의 국기도 그대로.

나는 잠깐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26년 전 날짜가 적힌 일정표가 떠 있었다.

[14:00 아틀라스 외무원 무역협상]

[17:00 보호국 유학생 환영회]

[20:00 대사 가족 만찬]

그 일정은 영원히 끝나지 않았다.

대사 집무실 한쪽에는 어린아이 그림이 붙어 있었다.

보라색 항성.

길쭉한 사람 넷.

가운데에는 왕관을 쓴 아틀라스인이 있었다.

“이게 나야?”

카시안이 그림을 봤다.

“당시 폐하는 즉위 전입니다.”

“그럼 전임 황제겠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그림을 한참 봤다.

대단절은 국가통계로 보면 1,900억 가까운 외부 아틀라스인과 96억 비아틀라스 본토거주자의 실종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그림 수십억 장이 주인을 잃은 사건이었다.

그래서 숫자만 보면 안 됐다.

거리에서 나오자 기자들이 이미 몰려 있었다.

황제가 비공개로 움직인다고 진짜 비공개가 되는 시대는 아니었다.

누군가 근위대를 찍었고, 4분 만에 위치가 퍼졌다.

기자가 외쳤다.

“폐하! 외계 신호가 발견됐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세라가 내 쪽을 봤다.

아직 공개 전 정보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확인되면 제국이 먼저 알릴 겁니다.”

“옛 보호국을 찾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번에는 잠깐 멈췄다.

“모릅니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희망은 있으십니까?”

나는 방금 본 어린아이 그림을 떠올렸다.

“있습니다.”

그 대답은 그날 제국망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문장이 됐다.

대단절 실종자 관리원에는 그날 하루에만 8천만 건이 넘는 조회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26년 전 가족 기록을 다시 열었다.

혹시 새 탐사방향과 옛 마지막 좌표가 겹치는지.

혹시 외계 신호의 언어가 옛 보호국과 닮았는지.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희망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관리원에 지시했다.

“추정정보는 따로 표시해. 확정처럼 보이게 하지 말고.”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었다.

제국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모르는 걸 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날 밤 황궁 개인기록에 한 줄을 남겼다.

[새 신호 확인 전까지 희망을 사실처럼 말하지 말 것.]

황제의 말은 일반인의 기대보다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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