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화 — 다시 별을 향해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제국력 13122년.
아우렐리움의 아침은 늘 인공적이었다.
수도성 에우카디아를 감싼 왕관궤도환이 항성빛을 조절했고, 카엘룸 궁성의 창은 실제 하늘과 궤도시설의 상태를 섞어 가장 보기 좋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황궁 깊숙한 곳에 앉아 있으면서도 지평선 너머로 해가 뜨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백이십이 살.
재위 스물다섯 해.
평균수명이 천 년에 가까운 아틀라스인 사회에서 나는 여전히 젊은 축이었다. 황제치고는 지나치게 젊다는 평가도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아무도 내가 황좌에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걸 인정받는 데 스물다섯 해가 걸렸다.
“폐하.”
세라 발렌티아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즉위 25주년 행사는 제국표준시 09시입니다. 상원 대표단이 08시 30분부터 대기합니다.”
“안 가면?”
“안 됩니다.”
“황제인데.”
“그래서 더 안 됩니다.”
281세의 황실 수석비서관은 내 농담을 받아주는 법이 없었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돌렸다.
“시청 예상치는?”
“동시접속 기준 5조 7천억에서 6조 2천억. 재방송과 요약망까지 합치면 오늘 안에 시민권역 대부분에게 도달할 겁니다.”
“지난해보다 많네.”
“올해는 즉위 25주년이니까요.”
대단절 이후 현재 본토와 정식 제국령에서 확인되는 인구만 약 7조에 이른다.
지역방송에서 수십억이 본다는 건 큰 숫자였지만, 황제의 중대 국정연설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수천억이 기본이었고, 대단절 추도나 전쟁선포 같은 사건은 조 단위 동시시청이 나왔다.
내 얼굴을 모르는 시민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나를 보면 바로 황제라고 믿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난해 에우카디아 남반구 조선구역을 예고 없이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용접복을 입은 기술자 하나가 내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폐하 닮으셨네요.’
카시안이 뒤에서 황실근위 문장을 드러내자 그 기술자는 그대로 굳었다.
황제를 아는 것과 황제가 자기 앞에 있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수조 명의 제국에서 황제는 익숙한 얼굴이면서도 실제로는 존재할 리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오늘 대단절 추모도 같이 하지?”
“예. 침묵의 47초는 16시.”
세라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대단절.
26년 전.
제국력 13096년 말.
47초 동안 우주가 끊겼다.
본토 밖의 외곽령과 보호국, 주둔군, 상단, 개척민, 외교관.
모두 사라졌다.
더 이상한 건 본토 안이었다.
아틀라스인은 남았다.
비아틀라스 지성체는 사라졌다.
보호국 대사도.
외계인 연구자도.
아틀라스 시민권을 정식으로 취득한 외계인조차도.
집과 물건과 계좌와 옷과 음식은 남았는데 사람만 사라졌다.
반대로 본토 바깥에 있던 아틀라스인도 사라졌다.
단순한 종족선택도 아니었고, 단순한 공간전이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전임 황제가 급사했다.
그리고 내가 황제가 됐다.
내 즉위 25년은 사실상 대단절 이후의 제국을 다시 세운 시간이었다.
외부자원망을 잃었다.
보호국 세수가 사라졌다.
상단의 장거리무역이 끊겼다.
외부주둔군이 통째로 없어졌다.
대단절 직전 제국권 전체 인구는 약 18조였다. 그중 약 7조가 본토와 정식 제국령의 완전시민권역에 살았고, 나머지 약 11조는 보호국·보호령·감독국과 외부령에 흩어져 있었다. 47초 뒤 제국 행정망에서 사라진 것은 사실상 그 11조짜리 외부세계 전체였다.
정치체제도 함께 잘려나갔다. 대단절 직전 약 255표 규모였던 상원은 외부권 대표가 대거 사라졌고, 약 150만 석에 달하던 하원도 절반 가까운 연결을 잃었다. 내 즉위 뒤 25년 동안 우리는 선거구와 대표권을 처음부터 다시 짰다. 현재 상원은 150표, 하원은 약 7조의 완전시민권역을 기준으로 75만 석. 옛 조약마다 제각각이던 외부대표권도 보호령은 완전시민권역의 절반 이하, 보호국은 3분의 1 이하, 감독국은 중앙의회 의석 없음이라는 원칙으로 표준화했다.
그 혼란 속에서 황위계승전까지 터졌다.
황자 셋과 황녀 둘.
군부파.
원로귀족.
개혁파.
기업연합.
각자 제국을 살리겠다며 황좌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그들을 하나씩 꺾었다.
설득할 사람은 설득하고.
쫓아낼 사람은 쫓아내고.
반역자는 처벌했다.
부패한 가문은 작위뿐 아니라 공식 가문명까지 빼앗았다.
군수조달망을 갈아엎었고, 의회대표체계를 다시 짰고, 본토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산업구조를 재편했다.
그렇게 스물다섯 해.
제국은 살아남았다.
이제 문제는 다음이었다.
계속 본토 안에만 있을 것인가.
세라가 광판 하나를 내밀었다.
“외부권역 재측량청 최종보고입니다.”
나는 받았다.
첫 페이지에는 숫자 하나만 크게 적혀 있었다.
[구 제국 외곽기준점 18,442곳 재측량 완료]
다음 줄.
[기존 천문배치 일치: 0]
손가락이 멈췄다.
“하나도?”
“없습니다.”
“오차범위 포함?”
“포함입니다.”
보고서를 넘겼다.
옛 제국지도에서는 보호국 하나가 있어야 할 위치에 전혀 다른 쌍성계가 있었다.
외곽요새가 있던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개척령이 있던 방향에는 듣도 보도 못한 성운이 펼쳐져 있었다.
대단절 직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26년 동안 정밀재측량을 하고도 단 하나도 맞지 않는다는 건 다른 의미였다.
‘잃어버린 영토’라는 표현조차 틀릴 수 있었다.
우리가 다른 곳에 온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우주 자체가 달라졌거나.
내 머릿속에는 아주 오래전 다른 기억이 스쳤다.
21세기 지구.
모니터.
지도 밖을 덮던 검은 안개.
나는 그때 이 모든 것을 게임이라고 믿었다.
외곽을 탐사하고, 새 국가를 만나고, 개척선을 보내던 화면.
하지만 그 기억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해서 설명될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조차 믿을 수 없었다.
본토는 대체로 내가 알던 것과 비슷했지만, 그 바깥은 이미 아무것도 맞지 않았으니까.
“재탐사 준비율은?”
“군 94퍼센트. 과학원 91퍼센트. 개척원 88퍼센트. 의회예산은 임시승인 상태입니다.”
“상원은?”
“찬성 우세.”
“하원.”
“더 찬성합니다. 특히 변경·개척계 의원들.”
당연했다.
외부우주가 열린다는 건 영토와 돈과 작위와 의석이 열린다는 뜻이었다.
제국에서는 새로운 성계를 개척한 평민 상인이 몇 세대 뒤 공식 가문명을 얻고, 더 큰 공훈을 쌓으면 작위까지 받을 수 있었다.
별은 곧 신분상승의 사다리였다.
나는 광판을 닫았다.
기다리는 건 판단이 끝날 때까지였다. 26년 동안 확인했다면 더 기다리는 건 신중함이 아니라 비용이었다. 결론이 난 뒤에는 부처별 재검토를 한 차례 더 돌릴 생각도 없었다.
“오늘 발표한다.”
세라가 나를 봤다.
“재탐사령을요?”
“응.”
“아직 미확인 위험이 있습니다.”
“26년 확인했어.”
나는 창밖의 항성을 바라봤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은 충분히 확인했지.”
세라는 잠깐 침묵했다.
“황제령 명칭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생각하지 않고 답했다.
“외부우주 재개방령.”
“다소 공격적으로 들립니다.”
“맞아.”
제국은 스물여섯 해 동안 안으로 웅크렸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살아남는 것과 사는 것은 달랐다.
“세라.”
“예.”
“이제 다시 나간다.”
◆09시 정각.
황좌전의 천장이 열렸다.
실제로 열린 것은 아니었다.
수도성 궤도와 수천 개 본토행성, 우주도시, 함대, 학교, 공장, 광산의 방송망이 동시에 연결됐다.
[실시간 연결 인구: 2,173,882,014,221]
숫자가 올라가는 걸 잠깐 봤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제국 시민 여러분.”
황좌전이 조용해졌다.
“26년 전, 우리는 우주의 절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던 우주와의 연결을 잃었습니다.”
수조 개의 화면 너머로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그 뒤 우리는 본토를 지켰습니다. 산업을 다시 세웠고, 군을 재편했고, 황실과 의회를 안정시켰습니다.”
나는 잠시 멈췄다.
“이제 방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 뒤로 새 지도가 떠올랐다.
천백 개 본토 성계.
그리고 바깥의 거대한 검은 영역.
“오늘부로 외부우주 재개방령을 선포합니다.”
함성이 터지기 전에 말을 이었다.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겠습니다.”
“사라진 보호국을 찾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없다면.”
검은 우주를 바라봤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겠습니다.”
그날.
아틀라스 제국은 다시 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즉위기념식 직전 상원 원로단 접견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폐하, 외부우주 재개방을 너무 빠르게 선언하시는 것 아닙니까?”
820세의 원로상원의원 헤르만 타일이 물었다.
그는 대단절 이전 제6보호권역 총독을 지낸 사람이었다.
실제로 외계인 수십 종족을 직접 다스려본 마지막 세대 중 하나.
“26년이 빠릅니까?”
“제국 역사에서는 짧습니다.”
“실종자 가족에게도?”
헤르만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의 전임 보좌관 셋도 대단절 때 사라졌다.
한 명은 라세인.
한 명은 키르바.
한 명은 비아틀라스 정식 시민이었다.
“그건 다릅니다.”
“그래서 나가려는 겁니다.”
나는 노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본토만 보고 100년 더 살 생각도 없습니다.”
원로단 일부는 웃었다.
아틀라스인에게 100년은 정말 정책주기 하나였다.
헤르만이 다시 물었다.
“새 문명을 만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등급부터 봅니다.”
“과거처럼 보호국을 다시 만드시겠다는 뜻입니까?”
“필요하면.”
“젊은 세대는 보호국 체제를 역사책으로만 배웠습니다.”
“그럼 실습할 기회가 생기겠죠.”
헤르만이 결국 웃었다.
“폐하께선 정말 개척황제 소리를 듣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별명은 나중에 붙이라고 하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별이 있어야지.”
상원 원로들은 황제에게 절하고 물러났다.
그들이 나간 뒤 세라가 말했다.
“헤르만 의원은 찬성표를 던질 겁니다.”
“아까 반대했는데?”
“반대한 게 아니라 폐하께 이유를 확인한 겁니다.”
“정치인들은 왜 질문을 그렇게 돌려 하지?”
“폐하처럼 전부 바로 말하면 정치가 매일 싸움이 됩니다.”
“지금도 매일 싸우잖아.”
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설 직후 제국 전역의 반응도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아우렐리움 제2조선권역에서는 노동자들이 작업을 멈추고 황실기를 흔들었다.
제9변경성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검은 우주지도 위에 새 별을 그렸다.
반대로 대단절 실종자가 많은 구역에서는 환호보다 침묵이 길었다.
어떤 시민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새로운 걸 찾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부터 찾아주세요.”
나는 그 영상을 따로 저장했다.
새 제국을 만들겠다는 말이 옛 제국을 잊겠다는 뜻처럼 들리면 안 됐다.
둘 다 해야 했다.
찾고.
없다면 새로 만든다.
황제라는 자리는 가끔 모순된 두 일을 동시에 해야 했다.
◆재개방령이 선포된 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군 배치표였다.
본토 방어함대 일부가 외곽으로 재편됐다.
대단절 이후 26년 동안 제국군은 안쪽을 향해 있었다.
황위계승전과 내란 가능성, 외부 미확인 위협 때문에 수도와 핵심공업권을 지키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이제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다.
라울은 말했다.
“군대가 다시 국경을 갖게 됐습니다.”
“전에도 있었잖아.”
“본토 경계는 방어선이었습니다. 이제는 전진선이 됩니다.”
그 말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제국이 살아남은 25년이 끝났다.
앞으로는 제국이 다시 커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