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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56화 — 홍수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56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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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장마는 평소보다 일찍 왔다.

첫날.

비.

둘째 날.

더 많은 비.

셋째 날 밤, 베란이 관저로 뛰어왔다.

“길 무너집니다.”

카엘은 그대로 현장으로 갔다.

왕의 길 공사구간 중 습지.

물은 도로 한쪽에 막혀 있었다.

제국식 높은 노반이 작은 둑처럼 작동.

물이 마을 쪽으로 역류.

“터뜨려야 합니다.”

베란이 말했다.

카엘은 놀랐다.

“우리가 만든 길을?”

“안 터뜨리면 마을 잠깁니다.”

마르코가 말했다.

“복구비…”

카엘이 노려보자 입을 다물었다.

“터뜨려.”

노동자들이 완성 직전 도로 일부를 삽으로 파냈다.

물이 쏟아져 나갔다.

길은 망가졌다.

마을은 살았다.

다음 날 피해조사.

공사구간 400보 유실.

교량 하나 손상.

비용 큼.

카엘은 자기가 승인한 설계를 봤다.

베란은 원래 배수통로를 더 많이 넣자고 했었다.

예산 줄이느라 일부 축소.

카엘은 기억했다.

“내가 줄였지.”

베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

“네.”

카엘은 한숨을 쉬었다.

싼 선택이 비싸게 돌아왔다.

재정관도 아무 말 안 했다.

카엘은 복구안에서 배수구를 원안보다 더 늘렸다.

제국 측량사는 이번엔 베란 의견을 따름.

두 사람 사이 관계도 바뀌었다.

측량사는 말했다.

“당신이 맞았습니다.”

베란은 말했다.

“이번엔.”

카엘이 웃었다.

자기가 리사라에게 자주 듣는 말과 비슷했다.

홍수 뒤 주민들이 공사에 자발적으로 더 참여했다.

왜?

자기 마을을 길 때문에 물에 잠기게 하지 않으려고.

카엘은 그게 아이러니했다.

사고가 신뢰를 무너뜨릴 수도 있었지만, 잘못 인정과 수정이 오히려 참여를 늘렸다.

주민회의에서 카엘은 말했다.

“우리가 잘못 설계했습니다.”

누군가 물었다.

“누가 책임집니까?”

카엘은 대답했다.

“내가.”

홍수 뒤 베란은 마라벤 전체 수리체계 개편안을 냈다.

도로만 고쳐서는 안 된다고.

상류 숲.

농지 수로.

습지.

도시 배수.

전부 연결.

카엘은 문서를 보고 웃었다.

“길 만들다가 영지 전체 물길 고치게 생겼네.”

베란은 진지했다.

“물은 경계 모릅니다.”

그 말이 카엘을 멈추게 했다.

행정구역.

영지.

마을.

지도에서는 선.

물은 신경 안 쓴다.

상류 영지에서 나무를 베면 마라벤 홍수도 심해질 수 있었다.

카엘은 이웃영주와 산림협의를 시작했다.

상대는 처음엔 관심 없음.

마라벤이 하류피해를 일부 부담하는 대신 상류 벌목규칙과 수로관리 협약.

또 협상.

또 돈.

리사라가 말했다.

“이제 영지 밖까지 관리하려고요?”

카엘이 답했다.

“물이 먼저 넘어오잖아.”

카엘은 점점 깨달았다.

어떤 문제는 영지 하나로 해결되지 않았다.

시장도.

길도.

물도.

치안도.

더 큰 단위의 협력이 필요했다.

훗날 연방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쉬운 토대가 이런 경험에서 쌓였다.

“그럼 영주님이 돈 냅니까?”

광장에서 웃음.

홍수복구 때 가장 빠르게 움직인 건 관청이 아니라 마을이었다.

길이 터진 소식이 퍼지자 주민들이 삽을 들고 나왔다.

카엘은 놀랐다.

“누가 동원했지?”

하심이 말했다.

“아무도.”

마을 사람들이 자기 집과 밭을 지키려고 나온 것.

관청은 뒤늦게 작업을 조직했다.

카엘은 그걸 보며 생각했다.

국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게 정보와 자원을 연결하는 역할도 있다.

복구 뒤 주민대표들은 배수관리조를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비 오기 전 수로 청소.

막힌 곳 신고.

카엘은 지원금만 조금 줬다.

리사라가 말했다.

“이번에는 영주님이 한 게 별로 없네요.”

카엘이 웃었다.

“좋네.”

“진짜?”

“응.”

자기 이름 없이도 잘 되는 일이 늘어나는 게 이상하게 기뻐지기 시작했다.

카엘도 웃었다.

“일부는.”

실제로 영주개인기금 일부 투입.

나머지는 공공예산.

리사라가 나중에 말했다.

“인기 얻으려고 개인돈 쓴 거 아니죠?”

“내 실수니까.”

“좋아요.”

“조건?”

“없어요.”

카엘은 기뻤다.

리사라의 무조건 칭찬은 드물었다.

홍수는 공사일정을 반년 늦췄다.

하지만 길은 더 튼튼해졌다.

카엘은 점점 빨리 끝내는 것보다 오래 가는 걸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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