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52화 — 가장 짧은 길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공사 시작 전 마지막 현장답사.
카엘은 케라 장례숲을 직접 찾았다.
다렌이 앞장섰다.
숲 입구에는 울타리도 문도 없었다.
평범한 나무들.
바닥에는 작은 돌무더기.
카엘이 물었다.
“묘비는?”
다렌이 말했다.
“저 돌.”
“이게?”
돌 하나.
나무 뿌리.
천조각.
제국 묘지처럼 벽도, 성직자도, 큰 비석도 없다.
처음 보면 그냥 숲.
그래서 제국 측량사도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카엘은 케라 장로에게 물었다.
“어디까지가 묘지입니까?”
장로가 숲 전체를 가리켰다.
“전부?”
리사라가 번역했다.
“죽은 사람이 걷는 길까지.”
카엘은 또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렌이 설명했다.
케라 장례는 시신을 한 곳에만 두는 의식이 아니다.
마을에서 숲까지 가는 길.
중간에 쉬는 바위.
강을 건너는 장소.
모두 기억의 일부.
도로가 숲을 관통하면 묘 몇 개만 옮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카엘은 지도에서 장례길 전체를 표시하게 했다.
마르코는 비용을 다시 계산.
“우회하면 다리 하나 추가.”
재정관 얼굴.
카엘이 말했다.
“알아.”
“또 돈 듭니다.”
“알아.”
장로는 카엘에게 물었다.
“왜 길을 만드는가?”
카엘이 대답했다.
“시장 가기 쉽게.”
“우리에게도?”
카엘은 멈췄다.
케라 공동체는 마라벤 시장 이용이 적었다.
“원하면.”
장로가 웃었다.
“당신들 길은 항상 우리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쓸 수 있습니다.”
“세금도?”
“그건…”
리사라가 웃음을 참았다.
카엘은 솔직하게 말했다.
“아마.”
장로도 웃었다.
“그럼 우리 길은 아니군.”
카엘은 그 말을 기억했다.
공공도로.
모두가 쓸 수 있지만 누가 만들고 누가 세금을 정하는가.
길에도 주인이 있을 수 있었다.
카엘은 제안했다.
케라 공동체가 도로공사 일부에 참여.
그 구간 유지관리도 공동계약.
대신 통행료 수익 일부를 공동체에 배분.
장로들은 회의를 하겠다고 했다.
즉답 없음.
다렌은 말했다.
“왜 돈까지 줍니까?”
카엘이 물었다.
“길이 그들 땅 지나가잖아.”
“묘지는 피합니다.”
“그 주변 숲도 쓰잖아.”
다렌은 잠시 생각했다.
“제국은 이런 거 안 합니다.”
“그래?”
“군용도로는 필요하면 만듭니다.”
카엘은 다렌을 봤다.
“그게 항상 좋은 건 아니잖아.”
케라 장로회의는 카엘에게 예상 밖의 조건을 하나 더 제시했다.
도로 옆 시장 설치권.
카엘이 물었다.
“왜?”
다렌이 번역을 도왔다.
케라 사람들은 길이 자기 땅을 지나가면 마라벤 상인이 들어올 걸 알고 있었다.
그 전에 자기들도 거래할 장소를 확보하고 싶었다.
카엘은 놀랐다.
자기가 ‘보호해줘야 할 공동체’처럼 생각했던 사람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기회를 보고 있었다.
마르코는 반대했다.
“시장 너무 많으면 통행료와 세관 관리 복잡합니다.”
카엘이 말했다.
“당신은 시장 많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제가 운영하면 좋습니다.”
케라 장로가 리사라 번역을 듣고 크게 웃었다.
결국 주 1회 케라 공동시장 허용.
세금은 낮게.
공동체가 자체 질서유지.
중대한 분쟁만 마라벤 법정.
카엘은 그 조항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걸 마라벤 관청이 관리하지 않아도 됐다.
첫 공동시장 날 케라 치즈, 가죽, 말이 들어왔다.
마라벤 상인은 금속도구와 소금, 직물을 팔았다.
거래는 활발.
다렌은 자랑스러워했다.
카엘은 그에게 말했다.
“길 싫다던 사람들이 제일 빨리 장사하네.”
다렌이 웃었다.
“케라가 길 싫다고 한 게 아닙니다.”
“그럼?”
“우리한테 묻지 않는 길이 싫은 겁니다.”
카엘은 그 말을 기억했다.
길 자체보다 누가 결정했는가.
그 차이는 훗날 제국 전체 문제로 커진다.
다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케라 공동시장 첫날 카엘은 직접 물건을 샀다.
치즈.
가죽장갑.
말 장식.
리사라는 웃었다.
“필요한 건 장갑뿐인데요.”
“시장 잘 되는지 봐야지.”
“그게 왜 장식까지 사는 이유죠?”
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케라 상인은 카엘이 영주인 걸 알고도 가격을 깎아주지 않았다.
카엘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시장 한쪽에서는 마라벤 상인과 케라 목동이 말 가격을 두고 크게 싸웠다.
다렌이 통역.
둘은 거의 주먹질 직전.
결국 손뼉을 치고 거래.
카엘은 놀랐다.
“싸운 거 아니었어?”
다렌이 말했다.
“흥정입니다.”
카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문화마다 싸움처럼 보이는 협상도 있었다.
공동시장은 이후 왕의 길을 따라 더 커졌다.
카엘이 의도한 경제통합보다 사람들의 장사가 더 빨랐다.
그날 밤 케라 공동체는 조건부 동의.
도로노선은 숲 외곽.
장례길과 교차하는 곳에는 큰 포장석 대신 흙길 구간을 남김.
장례행렬 통과 시 통행 우선.
카엘은 계약서에 서명했다.
마르코가 말했다.
“도로에 장례조항 들어가는 건 처음 봅니다.”
카엘이 말했다.
“길이 사람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
마르코는 잠시 그를 봤다.
“그 생각 오래 유지하십시오.”
카엘은 웃었다.
“왜 다들 내가 나중에 변할 것처럼 말해?”
리사라와 마르코가 동시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엘은 괜히 불길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