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51화 — 선을 긋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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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길 첫 회의에는 열세 명이 모였다.
카엘.
리사라.
하심.
베란.
마르코.
다섯 마을 대표.
부두길드.
마차꾼조합.
그리고 사힌 왕실에서 보낸 관리 하나.
벽에는 커다란 지도가 걸려 있었다.
카엘이 선을 그었다.
마라벤.
오렘.
내륙 시장도시.
가장 짧은 길.
리사라가 말했다.
“안 됩니다.”
카엘은 붓을 든 채 멈췄다.
“왜?”
“케라 묘지.”
“우회 표시했잖아.”
“거긴 장례숲.”
베란도 말했다.
“그리고 습지.”
카엘은 선을 조금 옮겼다.
마차꾼 대표가 말했다.
“너무 가파릅니다.”
다시.
마을대표가 말했다.
“농지.”
다시.
사원대표가 말했다.
“성지.”
카엘은 붓을 내려놨다.
“길 만들 수 있나?”
마르코가 웃었다.
“바다로 가죠.”
회의장에 웃음이 퍼졌다.
카엘도 웃었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지도 위 선은 쉽다.
실제 땅에는 사람이 산다.
묘지.
밭.
우물.
신전.
길.
기억.
돈.
모든 걸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럼 기준부터.”
카엘이 말했다.
누구는 길이 가까워지길 원하고.
누구는 멀어지길 원한다.
상인은 빠른 길.
농민은 밭 보존.
케라는 묘지.
영주는 비용.
베란은 물.
“우선순위 정하자.”
리사라는 물었다.
“누가?”
카엘은 회의장을 봤다.
“같이.”
회의는 길어졌다.
첫날 결론 없음.
둘째 날.
셋째 날.
카엘은 지쳤다.
“내가 그냥 정하는 게 빠르겠는데.”
리사라가 말했다.
“그래서 영주들이 그러죠.”
“왜 비웃어.”
“안 비웃어요.”
“웃고 있잖아.”
결국 세 개 노선을 남겼다.
A안.
가장 짧고 싸다.
케라 장례숲 일부.
B안.
농지 피해 큼.
C안.
길고 비싸지만 큰 공동체 피해 적음.
마르코는 A.
재정관도 A.
케라는 C.
마차꾼은 B.
카엘은 처음엔 C를 원했다.
그런데 베란이 지질조사 결과를 가져왔다.
C안은 장마 때 산사태 위험.
결국 B안을 수정.
농지를 일부 매입.
새 관개수로 설치.
마을 우회도로.
비용은 A보다 17% 높았다.
모두 조금씩 불만.
카엘은 그게 타협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토지매입이었다.
길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땅값이 뛰었다.
어제 은화 열 닢.
오늘 스무 닢.
“누가 샀지?”
하심이 장부를 봤다.
외지 상인.
현지 귀족.
그리고 마라벤 주민 몇 명.
“계획정보 샜네.”
카엘이 말했다.
마르코는 당연하다는 얼굴.
“회의에 열세 명 있었잖습니까.”
카엘은 머리를 감쌌다.
정보를 숨기면 주민 의견을 들을 수 없다.
공개하면 투기.
또 양면.
카엘은 도로계획 발표일을 기준으로 보상가를 산정하기로 했다.
그 뒤 가격상승은 보상에 반영하지 않음.
투기꾼 반발.
“시장가격입니다!”
카엘이 말했다.
“우리가 길 만든다는 정보로 오른 가격까지 세금으로 사줄 순 없어.”
노선공청회는 마라벤 역사상 가장 시끄러운 회의 중 하나가 됐다.
한 농민은 길이 자기 밭을 지나가면 장사가 될 거라 찬성했다.
옆집 농민은 밭이 잘려 농사 망친다고 반대.
여관주인은 길이 가까워지길 원했다.
사원은 조용한 걸 원했다.
카엘은 처음엔 모두에게 이익 되는 선을 찾으려 했다.
사흘째 포기했다.
“없네.”
리사라가 말했다.
“이제야.”
“왜 진작 말 안 했어?”
“직접 알아야 오래 기억하니까.”
카엘은 그녀를 노려봤다.
결국 카엘은 원칙을 공개했다.
사유지 통과는 보상.
집 철거는 최소화.
공동체 묘지·성지는 우선 회피.
수리시설 피해는 대체시설 선공사.
주민은 이의신청 가능.
이 기준을 먼저 정하고 노선을 선택.
그랬더니 싸움의 형태가 바뀌었다.
“왜 우리 땅은 보상이 이 가격인가.”
“이 우회로는 정말 필요한가.”
논쟁은 계속됐지만, 최소한 기준은 생겼다.
하심은 이의신청만 수십 건을 처리했다.
카엘이 미안해하자 하심은 말했다.
“차라리 낫습니다.”
“뭐가?”
“예전엔 결정 난 뒤 아무도 말 못 했습니다.”
카엘은 그 말을 들으며 길 하나 만드는 일이 작은 정치체계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항의하고.
누가 보상받고.
누가 비용을 내는지.
도로는 돌과 흙만이 아니었다.
마르코는 꽤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노선결정 과정에서 카엘은 처음으로 지도를 공개 게시했다.
사람들이 직접 보고 이의제기.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지도를 못 읽는 사람이 많았다.
카엘은 답답했다.
“그럼 공개해도 의미 없잖아.”
베란이 말했다.
“현장에 표식 세우면 됩니다.”
길 예정지에 색깔 깃발.
마을마다 설명회.
카엘은 웃었다.
“지도보다 땅을 보여주자는 거네.”
리사라가 말했다.
“원래 길은 땅에 생기니까요.”
현장표식 뒤 이의신청이 더 정확해졌다.
“여긴 우리 우물 지나갑니다.”
“저 돌은 겨울 수로.”
“이 경사는 수레 못 올라갑니다.”
책상에서 안 보이던 정보들이 쏟아졌다.
카엘은 계획을 몇 번 더 수정했다.
마르코는 공사비 늘어난다고 불평.
그러나 나중에는 수정 덕분에 추가공사 비용이 줄었다.
카엘은 공개와 참여가 느리지만 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빠른 결정과 좋은 결정이 항상 같은 건 아니었다.
법률분쟁은 남았다.
리사라가 기준을 다듬었다.
그날 밤 카엘은 지도 위에 최종노선을 그었다.
직선이 아니었다.
구불구불.
강을 피하고.
묘지를 피하고.
마을 사이를 지나고.
물길을 따라갔다.
처음 그었던 선보다 훨씬 길었다.
그런데 리사라는 말했다.
“이제 좀 길 같네요.”
카엘은 지도를 봤다.
“왜?”
“사람 사는 곳을 지나가잖아요.”
카엘은 그 말을 마음에 들어 했다.
길은 두 점을 가장 빠르게 잇는 선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선이었다.
그는 아직 그 길이 제국군도, 피난민도, 혁명군도 지나갈 길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지금은 그저 마라벤과 오렘을 잇는 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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