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50화 — 한 해의 끝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카엘이 마라벤을 받은 지 다섯 해가 지났다.
처음에는 하루가 길었다.
이제는 해가 짧았다.
무언가 고치면 계절이 지나 있었다.
관청 회의실 벽에는 첫날 장부가 걸려 있었다.
공식 인구 2,812.
그 옆 현재 인구.
7,406.
카엘은 숫자를 오래 봤다.
리사라가 말했다.
“많이 늘었네요.”
“도망간 사람도 많아.”
“그래도.”
마라벤은 변했다.
노예시장은 남문시장.
부두는 큰 배가 직접 들어왔다.
새밭 정착촌.
학교.
진료소.
경비대.
공공창고.
세금장부.
그리고 문제도 늘었다.
채무노동.
집값.
언어갈등.
도적.
수질.
통행세.
카엘은 첫 5년 결산을 공개했다.
세입은 두 배 이상.
인구도 증가.
범죄율은 도로 외곽을 제외하면 감소.
시장 거래량 증가.
유아 사망은 에드윈 진료와 깨끗한 물 덕에 줄기 시작.
좋은 숫자였다.
자미르 같은 사람이 아직 등장하기 전이라, 주민들은 카엘을 대체로 좋아했다.
카엘도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그날 저녁 리사라와 둘이 관저에서 식사했다.
예전보다 관저는 멀쩡했다.
지붕도 안 샜다.
카엘이 말했다.
“처음 왔을 때 기억나?”
“냄새?”
“그 말 하지 마.”
리사라가 웃었다.
“장부.”
카엘은 첫 장부를 가져왔다.
탄 흔적.
수정표시.
틀린 숫자.
“이제 좀 괜찮은 영지 같지?”
리사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왜.”
“괜찮아요.”
“그 표정은 아닌데.”
“괜찮은데.”
리사라는 창밖을 봤다.
“이제 너무 커져서 당신 혼자 결정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카엘은 웃었다.
“내 영지인데?”
리사라가 그를 봤다.
카엘의 웃음이 조금 줄었다.
“농담.”
“반쯤.”
카엘은 부정하지 않았다.
문제가 많아질수록 주민대표와 길드, 마을회의에 더 자주 묻게 됐다.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 회의를 정례화하지.”
리사라가 말했다.
“진짜로?”
“시장상인회, 마을대표, 길드, 교회, 케라 대표.”
“영주님 권한 줄어드는데.”
카엘은 잠시 생각했다.
“일도 줄어들잖아.”
리사라가 웃었다.
“그 이유 마음에 드네요.”
5년 결산 뒤 주민대표회의는 실제로 정례화됐다.
석 달에 한 번.
법을 만드는 의회는 아니었다.
세금과 사업계획을 듣고 의견을 내는 자리.
첫 회의에서 카엘은 후회했다.
모두 말이 많았다.
부두.
시장.
학교.
도로.
경비.
케라 대표는 번역시간까지 필요.
회의가 여섯 시간.
카엘은 끝나고 말했다.
“그냥 내가 정할 걸.”
리사라가 웃었다.
“권력 돌려달라고 하세요.”
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싫어.”
“왜?”
“다시는 혼자 다 듣고 결정하기 싫어서.”
그건 농담이면서 진심이었다.
대표회의는 카엘의 부담을 늘리기도 했지만 책임을 나누기도 했다.
왕의 길 예산도 대표회의에서 공개.
반대 많음.
찬성도.
결국 조건부 승인.
카엘은 그 과정을 보며 이상한 만족을 느꼈다.
길이 완공됐을 때 성공이 자기 혼자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는 아직 ‘시민’이나 ‘민주’ 같은 큰 말을 쓰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자기 돈과 길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고 느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날 밤 카엘은 다음 5년 계획을 펼쳤다.
가장 큰 항목 하나.
마라벤-오렘 간 대로 건설.
예상비용을 보고 잠시 눈을 감았다.
마르코는 이미 투자안을 보냈다.
5년 결산 마지막 항목은 인구가 아니었다.
카엘은 관청 사람들에게 물었다.
“내가 없어지면 어떻게 돼?”
하심이 당황했다.
“어디 가십니까?”
“가정.”
리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카엘은 계속했다.
“내가 한 달 카스린 가면?”
하심은 말했다.
“결재 밀립니다.”
“그럼 문제네.”
카엘은 권한위임표를 만들었다.
세금은 하심.
시장분쟁은 판관.
공공사업은 베란.
치안은 경비대장.
큰 재산·형사·정책 변경만 영주.
자기 책상 위 결재량이 절반 줄었다.
처음엔 불안했다.
며칠 뒤 아무 일도 없었다.
오히려 빨라졌다.
리사라가 말했다.
“영주님이 덜 일해도 영지가 돌아가네요.”
카엘은 기분이 묘했다.
좋으면서 서운했다.
“나 없어도 되나?”
“가끔은.”
둘은 웃었다.
카엘은 아직 몰랐다.
자신 없이도 돌아가는 조직을 만드는 일이 훗날 자기 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될 줄은.
베란은 노선도.
리사라는 공동묘지 우회표시.
하심은 예상세입.
모든 것이 준비돼 있었다.
카엘은 지도를 펼쳤다.
마라벤에서 내륙으로 이어지는 선.
아직 없는 길.
“왕의 길.”
그가 중얼거렸다.
리사라가 물었다.
“벌써 이름까지?”
카엘이 웃었다.
“그냥.”
다음 날부터 현장답사가 시작됐다.
마라벤의 첫 5년이 끝났다.
그리고 두 번째 시대는,
길에서 시작됐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