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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39화 — 자유로운 계약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39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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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업자는 아직 없었다.

대신 염전과 창고업자가 노동계약을 빠르게 확대했다.

노예를 쓰기 어려워지자 계약노동자가 필요해졌다.

처음엔 좋은 변화처럼 보였다.

문제는 계약서였다.

글을 모르는 노동자에게 긴 문서.

선급금.

숙식비.

도구비.

벌금.

결근공제.

임금보다 비용이 더 커지는 계약도 있었다.

세라가 하심에게 계약 하나를 들고 왔다.

친구가 서명하려 한다고.

하심은 읽다가 얼굴을 굳혔다.

“이거 끝이 없습니다.”

카엘이 문서를 봤다.

계약기간 2년.

하지만 채무가 남으면 자동연장.

숙식비는 고용주가 결정.

도구 파손비도 고용주 판단.

“노예랑 뭐가 다르지?”

리사라가 말했다.

“법적으로는 많이 달라요.”

“실제로는?”

“이 계약은 별로 안 달라 보이네요.”

마르코도 동의했다.

“이건 악성계약입니다.”

카엘이 그를 봤다.

“상인도 인정하네.”

“계약이란 건 서로 지킬 수 있어야 오래 갑니다. 이건 한쪽이 못 빠져나가게 만든 덫이죠.”

카엘은 노동계약 표준안을 만들기로 했다.

마르코.

리사라.

하심.

길드대표.

노동자대표.

전부 불렀다.

회의는 끔찍했다.

고용주는 유연성.

노동자는 보호.

마르코는 신용.

에드윈은 인간존엄.

카엘은 머리가 아팠다.

결국 최소규칙만 만들었다.

계약기간 명시.

채무액 명시.

자동연장 금지.

벌금 상한.

임금 일부는 반드시 현금 지급.

계약양도 금지.

일방적 가족구속 금지.

중도해지 조건.

완벽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노동자도 계약서를 근거로 고용주를 고소할 수 있게 됐다.

첫 사건은 바로 다음 달.

염전노동자 다섯 명이 임금체불을 제기했다.

길드주는 화를 냈다.

표준계약 제정 뒤 길드들이 자체 계약서를 들고 왔다.

목수길드.

선원길드.

염전.

부두.

각 업종 사정이 달랐다.

카엘은 처음엔 하나의 양식으로 통일하고 싶었다.

마르코가 반대했다.

“배에서 일하는 사람과 밭에서 일하는 사람 계약이 같을 순 없습니다.”

리사라도 동의.

카엘은 한 발 물러섰다.

공통권리만 중앙규칙.

세부는 길드별.

그 대신 길드규칙을 공개 등록.

하심은 장부가 또 늘었다고 한숨.

카엘은 미안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선원길드가 아주 오래된 제도를 보여줬다.

항해 중 선원이 다치면 선원 전체 몫에서 치료비를 나누는 방식.

카엘은 놀랐다.

“이런 게 있었어?”

리사라가 말했다.

“제국이 오기 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다니까요.”

카엘은 웃었다.

기존 제도를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것만이 개혁이 아니었다.

좋은 것을 찾아 공식화하는 것도 가능했다.

카엘은 선원길드 상호부조규칙을 다른 위험직업에도 권고했다.

부두노동자.

염전.

공공공사.

마르코가 말했다.

“영주기금 부담도 줄겠군요.”

“이번엔 돈 때문에 하는 거 아니다.”

“좋은 일과 싼 일이 같이 오면 왜 싫어합니까?”

카엘은 생각하다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첫 임금체불 재판 뒤 노동자들은 관청을 더 자주 찾기 시작했다.

일부 고용주는 마라벤을 떠나겠다고 협박.

실제로 두 업체가 옆 영지로 이전.

일자리가 잠깐 줄었다.

카엘은 불안했다.

“내가 너무 세게 했나?”

마르코가 말했다.

“그럴 수도.”

카엘이 그를 노려봤다.

“위로 못해?”

“대신 새 업체 들어옵니다.”

“왜?”

“항구가 커지니까.”

정책 하나만으로 경제가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수십 가지 요인이 겹쳤다.

카엘은 조금씩 ‘내가 만들었다’는 말을 조심하게 됐다.

표준계약 요약본은 그림까지 들어갔다.

동그라미 속 동전 — 임금.

해 — 계약기간.

집 모양 — 숙식.

문 — 중도해지.

사슬에 금지표시 — 양도금지.

카엘은 처음 봤을 때 웃었다.

“어린애 책 같군.”

하심이 말했다.

“글 못 읽는 어른이 많습니다.”

카엘은 바로 사과했다.

요약본은 효과가 컸다.

노동자들이 계약 전 질문을 더 많이 했다.

고용주는 귀찮아했다.

분쟁은 줄었다.

마르코는 말했다.

“정보가 협상력을 만듭니다.”

카엘은 그 문장을 좋아했다.

“그럼 장부도 권력이군.”

“당연하죠.”

“지도도.”

“그것도.”

“언어도.”

리사라가 끼어들었다.

“이제야 아셨어요?”

카엘은 웃었다.

권력은 검과 작위만이 아니었다.

누가 읽고.

누가 알고.

누가 기록하고.

누가 설명할 수 있는지.

마라벤에서의 경험은 카엘의 권력관을 조용히 바꾸고 있었다.

그는 아직 자신이 제국을 떠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제국의 좋은 제도를 더 잘 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더 아이러니했다.

“노동자가 영주법정에?”

카엘이 말했다.

“계약 당사자잖아.”

계약요약본을 시장벽에 붙인 첫날 누군가 찢었다.

다음 날 또 붙였다.

또 찢겼다.

카엘은 범인을 잡으라고 했다.

나이라가 말했다.

“그냥 더 많이 붙이면 돼요.”

카엘은 멈췄다.

리사라가 번역했다.

“잡느라 돈 쓸 바엔 열 장 붙이자고.”

마르코가 웃었다.

“상당히 경제적이군.”

카엘은 진짜 열 장을 붙이게 했다.

관청.

시장.

부두.

교회.

길드.

여관.

찢는 속도보다 붙이는 속도가 빨랐다.

며칠 뒤 아무도 안 찢었다.

카엘은 묘하게 감탄했다.

권력으로 막는 것보다 정보를 복제하는 게 더 강할 때가 있었다.

방화 이후 장부사본을 여러 곳에 둔 것과 비슷했다.

지식은 한 곳에 있을 때 약했다.

퍼지면 지키기 어려워졌다.

카엘은 그 구조를 좋아했다.

마르코가 말했다.

“인쇄가 더 싸졌으면 좋겠군요.”

“한 장씩 베끼는 것도 일이지.”

리사라가 말했다.

“네르바에는 목판으로 같은 문서를 많이 찍는 곳이 있어요.”

카엘이 관심을 보였다.

“얼마나 많이?”

“수백 장.”

이 대화는 훗날 마라벤에서 공고문과 법률요약을 인쇄하는 작은 인쇄공방이 생기는 씨앗이 된다.

“예전에는 이런 적 없습니다.”

“이제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밀린 임금 지급.

길드주는 불만.

다른 노동자들은 소문을 들었다.

카엘은 마라벤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바뀌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날 저녁 한 해방노예가 찾아왔다.

그는 말했다.

“계약 너무 복잡합니다.”

카엘은 웃음을 잃었다.

법을 정교하게 만들수록 읽기 어려워졌다.

리사라가 말했다.

“요약본 만들죠.”

한 장.

큰 글씨.

핵심권리.

카엘은 또 배웠다.

권리가 있어도 모르면 없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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