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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36화 — 법의 끝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36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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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전체 노예금지령은 나오지 않았다.

사힌은 대신 단계적 제한령을 확대했다.

미성년자 매매 금지.

전쟁포로 민간매매 금지.

채무로 가족을 넘기는 행위 금지.

왕실도시 노예시장 신규허가 금지.

카엘은 편지를 읽고 실망했다.

“왜 전면금지가 아니지?”

리사라가 말했다.

“전하가 왕국 전체를 다스려야 하니까.”

“나도 영지를 다스려.”

“규모가 다르잖아요.”

카엘은 인정하기 싫었다.

사힌은 북부 귀족 반발.

농장노동력.

군사동맹.

세입.

모두 고려해야 했다.

카엘은 편지를 내려놓았다.

“내 영지에서만이라도.”

그런데 그날 도망노예 보호소 앞에서 싸움이 났다.

옆 영지 지주의 사병들이 자기 노예를 돌려달라고 들어왔다.

마라벤 경비대가 막았다.

양쪽이 칼을 뽑기 직전.

카엘이 달려왔다.

“무기 내려!”

상대 지휘관이 말했다.

“우리 영주의 재산입니다.”

카엘은 이를 악물었다.

“마라벤 안에서는 자유인으로 보호한다.”

“그 법을 누가 인정합니까?”

“내가.”

지휘관이 비웃었다.

“아르케시아 기사 하나가 사하르 법을 바꿉니까?”

카엘은 검자루에 손이 갔다.

다렌을 구하던 때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상대도 자기 영주 명령을 수행 중.

여기서 싸우면 지방분쟁.

리사라가 나섰다.

“그 사람 계약서 가져오셨습니까?”

상대가 문서를 내밀었다.

리사라는 읽었다.

기간 없음.

채무액 불명확.

서명은 지주 대리인만.

“사하르 제한령에도 걸립니다.”

지휘관 얼굴이 굳었다.

리사라는 새 왕실법령 사본을 보여줬다.

“채무노동자는 원채무액과 계약기간이 명시돼야 합니다.”

사병들은 물러났다.

옆 영지와의 도망노예 분쟁은 사힌 왕실회의까지 올라갔다.

카엘은 직접 카스린에 가려 했다.

사힌이 오지 말라고 했다.

문서로 보내. 네 얼굴 보면 귀족들이 더 화낸다.

카엘은 어이없었지만 따랐다.

오르반 세르라는 제국 법무관료가 이 문제에 대한 의견서를 보내왔다.

카엘은 그를 아직 직접 만나지 못했다.

의견은 냉정했다.

마라벤 내부 보호권은 인정 가능. 타 영지 계약을 일괄 무효화할 권한은 없음. 왕실법령과 개별심사 필요.

카엘은 짜증이 났다.

“항상 절반만 됩니다.”

리사라가 말했다.

“그게 법이에요.”

“법은 왜 이렇게 겁이 많아?”

“권력을 무서워해야 하니까.”

카엘은 그 말을 곱씹었다.

오르반 의견서 마지막에는 한 문장이 있었다.

선의는 관할권을 확장하는 법적 근거가 아니다.

카엘은 그 문장을 싫어했다.

너무 맞아서.

결국 마라벤은 타 영지 노예를 자동해방하지 않고, 다음 기준으로 보호했다.

불법납치.

미성년계약.

왕실 제한령 위반.

채무액 불명확.

학대.

그 밖의 경우는 중재와 몸값기금.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방전쟁은 피했다.

몇몇 도망노예는 자기 계약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받고 돌아가야 했다.

카엘은 그날 잠을 못 잤다.

에드윈도 불편했다.

리사라는 말했다.

“법대로 했어요.”

카엘이 답했다.

“그게 위로가 안 돼.”

“원래 그래요.”

카엘은 그 순간 처음으로 법이 정의와 같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선명하게 느꼈다.

그래서 법을 더 나쁘게 보게 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조심해서 써야 할 도구라고 보기 시작했다.

카엘은 안도했다.

오르반 세르의 의견서를 받은 뒤 카엘은 직접 답장을 썼다.

선의가 관할권 근거가 아니라는 데 동의합니다.

쓰고 한참 멈췄다.

그 다음 문장은 어려웠다.

그러나 관할권의 경계 때문에 사람을 다시 사슬에 돌려보내는 일이 정당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며칠 뒤 오르반 답장이 왔다.

짧았다.

동의합니다. 그래서 법을 바꾸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카엘은 웃었다.

“이 사람 마음에 안 드는데 마음에 드네.”

리사라가 편지를 읽었다.

“비슷한 사람이라 그런가 봐요.”

“전혀 다른데.”

“둘 다 문장 길어요.”

카엘은 편지를 빼앗았다.

오르반은 왕실·제국 공동법무회의에 마라벤 사례를 올리겠다고 했다.

즉각 해결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식 논의가 시작됐다.

카엘은 처음으로 자기 영지의 작은 사건이 더 큰 법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그건 기분 좋은 동시에 무서웠다.

자기 실수도 퍼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날 그는 리사라에게 말했다.

“좋은 제도 만들면 다른 데도 쓰게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나쁜 부분도 같이 퍼질까 봐 겁난다.”

리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정상 아닐까요?”

카엘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두려움이 결정 자체를 멈추게 해선 안 되지만, 결정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리사라가 말했다.

“칼 안 뽑아도 되죠?”

타 영지에서 돌아가야 한다는 판결을 받은 채무노동자 한 명이 관청 계단에서 울었다.

카엘은 피하고 싶었다.

자기가 내린 판결은 아니었지만 자기 법정이 확인한 결정이었다.

남자 이름은 하렌.

아내와 아이는 마라벤에 있었다.

계약지는 북쪽 영지.

“가족도 같이 가면?”

리사라가 물었다.

하렌은 고개를 저었다.

고용주가 가족 숙식을 보장하지 않음.

카엘은 다시 법을 뒤졌다.

계약 자체는 왕실법 기준 유효.

그는 오르반에게 편지를 쓸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오늘 하렌이 가야 했다.

카엘은 몸값기금에서 계약잔액 일부를 대신 갚고, 하렌이 마라벤 공공사업에서 그 금액을 장기상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합법이었다.

완전한 무상구제는 아니었다.

하렌은 받아들였다.

에드윈이 물었다.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카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기금은 제한돼 있었다.

이번에는 한 사람을 구했다.

다음 사람은 못 구할 수도 있다.

카엘은 영웅적 해결이 제도가 될 수 없다는 걸 또 배웠다.

그래서 몸값기금 지원기준을 공개했다.

가족분리.

학대위험.

미성년자 부양.

채무잔액.

누가 도움을 받는지 영주 마음이 아니라 기준이 정하게 했다.

카엘은 그게 차갑게 느껴지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돕는 일조차 자의적 권력이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건 어렵고 불완전했다.

“아까 뽑을 생각 없었어.”

“거짓말.”

카엘은 웃었다.

그날 카엘은 법의 힘을 다시 느꼈다.

동시에 법의 끝도 봤다.

문서가 부실해서 이번엔 이겼다.

완벽한 계약서를 들고 오면?

마라벤 밖에서 잡히면?

왕실 제한령 적용 전 계약이면?

항상 보호할 수는 없었다.

에드윈이 말했다.

“법은 벽이 아니라 경계선 같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 보여주죠.”

카엘은 보호소 창밖을 봤다.

그 경계 밖에도 사람이 있었다.

그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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