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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35화 — 시장 하나를 없애는 법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35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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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시장 마지막 날.

카엘은 사람들이 환호할 줄 알았다.

실제론 조용했다.

상인 몇 명이 떠났고.

노예상들은 욕을 했다.

구경꾼은 많았다.

거래대가 철거되자 에드윈이 짧게 기도했다.

세라는 오지 않았다.

카엘은 조금 섭섭했다가 자기 감정이 우습다는 걸 깨달았다.

세라에게 이건 기념식이 아니었다.

자기 인생의 상처였다.

새 자유노동시장은 이틀 뒤 열렸다.

첫날부터 혼란.

고용주 백 명.

구직자 이백.

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기록도 부족했다.

하심이 말했다.

“직업표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카엘은 웃었다.

“또 장부?”

“영주님 좋아하시잖습니까.”

하심도 이제 농담을 했다.

직업.

경력.

원하는 임금.

숙식 제공 여부.

계약기간.

등록제도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글을 못 쓰는 노동자.

리사라가 구술등록소를 만들었다.

길드도 참여시켰다.

마르코는 임금표를 공개하자고 했다.

“왜?”

“고용주가 서로 얼마 주는지 알면 담합하지 않습니까?”

카엘이 물었다.

마르코가 웃었다.

“노동자도 알게 되잖아요.”

카엘은 승인했다.

일주일 뒤 평균임금이 조금 올랐다.

고용주들은 불평.

노동자들은 좋아했다.

세입은 예상보다 적게 줄었다.

시장 주변 음식점과 숙소는 그대로 영업.

오히려 자유노동자가 늘며 장기적으로 매출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카엘은 기뻤다.

“봤지?”

마르코가 말했다.

“뭘요?”

“사람 안 팔아도 돈 되잖아.”

“전 처음부터 말했습니다.”

카엘은 기억을 더듬었다.

정말 그랬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옆 영지 노예상들이 마라벤 경계 바로 밖에 임시시장을 열었다.

도망노예는 거기서 다시 잡혔다.

마라벤 상인들도 몰래 이용했다.

카엘은 화가 났다.

“경비 보내서 닫아.”

리사라가 바로 말했다.

“권한 없습니다.”

“마라벤 사람도 거래하잖아.”

“그 사람 처벌은 가능해도 시장 자체는 옆 영지예요.”

카엘은 사힌에게 또 편지를 보냈다.

답은 비슷했다.

왕국 차원 법령 준비 중. 지방귀족과 협의 필요.

카엘은 책상을 두드렸다.

“협의가 몇 달 걸릴 거야.”

리사라가 말했다.

“아마.”

“그 사이 사람 팔리고.”

“그래서 정치가 느린 거 싫다고 했잖아요.”

자유노동시장 첫 달 말, 하심이 이상한 통계를 가져왔다.

등록 노동자는 늘었는데 여성 등록자는 거의 없었다.

“여자는 일을 안 하나?”

카엘이 물었다.

리사라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시장 가보셨어요?”

“매일.”

“빨래하는 사람, 음식 파는 사람, 실 잣는 사람, 생선 말리는 사람 다 안 보였어요?”

카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건…”

“일이죠.”

기존 등록양식에는 길드직업 중심으로 적혀 있었다.

목수.

석공.

짐꾼.

선원.

대장장이.

가사·가공·판매노동은 빠져 있었다.

하심이 민망해했다.

“기존 장부를 참고해서…”

카엘은 웃었다.

“우리 장부도 세상을 못 보는군.”

등록항목을 바꿨다.

빨래.

음식조리.

직물.

소규모 판매.

간병.

아이돌봄.

며칠 만에 여성 등록자가 크게 늘었다.

그중 한 명이 나이라였다.

나이라는 운송조합에서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남자 짐꾼들이 처음엔 싫어했다.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왜 저 사람을 대표로 뽑았지?”

카엘이 물었다.

하심이 말했다.

“싸움을 잘합니다.”

카엘이 웃었다.

“검?”

“말로요.”

나이라는 임금지급이 늦은 부두업자를 상대로 노동자 스무 명을 데리고 관청에 왔다.

마르코가 계약서를 확인했다.

업자가 잘못.

임금 지급.

카엘은 나이라를 눈여겨봤다.

해방된 사람이 보호만 받는 대상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되는 과정.

그게 카엘이 원했던 것 같았다.

자기가 대신 싸워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싸울 수 있게 되는 것.

그 차이는 중요했다.

“느려도 너무 느려.”

에드윈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합시다.”

도망노예 보호소.

자유노동시장에는 처음으로 공개 임금표가 걸렸다.

짐꾼 하루.

목수 하루.

세탁.

주방.

선원.

카엘은 그걸 보며 꽤 만족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 임금표가 현실과 달라졌다.

수요가 몰린 목수 임금은 올라가고, 단순노동은 내려갔다.

“매일 바꿔야 합니까?”

하심이 물었다.

마르코가 말했다.

“시장가격이니 당연하죠.”

하심은 짜증난 표정.

카엘도.

결국 공식가격이 아니라 전주 평균임금으로 표시.

참고용.

법적 강제 없음.

그 작은 차이가 중요했다.

카엘은 모든 숫자를 명령으로 만들려는 습관이 있었다.

마르코는 숫자가 정보를 보여줄 뿐 명령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걸 가르쳤다.

또 하나의 문제는 숙련도였다.

같은 목수라도 실력이 달랐다.

길드가 등급을 만들자 신규노동자는 진입하기 어려워졌다.

카엘은 길드독점이 싫었다.

하지만 아무나 숙련공이라고 하면 품질문제.

리사라가 말했다.

“시험을 공개하면 되잖아요.”

길드만 심사하지 않고 관청·길드·소비자대표 공동평가.

카엘은 승인.

작은 제도였지만 길드가 완전히 문을 닫는 걸 막았다.

카엘은 하루가 멀다 하고 깨달았다.

자유를 만들수록 규칙이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좋은 규칙이 필요했다.

법률지원.

경계 안에서 추적 금지.

고용등록.

사람들이 마라벤으로 도망오기 시작했다.

자유노동시장에서 첫 큰 파업 비슷한 사건도 일어났다.

부두 하역업자들이 임금을 한꺼번에 낮췄다.

이유는 노동자가 많아졌기 때문.

해방민과 난민이 계속 들어오면서 공급이 늘었다.

나이라가 노동자들을 모아 하루 동안 작업을 거부했다.

마르코는 분노했다.

“배가 묶였습니다.”

카엘은 난처했다.

“불법인가?”

리사라가 말했다.

“계약 시작 전이면 일 안 할 자유가 있죠.”

마르코는 말했다.

“그럼 상인도 다른 사람 고용할 자유가 있습니다.”

양쪽 다 맞았다.

카엘은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항구 전체가 멈추기 시작했다.

곡물도.

목재도.

세금도.

결국 중재회의를 열었다.

나이라는 높은 임금보다 최저선 보장을 요구했다.

업자는 성수기·비수기 차등을 원했다.

마르코가 중간안을 냈다.

기본임금 + 화물량에 따른 추가수당.

나이라가 받아들였다.

카엘은 놀랐다.

“내가 한 게 없네.”

리사라가 말했다.

“좋은 거 아닌가요?”

“영주인데.”

“모든 싸움에 영주가 답이면 나라가 영주 하나만큼밖에 못 커요.”

카엘은 그 말을 기억했다.

자기 없이도 사람들이 협상할 수 있는 구조.

그건 훗날 그가 국가에 바라게 될 모습과 닮아 있었다.

처음엔 몇 명.

다음 달엔 수십 명.

문제는 생활비.

일자리.

집.

또 돈.

카엘은 머리를 감쌌다.

좋은 정책 하나가 새로운 문제 열 개를 데려왔다.

리사라가 말했다.

“후회해요?”

카엘은 바로 대답했다.

“아니.”

“좋네요.”

“왜?”

“그럼 다음 문제 풀면 되니까.”

카엘은 웃었다.

그날부터 마라벤은 주변에서 이상한 영지로 불리기 시작했다.

노예가 도망가면 잡아주지 않는 곳.

과부가 귀족 상대로 이길 수도 있는 곳.

세금영수증을 주는 곳.

카엘은 그 소문이 마음에 들었다.

그 대가가 얼마나 클지는 아직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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