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4화 — 돈이 되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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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벤 노예시장은 작았다.
카엘은 그래서 더 쉽게 없앨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틀렸다.
시장 자체는 작은 광장 하나.
하지만 그 주변에 연결된 돈은 컸다.
숙박업.
운송업.
환전.
음식.
경비.
상인중개.
세금.
재정관이 계산서를 보여줬다.
“폐쇄하면 영지세입 약 일 할 감소.”
카엘은 숫자를 다시 봤다.
“이 정도나?”
“시장사용료만 보면 적습니다.”
“그런데?”
“주변 소비가 큽니다.”
마르코가 말했다.
“사람도 상품처럼 이동하면 돈이 돕니다.”
카엘은 그 표현을 싫어했다.
“없앤다.”
재정관이 당황했다.
“영주님.”
“없애.”
“경비대 급료가…”
“다른 데서 메워.”
“어디서요?”
카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리사라가 말했다.
“폐쇄 자체는 할 수 있어요.”
“그럼?”
“대체시장을 같이 만들어야죠.”
마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노동 등록소.
운송계약소.
숙박시장.
일용직 중개.
그동안 노예시장이 제공하던 기능에서 사람 거래만 빼는 방식.
카엘은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럼 세입도 유지되나?”
마르코가 말했다.
“잘되면 더 늘 수도.”
“왜?”
“자유인이 돈을 쓰니까.”
카엘은 그 말을 기억했다.
노예는 거래될 때 한 번 돈이 움직인다.
자유인은 매일 사고팔고 먹고 집을 구한다.
시장을 바꾸는 것이 도덕뿐 아니라 경제에도 맞을 수 있었다.
문제는 기존 노예상들이었다.
폐쇄공고가 나자 집단으로 항의했다.
“합법사업입니다!”
카엘은 말했다.
“오늘까진.”
“재산권 침해!”
“사람을 재산으로 보는 권리는 인정 안 한다.”
노예상 대표가 차갑게 말했다.
“영주님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존재한 법입니다.”
카엘은 순간 멈췄다.
그 말은 맞았다.
자기 하나가 와서 오래된 질서를 바꾸는 것.
좋은 일이더라도 폭력적일 수 있다.
카엘은 보상 여부를 고민했다.
에드윈은 강하게 반대했다.
“사람을 팔던 자에게 보상한다고요?”
마르코는 말했다.
“합법 영업허가를 영주가 취소하는 거면 일부는 필요합니다.”
카엘은 절충했다.
노예 자체 가격은 보상하지 않음.
하지만 합법적으로 낸 시장허가료 잔여분은 환불.
건물·창고는 다른 용도로 전환할 경우 세금감면.
노예시장 폐쇄 논쟁은 종교갈등으로도 번졌다.
일광교 신자들은 폐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현지 일부 사원은 카엘 정책을 제국종교의 간섭으로 봤다.
실제로 노예제를 적극 지지하는 사원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원까지 경계했다.
한 현지 신관이 카엘을 찾아왔다.
“당신의 신 때문에 우리 법을 바꾸는 겁니까?”
리사라가 번역했다.
카엘은 에드윈을 봤다.
에드윈은 입을 열지 않았다.
카엘이 직접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럼 왜?”
“사람을 사람으로 보려고.”
신관은 냉소했다.
“우리도 사람을 사람으로 봅니다.”
“그런데 팝니까?”
신관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말했다.
“당신 제국에도 농노와 채무노동자가 있지 않습니까?”
카엘은 입을 다물었다.
맞았다.
제국도 완전히 자유로운 사회는 아니었다.
신관이 말했다.
“당신들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바꾸는 것과, 우리가 틀렸다고 생각해서 바꾸는 건 다릅니다.”
카엘은 그 차이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리사라가 나중에 설명했다.
“사람들은 제국이 노예시장 폐쇄를 핑계로 자기 신앙까지 바꾸려고 한다고 걱정하는 거예요.”
카엘은 에드윈에게 물었다.
“그럴 생각 있습니까?”
에드윈은 말했다.
“선교는 합니다.”
카엘이 인상을 썼다.
“하지만 칼로는 안 합니다.”
에드윈은 현지 신관을 찾아가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노예제.
인간의 영혼.
채무.
전쟁포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토론은 결론 없이 끝났다.
그래도 폭력은 없었다.
카엘은 노예시장 폐쇄령에 종교문구를 넣지 않기로 했다.
일광교가 지지하더라도 법의 근거는 영주행정과 사하르 왕실법.
에드윈도 동의했다.
“믿음은 법보다 넓지만, 법은 믿음을 강제하는 도구가 아니어야 합니다.”
카엘은 그 문장을 마음에 들었다.
노예상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에드윈도 완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노예시장 폐쇄령 발표 전날 카엘은 상인대표들과 마지막 회의를 했다.
한 늙은 노예상은 의외로 조용했다.
“나는 마흔 해 이 일 했습니다.”
카엘은 말했다.
“그래서?”
“내 아버지도.”
“그게 정당하다는 뜻입니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카엘은 예상하지 못한 답에 멈췄다.
노인이 계속했다.
“다른 일을 할 줄 모른다는 뜻입니다.”
카엘은 그를 바라봤다.
악한 제도를 유지하는 사람도 생계가 있었다.
그 사실이 불편했다.
“건물은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뭘 합니까?”
마르코가 말했다.
“운송중개. 숙박. 자유노동 중개.”
노인은 비웃었다.
“사람 파는 놈한테 노동자들이 오겠소?”
정확한 문제였다.
카엘은 폐업자 전환지원까지 검토했다.
에드윈이 강하게 반대.
“가해자를 지원합니까?”
카엘도 불편했다.
그런데 노예시장 전체를 닫으려면 그 주변 종사자가 다른 먹고살 길을 가져야 했다.
결국 직접 보조금은 주지 않았다.
대신 기존 건물을 자유시장용으로 전환하면 첫 1년 세금감면.
새 사업허가 우선심사.
노예매매 이력은 공개기록.
누구도 완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그 늙은 상인은 몇 달 뒤 실제로 숙박업으로 전환했다.
카엘은 우연히 그 여관을 지나갔다.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세상이 바뀌는 방식은 생각보다 덜 극적이었다.
어떤 사람은 신념을 바꾸지 않아도 업종부터 바꿨다.
그리고 가끔 행동이 생각보다 먼저 변했다.
카엘은 요즘 이 상태가 익숙해지고 있었다.
폐쇄일이 정해졌다.
광장 중앙의 거래단이 철거됐다.
폐쇄령 직전 노예시장 안쪽 창고를 조사했을 때 카엘은 작은 벽을 하나 발견했다.
사람들이 키를 긁어 표시한 흔적.
날짜를 세듯 선이 반복돼 있었다.
에드윈이 손으로 만졌다.
“여기 오래 갇혀 있던 사람들이 있던 것 같습니다.”
카엘은 말이 없었다.
시장폐쇄를 행정개혁처럼 다루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세입.
허가.
보상.
전환사업.
필요한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이 시장이 왜 없어져야 하는지 가장 단순한 이유는 벽에 있었다.
사람들이 여기 갇혀 있었기 때문.
카엘은 그 벽만은 허물지 말라고 했다.
리사라가 물었다.
“왜?”
“남겨.”
“기념물?”
“모르겠어.”
카엘은 솔직하게 답했다.
“나중에 우리가 왜 닫았는지 잊을 수도 있잖아.”
남문시장 한쪽에 작은 벽이 남았다.
표지판도 거창하지 않았다.
이곳은 과거 사람을 거래하던 시장의 일부였다.
카엘은 에드윈이 종교문구를 넣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했다.
기억은 누구의 신앙도 아닌 공동의 것이어야 했다.
쇠고리도.
사람을 세워놓던 목책도.
세라는 멀리서 그 광경을 봤다.
아무 표정도 없었다.
카엘은 그녀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라가 말했다.
“이미 팔린 사람은?”
리사라가 번역했다.
카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마라벤 시장은 닫을 수 있었다.
마라벤 밖은 아니었다.
옆 영지에는 더 큰 시장이 있었다.
카엘은 사힌에게 왕국 전체 금지를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답은 금방 왔다.
검토하겠다.
카엘은 종이를 구겼다가 다시 폈다.
왕이 된 사힌에게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었다.
카엘은 자기 영지부터 바꾸기로 했다.
적어도 여기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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