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2화 — 법이 이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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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멜의 밭은 돌려받았다.
문제는 수확이었다.
오라스 집안이 땅을 넘기며 소작인 둘을 함께 철수시켰다.
관개수로도 자기들이 관리하던 것이라 물길을 막았다.
카엘은 분노했다.
“판결 무시잖아.”
리사라는 고개를 저었다.
“토지는 넘겼어요.”
“물을 막았는데.”
“수로는 오라스 땅을 지나갑니다.”
카엘은 책상을 쳤다.
법적으로 이겼다.
실제로는 농사를 못 짓는다.
나멜은 울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차라리 밭을 포기하겠습니다.”
카엘이 물었다.
“왜?”
“싸울 힘이 없다고.”
리사라가 번역했다.
카엘은 그 말을 듣고 한참 가만히 있었다.
판결문은 종이였다.
오라스는 마을의 수로와 인력과 대출을 쥐고 있었다.
“수로 공공권 설정.”
카엘이 말했다.
리사라가 놀랐다.
“그렇게 바로?”
“물길 하나 때문에 판결이 무효가 되는 걸 볼 순 없어.”
“그러면 다른 지주도 반발해요.”
“하게 둬.”
리사라가 한숨을 쉬었다.
“또 빨라진다.”
카엘은 멈췄다.
사힌의 조언.
모든 싸움을 한 번에 하지 마라.
카엘은 물러서지 않았지만 방식을 바꿨다.
오라스 수로 전체를 빼앗지 않았다.
공공통행권처럼 관개수 사용권만 설정.
대신 유지비 일부를 나멜도 부담.
베란이 수로를 직접 조사했다.
“물을 조금만 나누면 됩니다.”
리사라가 번역했다.
카엘은 오라스를 불렀다.
오라스는 당연히 반대했다.
“사유재산입니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데.”
“그래서?”
“당신 땅을 지난다고 아래 사람 물까지 당신 것이 되나?”
오라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보상금을 지급하고 사용권을 확보했다.
돈이 또 들었다.
재정관이 한숨을 쉬었다.
“영주님은 정의를 살 때마다 은화를 쓰십니다.”
카엘은 웃었다.
“공짜 정의 있어?”
“없긴 합니다.”
나멜은 다시 밭을 경작했다.
카엘은 며칠 뒤 직접 찾아갔다.
그녀는 보리싹을 보여줬다.
카엘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때 옆집 남자가 말했다.
“영주님 덕분입니다.”
카엘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리사라가 옆에 있었다.
“뭐라고 하려고 했어요?”
“법 덕분이라고.”
“좋네요.”
오라스는 수로 사용권 판결 뒤 마을에서 자기 영향력을 과시했다.
나멜에게 씨앗을 팔려던 상인을 막고, 일꾼 고용도 방해했다.
카엘은 화가 났다.
“이건 협박이잖아.”
하심이 말했다.
“법에는 안 걸립니다.”
“왜?”
“자기 물건 안 파는 건 자유니까요.”
또 시장.
또 권력.
카엘은 오라스를 체포하고 싶었다.
리사라가 물었다.
“무슨 죄로?”
카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싫은 사람이라서?”
“그건 아니고.”
“그러면 대안을 만들어요.”
카엘은 마을 외부에서 씨앗을 들여오게 했다.
영주창고가 중간보증.
일꾼은 공공사업 등록자 중 자원자를 연결.
나멜은 올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오라스의 영향력도 조금 줄었다.
그런데 비용이 들었다.
재정관은 계속 불평했다.
카엘은 한밤중 장부를 보며 생각했다.
권력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체포가 아니라 대체수단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오라스가 물을 쥐고 있으면 공공수로.
씨앗을 쥐고 있으면 종자대출.
경비를 쥐고 있으면 지방경비대.
한 사람이 꼭 필요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 생각은 훗날 카엘 정치철학의 핵심이 된다.
그는 아직 그렇게 거창하게 부르지 않았다.
그저 오라스가 마음에 안 들었다.
리사라가 카엘의 장부를 보며 말했다.
“뭘 적어요?”
“오라스한테 의존하는 것 목록.”
“복수장부?”
“대체장부.”
리사라가 웃었다.
“그거 무서운데요.”
“왜?”
“사람을 없애는 게 아니라 필요 없게 만들잖아요.”
카엘도 웃었다.
“그게 더 낫지.”
그때는 둘 다 그 방식이 제국에도 적용될 날을 상상하지 못했다.
“근데.”
카엘은 수로를 봤다.
“법만 있었으면 저 밭 여전히 말라 있었어.”
나멜 밭 사건은 마을 여성들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음 장날, 관청 앞에 여자 여섯 명이 줄을 섰다.
모두 재산문제.
남편 사망.
아버지 상속.
형제와 분쟁.
카엘은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리사라가 말했다.
“나멜이 이겼다는 소문 때문이에요.”
카엘은 조금 뿌듯했다.
그런데 사건을 들여다보니 모두 나멜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어떤 여자는 문서가 없었다.
어떤 경우는 형제가 실제로 부모를 부양했다.
어떤 밭은 공동상속.
카엘은 두 건을 기각했다.
여자들이 실망했다.
한 명은 말했다.
“나멜은 되고 왜 나는 안 됩니까?”
카엘은 대답해야 했다.
“사정이 다릅니다.”
그 말은 차갑게 들렸다.
리사라가 판결문을 더 자세히 설명했다.
증거.
관습.
세금기록.
카엘은 깨달았다.
사람들이 법을 믿게 하려면 이겼을 때만 아니라 졌을 때도 이유를 알 수 있어야 했다.
그날부터 판결문에 이유를 붙이게 했다.
하심은 또 일이 늘었다.
“영주님.”
“왜.”
“나중에 꼭 서기 더 뽑아주십시오.”
카엘은 웃었다.
“약속.”
판결문 공개는 예상치 못한 효과를 냈다.
비슷한 사건이 줄었다.
사람들이 어떤 증거가 필요한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또 일부 유력자는 무리한 소송을 포기했다.
법의 힘이 처벌보다 예측 가능성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카엘은 그걸 배워가고 있었다.
리사라가 웃었다.
“이제 좀 알아가네요.”
카엘은 기분이 나빴지만 인정했다.
수로 사용권 판결 이후 베란은 마을수로 전체를 조사했다.
결과는 더 나빴다.
오라스만 문제가 아니었다.
상류마을이 물을 너무 많이 쓰면 하류마을은 부족.
비가 많이 오면 모두 범람.
각자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오며 전체수로가 망가졌다.
“누가 관리합니까?”
카엘이 물었다.
베란은 사람들을 가리켰다.
“다들.”
“그게 문제인가?”
“아무도 전체를 안 봅니다.”
카엘은 자기 관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수로회의를 만들었다.
상류·중류·하류 마을 대표.
사용시간과 유지비를 공동으로 정한다.
첫 회의부터 싸웠다.
상류는 자기 땅에서 시작된 물이라고 주장.
하류는 강은 누구 소유도 아니라고 반발.
베란은 지도를 펴지 않았다.
대신 물통을 가져왔다.
“이만큼 있습니다.”
리사라가 번역했다.
“싸워도 늘어나지 않습니다.”
단순한 말이 회의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결국 물 사용시간을 나누고, 가뭄 때 식량작물 우선이라는 원칙이 정해졌다.
카엘은 그걸 보며 흥미로웠다.
권리를 정하는 것보다 부족한 자원을 나누는 규칙이 더 중요할 때가 있었다.
훗날 대기근 때 이 경험이 다시 살아난다.
좋은 판결은 시작이었다.
집행.
물.
돈.
사람.
그 모든 게 따라와야 했다.
그날 마라벤 시장에는 소문이 돌았다.
새 영주는 귀족보다 과부 편을 든다.
누군가는 좋아했다.
누군가는 위험하다고 했다.
오라스 가문은 더 이상 카엘을 단순한 젊은 외지인으로 보지 않았다.
카엘에게는 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밤중에 경비병은 오라스 집안 사람들이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는 보고를 올렸다.
카엘은 문서를 읽었다.
리사라가 말했다.
“이제 법이 이겼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네요.”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법이 싸움을 시작했을 수도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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