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1화 — 첫 번째 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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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노예는 열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이름은 세라.
발목에는 쇠고리 자국이 남아 있었다.
주인은 항구의 곡물상 베르만.
제국계 정착민이었다.
그는 분노한 얼굴로 관청에 들어왔다.
“내 재산을 돌려주십시오.”
카엘의 표정이 굳었다.
“사람을 재산이라고 부르는군.”
“계약서가 있습니다.”
베르만은 종이를 내밀었다.
사하르어와 제국어가 함께 적힌 계약.
세라 부모가 빚을 갚는 대신 딸의 노동을 넘겼다.
기간.
적혀 있지 않았다.
카엘은 리사라를 봤다.
“이게 합법입니까?”
“지역법상 가능했던 계약입니다.”
에드윈이 바로 말했다.
“제국법에서는 미성년자를 영구노동계약으로 넘길 수 없습니다.”
베르만이 반박했다.
“여긴 제국이 아닙니다.”
카엘은 서류를 내려다봤다.
전날 과부 나멜 사건에서 자신이 제국법을 적용했다.
같은 논리를 쓰면 세라를 보호할 수 있었다.
“세라는 자유다.”
카엘이 말했다.
베르만이 얼굴을 붉혔다.
“영주님!”
“제국보호령 내 미성년자 영구노동계약은 무효로 한다.”
리사라는 조용히 카엘을 봤다.
또 선례였다.
카엘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베르만은 소송하겠다고 했다.
카엘은 하라고 했다.
세라는 풀려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갈 곳은?”
카엘이 물었다.
세라는 고개를 숙였다.
부모는 죽었다.
형제 없음.
기술 없음.
돈 없음.
에드윈은 교회에서 임시로 맡겠다고 했다.
카엘은 안도했다.
그때 세라가 말했다.
리사라가 번역했다.
“일하고 싶대요.”
“교회에서?”
세라는 고개를 저었다.
부두.
짐 나르기.
빨래.
뭐든.
카엘은 잠시 멈췄다.
자유를 주는 건 한 줄 판결이었다.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건 훨씬 복잡했다.
그날 오후 또 다른 민원이 들어왔다.
이번엔 자유민.
빚을 못 갚아 자기 노동을 5년 계약으로 넘겼다.
“이것도 무효?”
카엘이 물었다.
리사라는 고개를 저었다.
세라 사건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베르만은 제국계 상인협회에 항의서를 냈다.
다음 날 상인 셋이 카엘을 찾아왔다.
“영주님이 제국법을 적용한 건 이해합니다.”
대표가 말했다.
“그런데 소급적용은 곤란합니다.”
카엘이 눈썹을 올렸다.
“사람을 산 계약을 인정하라고?”
“도덕 얘기가 아닙니다.”
“난 도덕 얘기도 하는데.”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계약안정성 얘기입니다. 오늘 영주님이 마음에 안 든 계약을 무효화하면 내일 다른 영주도 우리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습니다.”
카엘은 그 논리가 싫었다.
그러나 틀렸다고도 못 했다.
리사라가 말했다.
“그래서 기준을 만들어야 해요.”
카엘은 세라 사건을 개인판결로 두지 않고 규칙으로 만들기로 했다.
미성년자 영구노동계약 무효.
성인 채무노동은 기간과 원금·이자 명시.
강제양도 금지.
가족연좌 금지.
기존 계약은 6개월 내 재등록.
상인협회는 일부 수용.
일부는 반발.
베르만은 끝까지 싫어했다.
“내가 손해 본 돈은 누가 갚습니까?”
카엘은 잠시 생각했다.
세라 부모가 실제로 받은 채무액이 있었다.
그 빚까지 없애면 채권자 입장에서는 재산손실.
그러나 세라를 담보로 삼은 방식은 인정할 수 없었다.
결국 왕실구휼기금과 교회기금을 이용해 원금 일부를 정산하고, 불법이자와 인신구속 조항은 무효로 했다.
에드윈은 돈으로 사람을 사온 것 같아 불편해했다.
카엘도 그랬다.
리사라는 말했다.
“때로는 과거를 깨끗하게 만들 수 없어요.”
“그럼?”
“앞으로 덜 더럽게 만드는 거죠.”
카엘은 그 말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요즘 마음에 드는 답보다 쓸 수 있는 답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워가고 있었다.
세라는 카엘이 이 모든 걸 논의하는 동안 정작 관청에 거의 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새 규칙보다 오늘 먹을 돈이었다.
카엘은 그 사실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성인이고 기간이 있고 임금 일부도 지급됩니다.”
세라 사건 이후 카엘은 처음으로 “자유인 등록”이라는 장부를 만들었다.
하심은 제목부터 이상하다고 했다.
“원래 자유인은 등록 안 합니다.”
“왜?”
“자유니까요.”
카엘은 웃었다.
“그런데 자유인인 걸 증명 못하면 다시 잡혀가잖아.”
하심은 말이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사람이 자유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종이가 필요해지는 모순.
리사라는 말했다.
“종이는 자유를 만들진 않아요.”
“알아.”
“대신 누가 자유를 빼앗으려 할 때 방패가 될 수 있죠.”
카엘은 자유증서 발급을 시작했다.
처음엔 교회와 관청에서만 인정.
마라벤 상인길드도 협약에 들어왔다.
증서가 있는 사람을 노예로 취급하거나 체포하려 하면 영주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베르만은 강하게 반대했다.
“위조하면?”
하심이 말했다.
“인장과 번호를 넣겠습니다.”
마르코는 물었다.
“번호?”
“장부 대조용.”
카엘은 그 방식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데 발급 첫날 문제가 생겼다.
한 남자가 증서를 받으러 왔는데 자기 나이를 몰랐다.
다른 사람은 출생마을 이름을 세 가지로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가족이 없었다.
행정은 정확한 답을 원했다.
사람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카엘은 빈칸을 허용하게 했다.
불명.
하심은 싫어했다.
“장부가 부정확해집니다.”
카엘이 말했다.
“모르는 걸 아는 척 쓰는 것보다 낫지.”
그 원칙도 오래 남았다.
모른다는 것을 기록하는 장부.
그건 의외로 행정에서 중요한 태도였다.
“그럼 노예랑 뭐가 다르지?”
그날 밤 세라는 관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손에는 자유증서.
카엘이 물었다.
“문제 있나?”
세라는 리사라를 통해 말했다.
“이 종이를 잃어버리면 다시 노예가 되냐고 묻습니다.”
카엘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법적으로는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증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하심이 말했다.
“관청장부에 사본 있습니다.”
카엘은 세라에게 설명했다.
종이를 잃어도 기록은 남는다.
세라는 다시 물었다.
“관청이 불타면?”
방화사건을 겪은 뒤라 농담이 아니었다.
카엘은 장부 이중보관을 떠올렸다.
“교회에도 사본을 둔다.”
에드윈이 동의했다.
세라는 그제야 안심했다.
카엘은 그날 자유증서를 세 곳에 기록하도록 바꿨다.
관청.
교회 또는 길드.
본인.
리사라가 말했다.
“사람 하나 자유롭게 만드는 데 장부 세 개네요.”
카엘이 답했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그건 마라벤 행정 전체를 상징하는 말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의 권리가 한 사람의 기억이나 한 장 종이에만 매달리지 않게 만드는 것.
카엘은 아직 그걸 헌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다시는 같은 사람을 사슬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팔 수 없고, 가족을 떼어낼 수 없고, 계약 끝나면 자유예요.”
카엘은 계약서를 봤다.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니었다.
에드윈은 말했다.
“노예제와 닮았습니다.”
리사라는 말했다.
“그래도 다른 점이 실제 삶에서는 중요해요.”
카엘은 둘 다 이해됐다.
그날 저녁 세라는 교회진료소에서 빵을 먹었다.
웃지는 않았다.
카엘은 관청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봤다.
영주가 된 뒤 처음 내린 판결 하나가 한 사람 인생을 바꿨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다음 날이 걱정됐다.
자유인이 된 사람에게 세상이 자동으로 자리를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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