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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30화 — 첫날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30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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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엘의 공식 취임식은 초라했다.

마라벤 중앙광장.

나무단상.

사힌 왕실문장.

아르케시아 제국기.

그리고 카엘 가문 깃발.

주민은 생각보다 많이 모였다.

호기심 때문인지 기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카엘은 준비한 연설문을 들고 올라갔다.

첫 문장.

마라벤의 충실한 주민 여러분.

읽으려다 멈췄다.

사람들 표정이 무덤덤했다.

카엘은 종이를 접었다.

리사라가 아래에서 눈썹을 올렸다.

카엘은 즉석에서 말했다.

“전임 영주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사람들이 조금 움직였다.

“아마 좋은 말을 했겠죠.”

몇 명이 웃었다.

“나도 좋은 말 많이 준비했습니다.”

리사라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걸 믿을 이유는 없겠군요.”

광장이 조용해졌다.

카엘은 네 가지를 말했다.

첫째.

등록되지 않은 세금 금지.

둘째.

영주법정 공개.

셋째.

강제노동 제한.

넷째.

시장 통행방해와 사적 관문세 단계적 철폐.

사람들은 박수치지 않았다.

한 노인이 손을 들었다.

리사라가 말했다.

“말해도 되냐고요.”

“예.”

노인이 말했다.

“전 영주도 처음에는 좋은 말을 했답니다.”

광장에 작은 웃음이 퍼졌다.

카엘도 웃었다.

“그럼 말은 그만하겠습니다.”

그는 하심에게 손짓했다.

새 세금장부.

공개 게시판.

카엘이 말했다.

“오늘부터 세금 종류와 금액은 여기 공개합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글 모르는 사람은?”

누군가 외쳤다.

카엘이 리사라를 봤다.

리사라가 바로 말했다.

“매주 장날에 서기가 읽어준다고 하세요.”

카엘이 그대로 말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웅성거렸다.

박수는 여전히 없었다.

그래도 몇몇은 게시판 쪽으로 다가갔다.

카엘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취임식이 끝나자 민원줄이 생겼다.

예상보다 길었다.

하심이 물었다.

“전부 오늘 보십니까?”

“몇 명인데?”

“현재 일흔셋.”

카엘은 멈췄다.

리사라가 말했다.

“좋은 영주는 과로로 죽는다니까요.”

카엘은 민원을 분류했다.

긴급.

소액.

토지.

폭력.

세금.

첫날부터 제도를 만들었다.

그날 마지막 민원인은 늙은 어부였다.

부두 사용료를 두 번 낸다는 문제.

카엘은 바로 해결하지 못했다.

왕실사용료.

길드사용료.

둘 다 법적 근거가 있었다.

“내일 다시 오십시오.”

노인은 실망한 표정이었다.

카엘이 덧붙였다.

“도망가진 않을 테니까.”

노인이 피식 웃었다.

그날 밤 관저로 돌아왔을 때 카엘은 완전히 지쳐 있었다.

검을 휘두른 날보다 더 피곤했다.

리사라는 장부를 탁자에 내려놨다.

“첫날 어땠어요?”

카엘은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취임식 다음 날 카엘은 새벽에 혼자 시장을 걸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게 아직 불편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냥 기사였다.

오늘은 영주.

자기 몸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사람들 태도가 달랐다.

생선장수가 값을 깎아주려고 했다.

카엘은 원래 값을 냈다.

“왜요?”

리사라가 나중에 물었다.

“영주니까 싸게 받으면?”

“뇌물?”

“아닐 수도 있죠.”

“그래도 싫어.”

리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저에는 선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와인.

말린 생선.

직물.

은잔.

카엘은 하심에게 전부 기록하게 했다.

“왜?”

“나중에 뭘 받은지 잊을 것 같아서.”

리사라가 말했다.

“그것도 장부네요.”

카엘은 웃었다.

큰 선물은 공공기금에 넘기고, 음식은 관청사람들과 나눴다.

작은 개인선물만 허용.

사람들은 처음엔 이상하게 봤다.

카엘은 자기가 너무 결벽적인 건지 고민했다.

사힌에게 편지로 물었다.

답이 왔다.

좋은 습관이다. 오래 유지되면 더 좋고.

카엘은 왕이 자신을 놀리는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도망노예 세라 사건을 처리한 뒤 카엘은 관저 테라스에 나왔다.

리사라가 따라왔다.

“첫날부터 큰 문제네요.”

“내일도 이러려나?”

“아마.”

“매일?”

“영주니까요.”

카엘은 어둠 속 마라벤을 봤다.

집마다 작은 불빛.

부두의 횃불.

멀리 습지.

저 불빛 하나하나가 자기 결정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무거웠다.

“리사라.”

“왜요?”

“좋은 영주가 뭔지 알아?”

“몰라요.”

“당신도 모르는 게 있네.”

“많죠.”

카엘이 웃었다.

리사라는 잠시 뒤 말했다.

“아마 자기 결정이 남한테 어떤 일이 되는지 계속 보려고 하는 사람 아닐까요.”

카엘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정말 그렇게 해보려고 했다.

완벽하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취임 한 달 뒤 카엘은 주민 앞에 첫 공개결산을 했다.

얼마 걷었는지.

어디 썼는지.

부두.

창고.

경비대.

관청.

숫자를 광장에 붙였다.

사람들은 처음엔 관심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물었다.

“영주님 급료는?”

카엘이 멈췄다.

리사라가 웃음을 참았다.

카엘은 자기 급료도 적게 했다.

주민들이 웅성거렸다.

“많다.”

누군가 말했다.

카엘이 웃었다.

“그렇습니까?”

“우리보다요.”

“영주니까.”

이번에는 광장에서 웃음이 났다.

카엘은 자기 급료를 줄이진 않았다.

그 대신 왜 그 돈이 필요한지 설명했다.

관저 유지.

가신.

공식 접대.

여행.

말.

사람들은 완전히 납득한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숫자는 공개됐다.

하심이 나중에 말했다.

“전임 영주는 자기 몫 공개한 적 없습니다.”

“좋은 건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왜?”

“다음에도 물어봅니다.”

카엘은 잠시 생각하다 웃었다.

“그게 좋은 거 아닐까?”

리사라는 멀리서 듣고 있었다.

“영주님이 그렇게 말한 거 기억해둘게요.”

“왜 자꾸 내 말을 기억해?”

“나중에 다른 말 할 때 놀리려고.”

카엘은 웃었다.

그는 몰랐다.

수십 년 뒤 정말 그 말들이 자신을 묶게 될 줄은.

마라벤의 공개결산은 작은 관행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한 번 본 장부를 다시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권력은 한 번 공개되기 시작하면 다시 완전히 닫기 어려웠다.

“전쟁이 쉬웠어.”

리사라가 웃었다.

마르코가 술을 들고 들어왔다.

에드윈은 진료소 후보지를 보고 돌아왔다.

하심은 내일 민원목록을 들고 왔다.

카엘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상했다.

자기 영지인데 혼자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사실이 조금 안심됐다.

밤이 깊어지기 전 하심이 마지막 보고를 했다.

“영주님.”

“또 뭐지?”

“시장 밖에 도망노예 하나가 왔습니다.”

카엘의 피곤한 얼굴이 굳었다.

“노예?”

하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 돌려달라고 합니다.”

에드윈이 조용히 카엘을 봤다.

카엘은 한숨을 쉬었다.

취임 첫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라벤의 다음 문제는,

사람을 재산으로 볼 것인지부터 시작됐다.

END OF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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