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7화 — 영주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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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재판 이후 카엘에게 민원이 폭발적으로 몰렸다.
사람들이 깨달았다.
새 영주는 정말 재판을 연다.
문제는 모두가 자기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새벽부터 줄.
닭을 훔친 사람.
우물 사용권.
상인 빚.
결혼지참금.
소가 남의 밭을 망친 사건.
카엘은 사흘 만에 지쳤다.
“영주는 원래 이걸 다 합니까?”
리사라가 말했다.
“나쁜 영주는 안 하죠.”
“좋은 영주는?”
“죽어요. 과로로.”
카엘은 결국 법정을 나눴다.
소액분쟁은 하심과 지역판관.
중대한 토지·폭력·상인분쟁만 영주법정.
리사라가 초안을 만들었다.
카엘은 서명했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정하는 것도 통치였다.
그날 가장 큰 사건은 오라스였다.
나멜 밭 사건에서 패한 지역유력자.
그는 카엘에게 직접 와서 항의했다.
“내 가문은 마라벤에서 백 년을 살았습니다.”
“나도 어제 왔습니다.”
오라스 얼굴이 굳었다.
“그러니 모르는 겁니다.”
“뭘?”
“이곳은 법만으로 안 돌아갑니다.”
카엘은 리사라를 봤다.
리사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라스가 계속했다.
“기근이 오면 우리가 곡물을 풉니다. 도적이 오면 우리 사람이 싸웁니다. 왕실세금이 밀리면 우리가 대신 냅니다.”
“대신 땅을 가져가고.”
“그게 거래입니다.”
카엘은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실제로 지역유력자들은 단순한 착취자만은 아니었다.
행정이 약한 곳에서 행정 역할도 했다.
문제는 그 힘이 법 밖에 있다는 것.
카엘이 말했다.
“그 역할을 계속 하고 싶습니까?”
오라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뜻입니까?”
“곡물창고 운영. 도적 방위. 세금보증.”
“당연합니다.”
“그럼 계약으로 합시다.”
오라스는 당황했다.
카엘은 조건을 제시했다.
공공창고 운영은 가능.
대신 장부 공개.
비상곡물 사용기준 명시.
사병 일부는 지역경비대 편입.
세금대납은 이자율 상한.
오라스는 싫어했다.
“우리 가문권리를 영주 허가로 바꾸겠다는 겁니까?”
카엘은 솔직하게 말했다.
“예.”
오라스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리사라가 말했다.
“적 늘었네요.”
“알아.”
“그래도 저 사람 말 틀린 건 아니었어요.”
“나도 알아.”
그게 가장 어려웠다.
기존질서는 나쁘기만 해서 오래된 게 아니었다.
실제로 필요한 일을 했기 때문에 버텼다.
그 일을 없애려면 대체할 제도가 필요했다.
카엘은 경비대 확대를 결정했다.
곡물창고도 공공관리로 바꾸기 시작했다.
돈이 또 들었다.
재정관이 말했다.
“영주님, 개혁할 때마다 돈이 줄어듭니다.”
카엘이 답했다.
“좋은 징조 아닌가?”
“파산하면 아주 좋은 징조겠네요.”
마르코가 옆에서 웃었다.
오라스와의 협상이 틀어지자 마라벤 시장에서 묘한 일이 생겼다.
오라스 가문 상점들이 카엘 관청에 물건을 팔지 않았다.
곡물.
목재.
말 사료.
법적으로는 문제없었다.
자기 물건을 누구에게 팔지는 자유였다.
그러나 관청은 곤란해졌다.
재정관이 말했다.
“가격이 이 할 올랐습니다.”
카엘은 이를 악물었다.
“보복이잖아.”
마르코가 말했다.
“시장에서는 불매라고 부릅니다.”
“막을 수 있나?”
“강제로 팔게 하면 영주님이 더 나빠 보이겠죠.”
카엘은 화가 났다.
칼로 싸우지 않는 권력도 있었다.
오라스는 지역 공급망을 쥐고 있었다.
카엘은 대응하려고 외부 상인을 불렀다.
마르코가 연결.
가격은 비쌌지만 물건은 들어왔다.
동시에 작은 상인들에게 왕실창고 납품기회를 개방.
두 달 뒤 오라스 가문 시장점유율이 줄었다.
오라스가 먼저 협상을 요청했다.
카엘은 이겼다고 느꼈다.
그런데 마르코가 말했다.
“완전히 이긴 건 아닙니다.”
“왜?”
“외부 상인이 들어왔잖아요.”
“그게 뭐?”
“마라벤 돈이 밖으로 갑니다.”
카엘은 또 멈췄다.
오라스를 약화시키려다 세라노·제국 상인을 키웠다.
문제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힘의 주인이 바뀔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마르코가 웃었다.
“현지 상인을 키우죠.”
카엘은 시장대출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작은 상인에게 낮은 이자의 운전자금.
보증은 길드와 마을이 공동으로.
마르코는 조건을 설계.
리사라는 계약을 검토.
하심은 신청장부.
카엘은 승인.
또 혼자가 아니었다.
몇 달 뒤 작은 상인 세 명이 오라스 가문 물류를 일부 대체했다.
카엘은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한 권력자를 다른 권력자로 바꾸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나눠 가지는 편이 낫다고 느꼈다.
아직 이걸 정치철학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저 경험이었다.
그날 오후 카엘은 사힌에게서 비공식 연락을 받았다.
오라스와의 시장싸움 뒤 카엘은 지역상인회의를 만들었다.
큰 상인만 들어오는 회의가 아니었다.
노점상.
어부조합.
염전.
부두.
여관.
작은 수공업자.
대표를 보내게 했다.
마르코가 말했다.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회의가 길어집니다.”
실제로 길었다.
첫 회의는 네 시간.
두 번째는 여섯 시간.
카엘은 후회했다.
리사라는 신나 보였다.
“민주적인 기분 어때요?”
“사형제도 없나?”
리사라가 웃었다.
그러나 회의는 쓸모 있었다.
카엘이 몰랐던 문제들이 나왔다.
시장 쓰레기.
공중변소.
밤 조명.
창고화재.
위조저울.
특히 위조저울은 심각했다.
작은 상인이 큰 상인에게 손해.
소비자도 피해.
카엘은 공인저울 제도를 만들었다.
시장 한복판에 표준추.
길드별 저울 정기검사.
마르코가 말했다.
“이건 좋습니다.”
“드디어?”
“상인이 제일 싫어하는 건 불공정한 경쟁이니까요.”
카엘은 웃었다.
시장은 자유롭다고 저절로 공정해지는 게 아니었다.
공정하게 경쟁할 규칙이 있어야 했다.
그 규칙을 만드는 것도 영주의 일.
카엘은 자기 역할이 점점 넓어지는 걸 느꼈다.
오라스 가문 친척이 왕실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내용.
카엘이 지역질서를 너무 빠르게 흔든다고.
사힌은 공개적으로 막진 않았다.
대신 한 줄 덧붙였다.
모든 싸움을 한 번에 시작하지 마라.
카엘은 그 문장을 오래 봤다.
리사라가 말했다.
“왕다운 조언이네요.”
“겁쟁이 조언 같기도 하고.”
“살아남은 사람만 다음 개혁도 합니다.”
카엘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맞았다.
다음 날 그는 계획 하나를 미뤘다.
모든 통행세 즉시폐지.
대신 단계적 통합.
처음으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일부러 늦췄다.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마라벤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 사실도 기억해둘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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