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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6화 — 불타는 장부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26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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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두 번째였다.

이번에는 밤이 아니라 새벽.

경비병이 창고 문을 열자 연기가 쏟아졌다.

카엘은 잠옷 위에 외투만 걸치고 뛰어나왔다.

하심이 이미 안에 들어가 있었다.

“또?”

카엘이 외쳤다.

하심은 기침하며 장부 묶음을 끌고 나왔다.

“저쪽 선반부터 탔습니다!”

카엘은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리사라가 붙잡았다.

“또 영웅놀이 하지 마세요.”

“장부가—”

“하심이 꺼냈잖아요!”

불은 빠르게 잡혔다.

이번에는 곡물보다 문서가 목표였다.

세금개혁 초안.

염전계약 사본.

체납자 목록.

오라스 관련 재판기록.

카엘은 목록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우연 아니군.”

리사라가 말했다.

“이제는 확실하죠.”

경비대가 주변을 수색했다.

창고 뒤에서 기름통 하나 발견.

발자국.

두 명 이상.

문제는 누구인지였다.

하심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록관 중에 열쇠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몇 명?”

“다섯.”

“전부 조사.”

리사라가 말했다.

“조용히.”

카엘이 그녀를 봤다.

“왜?”

“범인 잡기 전에 겁주면 도망가요.”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렌 같은 군사문제와 달리 이건 수사였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하심이 더 잘했다.

그는 열쇠 사용기록, 야간근무표, 장부 이동기록을 대조했다.

이틀 뒤 한 명이 걸렸다.

기록관 아심.

문제는 그가 주범이 아니었다.

아심은 울면서 말했다.

“아이 빚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빚이 있었다.

그 사채업자는 오라스 집안과 연결.

더 올라가자 세리 둘과 염전길드 사람 하나.

카엘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체포했다.

그리고 재판을 준비했다.

그때 사힌 왕실에서 서신이 왔다.

마라벤 세입증가 예상분 보고 요청.

카엘은 편지를 읽고 웃지도 못했다.

인구조사를 제대로 했더니 상급기관이 바로 관심을 보였다.

리사라가 말했다.

“전하가 이해할 거라면서요.”

“아직 답도 안 왔어.”

“벌써 표정이 그런데.”

카엘은 직접 답장을 썼다.

인구는 늘었지만 숨겨진 세입이 많았고, 올해는 세금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대신 부패환수금과 항구개선으로 부족분을 메우겠다고.

며칠 뒤 사힌 답장이 왔다.

짧았다.

허용한다. 단, 내년부터 정상화 계획 제출.

카엘은 안도했다.

리사라가 말했다.

“이번엔 전하가 이해했네요.”

“거봐.”

“한 번 이겼다고 우쭐하지 마세요.”

방화사건 재판은 공개로 했다.

카엘은 주범과 가담자를 나눴다.

기록관 아심.

실행은 했지만 협박과 빚에 묶여 있었다.

세리 둘.

장부조작과 방화를 지시.

염전길드 사람.

자금 제공.

오라스 집안 관리인은 직접 방화 증거는 없지만 배후연결이 확인됐다.

카엘은 전부 같은 형벌을 주지 않았다.

주범은 중형.

재산 일부 몰수.

방화사건 뒤 카엘은 야간경비를 두 배로 늘렸다.

돈이 들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경비대가 늘자 주민이 불만을 제기했다.

“밤마다 검문합니다.”

카엘은 다렌을 떠올렸다.

아직 어린 다렌이 제국군을 안전의 상징으로 보는 것과, 주민이 무장한 경비대를 귀찮은 권력으로 보는 것은 동시에 가능했다.

카엘은 경비대장에게 말했다.

“무작정 사람 세우지 마.”

“도둑 잡으려면 검문해야 합니다.”

“시간과 장소 정해.”

“그러면 범인이 피해갑니다.”

“주민도 살아야지.”

카엘은 야간검문 규칙을 만들었다.

항구·창고 주변은 강화.

주거지는 최소화.

체포 시 기록.

압수품 목록.

경비대장은 귀찮아했다.

카엘도 귀찮았다.

그래도 했다.

며칠 뒤 한 상인이 경비대에게 은화를 뜯겼다고 신고했다.

카엘은 그 병사를 바로 체포했다.

경비대장은 말했다.

“사람 부족합니다.”

“그래서 놔두면?”

“다른 병사들이…”

“배웁니다. 돈 받아도 된다고.”

카엘은 병사를 해임하고 공개재판했다.

처벌은 무겁지 않았다.

횡령금 반환.

급료 일부 몰수.

경비직 박탈.

하지만 효과는 컸다.

다른 병사들이 알았다.

영주가 세리만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사람도 본다는 걸.

리사라는 말했다.

“이런 게 중요해요.”

“뭐가?”

“당신 편도 처벌하는 거.”

카엘은 사힌이 하리스 바르하를 체포하던 날을 떠올렸다.

정치는 계산이지만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 이제 조금 이해됐다.

카엘은 하심에게 새 규칙을 장부 첫 장에 적게 했다.

영주의 명령을 수행한다는 이유로 법 밖에 설 수 없다.

훗날 카엘 자신이 훨씬 큰 권력을 쥐게 되었을 때 이 문장이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아심은 경형과 채무조정.

리사라가 말했다.

방화사건 주범을 재판한 뒤 오라스 집안이 직접 연루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증거는 없었다.

카엘은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관청 앞에 누군가 벽보를 붙였다.

오라스를 추방하라.

카엘은 떼라고 명령했다.

리사라가 물었다.

“왜?”

“증거 없으니까.”

“사람들이 싫다고 말할 권리는 있죠.”

카엘은 잠시 생각했다.

“그럼 ‘추방하라’는 건?”

“의견.”

“폭력선동은?”

“그 경계를 정해야겠죠.”

카엘은 또 새 문제를 만났다.

말할 자유.

명예.

폭력.

정치.

영주가 마음에 안 드는 벽보를 떼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갈까.

결국 폭력·방화 직접선동만 금지.

비판 자체는 허용.

카엘을 욕하는 벽보도 붙었다.

외지인 영주는 우리 법을 모른다.

카엘은 불편했다.

하심이 말했다.

“떼겠습니까?”

카엘은 한동안 바라봤다.

“아니.”

리사라가 옆에서 말했다.

“잘했어요.”

“기분은 나쁜데.”

“그게 중요한 거죠.”

카엘은 그날 처음으로 권력자는 비판을 견디는 것도 일이라는 걸 아주 작은 규모로 배웠다.

훗날 자미르가 전국에서 자신을 공격할 때 이 마라벤 벽보를 떠올리게 된다.

“이번엔 꽤 잘했네요.”

“이번엔?”

“전에는 화나면 다 목 베고 싶어 했잖아요.”

카엘은 반박하려다 기억났다.

하리스 바르하 때 그랬다.

“배우고 있잖아.”

“다행이네요.”

재판 뒤 하심은 새 장부창고를 제안했다.

석재.

문서 이중보관.

마을별 사본.

카엘이 말했다.

“돈 든다.”

하심은 조용히 말했다.

“한 번 더 타면 더 듭니다.”

카엘은 웃었다.

“좋아. 해.”

그날부터 마라벤의 장부는 한 곳에만 있지 않았다.

같은 기록이 여러 곳에 남기 시작했다.

훗날 전쟁과 혁명 속에서도 마라벤 행정이 쉽게 무너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카엘은 그때 그저 방화가 짜증나서 만든 제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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