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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4화 — 첫 번째 계약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24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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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의 돈은 빠르게 움직였다.

계약 사흘 뒤 기술자들이 왔다.

부두 수심 측정.

퇴적량 조사.

목재와 석재 견적.

카엘은 놀랐다.

“원래 이렇게 빨라?”

마르코가 말했다.

“돈 받을 때 느린 상인은 오래 못 합니다.”

문제도 빨리 왔다.

현지 부두노동자들이 작업을 거부했다.

“왜?”

리사라가 설명했다.

“기존 부두길드가 작업권을 갖고 있대요.”

“우리가 수리하는데?”

“그래도요.”

카엘은 길드 대표를 불렀다.

중년 남자.

이름은 자하르.

그는 말했다.

“부두는 우리 조상 때부터 우리가 관리했습니다.”

“관리 안 해서 막힌 것 같은데.”

리사라가 카엘 팔을 툭 쳤다.

카엘은 입을 다물었다.

자하르 얼굴이 굳었다.

“전쟁 때문에 준설을 못 했습니다.”

마르코는 자기 기술자를 쓰고 싶어 했다.

길드는 자기 노동자를 요구.

카엘은 처음엔 간단히 섞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임금이었다.

마르코 인부가 더 높은 임금을 받았다.

현지 노동자들이 반발.

“같은 일인데 왜 다릅니까?”

카엘도 그게 맞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마르코가 말했다.

“우리 인부는 장비를 다룰 줄 압니다.”

자하르가 반박했다.

“우리 사람도 배우면 됩니다.”

결국 카엘은 조건을 붙였다.

초기 기술인력은 세라노 측.

단순노무는 현지길드.

3개월 안에 기술교육.

6개월 뒤 현지인 비율 확대.

마르코는 싫어했고 자하르도 완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카엘은 말했다.

“둘 다 불만이면 대충 공평한 것 같군.”

리사라가 웃었다.

공사는 시작됐다.

그 사이 하심은 세금조사에서 더 큰 문제를 찾았다.

염전.

마라벤 세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곳.

장부상 왕실과 영주가 절반씩 권리를 가졌다.

실제로는 지역유력자 세 집안이 운영.

“불법입니까?”

카엘이 물었다.

하심이 말했다.

“애매합니다.”

카엘은 한숨을 쉬었다.

“제일 싫은 말이군.”

오래된 계약이 있었다.

전쟁 이전 영주가 관리권을 맡겼고, 대가로 정액세를 받는 구조.

문제는 염전수익이 크게 늘었는데 세금은 그대로.

카엘이 계약 갱신을 요구하자 세 집안이 반발했다.

“계약입니다.”

마르코가 옆에서 웃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군.”

카엘은 계약서를 읽었다.

기간.

명시 없음.

해지조건.

명시 없음.

대가.

연간 은화 고정.

“이걸 누가 썼지?”

하심이 말했다.

“전전임 영주.”

카엘은 머리를 감쌌다.

과거 사람이 만든 계약이 아직 현재를 묶고 있었다.

리사라가 말했다.

“법적으로 바로 뺏긴 어렵습니다.”

“그럼?”

“협상.”

“또?”

“통치는 대체로 협상이에요.”

세 집안과의 협상은 사흘 걸렸다.

카엘은 세금을 단순히 올리는 대신 길드 독점 일부를 유지해주고, 염전 노동자 임금체불 신고권을 새로 넣었다.

부두공사는 마라벤 주민에게 처음으로 카엘의 정책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 일이었다.

준설선이 진흙을 퍼냈다.

썩은 말뚝이 교체됐다.

하역장 바닥에 새 돌을 깔았다.

사람들은 구경하러 왔다.

아이들은 흙더미 위에서 놀았다.

그런데 공사 2주째 파업이 났다.

현지 노동자들이 작업을 멈췄다.

이유는 임금이 아니었다.

“점심?”

카엘이 물었다.

리사라가 웃었다.

“정확히는 식사시간.”

세라노 기술자들은 정오에 짧게 먹고 계속 일했다.

현지 길드는 한낮 더위에 긴 휴식을 갖는 관습이 있었다.

감독관은 게으르다고 욕했고, 노동자들은 계약위반이라고 했다.

마르코는 말했다.

“계약서에는 작업시간이 적혀 있습니다.”

자하르 길드대표가 반박했다.

“‘하루 작업’이라고만 되어 있지 정오휴식이 없다고 안 했소.”

카엘은 계약서를 읽었다.

정말 그랬다.

“누가 썼지?”

마르코가 시선을 피했다.

“우리 쪽 법무사.”

카엘이 웃었다.

“이번에는 당신들이 졌군.”

“아직 협상 중입니다.”

결국 정오 장시간 휴식을 인정하되 해 뜨기 전 작업을 조금 앞당겼다.

생산량은 오히려 늘었다.

세라노 감독관은 놀랐다.

베란은 말했다.

“더울 때 사람을 굴리면 느려집니다.”

카엘은 그걸 아주 단순한 진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회의 관습을 게으름으로 오해하면 알 수 없는 진리였다.

부두공사가 진행되며 큰 배 한 척이 처음으로 직접 들어왔다.

항구 사람들이 환호했다.

카엘도 부두에 나가 있었다.

배에서 내린 건 목재와 철도구, 그리고 낯선 상인들.

마르코가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카엘은 항구를 봤다.

세입.

일자리.

물건.

사람.

모두 늘어날 것이다.

리사라는 말했다.

“문제도.”

“오늘은 좋은 얘기만 하면 안 돼?”

“안 돼요.”

카엘은 웃었다.

며칠 뒤 실제로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공사계약 문제를 계기로 카엘은 모든 주요 계약에 현지어본을 함께 붙이기로 했다.

마르코는 처음엔 반대했다.

“번역비가 듭니다.”

리사라가 차갑게 말했다.

“그럼 제국어 못 읽는 사람은 계약하지 말라는 건가요?”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됩니다.”

카엘은 리사라 편을 들었다.

“두 언어.”

마르코가 말했다.

“문장이 다르면 어느 쪽이 우선합니까?”

또 문제였다.

리사라가 제안했다.

“둘 다 같은 효력. 충돌하면 중재.”

마르코는 머리를 감쌌다.

“법무사들이 좋아하겠네요.”

카엘은 웃었다.

그렇게 마라벤의 공공계약은 기본적으로 이중언어가 됐다.

처음에는 행정비용이 늘었다.

그런데 분쟁은 줄었다.

특히 노동계약.

“이 조항 몰랐다”는 싸움이 줄었다.

카엘은 그 결과를 보고 리사라에게 말했다.

“번역비가 덜 들었군.”

“당연하죠.”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대충.”

“왜 대충?”

“사람은 읽어도 싸우니까.”

카엘은 웃었다.

그 대화 이후 카엘은 언어를 행정비용이 아니라 권력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누가 법을 읽을 수 있느냐.

누가 계약을 이해하느냐.

누가 자기 권리를 말할 수 있느냐.

그건 단순 번역 문제가 아니었다.

훗날 오르벤 연방의 다언어 헌정이 만들어질 때까지 이어지는 씨앗이었다.

세 집안은 마지못해 수용했다.

세입은 늘었다.

노동자들은 카엘을 좋아했다.

길드주는 싫어했다.

마르코는 말했다.

“축하합니다.”

“뭘?”

“첫 번째 적을 만드셨네요.”

카엘은 웃었다.

“한 명뿐일까?”

“영주면 더 늘겠죠.”

그 말은 맞았다.

그날 밤 관저 문 앞에 죽은 쥐 한 마리가 놓였다.

협박이었다.

카엘은 쥐를 한참 봤다.

리사라가 말했다.

“무섭습니까?”

“조금.”

“좋네요.”

“왜?”

“안 무서운 사람이 제일 위험하니까.”

카엘은 죽은 쥐를 치우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관청 문을 열었다.

첫 민원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년 과부였다.

그녀는 자기 밭을 돌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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