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3화 — 성보다 창고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화재 다음 날, 건축업자가 찾아왔다.
“관저 지붕부터 고치셔야 합니다.”
카엘은 고개를 들었다.
“왜?”
“비 샙니다.”
“알아.”
“북쪽 벽도 갈라졌습니다.”
“그것도 알아.”
“영주관저가 이러면 체면이…”
카엘은 문서를 내려놨다.
“곡물창고는?”
건축업자가 멈췄다.
“예?”
“부두 옆 곡물창고. 지붕 두 군데 무너졌던데.”
“그건 왕실창고가 아니라 지역창고입니다.”
“그러니까.”
건축업자는 카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카엘은 재정장부를 봤다.
가용자금.
적었다.
관저 수리.
창고 수리.
부두 준설.
세무조사.
경비대 급료.
전부 할 수는 없었다.
“창고부터.”
카엘이 말했다.
건축업자가 당황했다.
“영주님.”
“성은 안 도망가.”
“하지만…”
“곡물은 썩어.”
리사라가 옆에서 작게 웃었다.
카엘은 눈을 흘겼다.
“왜?”
“영주님다운 말이라.”
“아직도 그 호칭 어색해.”
“주민들은 안 어색할 겁니다.”
창고 수리는 생각보다 더 큰 문제를 드러냈다.
창고 안 곡물 중 일부가 장부보다 적었다.
마르코가 자루를 세고 말했다.
“없어진 겁니다.”
“쥐?”
“쥐가 장부도 고칩니까?”
실제로 출고기록이 조작돼 있었다.
카엘은 창고지기를 불렀다.
남자는 처음엔 모른다고 했다.
세 시간이 지나자 세리 한 명 이름이 나왔다.
그 세리는 항구 상인과 연결돼 있었다.
카엘은 머리가 아팠다.
“세금장부 불태운 놈들이랑 같은 쪽일까?”
리사라가 말했다.
“가능성 높아요.”
카엘은 수사를 하심에게 맡겼다.
하심은 놀랐다.
“저한테요?”
“장부 제일 잘 보는 사람이 너잖아.”
“하지만 저는 하급서기입니다.”
“오늘부터 아니야.”
카엘은 즉석에서 그를 조사서기로 임명했다.
리사라가 물었다.
“인사권 그렇게 써도 돼요?”
카엘은 멈췄다.
문서를 확인했다.
“돼.”
“다행이네요.”
하심은 첫날부터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세리들이 장부를 이중으로 작성하고 있다는 걸 찾았다.
상급기관에 보낼 장부.
실제 징수장부.
차이는 세리와 유력자 사이에서 나뉘었다.
카엘은 화가 났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세리 중 일부는 지역 귀족에게 고용된 사람이었다.
해임하면 정치싸움.
“그래도 자르면 되잖아.”
카엘이 말했다.
리사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만 자르면 다음 사람이 똑같이 옵니다.”
“그럼?”
“구조를 바꿔야죠.”
카엘은 그 말을 마음에 들어 했다.
세금종류를 줄이고, 납부장소를 관청 하나로 통일.
징수영수증 의무화.
세리 개인금고 금지.
카엘은 바로 초안을 만들었다.
하심이 읽고 말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글을 못 읽습니다.”
카엘이 멈췄다.
또 그 문제였다.
영수증이 있어도 읽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리사라가 말했다.
“색깔과 표시를 쓰죠.”
세금종류마다 다른 문양.
납부금액은 숫자와 곡물단위 그림을 함께 표시.
카엘은 웃었다.
“이게 법문서 맞아?”
“읽히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그렇게 첫 세제개혁 초안이 만들어졌다.
그날 오후 마르코가 부두에서 돌아왔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부두는 창고보다 비쌉니다.”
“얼마나?”
마르코가 숫자를 말했다.
카엘은 잠시 아무 말 없었다.
“내 연간세입보다 많잖아.”
“그래서 투자자가 필요합니다.”
“누가?”
마르코가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카엘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새 세금제도를 공고하자 가장 먼저 항의한 건 세리였다.
“우리가 어떻게 삽니까?”
카엘은 어이가 없었다.
“급료 받잖아.”
“예전에는 수수료가 있었습니다.”
“그게 뇌물이지.”
세리들은 불만이었다.
카엘은 그들을 전부 해임할 생각도 했다.
하심이 말렸다.
“새 사람 없습니다.”
“그러면 부패한 사람 계속 써?”
“감시하면서 써야 합니다.”
카엘은 또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결국 기존 세리에게 정액급료를 주고, 징수액에 따라 받던 수수료를 폐지했다.
대신 장부감사.
영수증.
무작위 주민확인.
처음 두 달은 혼란스러웠다.
세리 한 명이 그만뒀다.
둘은 적응했다.
한 명은 다시 뇌물을 받아 해임됐다.
카엘은 새 세리를 현지 상인조합과 마을에서 추천받았다.
그중 한 사람은 여자였다.
이름은 미아라.
카엘은 별 생각 없이 임명하려 했다.
지역 장로들이 반대했다.
“여자가 세금을 걷습니까?”
리사라가 번역하며 눈썹을 올렸다.
카엘은 물었다.
“장부 볼 줄 압니까?”
미아라가 직접 제국어로 답했다.
“상인 남편 장부를 12년 봤습니다.”
“계산은?”
카엘이 숫자를 불렀다.
미아라는 바로 답했다.
“그럼 됐네.”
장로들은 불만이었다.
카엘은 말했다.
“세금은 남자가 내도 은화고 여자가 내도 은화잖습니까.”
리사라가 번역하자 주변에서 웃음이 났다.
미아라는 이후 마라벤에서 가장 정확한 세리 중 하나가 됐다.
카엘은 그 인사가 특별한 역사적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사람이 부족했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훗날 마라벤에 여성 행정관이 다른 지역보다 자연스럽게 많아지는 시작점이 그 정도로 사소했다.
그날 밤 카엘은 관저 지붕에서 또 물이 떨어지는 걸 보았다.
대야가 다섯 개로 늘었다.
리사라가 말했다.
“이제는 관저 좀 고치죠.”
카엘은 창고 수리비 장부를 봤다.
“다음 달.”
“지난달에도 그랬어요.”
“성은 안 도망간다니까.”
리사라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무너질 순 있어요.”
카엘은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싫어.”
“아직 조건도 안 말했는데.”
관저 수리를 계속 미루자 결국 사고가 났다.
밤중에 천장 일부가 무너졌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리사라는 새벽에 카엘 방에 들어와 떨어진 돌을 봤다.
“성은 안 도망간다면서요.”
카엘은 침대 옆에 떨어진 돌덩이를 봤다.
“확실히 안 도망갔네.”
리사라는 웃지 않았다.
“죽을 뻔했잖아요.”
“이 정도론 안 죽어.”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카엘은 그녀가 진짜 화났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날 관저 최소수리비를 승인했다.
재정관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드디어 영주님 자기 집에 돈 쓰십니까?”
“내 집이라서가 아니라 관청이라서.”
리사라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끝까지 그러네.”
관저 공사에는 현지 석공길드를 고용했다.
길드대표가 벽을 보며 말했다.
“원래 이렇게 지으면 안 됩니다.”
“왜?”
“습지 땅인데 기초가 얕아요.”
“전임 영주가 제국식으로 고쳤다던데.”
“그래서 갈라진 겁니다.”
카엘은 또 웃었다.
제국식 건축이 나쁜 게 아니었다.
장소가 안 맞았다.
석공은 기존 건물을 전부 허물 필요 없이 기초 주변 배수와 벽 지지대를 보강했다.
비용은 예상보다 적었다.
베란의 수로지식도 도움을 줬다.
카엘은 점점 같은 패턴을 봤다.
좋은 기술.
좋은 법.
좋은 제도.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았다.
어디에, 누구에게,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했다.
마라벤은 카엘에게 그걸 매일 가르쳤다.
“당신이면 비쌀 것 같아서.”
“친구 할인 있습니다.”
“우리가 친구였나?”
“이젠 영주님이시니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카엘은 웃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마라벤 항구가 살아나지 않으면 세입도 늘지 않는다.
부두 준설은 필요했다.
다음 날 협상이 시작됐다.
마르코는 8년간 부두 사용료 우선권을 요구했다.
카엘은 4년.
마르코는 7년.
카엘은 5년.
결국 6년.
대신 현지상인 이용권 보장.
사용료 상한.
수익 일부 지역기금 적립.
리사라는 계약서를 읽고 말했다.
“나쁘지 않네요.”
카엘이 말했다.
“좋다는 뜻은 아니군.”
“투자계약에서 ‘좋다’는 말은 보통 한쪽이 속았다는 뜻이에요.”
마르코가 멀리서 소리쳤다.
“들립니다!”
카엘은 웃었다.
계약서에 서명했다.
마라벤에서의 첫 큰 계약.
검보다 펜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