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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2화 — 장부에 없는 사람들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22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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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사는 첫날부터 실패했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도망갔다.

“왜?”

카엘이 물었다.

하심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세금 걷으러 온 줄 압니다.”

“세금 안 올린다고 공고했잖아.”

“영주가 ‘세금 안 올린다’고 말하면 보통 다음에 오릅니다.”

카엘은 말문이 막혔다.

리사라는 웃음을 참았다.

“전임 영주들이 교육을 잘했네요.”

“어떻게 해야 하지?”

“직접 나가요.”

“내가?”

“당신 영지잖아요.”

카엘은 마라벤 외곽부터 돌기 시작했다.

첫 마을은 염전 옆에 있었다.

장부상 가구 열둘.

실제는 스물아홉.

두 번째 어촌은 장부상 일곱 가구.

실제는 열아홉.

세 번째는 아예 장부에 없었다.

“여긴 언제 생겼지?”

하심이 말했다.

“전쟁 때 난민들이 들어와서.”

“몇 년 됐는데?”

“네 해쯤.”

“네 해 동안 세금은?”

“냈습니다.”

카엘이 멈췄다.

“장부엔 없는데?”

하심이 눈을 피했다.

“지역세는 냈습니다.”

카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누구한테?”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세리.

카엘은 그날 세 번째로 욕을 참았다.

조사를 이어가자 더 이상한 것들이 나왔다.

한 집에는 세 가구가 살았다.

다른 집은 사람은 없는데 세금기록은 남아 있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 이름으로도 계속 세금이 걷혔다.

노예와 채무노동자는 인구에서 제외.

부두의 계절노동자도 제외.

사원 소유지는 별도 장부.

귀족가 소유 농장 역시 별도.

“이렇게 쪼개면 전체가 몇 명인지 아무도 모르겠네.”

카엘이 말했다.

하심이 대답했다.

“아무도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

“세금 받을 사람만 알면 됐으니까.”

카엘은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행정이라는 게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에 따라 장부가 달라진다.

제국 지도와 리사라 지도처럼.

세금만 걷으려면 사람 전체를 알 필요가 없다.

세금을 낼 사람만 알면 된다.

그날 저녁 카엘은 새 장부 양식을 만들었다.

이름.

가구.

거주지.

직업.

자유민인지.

부채계약이 있는지.

토지를 직접 경작하는지.

하심이 말했다.

“너무 많습니다.”

“왜?”

“사람들이 안 말합니다.”

“왜?”

“두려워하니까요.”

카엘은 또 막혔다.

리사라가 장부를 가져갔다.

“이건 관청에서 하면 안 돼요.”

“그럼?”

“마을 사람이 직접 적게 해야죠.”

“글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마을마다 글 아는 사람 하나는 있어요. 상인이나 사원 서기, 장로.”

카엘은 처음엔 불안했다.

“거짓말하면?”

“관청이 물어도 거짓말해요.”

맞는 말이었다.

결국 각 마을 대표에게 조사표를 나눠주고, 하심과 서기들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결과는 빨라졌다.

사흘 뒤.

마라벤 공식 인구는 이미 4,300을 넘었다.

일주일 뒤.

5,112.

카엘은 숫자를 봤다.

리사라가 말했다.

“처음 예상보다 많죠?”

“많은 게 문제가 아니야.”

“뭐가요?”

“이 사람들은 여섯 해 동안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어.”

카엘은 장부를 넘겼다.

어떤 이름 옆에는 ‘전쟁난민’.

다른 이름 옆에는 ‘해방노예’.

다른 이름 옆에는 ‘항구 임시노동’.

그들 모두 마라벤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제도상으론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다.

“세금은?”

카엘이 물었다.

하심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정상적으로 다시 매기면…”

카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올해는 인구조사 결과 때문에 세금 올리지 마.”

하심이 눈을 크게 떴다.

“상급기관에 신고하면 세입목표가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

“영주님이 부족분을 설명해야 합니다.”

인구조사는 사람 숫자뿐 아니라 마라벤의 모양까지 바꿨다.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던 골목에 이름이 붙었다.

난민촌은 주민들이 부르던 이름 그대로 ‘새갈대촌’으로 기록됐다.

항구 밖 움막지대는 ‘남둑’.

하심은 처음에는 망설였다.

“이런 곳까지 공식 지명으로 넣습니까?”

“사람이 사는데?”

“세금도 못 냅니다.”

“그래도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하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엘은 집집마다 돌다가 한 이상한 가구를 발견했다.

장부에는 남자 가장 이름만 있었다.

실제로는 여자 네 명과 아이 일곱.

남자는 전쟁에서 죽었다.

“왜 아직 이 사람 이름으로?”

하심이 말했다.

“가구주를 바꾸면 상속세가 발생합니다.”

카엘은 어이없었다.

“죽었는데?”

“그래서 가족이 신고 안 한 겁니다.”

카엘은 상속세 유예를 지시했다.

전쟁사망자의 배우자가 가구를 이어받을 때는 추가세금 없음.

그 소식이 퍼지자 죽은 사람 신고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사흘 동안 137명.

하심이 장부를 보며 말했다.

“영주님.”

“왜?”

“인구가 줄었습니다.”

카엘은 잠깐 당황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늘었는데 공식 인구는 사망신고 때문에 일부 줄었다.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장부가 이제야 현실을 따라잡는군.”

“세입은 더 복잡해집니다.”

“알아.”

“그래도 합니까?”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 숫자로 세입이 높아 보이는 것보다 진짜 숫자를 알고 가난한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카엘은 처음으로 마라벤의 연령구성까지 보려 했다.

어린아이가 많았다.

전쟁 뒤 난민가족이 몰린 탓.

리사라가 말했다.

“십 년 뒤면 노동자도 많아지겠네요.”

카엘은 아이들이 뛰노는 골목을 봤다.

“십 년 뒤에도 내가 여기 있을까?”

“영주님이니까요.”

“임시봉토야.”

“그래도.”

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곳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씩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리사라가 말했다.

“첫 주부터 왕에게 싸움 걸게 생겼네요.”

인구조사 과정에서 카엘은 처음으로 ‘사라진 마을’을 발견했다.

장부에는 마을 하나가 있었다.

이름은 헤르.

세금도 매년 조금씩 걷혔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폐허였다.

집터만 남아 있었다.

“언제 없어졌지?”

하심은 기록을 찾았다.

전쟁 초기.

사람들은 도망가거나 죽었다.

그런데 세금은 계속 기록됐다.

“누가 냈어?”

“인근 마을에서 합쳐 냈습니다.”

“왜?”

“상급기관에서 목표액을 줄여주지 않아서.”

카엘은 기가 막혔다.

없는 마을에 세금을 부과.

옆 마을이 대신 냄.

그 돈은 장부상 정상수입.

누구도 고치지 않았다.

“왜 보고 안 했지?”

하심은 조용히 말했다.

“보고하면 조사관이 옵니다.”

“와야지.”

“조사관 접대비가 세금보다 더 들 때도 있습니다.”

카엘은 웃을 수도 없었다.

제도가 사실을 보고하게 만들지 않고 숨기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헤르 마을을 공식 폐지처리하고 세금목표를 조정했다.

상급기관에는 상세사유를 붙였다.

사힌 왕실 재무관이 답했다.

다음부터 폐촌 발생 즉시 신고. 접대비 요구 시 왕실에 별도 보고.

카엘은 조금 놀랐다.

“왕실도 몰랐던 거네.”

리사라가 말했다.

“위에서는 아래가 알아서 말해줄 거라 생각하고, 아래는 위에서 이미 알 거라 생각하죠.”

카엘은 그 구조가 익숙했다.

전쟁에서도 그랬다.

그는 마라벤 장부에 새 항목을 만들었다.

변경사유.

숫자가 바뀌면 왜 바뀌었는지 적는다.

출생.

사망.

이주.

난민.

폐촌.

재정관은 또 장부가 두꺼워진다고 불평했다.

카엘은 말했다.

“현실이 두꺼운 걸 어떡해.”

하심이 웃었다.

그날부터 마라벤 행정은 숫자뿐 아니라 이유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카엘은 웃었다.

“전하라면 이해할 거야.”

“그 자신감 오래 가길 바랍니다.”

문제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조사 열흘째 밤.

세금창고에서 불이 났다.

카엘이 달려갔을 때 장부 일부가 이미 타고 있었다.

하심은 연기 속에서 기침하며 문서를 꺼내고 있었다.

카엘이 그를 끌어냈다.

“사람부터 살아야지!”

“장부가…”

“장부는 다시 쓰면 돼!”

불은 새벽이 돼서야 잡혔다.

창고 벽은 검게 그을렸다.

세금은 일부 사라졌다.

더 중요한 건 장부였다.

누군가가 오래된 장부부터 골라 태운 흔적이 있었다.

리사라가 재를 뒤졌다.

“사고 아니네요.”

카엘도 알고 있었다.

불은 아무 장부나 태우지 않았다.

세금기록.

토지기록.

체납기록.

딱 필요한 것만 사라졌다.

카엘은 검게 탄 장부를 들었다.

마라벤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만큼,

숨어야 할 것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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