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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9화 — 왕이 된 남자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19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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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힌은 말을 타고 카스린에 들어갔다.

환호는 예상보다 작았다.

사람들은 지쳤다.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새 왕이 정말 무엇을 바꿀지는 아직 몰랐다.

카엘은 그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왕이 바뀐다고 아침 빵값이 바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대관식은 사흘 뒤 열렸다.

사힌은 오래된 왕관을 썼다.

금으로 만든 화려한 물건이 아니었다.

검은 금속과 은이 섞인, 무겁고 오래된 왕관.

리사라가 설명했다.

“첫 왕조 때부터 내려온 거래요.”

“저걸 쓰면 진짜 왕이 되나?”

“사람들이 왕이라고 인정하면요.”

카엘은 웃었다.

“당신은 모든 걸 어렵게 말한다.”

“세상이 쉬웠으면 통역관이 필요 없었겠죠.”

대관식 뒤에는 승전연이 열렸다.

이번에는 카엘도 참석했다.

사힌이 공식적으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라심 장군.

제국 지휘관.

지역 귀족들.

상인대표들.

모두 이름이 불렸다.

카엘의 이름도.

그 순간은 좋았다.

부정할 수 없었다.

전공을 인정받는 기분.

수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기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런데 연회가 끝나기도 전에 제국 사절단이 도착했다.

“빠르군.”

마르코가 말했다.

“뭐가?”

“청구서.”

정말 그랬다.

다음 날 아침 바로 전쟁비용 정산회의가 열렸다.

사힌의 얼굴은 대관식 때보다 더 굳어 있었다.

제국 사절은 웃으며 문서를 펼쳤다.

“전하의 즉위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양국의 장기적 우호관계를 문서화하고자 합니다.”

카엘은 뒤에서 지켜봤다.

첫 조항.

제국 상인 안전보장.

합리적.

둘째.

해안 항구 두 곳의 제국 선박 우선정박권.

조금 불편하지만 이해 가능.

셋째.

전쟁비용 20년 상환.

예상했다.

넷째.

상환 종료 시까지 특정 관세의 일부를 제국이 직접 징수.

카엘의 눈썹이 움직였다.

다섯째.

해적 토벌과 상인 보호를 위해 제국군 주둔지 유지.

사힌이 말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사절이 미소 지었다.

“해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카엘이 더 싫어졌다.

사힌은 조항 하나하나 협상했다.

주둔군 규모 축소.

항구권 기간 제한.

관세 징수비율 낮춤.

제국 사절도 양보했다.

강요만은 아니었다.

그게 오히려 더 복잡했다.

회의 뒤 사힌은 왕궁 발코니에 섰다.

카엘도 옆에 있었다.

“우리가 이긴 게 맞나?”

사힌이 물었다.

카엘은 아래 도시를 내려다봤다.

사힌 깃발이 걸렸다.

라디르 군은 해산됐다.

노예상 억제령도 곧 나올 것이다.

전쟁은 끝났다.

분명 이겼다.

그런데 제국군은 남았다.

관세 일부는 바다 건너로 간다.

항구에는 제국 사절이 상주한다.

“군사적으로는요.”

카엘이 말했다.

사힌이 웃었다.

“아주 정직한 답이군.”

대관식이 끝난 날 밤, 카엘은 혼자 카스린 거리를 걸었다.

왕궁 앞은 축제였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평범했다.

빵 굽는 냄새.

전쟁 때문에 닫았던 가게를 다시 여는 상인.

부서진 창문을 고치는 목수.

누군가는 사힌 깃발을 달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달지 않았다.

카엘은 작은 식당에 들어가 빵과 고기를 주문했다.

주인은 카엘이 제국인인 걸 알아보고 가격을 조금 높게 불렀다.

카엘은 알아차렸지만 그냥 냈다.

옆자리 노인 둘이 사하르어로 이야기했다.

알아듣는 단어가 조금 생겼다.

왕.

세금.

전쟁.

비싸다.

카엘은 리사라 없이도 대화 내용의 절반쯤 짐작했다.

왕이 바뀌어도 사람들의 관심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금이 얼마나 되는가.

빵값이 내려가는가.

아들이 전쟁에서 돌아오는가.

카엘은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왕관이 세상의 중심이 아닌 것 같아서.

왕궁으로 돌아오자 사힌이 발코니에 혼자 서 있었다.

카엘이 말했다.

“전하도 축제 안 가십니까?”

“내 축제인데 내가 가면 다들 계속 서 있어야 하잖아.”

“왕도 불편하군요.”

“이제 아셨습니까?”

둘은 도시를 내려다봤다.

사힌이 말했다.

“오늘부터 내 실수가 전부 나라 일이 되겠지요.”

카엘은 그 말을 듣고 마라벤 포상문서를 다시 생각했다.

작은 영지라도 비슷할 것이다.

자기 실수가 다른 사람 밥과 세금과 삶이 된다.

대관식 뒤 첫 왕실회의에서 사힌은 노예매매 제한령부터 꺼냈다.

귀족들은 바로 반발했다.

“전쟁포로 처리 관습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 없습니다.”

“농장 노동력이 부족합니다.”

“채무노동과 노예를 어떻게 구분할 겁니까?”

카엘은 화가 날 줄 알았다.

그런데 질문 중 일부는 실제 문제였다.

사힌은 전면 폐지를 선언하지 않았다.

먼저 왕실 직할시장 내 매매 금지.

외국인 납치노예 금지.

어린이 단독매매 금지.

채무로 배우자나 자녀를 넘기는 행위 제한.

단계적이었다.

에드윈은 더 강한 조치를 원했다.

카엘도.

그러나 사힌은 말했다.

“오늘 법을 세게 쓰고 내일 아무도 안 따르면, 그건 선언이지 법이 아닙니다.”

카엘은 예전보다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동의하진 않았다.

회의가 끝난 뒤 에드윈이 말했다.

“너무 느립니다.”

카엘이 답했다.

“그래도 움직였습니다.”

둘은 서로를 봤다.

초기라면 카엘이 에드윈 쪽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사힌 논리도 보였다.

그 변화가 좋은 것인지 타협에 익숙해지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갑자기 포상문서가 조금 무거워졌다.

“전하가 원하신 게 그거 아닙니까?”

“그래서 싫을 때도 있어요.”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었다.

사힌은 밤늦게 카엘에게 왕관을 직접 보여줬다.

“무겁습니다.”

그가 벗어 탁자에 올렸다.

카엘은 웃었다.

“왕관은 원래 그런 상징 아닙니까?”

“상징만 무거우면 좋겠군.”

사힌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오늘 하루에 청원이 마흔세 개 들어왔습니다.”

“왕이 되면 명령만 내리는 줄 알았습니다.”

“나도 어릴 때는 그랬소.”

카엘은 왕관을 바라봤다.

“후회하십니까?”

사힌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오늘은 아니오.”

“내일은?”

“내일 물어보시오.”

둘은 웃었다.

그 순간 사힌은 왕보다 친구에 가까워 보였다.

카엘은 훗날 이 사람과 정치적으로 크게 충돌하게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이해관계가 갈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전공 포상 명단이 나왔다.

카엘은 자기 이름을 찾았다.

카엘 아르덴.

그 아래.

해안 변경지 마라벤의 관리권과 임시 봉토.

카엘은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리사라가 옆에서 문서를 봤다.

“축하해요.”

“이게…”

카엘은 말을 잃었다.

그토록 바라던 것.

자기 땅.

자기 영지.

자기 이름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곳.

사힌이 뒤에서 말했다.

“거긴 엉망입니다.”

카엘이 돌아봤다.

“전하.”

“항구는 반쯤 막혔고, 세리는 부패했고, 도적이 많고, 습지는 냄새가 심하지요.”

카엘은 포상문서를 다시 봤다.

“왜 웃으십니까?”

사힌이 물었다.

카엘은 진짜 웃고 있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이면.”

그가 문서를 접었다.

“내가 실패해도 욕할 사람이 적겠군요.”

리사라가 고개를 저었다.

“벌써 영주처럼 말하네요.”

카엘은 마라벤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오래 바라봤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항구가 언젠가 도시가 되고,

수도가 되고,

제국과 싸우는 나라의 심장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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