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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8화 — 성문 앞에서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18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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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린은 성벽이 두 겹이었다.

외벽.

내성.

그리고 그 사이에 도시가 있었다.

제국 지휘관은 성벽을 보자마자 공성기간을 계산했다.

“석 주.”

사힌은 말했다.

“석 주면 도시가 굶습니다.”

“성 안의 적도 굶지요.”

“내 백성도.”

회의가 시작됐다.

정면공격.

봉쇄.

야간기습.

내응.

모든 방법이 나왔다.

카엘은 말을 아꼈다.

그는 공성전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는 자신보다 경험 많은 사람이 많았다.

라심 바렉이라는 사하르 장군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마흔 가까운 나이.

왕실군 기병을 이끄는 장군.

그는 지도보다 사람 얘기를 많이 했다.

“북문 수비대장은 라디르 사람입니다. 서문은 아닙니다.”

제국 장군이 물었다.

“무슨 차이요?”

“서문 지휘관의 누이가 사힌 전하 측 귀족에게 시집갔습니다.”

카엘은 눈을 깜빡였다.

라심이 계속했다.

“병사들 급료도 두 달 밀렸습니다.”

“그래서 배신할 거라는 겁니까?”

“배신이라는 말은 나중에 역사가 정하는 거고, 오늘은 성문이 열리는지가 중요합니다.”

카엘은 사힌을 봤다.

왕자는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라심은 카엘과 정반대였다.

카엘이 제도를 먼저 봤다면 라심은 사람의 관계를 먼저 봤다.

밤이 되자 비밀 협상이 시작됐다.

리사라와 카엘도 참여했다.

서문 지휘관에게 보낸 조건은 단순했다.

성문을 열면 병사들의 신변 보장.

급료 보전.

가족 재산 보호.

라디르 측 장교 중 전쟁범죄 없는 사람은 사면.

카엘은 조건을 읽고 말했다.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닙니까?”

라심이 대답했다.

“성벽을 피로 사는 것보다는 싸요.”

마르코가 들으면 좋아할 표현이었다.

협상은 바로 성립하지 않았다.

서문 지휘관은 사힌을 믿지 않았다.

두 번째 사절.

세 번째.

조건 일부 수정.

카엘은 전쟁이 이렇게 느리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성벽 위에서는 화살이 날아오고 있는데, 결정적인 건 천막 안에서 쓰는 문장 한 줄일 수도 있었다.

셋째 날 밤.

신호가 왔다.

서문 위 횃불이 세 번 꺼졌다 켜졌다.

라심이 말했다.

“열립니다.”

사힌군은 조용히 움직였다.

제국 중보병은 후방에 남았다.

카엘은 소규모 기병을 이끌고 성문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목표는?”

부관이 물었다.

“창고와 교차로.”

“왕궁은?”

“라심 장군이 간다.”

“우리가 먼저 들어가면 공을 더 세울 수 있습니다.”

카엘은 그를 봤다.

“우리 임무가 공 세우는 거였나?”

부관은 입을 다물었다.

성문이 열렸다.

좁은 틈.

사힌군이 들어갔다.

카엘은 말발굽 소리를 죽이며 뒤를 따랐다.

도시 안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사람들은 창문을 닫고 숨었다.

어디선가 종이 울렸다.

그리고 갑자기 화살이 날아왔다.

배신이 아니었다.

라디르군 일부가 서문 함락을 눈치챘다.

골목전이 시작됐다.

라심의 기병이 빠르게 중심도로를 장악했다.

카스린 서문이 열리기 전, 라심은 카엘에게 한 가지를 확인했다.

“도시 안에서 약탈하는 병사 발견하면?”

“처벌합니다.”

“제국군이든 사하르군이든?”

“당연히.”

라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왜 물으십니까?”

“승리 직후가 군대가 제일 위험할 때니까.”

카엘은 이해하지 못했다.

라심이 말했다.

“싸울 때는 적이 있다. 이기고 나면 병사 눈앞에 집과 술과 재산이 보인다.”

그 말은 곧 현실이 됐다.

서문이 열린 뒤 일부 사힌군이 상점을 털기 시작했다.

카엘은 자기 병사들에게 막으라고 명령했다.

사힌군 병사가 소리쳤다.

“우리가 이겼다!”

카엘이 답했다.

“그래서 네가 이 집 주인이 됐나?”

병사는 욕을 했다.

잠시 제국군과 사힌군 사이에 충돌이 날 뻔했다.

라심이 직접 나타나 자기 병사를 끌어냈다.

그는 공개적으로 두 명을 채찍질했다.

카엘은 너무 가혹하다고 느꼈다.

라심은 말했다.

“오늘 한 명을 때려야 내일 백 명이 안 턴다.”

카엘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약탈이 크게 줄었다.

전쟁에서 사람을 살리는 방법이 항상 부드럽지는 않았다.

카엘은 그날 라심에게서 자신과 전혀 다른 종류의 통치를 봤다.

좋아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도.

내성 함락 직전 라디르가 직접 협상장에 나왔다.

카엘은 처음으로 적 왕자를 가까이서 봤다.

라디르는 사힌보다 나이가 많고 훨씬 지쳐 보였다.

악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불편했다.

라디르는 사힌에게 말했다.

“내가 항복하면 북부 귀족들을 지킬 수 있나?”

사힌은 대답했다.

“민간인과 전쟁범죄 없는 사람은.”

“내 사람들은 네 말을 믿지 않는다.”

“내 사람들도 형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두 형제는 한동안 서로 봤다.

카엘은 전쟁 전체가 갑자기 가족싸움처럼 보였다.

수천 명이 죽고 도시가 굶은 가족싸움.

라디르는 왕위포기와 국외 망명에 동의했다.

대신 추종자 일부의 사면.

가족 재산 일부 보존.

카엘은 조건이 후하다고 느꼈다.

라심이 말했다.

“죽이면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라 복수가 시작된다.”

카엘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라디르는 작은 호위만 데리고 도시를 떠났다.

사람들은 욕하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그는 반역자가 아니라 패배한 왕이었다.

카엘은 성문 위에서 그 행렬을 바라봤다.

승자가 역사를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패자도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떠난다는 걸 처음 봤다.

카엘은 창고 쪽으로 향했다.

병사들이 곡물창고에 불을 붙이려 했다.

“막아!”

불이 붙으면 도시가 굶는다.

전투가 끝난 뒤 카엘은 자기가 죽인 병사의 시신을 다시 찾았다.

왜 찾았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병사는 카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였다.

허리에는 작은 천주머니가 있었다.

카엘은 손대지 않으려다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열었다.

나무로 만든 작은 말 장난감.

아이 것이었다.

카엘은 손을 멈췄다.

리사라가 다가왔다.

“가족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이름을 알면요.”

병사의 목패를 확인했다.

리사라가 읽었다.

“하렌. 북부 데살 마을.”

카엘은 이름을 적었다.

전투가 끝나면 적 시신의 개인물품을 가족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부관이 물었다.

“전부요?”

카엘은 주변 시신을 봤다.

너무 많았다.

“가능한 만큼.”

그 말이 싫었다.

에드윈이 자주 하던 말.

이제 자신도 쓰고 있었다.

전쟁은 사람에게 ‘가능한 만큼’이라는 표현을 너무 빨리 가르쳤다.

카엘 기병이 돌진했다.

짧고 거친 싸움.

카엘은 처음으로 검에 피를 묻혔다.

상대는 항복하지 않았다.

검끝이 들어갔다.

사람 몸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카엘은 멈출 시간이 없었다.

다음 병사.

창.

방패.

소리.

전투가 끝났을 때 곡물창고는 살아 있었다.

카엘은 피 묻은 검을 내려다봤다.

손이 떨렸다.

부관이 말했다.

“기사님.”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그래도 움직였다.

동이 틀 무렵, 카스린 서부는 사힌군 통제 아래 들어갔다.

내성에서는 아직 싸움이 계속됐다.

오후.

라디르가 협상을 요청했다.

완전한 패배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 싸워도 승산이 낮았다.

성벽 위에 사힌의 깃발이 올라갔다.

병사들이 환호했다.

카엘은 환호하지 않았다.

창고 앞에서 죽은 병사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리사라가 그 옆에 섰다.

“처음입니까?”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리사라는 위로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고마웠다.

멀리 내성 문이 열렸다.

사힌이 왕이 되는 순간이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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