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7화 — 누구의 전쟁인가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난민은 군대보다 느렸다.
그래서 항상 뒤에 남았다.
카스린으로 가는 길목에는 임시 천막이 수백 개 들어섰다.
전쟁을 피해 온 사람들.
사힌 지지자.
라디르 지지자.
아무 편도 아닌 사람.
카엘은 군량수레를 확인하러 갔다가 난민캠프에 발이 묶였다.
“물통이 부족합니다.”
에드윈이 말했다.
“어제 보낸 거 있잖습니까.”
“사람이 더 왔습니다.”
“몇 명?”
“어제보다 육백.”
카엘은 숫자를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
군대도 먹여야 했다.
난민도.
사힌 재무관이 와서 말했다.
“군량을 민간에 너무 풀면 전투가 어렵습니다.”
에드윈이 반박했다.
“민간인이 굶으면 전쟁 끝나고 왕국이 남습니까?”
둘 다 맞았다.
카엘은 점점 그런 상황이 싫어졌다.
정답이 하나 없는 문제.
결국 배급을 나눴다.
군대는 정량보다 조금 줄이고.
난민에게 최소량을 확보.
군부는 불평.
난민도 부족하다고 불평.
카엘은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리사라는 그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정말 좋은 일 하면 사람들이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왜 감사를 전제로 해요?”
카엘은 입을 다물었다.
난민캠프에는 리사라 가족의 상단 직원도 있었다.
그는 라디르군이 점령한 도시에서 빠져나왔다.
“가족은?”
카엘이 물었다.
리사라가 대답했다.
“아버지와 오빠는 항구에 있어요.”
“안전한가?”
“전쟁 중에 안전한 사람이 어딨어요.”
카엘은 자신이 리사라 가족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사힌을 지지합니까?”
리사라가 웃었다.
“또 그 질문.”
“왜?”
“우리 아버지는 사힌이 이기면 무역이 안정될 거라 생각해요.”
“그럼 지지하는 거잖아.”
“세금을 올리면 바로 욕할걸요.”
“그래도 전쟁에서는.”
리사라가 잠시 생각했다.
“오빠는 라디르 쪽 친구도 많아요.”
카엘이 놀랐다.
“적진에?”
“전쟁 전엔 적이 아니었으니까.”
그 말이 카엘 머리에 남았다.
전쟁은 원래 있던 관계 위에 갑자기 선을 그었다.
어제 친구였던 사람이 오늘 적.
난민캠프의 시장은 이상할 만큼 빨리 생겼다.
아무것도 없는 진흙밭에 이틀 만에 빵 노점, 옷 수선대, 약초상, 대장간이 들어섰다.
마르코가 그걸 보고 말했다.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생깁니다.”
카엘은 물었다.
“돈도 없는데?”
“돈이 없으면 물건을 바꾸죠.”
실제로 어떤 사람은 빵과 바늘을 바꿨고, 다른 사람은 노동과 담요를 바꿨다.
카엘은 처음으로 경제라는 게 은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았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같은 빵이 도시보다 두 배.
물을 파는 사람도 생겼다.
카엘은 화가 났다.
“난민에게 물을 팔아?”
마르코가 말했다.
“저 사람이 물을 나르는 데 노동이 들었으니까요.”
“그래도 너무 비싸.”
“그럼 공공우물을 더 만드세요.”
카엘은 베란 토르라는 현지 수로기술자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됐다.
난민 중 한 사람이었다.
베란은 지형을 보고 말했다.
“여기 아래 물줄기 있습니다.”
제국 기술자는 반신반의했다.
베란은 막대기를 꽂고 흙을 확인했다.
사흘 뒤 정말 물이 나왔다.
카엘은 그를 불렀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리사라가 통역했다.
베란은 주변 갈대와 흙색을 가리켰다.
제국 지도에는 아무 표시도 없었다.
카엘은 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모르는 건 계속 나왔다.
그는 베란 이름을 장부에 적게 했다.
난민캠프에서 작은 분쟁이 하나 더 생겼다.
사힌군이 군량을 사려고 은화를 풀자 식량가격이 더 올랐다.
군대는 돈이 있었다.
난민은 없었다.
카엘은 처음에는 군 가격을 낮추라고 명령하려 했다.
마르코가 말렸다.
“그러면 상인들이 군에 안 팝니다.”
“지금도 난민은 못 사.”
“그래서 배급을 해야죠. 가격을 억지로 하나로 만들 게 아니라.”
카엘은 짜증이 났다.
“당신은 시장을 너무 믿어.”
“기사님은 명령을 너무 믿습니다.”
둘은 한동안 서로 노려봤다.
결국 절충했다.
군은 시장가로 구매.
대신 왕실이 일부 곡물을 직접 사서 난민에게 배급.
가격은 완전히 내려가지 않았지만, 굶는 사람은 줄었다.
카엘은 이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르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베란이 새 우물을 완성하면서 물 가격은 거의 사라졌다.
카엘은 그걸 보며 웃었다.
어떤 문제는 명령으로.
어떤 문제는 시장으로.
어떤 문제는 그냥 우물을 하나 더 파서 해결됐다.
통치란 정답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자리잡았다.
리사라는 말했다.
“이제야 좀 영주 같네요.”
“아직 영지도 없어.”
“그래서 연습 중이라고요.”
카엘은 그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
수로기술자.
훗날 왕의 길과 마라벤의 제방을 만들 사람이 그때는 난민캠프에서 우물을 파고 있었다.
밤에는 난민캠프에서 출산이 있었다.
산모는 라디르 지지 지역 출신이었다.
남편은 사힌군에 강제징집돼 행방불명.
에드윈이 산파를 찾았고, 리사라가 사람들을 모았다.
카엘은 할 일이 없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물이라도 나를까요?”
리사라가 웃었다.
“네.”
카엘은 물을 날랐다.
몇 시간 뒤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캠프 사람들이 잠깐 박수를 쳤다.
사힌 편도 라디르 편도 구분 없이.
카엘은 그 장면을 오래 바라봤다.
아이는 어느 편으로 태어난 걸까.
당연히 어느 편도 아니었다.
전쟁이 사람에게 편을 붙이는 것이지, 사람이 편으로 태어나는 건 아니었다.
산모는 아이 이름을 ‘사렌’이라고 지었다.
“뜻이 뭐지?”
리사라가 말했다.
“돌아오는 비.”
“왜?”
“가뭄 끝에 오는 첫 비를 그렇게 불러요.”
카엘은 이름을 장부에 적었다.
난민 명부 한가운데.
사렌. 출생.
사망자와 실종자만 늘던 장부에 처음으로 출생이 적혔다.
그 한 줄 때문에 카엘은 그날 밤 조금 덜 절망했다.
같은 시장에서 장사하던 사람이 다른 군대에 물건을 팔다가 반역자.
카엘은 자신이 그 선을 너무 쉽게 믿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난민들 사이에서 싸움이 났다.
사힌 지지자와 라디르 지지자가 서로 상대가 전쟁을 시작했다고 욕했다.
다렌 마을 출신 케라 난민이 끼어들었다.
“둘 다 우리 마을 안 지켰다!”
리사라가 번역하자 카엘은 웃을 수 없었다.
그 말이 가장 정확해 보였다.
밤이 깊자 전령이 왔다.
라디르군 주력이 카스린으로 이동.
수도 공방전이 임박했다.
사힌은 전군 집결을 명령했다.
카엘은 난민캠프를 돌아봤다.
“우리가 이기면 저 사람들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리사라가 말했다.
“집이 남아 있으면요.”
카엘은 더 묻지 않았다.
그날 밤 카스린 방향의 하늘에 봉화 세 개가 올랐다.
왕위계승전쟁의 마지막 큰 싸움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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