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5화 — 우리 편의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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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노예상단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에게 사람을 판 자였다.
증거는 에드윈이 확보한 계약서에 있었다.
포로 인도자.
하리스 바르하.
사힌 측 귀족.
군사 삼백.
말 백여 필.
카엘은 이름을 세 번 읽었다.
“바르하.”
리사라가 말했다.
“처음 민간인 잡아간 바르하랑 같은 집안입니다.”
“형제?”
“사촌.”
“전하도 압니까?”
“이제는 알겠죠.”
사힌은 문서를 받고 한참 말이 없었다.
카엘은 이번에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증거입니다.”
“그래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사힌은 문서를 접었다.
“체포해야죠.”
카엘은 조금 놀랐다.
“바로?”
“증거 가져오라면서요.”
“병사 삼백은?”
“잃겠죠.”
“라디르에게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사힌이 카엘을 봤다.
“왜요? 내가 또 정치 계산할 줄 알았습니까?”
카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힌은 피곤한 웃음을 지었다.
“정치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계산에도 기준은 있어야 하죠.”
하리스 바르하 체포는 쉽지 않았다.
그의 병사들은 무장해제를 거부했다.
사힌 왕실군과 바르하 사병이 서로 창을 겨눴다.
카엘은 제국군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이건 사하르 내부의 일이었다.
사힌이 직접 앞으로 나갔다.
“하리스!”
천막 안에서 남자가 나왔다.
화려한 갑옷.
중년.
자신만만한 얼굴.
“전하.”
“내 포로를 팔았나?”
“전하의 포로가 아닙니다.”
“내 군대가 잡은 사람들이다.”
“전쟁포로는 승자의 몫입니다.”
“내 법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리스가 웃었다.
“전하는 아직 왕이 아니십니다.”
주변 공기가 얼어붙었다.
사힌은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맞다.”
하리스의 웃음이 조금 커졌다.
사힌이 이어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왕의 명령이 아니라 내 군의 명령이다.”
그가 뒤를 돌아봤다.
“하리스 바르하를 체포하라.”
왕실군이 움직였다.
바르하 병사들이 창을 들었다.
잠깐.
아주 잠깐.
전투가 날 것 같았다.
그때 하리스가 손을 들었다.
“내려.”
병사들이 창을 내렸다.
카엘은 그게 비겁해서가 아니라 계산이라는 걸 알았다.
여기서 싸우면 그는 반역자.
체포되면 아직 재판받을 귀족.
하리스도 정치를 알았다.
그날 밤 바르하 사병 중 백 명 넘게 진영을 떠났다.
일부는 집으로.
일부는 라디르 쪽으로.
사힌의 병력은 실제로 줄었다.
다음 날 제국 지휘관이 사힌을 찾아왔다.
“전투 직전에 병력을 줄이는 게 현명합니까?”
사힌은 말했다.
“그 병력이 내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숫자만 내 병력입니다.”
카엘은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재판은 간단하지 않았다.
하리스는 자신이 직접 노예를 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리스 바르하의 재판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몰렸다.
누군가는 그가 처형되길 원했다.
누군가는 귀족을 이런 식으로 재판하는 것 자체를 모욕이라고 했다.
카엘은 방청석 맨 뒤에 섰다.
리사라는 재판서기 옆에서 통역을 도왔다.
하리스는 마지막까지 당당했다.
“전쟁관습에 따라 처리했을 뿐입니다.”
재판관이 물었다.
“사힌 전하께서는 포로매매를 금지했습니다.”
“전하는 그때 왕이 아니었습니다.”
“군 지휘권자는 맞았습니다.”
“왕국법보다 전쟁관습이 우선합니다.”
카엘은 답답했다.
저 논리는 완전히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사하르 법은 지역마다 달랐고, 포로를 몸값이나 노동력으로 처리하는 관행도 실제로 존재했다.
문제는 사힌이 그런 관행을 끝내겠다고 이미 선언했다는 점이었다.
리사라가 낮게 말했다.
“그래서 이 재판이 중요해요.”
“왜?”
“하리스를 처벌하는 것보다, 앞으로 어떤 법을 따를지 정하는 재판이라서.”
결국 판결은 타협적이었다.
포로매매 관련 재산 몰수.
군직 박탈.
피해자 보상.
일정 기간 왕실 직위 금지.
카엘은 약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판결 뒤 지방귀족 셋이 자발적으로 자기 포로들을 풀어줬다는 보고가 왔다.
하리스 한 명을 죽이는 것보다, 관행 전체가 위험해졌다고 느끼게 한 효과였다.
카엘은 리사라에게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았군.”
“어떤 거요?”
“재판이 한 사람 처벌보다 중요하다는 거.”
리사라는 웃었다.
“기록해둘게요. 당신이 제 말 맞다고 한 날.”
“취소.”
“이미 늦었어요.”
그 가벼운 대화가 카엘에게는 이상하게 좋았다.
재판 후 바르하 가문의 젊은 기사 하나가 카엘을 찾아왔다.
“우리 가문을 모욕했습니다.”
카엘은 피곤했다.
“제가요?”
“당신들이 증거를 만들고 전하를 압박했지.”
“사람을 판 건 내가 아닌데.”
기사는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카엘도 본능적으로 자세를 고쳤다.
리사라가 둘 사이로 들어왔다.
“여기서 결투하면 누가 이겨도 둘 다 바보가 됩니다.”
기사가 화를 냈다.
“비켜라.”
“싫어요.”
카엘은 오히려 당황했다.
“리사라.”
“기사님도 가만히 있어요.”
그녀는 젊은 기사에게 말했다.
“당신 가문 전체를 처벌했습니까?”
“아니다.”
“땅을 뺏었습니까?”
“아니다.”
“병사 전부를 해산했습니까?”
“아니다.”
“그럼 하리스 경이 한 일 때문에 하리스 경이 처벌받은 겁니다.”
기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리사라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가문 명예를 지키고 싶으면 노예 파는 친척을 지키지 마세요.”
기사는 얼굴이 붉어져 돌아갔다.
카엘은 한동안 그녀를 봤다.
“당신 겁 없군.”
“겁나요.”
“그런데 왜 앞에 섰어?”
“둘이 칼 뽑으면 제가 통역해야 하잖아요. 귀찮아서.”
카엘은 웃음을 터뜨렸다.
리사라도 웃었다.
그 순간 둘 사이의 거리가 아주 조금 줄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기억했을 평범한 순간이었다.
전쟁 한가운데에서도 다음 날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가신이 계약했다고.
그날 저녁 카엘은 사힌에게 물었다.
“왕이 되면 이런 재판을 계속 직접 챙기실 겁니까?”
사힌은 웃었다.
“그러면 왕은 재판관 한 명으로 끝나겠지.”
“그럼 누가?”
“법원이.”
카엘은 그 답을 마음에 들어 했다.
“사람보다 제도가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사힌은 잠시 생각했다.
“사람이 제도를 만들고, 제도가 다음 사람을 묶어야죠.”
카엘은 그 말을 기억했다.
훗날 자기 자신을 묶는 헌법을 만들게 될 때까지.
카엘은 분노했다.
리사라는 차갑게 문서를 읽었다.
“서명은 없어요.”
“그럼 빠져나갑니까?”
“그럴 수도.”
“말이 돼?”
“법은 화난 사람 편이 아니라 증거 있는 사람 편이니까요.”
카엘은 짜증이 났지만 리사라가 맞았다.
며칠에 걸쳐 증언이 모였다.
포로관리 병사.
상단 직원.
바르하 가신.
결국 하리스가 직접 지시했다는 증언이 확보됐다.
사힌은 그를 군직에서 박탈하고 재산 일부를 압류했다.
사형은 아니었다.
카엘은 처벌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드윈은 말했다.
“살려둔 게 더 어려운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왜?”
“죽이면 순교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카엘은 세상이 왜 이렇게 복잡한지 조금 지겨워졌다.
그날 밤 사힌과 술을 마셨다.
왕자가 먼저 말했다.
“병사 백스물셋을 잃었습니다.”
“압니다.”
“후회하냐고 물어봐야 하지 않습니까?”
카엘은 잠시 생각했다.
“후회하십니까?”
사힌이 잔을 들었다.
“내일 전투에서 지면 할지도.”
“오늘은?”
“오늘은 아니오.”
카엘은 처음으로 사힌을 친구라고 생각했다.
아직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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