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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3화 — 빚으로 산 병사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13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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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돈을 먹었다.

카엘은 처음으로 그걸 숫자로 봤다.

군마 한 필이 하루에 먹는 귀리.

병사 한 명의 빵과 고기.

석궁 화살.

말굽.

가죽끈.

부러진 창.

상처를 꿰맬 실.

그 모든 것이 장부 한 권 안에서 은화로 바뀌어 있었다.

마르코가 손가락으로 줄을 짚었다.

“여기.”

카엘이 봤다.

“사힌 왕실의 채무?”

“이번 달 것만.”

숫자가 컸다.

“이걸 정말 갚을 수 있나?”

“왕이 되면.”

“왕이 된다고 돈이 생깁니까?”

“세금을 걷을 권리가 생기죠.”

카엘은 얼굴을 찌푸렸다.

“결국 백성이 갚는군.”

마르코가 어깨를 으쓱했다.

“왕의 빚을 왕이 직접 농사 지어서 갚진 않으니까요.”

카엘은 그 말이 싫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그랬다.

군수품 납품 현장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현지 상인들은 같은 물건을 제국 상인보다 싸게 팔았다.

그런데 제국군은 공식 계약 때문에 제국 상인에게서 사야 했다.

카엘은 물었다.

“왜 비싼 쪽에서 삽니까?”

보급관은 답했다.

“품질 보증.”

“현지 물건이 나쁜가?”

“모르지.”

“확인해보면 되잖습니까.”

“전쟁 중에 납품처를 매번 시험할 시간이 있나?”

카엘은 이해하면서도 답답했다.

제국의 규칙은 안정적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느렸다.

마르코가 옆에서 말했다.

“안정성에는 가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문제를 가격으로 설명하나?”

“가격으로 설명 안 되는 문제도 결국 누군가는 돈을 냅니다.”

카엘은 장부를 덮었다.

그날 오후, 사힌의 재무관이 카엘을 불렀다.

노인은 지난 만찬 때 본 사람이었다.

“아르덴 경.”

“예.”

“제국에서 온 기사라 들었는데 장부를 볼 줄 안다고.”

“작은 영지 출신이라.”

“좋습니다.”

그는 두 개의 문서를 내밀었다.

하나는 제국군 계약.

다른 하나는 세라노 상인단 계약.

같은 양의 곡물.

가격 차이는 크지 않았다.

문제는 조항이었다.

제국 계약은 전쟁 후 관세 일부를 담보로 요구했다.

세라노 계약은 특정 항구 창고 우선사용권을 요구했다.

“어느 쪽이 낫습니까?”

노인이 물었다.

카엘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둘 다 나쁩니다.”

노인이 웃었다.

“그건 나도 압니다.”

“그럼 왜 묻습니까?”

“덜 나쁜 걸 골라야 해서.”

카엘은 두 문서를 다시 읽었다.

제국 계약은 비싸지만 예측 가능했다.

세라노 계약은 싸지만 장기적으로 항구권을 묶었다.

“제국 쪽.”

카엘이 말했다.

“왜?”

“관세는 언젠가 갚으면 끝납니다. 항구권은 상인이 발을 걸치고 나면 빼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르코는 카엘에게 전쟁채권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 종이 한 장이 은화 백 닢입니다.”

“종이인데.”

“왕실이 전쟁 끝난 뒤 갚겠다는 약속이죠.”

“왕실이 안 갚으면?”

“그럼 종이가 됩니다.”

카엘이 어이없어 웃었다.

“그걸 왜 삽니까?”

“사힌 전하가 이길 거라고 믿는 사람이 사는 겁니다.”

“그럼 도박이잖아.”

“기사님은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작위 얻으러 왔잖습니까.”

마르코가 태연히 말했다.

“우린 은화 걸고 이자 얻으러 온 거고.”

카엘은 반박을 포기했다.

전쟁은 사람마다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기사에게는 공훈.

상인에게는 위험과 이익.

농민에게는 징집과 세금.

왕에게는 권력.

그날 군량 창고에서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계약상 밀가루 백 자루가 들어와야 했는데 아흔둘뿐이었다.

납품상은 습기로 무게가 줄었다고 주장했다.

마르코가 자루를 뜯었다.

안쪽에는 모래가 섞여 있었다.

“이게 습기군요.”

납품상 얼굴이 하얘졌다.

카엘은 즉시 체포하자고 했다.

마르코는 고개를 저었다.

“돈부터 돌려받죠.”

“범죄인데.”

“처벌은 그 다음. 지금은 병사들이 먹을 게 먼저입니다.”

카엘은 또 하나 배웠다.

정의의 순서와 생존의 순서가 항상 같지는 않았다.

결국 납품상 재산을 임시 압류하고, 다른 상인에게 긴급 공급을 맡겼다.

군량은 채워졌다.

카엘은 이후 며칠 동안 왕실 재무관의 장부를 돕게 됐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이 부족했다.

“전쟁이 끝나면 제일 먼저 뭘 할 겁니까?”

카엘이 노재무관에게 물었다.

“잠을 잘 거요.”

“그 다음은?”

“세금.”

재무관은 장부를 넘겼다.

“전쟁 때문에 세금을 못 걷은 지역이 많소. 그런데 전쟁비용은 늘었지.”

“그럼 세금을 올립니까?”

“올리면 반란이 날 거요.”

“안 올리면?”

“채무를 못 갚지.”

카엘은 침묵했다.

재무관은 웃었다.

“정치는 선택지가 많아서 어려운 게 아니오. 괜찮은 선택지가 없어서 어렵지.”

그는 사힌이 왕이 된 뒤 할 일을 설명했다.

지방귀족의 사병 수 줄이기.

관세 통합.

왕실군 급료를 현금으로 지급.

노예상 제한.

이 모든 것이 돈이 들었다.

“전하가 중앙집권을 원하는 이유가 권력 때문만은 아니군요.”

“권력 없는 왕이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소?”

“권력 많은 왕이 나쁜 일을 할 수도 있고요.”

노재무관이 웃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필요하군. 늙은 사람은 답이 없는 걸 너무 잘 알아.”

카엘은 그 말이 이상하게 씁쓸했다.

그날 밤 그는 마르코에게 전쟁채권 한 장을 실제로 사볼까 물었다.

“왜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서.”

마르코는 액수가 작은 채권 하나를 골라줬다.

카엘은 은화 열 닢을 냈다.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이제 사힌 전하가 이기길 더 바라시겠네요.”

“이미 같은 편이었어.”

“이제는 돈도 걸렸죠.”

카엘은 종이를 바라봤다.

이해관계는 사람의 생각을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

그 사실은 전쟁보다 더 조용해서 더 위험해 보였다.

재판은 다음 날로 미뤄졌다.

카엘은 밤에 장부를 보며 생각했다.

카엘은 그날 밤 채권 종이를 자기 수첩 사이에 끼워두었다.

은화 열 닢짜리 작은 약속.

전쟁이 끝나면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종이 자체에는 아무 힘도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약속을 믿는 순간 말과 밀가루와 철이 움직였다.

카엘은 그게 이상하게 무서웠다.

검은 눈에 보였다.

빚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더 멀리, 더 오래 사람을 묶을 수도 있었다.

전쟁을 이기는 데 필요한 건 좋은 검보다 좋은 계약서일지도 모른다고.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봅니다.”

카엘은 문서를 돌려줬다.

“그런데 왜 제 의견이 필요했습니까?”

“왕자가 당신을 좋게 봅니다.”

“그게 이유입니까?”

“아니.”

노인은 웃었다.

“왕자가 좋아하는 사람이 숫자도 볼 줄 아는지 궁금했소.”

카엘은 갑자기 시험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마르코와 술을 마셨다.

카엘이 계약 얘기를 하자 마르코는 바로 물었다.

“세라노 쪽 안 골랐죠?”

“왜?”

“골랐으면 내가 화낼 테니까.”

“당신 세라노 사람 아니야?”

“그래서 더 잘 알죠.”

둘은 웃었다.

잠시 뒤 마르코가 잔을 내려놨다.

“기사님.”

“왜.”

“전쟁에서 누가 이길지는 모르지만.”

그가 장부를 두드렸다.

“빚은 반드시 남습니다.”

카엘은 그 말을 가볍게 넘기지 못했다.

멀리 야영지에서는 병사들이 불가 주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의 갑옷과 식량과 말까지.

전부 누군가의 빚 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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