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2화 — 사힌의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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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힌은 카엘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전투회의가 아니라 개인 천막이었다.
카엘은 처벌을 예상했다.
반성문은 이미 제출했다.
제국 지휘관은 “글은 잘 쓰더군”이라는 말만 남겼다.
사힌은 창가에 서 있었다.
“앉으십시오.”
카엘은 앉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내가 앉으라고 했는데.”
왕자의 말투에 장난기가 있었다.
카엘은 결국 의자에 앉았다.
사힌은 맞은편에 앉았다.
“왜 명령을 어겼습니까?”
카엘은 준비했던 답을 떠올렸다.
포로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았다.
적 규모가 예상보다 작았다.
기습으로 충분히 구조 가능했다.
모두 사실이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기다리면 늦을 것 같아서요.”
사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
“예.”
“좋군요.”
“뭐가 말입니까?”
“변명을 길게 하지 않아서.”
사힌은 잠시 웃었다.
“제국 장교들은 보통 잘못을 설명할 때 조약보다 길게 말하거든요.”
카엘은 리사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거짓말할 때 숫자를 많이 설명한다.
아직 듣지 않은 미래의 말이었지만, 카엘의 성격은 이미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사힌이 탁자 위 문서를 밀었다.
“구조한 사람 중 둘이 내 군에 자원했습니다.”
“전쟁이 싫다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자기 마을을 불태운 사람은 싫겠지요.”
“그게 전하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닐 텐데요.”
사힌은 웃었다.
“정확합니다.”
그는 카엘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래서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제가 전하를 의심해서요?”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많아요. 이유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지.”
카엘은 그 평가가 부담스러웠다.
사힌은 지도를 펼쳤다.
“다음 목표는 카스린 외곽 보급성입니다.”
라디르 측 군대가 수도 주변 농지와 창고를 장악하고 있었다.
사힌은 수도를 포위하기보다 보급선을 하나씩 끊을 계획이었다.
“정면전은 피해가 큽니다.”
“제국군은 정면전을 좋아합니다.”
“제국군은 중보병이 강하니까요.”
“그럼 우리는 제국군이 아닌 방식으로 싸워야겠지요.”
사힌은 카엘에게 소규모 기동대를 맡길 생각이었다.
카엘은 놀랐다.
“저보다 경험 많은 기사가 많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왜 저입니까?”
“당신은 명령을 어길 때도 계산하고 어기더군요.”
카엘은 그게 칭찬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힌이 덧붙였다.
“사람을 불태우는 걸 싫어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왕위를 놓고 싸우다 보면 꽤 많아집니다.”
사힌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카엘. 내가 왕이 되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질문이 뜻밖이었다.
카엘은 대답을 고민했다.
“아닙니다.”
“왜?”
“전하가 사람이니까요.”
사힌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었다.
“아주 무례한 대답인데, 맞군요.”
그는 술을 따랐다.
“내가 왕이 되면 지방귀족들은 불만을 품을 겁니다. 세금을 정리해야 하고, 군대를 중앙에 묶어야 하고, 노예상들을 줄여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적이 늘겠지요.”
“그래도 하실 겁니까?”
“왕이 되려고 한 이유가 그거니까.”
카엘은 처음으로 사힌의 야심을 조금 다르게 보았다.
왕관 자체를 원하는 사람.
동시에 왕관으로 뭔가를 바꾸고 싶은 사람.
둘은 모순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사힌의 진영에는 새로운 소식이 도착했다.
라디르군 일부가 카스린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수도 공방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국 지휘관은 빠른 결전을 원했다.
사힌은 시간을 더 쓰더라도 도시 피해를 줄이려 했다.
카엘은 회의에서 처음으로 사힌의 편을 들었다.
사힌의 천막을 나온 뒤 카엘은 라심 바렉과 처음 길게 이야기했다.
라심은 왕실군의 실질적인 야전지휘관이었다.
“전하가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는군.”
“저를요?”
“말 안 듣는 사람을 좋아하실 때가 있지.”
“좋은 성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라심이 웃었다.
“왕한테 좋은 성격이라는 게 있나?”
카엘은 그를 슬쩍 봤다.
라심은 제국 장군들과 달리 갑옷도 장식이 적었다. 말 안장에는 수선한 흔적이 많았고, 지도에는 직접 적은 메모가 빼곡했다.
“내일 기동대 맡는다며.”
“예.”
“도시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골목에서는 말을 버려.”
“기병인데요.”
“골목에서 말은 벽보다 큰 장애물이다.”
카엘은 반박하려다 그가 실제로 카스린에서 싸워본 적 있다는 걸 떠올렸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라심이 카엘을 봤다.
“전하에게 너무 빨리 충성하지 마.”
카엘은 눈썹을 올렸다.
“장군께서 하실 말입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다.”
라심은 담담했다.
“왕은 자기를 의심하는 친구가 필요하고, 병사는 자기를 의심하지 않는 장수가 필요하다. 역할이 다르지.”
카엘은 그날 처음으로 라심이라는 사람을 기억했다.
사힌이 정치라면 라심은 전쟁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아직 둘 다 제대로 몰랐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건 이상하게 편했다.
“성벽을 직접 치면 민간인 피해가 큽니다.”
다음 날 기동대 훈련에서 카엘은 라심의 조언이 왜 필요한지 바로 알게 됐다.
좁은 골목을 가정해 수레와 통나무로 길을 막아놓자 기병은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말은 서로 엉켰고, 방향을 돌리는 데 시간만 들었다.
라심이 팔짱을 끼고 보았다.
“다시.”
카엘은 두 번째에는 병사 절반을 말에서 내렸다.
라심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어.”
세 번째.
이번에는 진입 전부터 말과 보병 역할을 나눴다.
조금 나아졌다.
“이제 전투처럼 보이는군.”
카엘은 땀을 닦았다.
“장군께서는 이런 걸 어디서 배웠습니까?”
“실패해서.”
라심이 간단히 말했다.
“스물셋 때 골목에 기병 쉰을 밀어넣었다가 열둘 잃었다.”
카엘은 입을 다물었다.
라심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승리한 전투만 이야기한다. 진짜 배울 건 패배한 전투인데.”
카엘은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그날 저녁 리사라에게 말했다.
“라심 장군은 좋은 지휘관인 것 같아.”
“사하르에서는 꽤 유명해요.”
“왜 처음엔 말 안 했지?”
“물어보지 않았잖아요.”
카엘은 웃다가 문득 생각했다.
자기가 모르는 사람을 모른다는 이유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습관.
지도에서 빈칸을 보던 것과 비슷했다.
제국 장군 하나가 말했다.
“전쟁입니다.”
카엘이 답했다.
“그래서 덜 죽이는 방법을 찾자는 겁니다.”
장군은 카엘을 노려봤다.
“젊은 기사는 전쟁을 몇 번이나 해봤나?”
“큰 전투는 한 번입니다.”
웃음이 조금 났다.
카엘은 그대로 말했다.
“그래서 아직 사람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사힌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그날 밤 작전은 바뀌었다.
정면공격은 보류.
수도 주변 보급로부터 차단.
카엘은 소규모 기동대 하나를 맡게 됐다.
천막을 나오는 길에 리사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또 사고 치셨다면서요.”
“무슨 사고.”
“제국 장군 앞에서 전쟁에 대해 가르쳤다던데.”
“가르친 게 아니라 의견을 냈어.”
“살아 계시네요.”
“아직은.”
둘은 나란히 걸었다.
리사라가 물었다.
“왕자가 마음에 듭니까?”
카엘은 잠시 생각했다.
“점점.”
“조심하세요.”
“왜?”
“왕도 사람이라면서요.”
카엘이 그녀를 봤다.
리사라가 웃었다.
“방금 전하께 하신 말 들었습니다.”
카엘은 한숨을 쉬었다.
“이 야영지에는 비밀이 없군.”
“왕자가 되려는 사람 근처에는 원래 그래요.”
멀리 카스린 방향에서 성벽의 봉화가 보였다.
사힌의 왕관은 아직 그의 머리에 없었다.
그런데 그 왕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지는 이미 충분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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