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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5화 — 지도 밖의 도시

제국은 길을 따라왔다 · 5 / 20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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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드의 첫인상은 냄새였다.

향신료와 생선, 젖은 목재, 말똥, 숯, 소금, 사람.

그 다음이 소리였다.

카엘은 선착장에 발을 내딛은 뒤 한동안 말을 잊었다.

항구에는 자신들이 타고 온 배보다 큰 상선이 세 척이나 정박해 있었다. 돌로 쌓은 부두가 강어귀를 따라 길게 이어졌고, 창고 지붕에는 서로 다른 길드 깃발이 펄럭였다.

시장은 더 놀라웠다.

아르케시아어.

사하르어.

네르바 상업어.

카엘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상인들은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흥정했고, 환전상들은 은화의 가장자리를 잘라 무게를 재고 있었다.

“이게 작은 항구라더니.”

카엘이 중얼거렸다.

마르코가 대꾸했다.

“제국 지도에서는요.”

그는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좋은 도시입니다.”

“왜요?”

“사람이 많고, 돈이 돌고, 규칙이 복잡하니까.”

“복잡하면 나쁜 거 아닙니까?”

“상인에겐 반대죠. 복잡해야 아는 사람이 돈을 법니다.”

에드윈은 이미 주변을 둘러보며 병자와 거지를 보고 있었다.

“저기 수도원 비슷한 시설이 있군요.”

“일광교가 아닐 텐데요.”

“병든 사람에게 종교를 먼저 물을 생각은 없습니다.”

카엘은 두 사람과 헤어져 원정군 집결지로 향했다.

길을 걷는 동안 그는 계속 지도를 꺼냈다.

항구는 지도에 작은 점 하나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성벽 안에 수만 명이 살 것 같았다.

돌로 포장된 주도로.

배수로.

도시 경비대.

세관.

심지어 은행 비슷한 환전소도 있었다.

카엘은 걸음을 멈췄다.

“왜?”

동료 기사가 물었다.

“지도상으로는 여기서 성문까지 반 리그인데.”

“그래서?”

“이미 지나쳤어.”

그들은 한참 전에 옛 성문을 통과했고, 그 바깥에도 도시가 자라 있었다.

지도는 틀리지 않았다.

오래되었을 뿐이었다.

그날 오후, 카엘은 제국군 사령부에서 첫 보고를 들었다.

“사하르의 국왕이 여섯 달 전 사망했다. 장남 라디르와 차남 사힌이 모두 왕위를 주장한다.”

항구의 세관에서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르케시아에서 가져온 은화는 그대로 쓰이지 않았다.

환전상이 하나씩 무게를 쟀다.

“황제의 얼굴이 찍혀 있는데 왜 무게를 재지?”

카엘이 물었다.

마르코가 답했다.

“얼굴이 은 함량을 보장해주진 않으니까.”

실제로 오래된 은화 몇 개는 가장자리가 조금씩 깎여 있었다.

카엘은 황실 화폐가 어디서나 똑같이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했던 자신이 우스워졌다.

도시 내부에는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상업분쟁을 다루는 법정.

서로 다른 언어로 작성된 계약서를 공증해주는 서기관.

화재가 나면 길드별로 종을 울리고 물통을 옮기는 조직.

모든 것이 제국과 달랐지만 무질서하지 않았다.

카엘은 자신도 모르게 여러 번 같은 생각을 했다.

왜 우리는 이곳을 제대로 몰랐지?

군사회의에서는 사하르 왕위계승법도 설명됐다.

국왕의 장남이 자동으로 왕이 되는 아르케시아와 달리, 사하르에서는 왕의 자식 중 왕실회의와 주요 지방세력의 승인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계승할 수 있었다.

라디르는 장남이었다.

사힌은 차남이지만 생전 국왕에게 군 지휘권을 맡았고 해안도시 지지가 강했다.

둘 다 완전히 틀린 주장을 하는 게 아니었다.

카엘은 손을 들었다.

“그러면 ‘합법적인 왕위계승자’라는 표현은.”

지휘관이 말했다.

“정치적인 표현이다.”

회의장에 작은 웃음이 퍼졌다.

카엘은 웃지 못했다.

모집회관에서 자신이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도 사힌을 지원할 이유는 있었다.

벨로르 견제.

무역안전.

노예시장 폐쇄 약속.

다만 이제 카엘은 ‘옳은 왕자와 틀린 왕자’의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뒤 그는 노예행렬을 다시 봤다.

한 남자가 넘어지자 경비가 채찍을 들었다.

카엘이 앞으로 나가려다 멈췄다.

여기는 아직 자기 관할도 아니었고, 현지법상 거래도 합법이었다.

제국 기사라는 신분이 세상 모든 곳에서 권한을 주지는 않았다.

그 사실이 답답했다.

에드윈이 그의 옆에 섰다.

“때리러 가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생각은 했습니다.”

“안 하셨네요.”

“권한이 없습니다.”

에드윈은 잠시 행렬을 보다가 말했다.

“권한이 있어야만 옳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권한을 누가 주는지도 중요하겠군요.”

카엘은 저녁에 혼자 시장을 다시 걸었다.

낮에는 군인들과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이 많았다.

빵을 파는 노점.

물항아리를 나르는 아이들.

저울 앞에서 싸우는 두 상인.

사원 계단에서 신발을 벗는 사람들.

술 취한 선원.

그리고 골목 끝의 노예시장.

에드윈이 거기 서 있었다.

수도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철창 안을 보고 있었다.

카엘이 옆에 섰다.

“할 수 있는 게 없군요.”

“오늘은요.”

“그렇게 쉽게 말합니까?”

에드윈은 철창 안의 아이를 바라봤다.

“쉽게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카엘은 사과하려다 그만뒀다.

“사힌이 이 시장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더군요.”

“왕이 된 뒤에.”

“믿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에드윈이 말했다.

“하지만 약속하지 않은 사람보다 약속한 사람에게 요구하기는 쉽죠.”

그 말은 꽤 현실적이었다.

카엘은 성직자들이 현실을 모른다는 편견을 하나 더 버렸다.

시장 한쪽에서는 이미 제국 상인들이 거래하고 있었다.

노예시장 옆에서.

카엘은 그 광경이 이상했다.

제국은 노예제를 비판했다.

제국 상인은 노예제가 존재하는 도시에서 물건을 팔았다.

둘 다 사실이었다.

그는 점점 이곳에서 하나의 문장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없다는 걸 배워가고 있었다.

카엘은 수도사를 돌아봤다.

“그런 말 자주 합니까?”

“아뇨. 방금 생각났습니다.”

카엘은 괜히 기분이 더 복잡해졌다.

지휘관은 지도를 펼쳤다.

“라디르는 북부 귀족과 일부 사원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 사힌은 해안도시와 상인, 남부 귀족의 지지를 받는다. 벨로르 왕국은 라디르에게 무기를 보내고 있고, 우리는 사힌의 요청을 받아 지원한다.”

카엘은 손을 들었다.

사령부가 마련한 숙영지 역시 카엘에게는 작은 충격이었다.

제국군 막사 옆에는 사하르 상인들이 이미 식당과 수선점을 차려놓았다.

군대가 도착하기 전에 장사꾼이 먼저 알고 온 것 같았다.

“정보가 빠르군.”

카엘이 말하자 마르코가 대답했다.

“전쟁에서 가장 빠른 건 기병이 아니라 가격입니다.”

건빵 가격이 항구 안쪽보다 두 배였다.

말 사료는 세 배.

그런데도 팔렸다.

카엘은 제국군 보급장교가 현지 상인과 흥정하는 모습을 한참 봤다.

군대가 도시를 보호하는 동시에 도시의 시장에 의존했다.

제국과 현지는 이미 생각보다 훨씬 깊게 얽혀 있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문명화한다’는 설명으로는 이 장면을 설명할 수 없었다.

“사힌이 합법적인 계승자입니까?”

지휘관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

“사하르의 계승법은 우리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럼 왜 사힌을 지원합니까?”

옆자리 기사가 킥킥 웃었다.

지휘관은 화내지 않았다.

“첫째, 사힌은 우리 상인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둘째, 라디르가 이기면 벨로르가 해안 항구를 얻는다. 셋째.”

카엘은 막사로 돌아오며 항구의 등불을 뒤돌아봤다.

이곳은 구해줘야 할 빈 땅도, 정복해야 할 황무지도 아니었다.

이미 살아 움직이는 세계였다.

자신들이 들어온 것은 그 세계의 시작이 아니라, 그 세계에 새로 끼어든 사건 하나에 불과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사힌이 노예시장 폐쇄에 동의했다.”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좋은 이유 같았다.

그날 저녁, 막사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항구 외곽에서 긴 행렬을 보았다.

목에 나무칼을 건 사람들.

손이 묶인 여자.

아이.

노예들이었다.

경비병은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장 쪽으로 데려갔다.

카엘은 한동안 행렬을 바라봤다.

사힌을 돕는 일이 옳다는 생각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다음 날 아침, 부대 배치표가 내려왔다.

카엘은 제7기병중대 임시 부관.

그리고 맨 아래 한 줄.

현지 통역관 배정 예정.

카엘은 그 줄을 별 생각 없이 넘겼다.

나중에 생각하면,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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