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화 — 떠나는 사람들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배에는 군인보다 장부가 많았다.
카엘은 그것부터 이상하게 느꼈다.
마라호의 화물칸 절반은 창과 석궁, 갑옷, 건빵과 소금고기로 채워져 있었다.
나머지 절반에는 종이, 잉크, 측량도구, 저울, 못, 톱, 씨앗, 약품, 수리용 쇠붙이와 상자째 묶인 법전이 실렸다.
“전쟁하러 가는 배 맞습니까?”
카엘이 물었다.
옆에서 화물표를 확인하던 남자가 대답했다.
“전쟁은 몇 달이면 끝나니까요.”
짙은 갈색 외투를 입은 그는 기사도 군인도 아니었다. 손가락에는 반지가 세 개나 있었고, 허리에는 검 대신 계산판이 매달려 있었다.
“그 뒤부터 돈을 벌어야죠.”
“누가요?”
“살아남은 사람들 전부.”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마르코 세란. 세라노 자유도시동맹에서 왔습니다.”
“카엘 아르덴.”
“기사?”
“그렇습니다.”
마르코는 카엘의 장비를 한 번 훑어봤다.
“영지는?”
“없습니다.”
“그럼 나와 비슷하군.”
“당신은 기사도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더 비슷하지. 둘 다 가진 게 별로 없으니까.”
카엘은 웃지 않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갑판 위에서는 성직자들이 약품 상자를 묶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밧줄 매듭을 잘못 만들어 상자가 기울었다.
카엘이 재빨리 받쳤다.
“감사합니다.”
회색 수도복을 입은 남자가 숨을 골랐다.
얼굴은 생각보다 젊었다. 서른이 채 안 돼 보였다.
“에드윈입니다.”
“성직자가 직접 짐도 나릅니까?”
“신께서 아직 제게 하인을 보내지 않으셔서요.”
마르코가 끼어들었다.
“아니면 보내셨는데 급료를 안 주셔서 도망갔거나.”
에드윈이 태연하게 말했다.
“세란 씨가 천국에 가시면 가장 먼저 확인해보겠습니다.”
“제가 거기 간다는 전제부터 너무 낙관적이군요.”
카엘은 둘이 이미 아는 사이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항구에서 오늘 처음 만났다고 했다.
원정대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다.
무언가를 두고 온 사람.
무언가를 얻으러 가는 사람.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바다를 건너는 사람.
배가 출항하자 항구의 탑이 서서히 작아졌다.
카엘은 난간에 기대 자신이 태어난 대륙을 바라봤다.
발레드라.
평생 세상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곳.
출항 전날 밤, 카엘은 부두에서 가족 단위 이주민들을 봤다.
한 부부는 어린아이 셋을 데리고 있었다. 남편은 목수였고 아내는 직조공이었다.
“전쟁터에 아이까지 데려갑니까?”
카엘이 묻자 남편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쟁터로 가는 게 아니라 새 도시로 가는 겁니다.”
“아직 새 도시가 생긴다는 보장도 없는데.”
“여기서는 생겨도 제 것이 아니니까요.”
그 말이 카엘 자신의 처지와 이상하게 겹쳤다.
조금 뒤 마르코는 화물 하나하나에 작은 표식을 붙이고 있었다.
“뭡니까?”
“보험.”
“이 상자에?”
“상자가 바다에 빠지면 누가 손실을 부담할지 정해둔 겁니다.”
카엘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을 했다.
마르코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 상자가 살아서 세라드에 도착하면 아무 일도 없습니다. 가라앉으면 여러 상인이 조금씩 손실을 나눕니다.”
“없는 물건에 돈을 냅니까?”
“없는 위험에 돈을 내는 겁니다.”
“그게 장사가 됩니까?”
“기사님들은 아직 오지도 않은 적을 막겠다고 성벽을 쌓잖습니까.”
카엘은 반박하지 못했다.
“당신네 상인들은 말을 이상하게 하는군요.”
“돈을 받으려면 말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게 좋습니다.”
마르코는 잠시 웃다가 진지하게 덧붙였다.
“농담입니다. 반쯤은.”
카엘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세상에는 검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계약서로 해결하는 일이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고.
에드윈과는 밤에 다시 만났다.
수도사는 아이 하나가 뱃멀미를 하자 자기 몫의 레몬 절임을 나눠주고 있었다.
“선교사도 겸합니까?”
카엘이 물었다.
“아마 그렇게 불리겠죠.”
“현지 신앙을 없애러 가는 건 아니고?”
에드윈은 카엘을 쳐다봤다.
“신앙은 칼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던데요.”
“교회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편리한 답이네요.”
“세상에 사람이 많다는 건 대체로 불편한 답입니다.”
에드윈은 아이의 등을 두드렸다.
“저는 제가 믿는 걸 가르칠 겁니다. 대신 그들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볼 생각입니다.”
“마음에 안 들면?”
“논쟁하겠죠.”
“그래도 안 바뀌면?”
“제가 틀렸을 가능성도 생각해야겠죠.”
카엘은 수도사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출항 직전에는 이름을 부르는 절차가 있었다.
서기관이 명단을 읽으면 한 사람씩 배에 올랐다.
“헤르만 소브.”
“여기.”
“엘리아 마렌.”
“예.”
“카엘 아르덴.”
“여기.”
그 짧은 대답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배에 오르고 나면 마음이 바뀌어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난간 아래에서 레온이 손을 들었다.
카엘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큰 작별인사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둘다 편했다.
배가 부두에서 떨어지자 아이 하나가 울기 시작했다.
곧 다른 아이도 울었다.
어른들은 웃으며 달랬다.
카엘은 그 광경을 보며 갑자기 깨달았다.
자기에게 이번 항해는 모험이었지만, 저 가족에게는 이사였다.
누군가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마르코가 옆에 섰다.
“기사님도 저 표정이군요.”
“무슨 표정?”
“나가는 사람은 다 자기가 특별한 줄 아는 표정.”
“당신은 아닙니까?”
“저는 돈 벌러 갑니다. 아주 평범하죠.”
“그럼 왜 세라드까지?”
마르코는 잠시 항구를 바라봤다.
“여기는 이미 돈 많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카엘은 웃었다.
그 이유는 이상할 만큼 이해됐다.
둘 다 자기 고향에서 너무 늦게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동방으로 가는 이 배에는 야심가만 탄 것이 아니었다.
선의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게 앞으로 더 복잡한 문제를 만들지도 몰랐다.
옆에서 에드윈이 물었다.
“후회하십니까?”
“아직은요.”
“저도 그렇습니다.”
“수도사님은 왜 갑니까?”
에드윈은 잠시 생각했다.
“사하르 북부에 큰 노예시장이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없애러 가십니까?”
“제가 군대는 아니니까요.”
“그럼?”
“노예가 풀려났을 때 갈 곳을 만들러 갑니다.”
카엘은 그를 돌아봤다.
그날 밤 카엘은 첫 당직을 섰다.
바다는 검었고, 배 뒤로 희미한 거품만 이어졌다. 육지의 밤과 달랐다. 성벽도, 나무도, 산도 없었다.
옆에서 한 병사가 난간을 붙잡고 토했다.
“괜찮나?”
“예, 기사님.”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카엘은 물을 조금 건넸다.
병사는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동방에 왜 가나?”
“형이 대장간을 물려받았습니다.”
카엘은 웃었다.
“너도 둘째냐?”
“셋째입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봤다.
그 순간 카엘은 배 안에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누군가는 땅이 없어서.
누군가는 일자리가 없어서.
누군가는 집에서 너무 늦게 태어나서.
제국의 확장은 황제의 명령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갈 곳을 찾는 사람들도 밀어내고 있었다.
에드윈은 담담했다.
“사슬을 끊는 건 하루면 됩니다. 그 다음 날이 더 어렵죠.”
카엘은 그 말을 기억해두었다.
해가 질 무렵, 함장은 전 승객을 갑판에 모았다.
“항해는 순풍이면 스물여섯 날. 나쁘면 마흔 날이다. 물은 아껴 쓰고, 불은 지정된 장소 외에는 피우지 않는다. 병이 나면 숨기지 마라. 숨기면 네가 아니라 배 전체가 죽는다.”
군인들은 투덜거렸고 상인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카엘은 사람들 사이를 둘러봤다.
이 배 하나에도 작은 나라가 들어 있었다.
기사.
병사.
상인.
수도사.
목수.
대장장이.
측량사.
서기관.
여자와 아이를 데리고 이주하는 가족까지.
그때 카엘은 처음으로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마르코.”
“네?”
“원정군인데 왜 군인보다 민간인이 이렇게 많습니까?”
마르코는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아까 말했잖습니까.”
그가 바다 너머를 턱으로 가리켰다.
“전쟁은 몇 달이면 끝나요.”
그리고 조금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제국은 그 다음에 시작되지.”
카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바다 위로 어둠이 내려왔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