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화 — 기회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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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땅이 널려 있습니다.”
모집관은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카엘은 그 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도 외곽의 기사회관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수십 명 앉아 있었다. 둘째 아들, 셋째 아들, 영지 없는 기사, 빚을 진 소귀족,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돌아갈 집이 없는 용병.
벽에는 세라드 지도가 걸려 있었다.
동쪽 바다 너머의 커다란 땅.
해안 몇 곳과 강 몇 줄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
모집관은 막대기로 지도의 빈 부분을 두드렸다.
“비옥한 평원입니다. 향신료와 목재가 풍부하고, 금과 은에 대한 보고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제대로 된 주인이 없는 땅이 많습니다.”
누군가 손을 들었다.
“현지 왕국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왕국은 있습니다.”
모집관이 태연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들의 통치는 해안과 주요 도시 주변에 한정됩니다. 내륙은 부족, 산적, 노예상, 군벌이 뒤엉킨 곳이지요. 이번 원정은 사하르 왕국의 합법적인 왕위계승자를 지원하고 해적과 노예무역을 억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합법적인 왕위계승자.
해적 토벌.
노예무역 억제.
듣기 좋은 말이었다.
카엘은 고개를 숙이고 지급된 안내서를 넘겼다.
거기에는 세라드의 기후, 예상되는 질병, 현지 화폐, 군 급료, 원정 예상기간이 적혀 있었다.
놀랍게도 꽤 구체적이었다.
“전쟁이 얼마나 걸립니까?”
앞줄의 기사가 물었다.
모집관이 웃었다.
“왕위계승전은 이미 끝나가고 있습니다. 빠르면 반년, 길어도 일 년. 여러분 대부분은 전쟁보다 그 뒤에 필요할 겁니다.”
“그 뒤라면?”
“도로를 지키고, 항구를 관리하고, 토지를 측량하고, 세금을 정리해야겠지요.”
기사 몇 명이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카엘은 오히려 귀를 기울였다.
전쟁은 짧고, 그 뒤의 일이 길다.
그건 마음에 들었다.
회관을 나온 뒤 형 레온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갈 거냐?”
“아직 서명 안 했어.”
“그럼 하지 마.”
카엘은 걸음을 멈췄다.
레온은 먼 길을 달려온 얼굴이었다.
“수도 기사단 추천서가 있잖아. 내가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형 밑에서 사람을 보내야겠지.”
레온이 대답하지 않았다.
“형이 날 도와주려면 결국 아르덴에서 돈이 나와. 그 돈은 마을에서 걷고.”
“가족이잖아.”
“그래서 싫은 거야.”
카엘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실패하면 내가 굶으면 돼. 마을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낼 이유는 없어.”
레온의 얼굴에 화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너는 늘 숫자로 말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덜 하니까.”
“사람은?”
카엘은 잠시 생각했다.
“사람은 내가 잘 모르잖아.”
레온이 피식 웃었다.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회관 맞은편 선술집에서 원정대 지원자들이 떠들고 있었다.
“동방에 가면 땅이 공짜라던데.”
“향신료 한 자루만 가져와도 수도에서 집을 산다더군.”
“현지 왕들이 금으로 세금을 낸대.”
카엘은 그 소리를 들으며 안내서를 다시 펼쳤다.
모집 과정은 선전문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지원자는 검술시험보다 먼저 빚을 신고해야 했다.
“도박빚 있습니까?”
“없습니다.”
“상인조합 채무?”
“없습니다.”
“결투로 기소된 적?”
“없습니다.”
서기관은 카엘을 의심스럽게 봤다.
“깨끗하시군요.”
“그게 이상합니까?”
“동방에 가겠다는 기사 중에는 드뭅니다.”
다음은 글을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었다. 카엘은 그 부분에서 더 놀랐다.
“기사가 글을 못 읽으면 안 됩니까?”
“전투만 할 거면 상관없습니다.”
시험관이 답했다.
“하지만 이번에 필요한 건 영지 없는 기사보다 글 읽는 기사입니다.”
테이블 위에 창고목록과 군량 계산표가 놓였다.
카엘은 빠르게 훑었다.
말 백 마리. 병사 삼백 명. 밀가루와 귀리. 예상 소비량.
그는 잘못된 숫자 하나에 표시했다.
“여기 사료량이 모자랍니다.”
시험관이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하루에 적어도 두 자루.”
“왜?”
“말이 병사보다 많이 먹으니까.”
시험관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아르덴 경은 전투기사입니까?”
“그렇게 배웠습니다.”
“장부도 배웠고?”
“작은 영지에서 자라면 싫어도 배웁니다.”
카엘은 합격표를 받았다.
그 종이에는 그의 직책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제7기병중대 임시 부관 후보.
카엘은 잠깐 웃었다.
땅을 받으러 가면서 처음 얻은 것은 장부 보는 자리였다.
레온과 마지막 저녁을 먹을 때, 형은 결국 작은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안 받는다.”
“대출이다.”
“이자율은?”
레온이 눈을 흘겼다.
“가족끼리 이자를 받냐?”
“그럼 증여잖아.”
“받아.”
카엘은 잠시 고민하다 돈주머니를 받았다.
“장부에 써둬.”
“정말 쓸 거냐?”
“나중에 갚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니까.”
레온이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황제가 되어도 장부부터 만들겠다.”
카엘은 웃었다.
“황제가 될 일은 없으니 걱정 마.”
훗날 그 말이 얼마나 우스워질지, 그때의 두 사람은 몰랐다.
마지막 장에는 위험요소도 적혀 있었다.
열병.
습지.
언어.
왕위계승전.
해적.
현지 귀족과 제국 상인 사이의 분쟁.
지원서를 낸 뒤에는 현실적인 계산이 시작됐다.
배삯은 황실이 부담했다.
하지만 개인 장비, 예비 옷, 말 사료 일부, 항해 중 필요한 사소한 물건은 본인 몫이었다.
카엘은 레온에게 빌린 돈을 테이블에 늘어놓고 하나씩 배분했다.
갑옷 수리.
검 숫돌.
방수포.
말굽.
약품.
남는 돈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때 그는 모집관의 선전문구를 다시 읽었다.
토지와 작위는 공훈에 따라 지급될 수 있음.
‘될 수 있음.’
반드시 준다는 뜻이 아니었다.
카엘은 스스로 웃었다.
자기가 평생 장부의 작은 문구를 따지며 살아왔으면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보고 싶은 대로 읽었다.
다음 날 모집소에서 한 노병을 만났다.
그는 세라드 원정에 두 번째로 지원한다고 했다.
“전에 갔다 왔습니까?”
“네.”
“토지 받았습니까?”
노병은 웃었다.
“손가락 하나 잃었지.”
카엘이 당황하자 노병이 손을 들어 보였다.
새끼손가락 끝이 없었다.
“그래도 또 갑니까?”
“여기서는 손가락이 열 개여도 내 땅이 없거든.”
카엘은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동방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다만 실패할 권리까지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곳이었다.
“공짜 땅은 아닌 것 같은데.”
그가 중얼거렸다.
그날 저녁, 카엘은 항구 근처의 여관에서 세라드에 다녀왔다는 상인을 찾아갔다.
이름은 루덴이었다.
한쪽 귀가 반쯤 없고 손가락 두 개가 굽어 있었다.
“주인 없는 땅?”
루덴은 맥주를 뿜을 뻔했다.
“누가 그런 소릴 합디까?”
“황실 모집관.”
“아. 그럼 맞겠군.”
카엘은 눈썹을 올렸다.
루덴이 잔을 내려놓았다.
“황실 장부에 주인이 없다는 뜻이라면.”
“실제로는?”
“밭에는 농부가 있고, 숲에는 나무를 베는 마을이 있고, 강에는 고기잡이하는 사람들이 있지. 산에는 목동들이 살고.”
“그럼 지도는 왜 비어 있습니까?”
“우리 지도니까.”
카엘은 말문이 막혔다.
루덴은 테이블 위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저쪽 사람들 지도에는 우리 수도가 아주 작게 그려져 있을걸. 아니면 틀린 자리에 있든지.”
“그렇다고 원정 자체가 거짓이라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
루덴은 고개를 저었다.
“사하르 내전도 진짜고, 노예상도 진짜고, 해적도 진짜야. 제국군이 가서 사람 살리는 일도 있겠지.”
그가 카엘을 보며 씩 웃었다.
“세상은 거짓말보다 진실이 더 골치 아픈 법이오. 진짜 이유가 하나가 아니라서.”
카엘은 여관을 나올 때까지 그 말을 생각했다.
그날 밤, 그는 형이 묵고 있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원정군 모집소로 갔다.
담당 서기관이 서류를 밀어줬다.
“성명.”
“카엘 아르덴.”
“나이.”
“스물넷.”
“신분.”
카엘은 잠깐 망설였다.
“기사.”
아직 기사였다.
영지는 없어도.
서기관이 마지막 칸을 가리켰다.
“서명하십시오.”
카엘은 펜을 들었다.
루덴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주인 없는 땅은 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름을 썼다.
Kael Arden.
잉크가 마르는 동안, 카엘은 처음으로 자신이 정말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렵기보다 조금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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