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23화 — 소크라테스는 도망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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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전쟁에서 복무했다는 건 후대 기록에도 남는다.
포티다이아.
델리온.
암피폴리스.
세부.
나는 그 모든 전투 옆에 있지 않았다.
그가 돌아온 장면 몇 번.
그쪽이 더 기억난다.
질문하던 사람도 전쟁에서는 방패를 들었다.
아테네 시민이면 군사 의무.
그도 예외 아님.
어느 귀환길에서 봤을 때
그의 얼굴은 시장보다 말이 적었다.
피곤.
발.
장비.
“질문 안 해?”
내가 물었다.
“당신이 먼저 했네요.”
재수 없음.
“전쟁 어땠어.”
“길었습니다.”
“그게 끝?”
“당신은 전쟁을 많이 봤습니까?”
또 역질문.
나는 생각.
“너무.”
“그러면 왜 계속 생깁니까?”
그 질문은 나한테 할 게 아니다.
“내가 시작하는 줄 알아?”
“아니요.”
“사람들이 이유가 많아서.”
“좋은 이유도?”
“있을 때.”
“나쁜 이유도?”
“더.”
그가 웃지 않았다.
정확한 대화는 불확실.
[추정]
당시 나는 그에게 내 수백 년 전쟁 경험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늙지 않는다는 것도 모름.
그냥 이상하게 전쟁 얘기 많은 외지인.
그가 전투에서 용감했다는 일화도 후대 있다.
나는 특정 영웅 행동을 직접 증언할 수 없다.
[기록]
내가 본 건
귀환한 시민병이 장비를 닦고,
발 상처를 보고,
시장 음식 먹는 것.
영웅도 밥.
소크라테스는 전쟁 뒤 다시 질문.
이 전환이 흥미.
칼과 말.
둘을 분리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군복을 벗고 시장에 돌아오면
사람들이 그를 다르게 봤을까.
일부.
참전 경험은 시민 사회에서 명예.
그는 그걸 크게 내세우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젊은이가 말했다.
“당신도 싸웠으니 전쟁이 필요하다는 걸 알죠.”
소크라테스가 답한 정확한 말은 기억 못.
[모름]
다만 바로 동의하지 않았다.
“싸워본 것과 전쟁이 필요하다는 판단은 같은가.”
그런 취지.
나는 마음에 들었다.
경험을 권위로 쓰는 습관.
내 약점.
“내가 많이 봐서 알아.”
수백 년.
그가 있었다면 계속 물었을 것.
“많이 본 것이 옳게 본 것과 같습니까.”
아마.
[추정]
나는 그 질문을 스스로 하기 시작.
전쟁 경험 많음.
그래서 어떤 패턴 빠르게.
동시에 과거 전쟁을 현재에 잘못 대입.
False analogy.
왕국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내 불멸을 몰랐지만
내 약점을 잘 찌르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친해지기 어렵고,
잊기 어려웠다.
한 번은 그가 다리를 절뚝이는 병사와 오래 말하고 있었다.
내용 모름.
나는 지나갔다.
나중 병사가 웃는 걸 봄.
철학이 상처를 치료하진 않는다.
그런데 사람 마음에 공간을 줄 수는.
나는 치료소와 신전 생각.
사람은 몸만으로 안 산다.
소크라테스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시 모든 결정을 사랑했다는 뜻도 아니다.
공동체에 남으면서 질문할 수 있다.
이 태도가 내게 어려웠다.
나는 문제가 커지면 떠나는 데 익숙.
그는 같은 도시 안에서 오래 버텼다.
누가 더 용감.
평가 안 함.
다른 삶.
어느 날 그는 젊은 사람들에게 용기에 대해 묻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들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냐.”
누군가.
“아니.”
“그러면.”
대화.
나는 259화 바다 공포 생각.
나는 불멸이라 더 용감한가.
아니다.
공포 종류만 다름.
말을 걸고 싶었지만 안 했다.
모든 철학 대화에 주인공 끼어들 필요 없다.
그의 생각은 그의 것.
후대 업적도.
나는 가끔 듣는 사람.
좋았다.
전쟁은 길어졌다.
아테네도,
스파르타도,
동맹도.
소크라테스는 도망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전쟁을 좋아했다는 뜻은 아니다.
시민의 의무를 수행했다는 것.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
한 사람의 행동을 곧바로 정치적 찬성으로 읽지 말 것.
현대에도 중요한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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