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16화 — 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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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교육에는 손가락 힘도 필요했다.
점토가 너무 마르면 안 찍힘.
너무 젖으면 흐림.
갈대 끝 모양.
각도.
나는 칼보다 어렵다고 불평했다.
일투가 말했다.
“칼 해봤어?”
“조금.”
“다 조금이네.”
편했다.
그는 나를 과거 없이 본다.
연습 중 나는 이름 말고 행동을 남기려 했다.
사람이 곡물을 가져왔다.
받았다.
돌려줬다.
단순 표식.
“왜 문장 만들려고 해.”
일투가 물었다.
당시 기록 체계는 모든 말을 적는 데 최적화되지 않았다.
수량과 거래가 강함.
“말도 남기면.”
“누가 읽어.”
“나중.”
“왜 나중 사람이 우리 말 궁금해.”
좋은 질문.
역사 감각이 당연한 건 아니다.
대부분 기록은 미래 역사학자 위해 쓰지 않는다.
현재 일.
곡물.
빚.
분쟁.
나는 왕국에서 기록을 미래 안전장치로 많이 생각했다.
여기 사람은 오늘 창고를 위해.
둘 다.
어느 날 일투가 자기 이름 표식을 바꿨다.
“왜.”
“선배랑 너무 비슷.”
정체성.
그는 자기가 만든 작은 변형을 자랑했다.
“내 거.”
기록자도 이름 욕심.
나는 웃었다.
“나중 사람은 같은 사람인지 모를 텐데.”
“왜 알아야 해.”
또.
후대는 현재 사람 관심 밖.
나는 너무 오래 살아서 후대를 현재처럼 본다.
이게 내 특이한 시각.
장점도,
부담도.
나는 네라 이름 연습판에 두 표기를 남긴 뒤 오래 봤다.
둘 다 틀릴 수 있다.
일투가 말했다.
“그 사람 기억나는 건 이름뿐?”
“아니.”
“그럼 다른 거.”
뭘.
펜던트?
손.
말.
냄새.
이걸 점토에 어떻게.
나는 작은 파란 돌 모양을 그리려 했다.
조악.
일투가 웃었다.
“감자?”
감자는 그 시대 여기 없지만 비슷한 둥근 물건을 말했을 것이다.
“돌.”
“안 보여.”
기록 한계.
나는 웃었다.
사람 기억은 모호하지만 풍부.
점토는 정확하지만 좁다.
둘이 서로 다른 것을 살린다.
그래서 회고록을 쓰는 현대의 내가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기록 방법을 더 만들었다.
그때 나는 몰랐다.
그저 젖은 점토 앞에서
‘네라의 손이 따뜻했다’를 어떻게 남길지 몰라 답답했다.
결국 못 썼다.
머리에만.
그리고 그 기억도 지금은 확실하지 않다.
[모름]
기억을 몸 밖에 두는 법을 배웠지만,
몸 안에만 남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일투는 어느 날 내 손을 쳤다.
“아니.”
“뭐가.”
“각도.”
갈대 비슷한 도구.
젖은 점토.
나는 선을 그었다.
그가 바로 지웠다.
“다시.”
왕에게 이렇게 했으면 경비가 긴장했을 것이다.
나는 짐꾼.
아무도.
좋았다.
처음에는 수량 표식만 배웠다.
곡물.
가축.
기름.
사람 몫.
그다음 이름 비슷한 표식.
장소.
직위.
점점.
완전한 문장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단계.
기호와 그림.
소리 일부.
문맥.
도시마다 기록 관습도 다름.
나는 어렵다고 느꼈다.
일투가 말했다.
“오래 배우면 돼.”
웃음이 나왔다.
오래.
그건 자신 있었다.
문제는 손 습관.
한번 익힌 모양을 바꾸기 싫었다.
일투는 말했다.
“그건 옛 방식.”
“며칠 전인데.”
“바뀌었어.”
기록 체계도 살아 있다.
왕국 법처럼.
나는 계속 뒤처졌다.
그게 좋았다.
어느 날 작은 개인 연습판을 받았다.
“아무거나 써.”
일투가 말했다.
나는 멈췄다.
뭘.
곡물 수량 말고.
사람 이름?
네라.
세나.
사무.
이라.
소리를 점토에 남길 수 있나.
현재 표식으로 완벽히 못 옮긴다.
나는 네라 이름을 시도했다.
첫 소리.
내가 기억하는 소리 자체가 불확실.
[모름]
몇 번 찍었다.
일투가 봤다.
“이게 뭐.”
“사람.”
“누구.”
“오래전.”
“이름 이상해.”
“나도 알아.”
그가 웃었다.
나는 안 웃었다.
문자로 옮기면 기억이 정확해질 줄 알았다.
아니다.
틀린 기억도 정확한 모양으로 남길 수 있다.
무서운 발견.
내가 네라 이름을 잘못 기억한 상태로 점토에 쓰면,
후대 사람은 그 표식을 ‘정답’으로 본다.
기록은 기억을 보존하면서 오류도 굳힌다.
세나 말.
기록은 신이 아니다.
나는 연습판 옆에 불확실하다는 표식을 만들고 싶었다.
일투가 물었다.
“왜.”
“확실하지 않아서.”
“그러면 쓰지 마.”
“기억은 하고 싶어.”
그가 생각했다.
작은 빈 표시.
현재 공식 기록 체계가 아니라 우리 둘 연습 습관.
“이건 모름.”
내가 말했다.
일투가 웃었다.
“누가 봐.”
“나.”
처음엔 그 정도.
훗날 내 회고록의 `[모름]`과 직접 이어졌다고 말하면 과장이다.
수천 년 동안 방식은 수없이 바뀐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표시하고 싶어 하는 습관은 이때 더 강해졌다.
나는 점토판을 말렸다.
네라 이름 비슷한 소리.
옆에 불확실 표시.
가져갈까.
생각.
안 가져갔다.
내 개인 기억을 도시 기록실에 둘 이유 없음.
다음 날 다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그 판이 어디 갔는지 모른다.
깨졌을 수도.
재사용.
불.
[모름]
현대에 남아 있으면 너무 편한 증거다.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역사는 내가 필요한 물건을 친절하게 보관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날의 감각은 남았다.
젖은 흙.
갈대 끝.
내 손.
기억을 몸 밖에 두는 법.
나는 수백 년을 살고 나서야,
인간이 자기보다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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