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64화 — 세 개의 신앙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사람들은 같은 현상을 보고 같은 믿음을 만들지 않았다.
내 장수도 그랬다.
큰 틀로 세 가지 이야기가 자랐다.
첫째.
축복받은 왕.
나는 사람.
다만 강이나 신,
조상,
하늘,
무엇인가의 호의를 받았다.
가장 넓게 퍼졌다.
정치적으로도 비교적 온건.
둘째.
왕은 인간 이상의 존재다.
신의 아들.
신이 보낸 사람.
죽음을 건넌 자.
표현은 지역마다 달랐다.
이건 위험했다.
셋째.
왕의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이상이다.
좋게 말하면 경계해야 할 징조.
나쁘게 말하면 저주.
죽지 않는 사람은 자연 질서를 어긴다는 생각.
나는 처음 이 세 번째가 싫었다.
곧 오히려 안심됐다.
모두가 나를 숭배하는 것보다 낫다.
세 입장은 서로 논쟁했다.
어떤 축복파 의례 담당자는 신격화를 반대했다.
“왕이 신이면 왜 병들었나.”
신격파는 답했다.
“신이 사람 몸을 입었으니까.”
경계파는 말했다.
“그 병이 경고다.”
어떤 증거도 모두 자기 이야기로 들어갔다.
나는 회의에 불려갔다.
“왕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모르겠어.”
사람들이 탄식했다.
이제 내 ‘모름’도 익숙했다.
“자기 자신인데.”
“그래도.”
“신이 아닙니까.”
“내 생각에는.”
“생각에는?”
꼬리를 잡았다.
나는 말했다.
“나는 나를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신이 자기가 신인 걸 모를 수도.”
나는 머리가 아팠다.
논리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 문제만 정했다.
어떤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공동 직위에서 자동 배제하지 않는다.
왕을 신이라고 믿는 사람도,
축복만 받았다고 보는 사람도,
불길하다고 보는 사람도.
단,
폭력 선동.
치료 방해.
혈통 차별.
공동부담 거부 같은 실제 행동은 별도.
믿음과 행동을 구분.
한 대표가 말했다.
“왕을 저주라고 보는 사람이 왕 밑에서 일해도 돼요?”
“일 잘하면.”
사람들이 웃었다.
“왕 욕하는데.”
“회의에서 틀린 말 하면 반박해.”
나는 테멘 생각.
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국가에 필요한 사람일 수 있다.
세 신앙이 가장 크게 충돌한 건 병든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 부모는 신격파였다.
치료자에게 가면서 동시에 내 앞에도 오고 싶어 했다.
“왕 손 한번.”
나는 거절했다.
“치료 먼저.”
부모는 울었다.
“둘 다.”
문제는 아이 상태가 나빴다는 것.
사람 감정 앞에서 원칙은 잔인해 보인다.
나는 치료자에게 직접 보내고,
필요한 공동 치료 물자 지원을 확인했다.
그 뒤 아이를 보러 갔다.
치료 의미가 아니라.
그냥.
부모는 내 손을 아이 이마에 얹으려 했다.
나는 손을 잡았다.
“이걸로 안 나아.”
“그래도.”
나는 오래 망설였다.
아이 손을 잡았다.
사람을 위로하는 접촉과,
치유 의례.
경계.
부모는 울었다.
아이는 며칠 뒤 회복했다.
바로 소문.
왕이 손을 잡아 살렸다.
나는 예상했다.
치료 기록을 공개했다.
물을 먹인 것.
열 관리.
다른 아이도 같은 치료로 나은 것.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도 왕이 왔잖아.”
경계파는 반대로 말했다.
“왕이 와서 병이 더 길어진 거다.”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같은 사건.
반대 신화.
아이 부모는 나에게 고마워했다.
치료자도.
“왕이 치료한 게 아니라고 말해줘.”
부모가 난감해했다.
“그래도 와줬잖아요.”
“그건 맞아.”
결국 그 정도로 남겼다.
왕이 방문했다.
치료는 치료자가 했다.
아이 회복.
인과관계 모름.
[모름]
세나의 표기가 종교 갈등까지 왔다.
의례 담당자 회의에서 이 사건을 놓고 격론.
축복파는 말했다.
“왕의 방문은 희망을 줬다.”
신격파.
“왕의 생명력이 전달됐다.”
경계파.
“왕을 병자에게 가까이 두면 안 된다.”
치료자는 화냈다.
“다들 약초는 안 봐?”
사람들이 웃었다.
실제로 치료자가 가장 화났다.
좋았다.
전문가가 자기 영역을 지키는 것.
나는 의례 담당자들에게 말했다.
“치료 기록은 치료자가 우선.”
신앙 해석은 개인.
공공 치료 지침은 관찰과 경험.
이 구분도 생겼다.
오늘 기준 과학과 종교 분리라고 부르면 과하다.
당시 우리는 세균도,
현대 의학도 몰랐다.
치료자도 많이 틀렸다.
그래도 최소한 왕의 신성보다 반복된 치료 경험을 우선하려 했다.
이 작은 원칙이 중요했다.
한편 경계파 일부는 내 존재 자체를 수도에서 멀리 보내자고 주장했다.
“자연 질서가 흐트러진다.”
사람들이 화냈다.
나는 막았다.
“말하게 둬.”
폭력 요구가 아니면.
그들은 나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
어떤 젊은 경계파 사람이 공개 자리에서 말했다.
“왕이 떠나야 한다.”
모두 숨을 삼켰다.
나는 물었다.
“왜.”
그는 자기 논리를 설명했다.
장수 왕이 후계와 의례를 왜곡한다.
정치적으로 일부 맞는 말.
나는 충격받았다.
내가 신이 아니라고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나를 추방해야 한다고도 주장.
적대 속에 진실 일부.
그날 이후 경계파 기록도 보관했다.
왕을 찬양한 자료만 남기면,
후대는 모두가 나를 숭배했다고 착각할 것이다.
실제로는 아니었다.
왕국은 나를 믿는 사람과,
의심하는 사람과,
두려워하는 사람이 같이 살았다.
곧 실제 사례가 나왔다.
경계파 의례 담당자 중 한 사람이 물길 기록에 매우 능했다.
공동 수로 담당 후보.
사람들이 반대.
“왕을 불길하다고 하는 사람.”
나는 해당 지역 대표에게 물었다.
“일은.”
“잘합니다.”
“규칙 어겼어?”
“아니.”
그는 역할을 맡았다.
처음 몇 달 사람들 불편.
나중에는 그냥 물길 사람.
좋았다.
반대 방향도.
신격파 신봉자 하나가 왕 이름으로 사람들한테 곡물을 받으려 했다.
“신성한 왕을 위한 몫.”
나는 바로 막았다.
믿음이 아니라 사기와 강제.
그는 말했다.
“왕을 위해서.”
“내가 안 원해.”
“왕이 자기 신성을 모르는 겁니다.”
끝없는 논리.
그래도 곡물은 돌려줬다.
처벌은 강요와 허위 명목 기준.
종교 믿음 자체는 처벌하지 않았다.
이 구분은 완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계속 경계를 시험했다.
하지만 하나의 공식 왕교가 바로 생기는 건 막았다.
적어도 당시에는.
문제는 후계였다.
신격파 일부가 말했다.
“왕의 피에는 표식이 있다.”
라엔.
왕의 혈통.
이 말이 정치와 종교를 다시 붙이기 시작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