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37화 — 세나가 걷지 못한 날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세나가 어느 날 강까지 가지 못했다.
중간에 멈췄다.
숨이 찬 건 아니었다.
다리가 아팠다.
“돌아가자.”
내가 말했다.
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쉬고.”
우리는 낮은 돌에 앉았다.
예전엔 한 번에 가던 거리.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나가 먼저 말했다.
“표정 관리 잘하네.”
“배웠지.”
“거짓말.”
나는 웃었다.
잠시 뒤 다시 걸었다.
강까지는 못 갔다.
중간 나무 그늘에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뒤 세나는 오래 잤다.
나는 옆에 앉았다.
회의를 하나 빠졌다.
이번에는 세나가 깨도 화내지 않았다.
저녁에 눈을 떴다.
“회의.”
“다른 사람이 했어.”
“잘했네.”
그 한마디.
세나는 점점 삶에서 일을 빼고 있었다.
나는 반대로 여전히 더 많은 역할을 갖고 있었다.
그 대비가 불편했다.
“나도 줄일까.”
내가 물었다.
세나는 생각했다.
“왜.”
“당신이랑.”
“나 때문에?”
나는 멈췄다.
119화 부탁.
내 죽음을 이유로 결정하지 마.
“아니.”
“거짓말.”
“조금.”
세나는 손을 잡았다.
“같이 있고 싶은 건 이유 돼.”
“그런데.”
“직위 버릴 이유로 나를 쓰지 마.”
미묘한 차이.
개인 시간을 늘리는 것.
공적 결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
다르다.
나는 일정 일부를 줄였다.
공동회의 매번 안 감.
후임 조정자들이 진행.
외부 사절 중 중요도가 낮은 건 다른 사람.
그 결과 세나와 강 가까운 곳까지 천천히 걷는 날이 늘었다.
완주 못 해도.
어느 날 아주 천천히 강에 도착했다.
세나는 물을 만졌다.
“왔네.”
나는 웃었다.
“응.”
우리는 오래 앉았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이 강 몇 년 더 볼까.”
“모르겠어.”
“좋은 답.”
“당신은.”
말이 나왔다.
세나가 물을 봤다.
“많이 보고 싶어.”
“응.”
“근데 적을 수도.”
나는 손을 잡았다.
“응.”
이번에는 부정하지 않았다.
둘 다 울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세나가 걷는 거리가 줄면서 집 주변도 조금 바뀌었다.
낮은 의자.
손잡이.
문턱을 조금 낮춤.
나는 처음엔 세나만 생각했다.
곧 다른 노인들도 편하다고 했다.
한 개인 필요가 공공 설계로 번졌다.
약속의 집에도 비슷한 손잡이를 달았다.
늙은 대표들이 좋아했다.
젊은 사람은 필요 없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나중 필요해.”
그 말이 웃겼다.
나는 아마 필요 없을 사람.
그래서 더 남의 몸을 상상해야 했다.
세나는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당신 나라 만들 거면 늙는 사람 나라 만들어.”
“내 나라 아니야.”
“또.”
나는 웃었다.
“알겠어.”
늙는 사람.
다치는 사람.
아이.
임신한 사람.
짐 든 사람.
모두 같은 길을 다르게 쓴다.
물길과 시장뿐 아니라 건물도.
이런 사소한 설계가 정치보다 사람 삶에 더 직접적이었다.
세나가 강까지 못 가는 날이 늘었다.
그래서 손주가 작은 물그릇에 강물을 떠와 준 적이 있다.
세나는 화냈다.
“왜.”
“강 보고 싶다며.”
“물을 보고 싶은 게 아니야.”
손주가 당황했다.
나는 웃었다.
세나가 말했다.
“강까지 가는 게 좋은 거지.”
정확했다.
대체물로는 안 되는 경험.
며칠 뒤 날이 따뜻한 날,
가족이 같이 갔다.
딸.
손주.
나.
세나.
천천히.
중간에 쉬고.
강까지.
세나는 물을 만졌다.
손주는 옆에서 돌을 던졌다.
딸은 시장 이야기.
나는 거의 말 안 했다.
이 장면이 좋았다.
세대 네 개.
실제로는 세나·딸·손주와 나라는 비정상적인 배열.
사람들이 지나가며 봤다.
누군가는 나를 딸 형제처럼 봤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는 관계가 분명했다.
세나가 내 손을 잡았다.
“봐.”
“뭘.”
“이런 날도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는 큰 날만 기억한다.
전쟁.
즉위.
가뭄.
나는 오히려 이런 날을 잊을까 봐 무섭다.
정확한 날짜는 없다.
그게 정상이다.
사람은 행복한 날마다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고록에는 빈곳이 많다.
그 빈곳 대부분은 아무 일도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나가 강까지 가기 어려워진 뒤 손주는 작은 수레 비슷한 걸 만들 생각을 했다.
사람을 태우는 용도.
완전한 새 발명은 아니었다.
짐 운반 구조를 바꾼 것.
“할머니 타.”
세나는 싫어했다.
“내가 짐이야?”
손주가 당황했다.
나는 웃었다.
결국 직접 앉아보지도 않았다.
며칠 뒤 다른 노인이 그 수레를 써봤다.
좋다고 했다.
세나도 다시 관심을 보였다.
“저 사람 괜찮대?”
“응.”
“그럼.”
처음 탔을 때 매우 불편했다.
바퀴 충격.
좌석.
손잡이.
몇 번 고쳤다.
세나는 계속 불평했다.
“이거 만든 사람 타봤어?”
손주가 말했다.
“젊어서 필요 없잖아.”
“그러니까 문제.”
또 설계의 주인 문제.
사용하는 사람이 참여해야 한다.
세나 의견을 반영해 좌석을 낮추고,
등을 받치고,
충격 줄이는 천을 넣었다.
완벽하진 않았다.
그래도 강 가까운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세나는 처음엔 창피해했다.
사람들이 봤다.
“왜 봐.”
화를 냈다.
며칠 지나 익숙해졌다.
다른 노인들도 사용했다.
한 개인의 이동 제한이 새로운 공공 도구를 만들었다.
손주는 자랑했다.
“내가 만들었어.”
세나가 말했다.
“내가 고쳤지.”
둘이 싸웠다.
나는 말했다.
“둘 다.”
가족 모두 나를 봤다.
“그 말은 아버지 특허 아니야.”
딸이 말했다.
웃음.
그 수레는 나중에 시장 안에서도 짐과 사람을 같이 옮기는 데 쓰였다.
기능이 확장됐다.
세나 노화가 공동체 기술 변화에 영향을 준 것이다.
역사는 이런 작은 연결을 잘 기록하지 않는다.
왕의 전쟁은 남아도,
늙은 여자가 강에 가고 싶어서 좌석 각도를 바꾼 일은 사라진다.
나는 그래서 적는다.
그게 더 인간적이니까.
세나가 수레를 타고 시장에 나온 날 사람들은 꽤 많이 봤다.
세나는 처음엔 얼굴을 굳혔다.
곧 누군가 말했다.
“저거 편해 보여.”
다른 노인이 직접 빌려 탔다.
그날 이후 시선 의미가 바뀌었다.
불쌍한 사람 보는 눈에서,
새 도구 보는 눈으로.
세나는 말했다.
“사람도 익숙해지면 끝이네.”
나는 생각했다.
내 얼굴도 그랬다.
처음에는 이상함.
그다음 익숙함.
익숙함이 반드시 이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일상에 들어왔다는 뜻.
그 차이를 기억해야 했다.
돌아가는 길 세나는 내 팔을 잡았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나는 속도를 맞췄다.
정치 이야기는 안 했다.
그날은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지금 쓰는 것은 기억이다.
[기억]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강의 색만 조금 남아 있다.
녹색과 갈색 사이.
세나 손은 따뜻했던 것 같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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