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34화 — 왕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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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위가 강해지자 세나를 부르는 말도 바뀌기 시작했다.
외부 사절 하나가 세나에게 왕비에 해당하는 말을 썼다.
세나는 바로 말했다.
“아니.”
사절이 당황했다.
“배우자잖아.”
“그래서.”
“그럼.”
“세나.”
그녀는 자기 이름을 말했다.
사절은 더 당황했다.
우리 사람들은 웃었다.
문제는 단어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세나에게 청탁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약속지기한테 말 좀.”
“시장 자리.”
“아들 경비.”
세나는 대부분 거절했다.
“직접 말해.”
누군가는 선물을 가져왔다.
세나는 받지 않았다.
“왜 나한테.”
“부탁.”
“그러니까 안 돼.”
그녀는 나보다 단호했다.
문제는 세나가 실제로 영향력이 있다는 것.
내가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
기록 체계 만든 사람.
딸의 어머니.
오랜 시장 네트워크.
사람들이 그녀를 찾는 게 완전히 비합리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숨기지 않았다.
세나가 내 의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나도 세나에게.
그런데 공적 결정은 공식 절차로.
이 원칙을 공개했다.
한번은 세나가 특정 시장 규칙에 강하게 반대했다.
나도 동의했다.
사람들이 말했다.
“세나가 말해서.”
나는 일부러 회의에서 근거를 다시 설명했다.
세나 이름 말고.
규칙 자체.
그럼에도 사람들은 연결했다.
세나가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싫지 않아?”
“조금.”
“왜.”
“내가 왕비로 불리는 순간 내가 한 일 다 당신 배우자라서 한 것처럼 보이잖아.”
그 말이 강했다.
세나는 내 옆에 서기 전부터 사람이었다.
길을 다녔다.
상단을 운영했다.
기록을 만들었다.
시장 구조를 바꿨다.
그걸 ‘왕의 아내’ 하나로 줄일 수 없다.
나는 공식 기록에 세나 역할을 따로 남기자고 했다.
그녀가 반대했다.
“내 전기 만들지 마.”
“그래도.”
“기록은 일 기준으로.”
그녀답다.
시장 표식 변화.
기록 체계.
그녀가 참여한 결정에 이름이 남아 있으면 충분.
별도 영웅전 필요 없음.
나는 받아들였다.
세나를 왕비라 부르는 사람이 늘자 우리 딸도 화를 냈다.
이유가 나와 달랐다.
“엄마 일이 다 없어지잖아.”
“무슨 뜻.”
“사람들이 엄마 기록 얘기 안 하고 왕비라고만 해.”
맞았다.
젊은 세대는 세나가 처음 상단을 이끌던 시절을 몰랐다.
아렘과 가격 싸우고,
우리 창고 표식을 뜯어고치고,
내게 “당신 죽으면?”이라고 물었던 사람.
그들에게는 지금의 늙은 세나.
왕의 배우자 비슷한 사람.
역할이 관계로 덮이고 있었다.
딸은 교육 모임에서 세나 초기 기록을 다뤘다.
“이 표식 누가 만든지 알아?”
아이들은 모른다.
“세나.”
“왕비?”
딸 얼굴이 굳었다.
“기록자.”
그녀가 말했다.
나는 멀리서 듣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세나를 왕비로 부르는 걸 내가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를 딸이 정확히 설명하고 있었다.
세나는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애들이 편하게 부르면 됐지.”
딸이 화냈다.
“엄마는 안 억울해?”
“조금.”
“그런데.”
“내가 한 일은 기록 남아 있잖아.”
딸은 만족하지 않았다.
세나는 손을 잡았다.
“사람들이 내 이름 몰라도 기록 방식 쓰면 됐어.”
123화에서 한 말과 같았다.
딸은 세나보다 이름과 인정에 더 민감했다.
세대 차이.
나는 둘 다 이해했다.
어느 외부 사절은 세나에게 별도 선물을 보내면서 이렇게 적었다.
‘왕비에게.’
세나는 선물은 돌려보내지 않았다.
좋은 천이었다.
“왜 받아.”
내가 물었다.
“천은 좋잖아.”
“왕비라고.”
“내가 왕비 되는 거 아니잖아.”
실용적.
나는 웃었다.
대신 답신에는 자기 이름과 실제 역할을 적었다.
사절은 다음에도 왕비라고 썼다.
포기.
세나는 그 천으로 옷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말했다.
“왕비 옷.”
그녀가 말했다.
“내 옷.”
그 정도.
어느 날 세나는 교육 모임에 직접 가서 자기 젊은 시절 이야기를 조금 했다.
아이들이 신기해했다.
“길 다녔어요?”
“너희 왕보다 많이.”
사람들이 웃었다.
나도.
“왕보다”라는 표현을 세나가 처음 농담으로 쓴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항의했다.
세나는 말했다.
“이제 그만 포기해.”
“뭘.”
“단어.”
나는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곧 해야 했다.
왕비라는 호칭 문제는 딸에게도 영향을 줬다.
외부에서는 딸을 ‘왕녀’에 가까운 말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화냈다.
“나 시장 사람인데.”
사절은 웃었다.
“왕 딸이잖아.”
“왕 아니라고 하잖아.”
“밖에서는 왕.”
딸은 나를 봤다.
“아버지 때문에.”
“미안.”
“왜 미안해.”
세나가 뒤에서 웃었다.
가족 모두 내 직위 언어에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딸은 외부 협상에서 자기 소개 방식을 바꿨다.
이름.
시장·물자 담당.
그다음 필요하면 내 딸이라는 사실.
순서를 바꾼 것.
“왜.”
내가 물었다.
“사람들이 아버지 딸부터 들으면 내 말 다 그걸로 듣잖아.”
맞았다.
한번은 딸이 외부 상인과 중요한 길 계약을 맺었다.
사절이 나중에 나에게 와 말했다.
“왕이 잘 시켰네.”
나는 바로 말했다.
“내가 안 시켰어.”
그는 믿지 않았다.
딸이 직접 기록을 보여줬다.
자기 조사.
다른 상인 의견.
회의.
내가 빠져 있던 것.
사절은 놀랐다.
“왕 딸인데 혼자 일해?”
딸이 화냈다.
“왜 못 해.”
나는 옆에서 웃었다.
그 사건이 외부에 조금 퍼졌다.
‘왕의 딸이 시장 일을 한다.’
후대에는 검소한 왕실 미담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실제로는 왕실 개념을 피하려는 가족의 일상.
또 해석 차이.
딸은 어느 날 집에서 말했다.
“그냥 왕이라고 해버리면 편하긴 하겠다.”
나는 놀랐다.
“왜.”
“밖에서 설명 너무 길어.”
세나가 크게 웃었다.
“봤지.”
나는 혼자 졌다.
가족마저 단어의 편리함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편한 단어가 현실을 바꾸는 속도.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세나를 왕비라 부르는 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더 익숙해졌다.
세나는 매번 고치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이제 포기했어?”
“뭘.”
“왕비.”
“사람이 부르는 걸?”
“응.”
“내가 나를 그렇게 안 보면 됐지.”
그 답은 내가 왕이라는 말과 싸우는 방식과 달랐다.
세나는 타인의 언어와 자기 정체성을 분리했다.
나는 아직 그걸 못 했다.
그래서 140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단어를 받아들이고 정의를 내가 지키는 쪽으로 가야 했다.
아이러니하게 후대에는 세나가 왕비 비슷한 존재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권력자 배우자.
공동체 기록자.
첫 딸 어머니.
역사는 관계를 단순화한다.
하지만 회고록에서만큼은 다르게 쓰고 싶다.
세나는 왕비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왕도 없다고 나는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세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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