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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21화 —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121 / 37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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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사람이 오래 산다는 건 세대가 겹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부모와 아이.

그다음 손주.

그다음에는 내가 젊었을 때를 기억하는 사람과,

그 기억을 부모에게 들은 사람과,

아예 내 젊음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같은 시장에 산다.

그 차이를 나는 어느 날 아주 선명하게 느꼈다.

시장 한쪽에서 늙은 남자가 나를 불렀다.

“약속지기.”

그는 어릴 때부터 나를 봤다.

나는 이름도 기억했다.

대화도 몇 번.

그의 아들도 옆에 있었다.

아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리고 손자까지.

세 사람이 나란히.

늙은 남자가 말했다.

“내가 어릴 때도 저 얼굴이었어.”

손자가 웃었다.

“할아버지 또 시작한다.”

아들이 말했다.

“기억이 섞였겠지.”

노인은 화냈다.

“내 기억 멀쩡해.”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노인이 나를 봤다.

“맞잖아.”

질문이 직접적이었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농담으로 넘겼다.

이번에는 말했다.

“많이 안 변한 건 맞아.”

주변이 조금 조용해졌다.

노인은 만족한 얼굴이었다.

“봐.”

손자는 나를 자세히 봤다.

“왜.”

내가 물었다.

“진짜예요?”

“뭐가.”

“안 늙는 거.”

나는 대답했다.

“천천히 늙는 것 같아.”

거짓말과 진실 사이.

손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나 천천히.”

“나도 몰라.”

그날은 그걸로 끝났다.

하지만 비슷한 질문이 늘었다.

예전 세대는 내 이상함을 기억했다.

그 다음 세대는 전해 들었다.

더 어린 세대는 그냥 원래 그런 사람으로 봤다.

이 변화가 가장 위험했다.

사람은 이상함을 오래 보면 정상으로 만든다.

한 번은 어린아이가 내 딸에게 물었다.

“약속지기는 왜 늙지 않아?”

딸이 대답했다.

“몰라.”

“다음 약속지기도?”

“그건 다른 사람이잖아.”

아이가 더 이상하게 봤다.

“왜 다른 사람이야?”

이 질문에 딸이 한참 설명했다.

직위.

사람.

다음 사람.

아이에게는 오히려 이상한 개념이었다.

지금까지 약속지기는 늘 나였으니까.

그날 저녁 딸이 말했다.

“아버지.”

“응.”

“진짜 다음 사람 보여줘야 해.”

세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후임 후보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여러 명 있었다.

능력도.

경험도.

문제는 사람들이 그들을 ‘다음 약속지기’로 상상하지 않는다는 것.

내 얼굴이 직위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방법을 바꿨다.

공동회의 일부는 약속지기 없이 시작.

외부 협상도 후임 후보가 첫 발언.

지팡이도 다른 사람이 실제로 들게 했다.

나는 뒤에 앉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꾸 나를 봤다.

후임 후보가 말했다.

“저 보세요.”

사람들이 웃었다.

두 번째는 조금 나아졌다.

세 번째에는 내가 아예 안 갔다.

회의는 끝났다.

밖에서 어떤 아이가 물었다.

“오늘 약속지기 없었어?”

부모가 말했다.

“있었지.”

“누구.”

부모는 잠깐 생각했다.

그 짧은 침묵이 중요했다.

직위와 사람을 다시 분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세나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늦어.”

“당신이 오래 했잖아.”

맞았다.

내가 수십 번 반복한 것을 몇 번의 설명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그 뒤로 나는 일부러 오래된 사람들과 새 세대를 같은 자리에 앉히는 일을 몇 번 만들었다.

정치 교육이라고 부르기엔 거창했다.

그냥 식사.

시장 정리.

물길 보수 뒤 쉬는 자리.

오래된 사람은 말했다.

“예전엔 여기 집 세 채뿐이었어.”

젊은 사람은 믿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진짜야.”

“벽도 없었어?”

“없었지.”

“창고는.”

“저놈이 와서 만들었지.”

노인이 나를 가리켰다.

나는 바로 말했다.

“아렘도.”

“아렘은 나중.”

“테멘도.”

“걔는 원래 있었어.”

사람들이 웃었다.

이런 대화가 중요했다.

공동체 역사가 내 개인 전기 하나로 줄어드는 걸 막았다.

내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다 내가 한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일부러 물었다.

“홍수 때 누가 창고 옮겼는지 알아?”

대부분 몰랐다.

“물길 처음 고친 사람이 누구.”

내 이름부터 나왔다.

나는 48화 실패 이야기를 다시 했다.

“처음엔 내가 망가뜨렸어.”

사람들이 또 놀랐다.

오래된 노인이 맞장구쳤다.

“진짜 크게 망가뜨렸지.”

좋았다.

내가 스스로 말하면 겸손한 영웅담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피해를 기억하면 조금 달라진다.

그래서 다른 기억을 남기려고 했다.

하나의 공식 이야기만 만들지 않는 것.

세나는 그걸 보고 말했다.

“이제 역사까지 관리해?”

“관리 아니야.”

“뭐.”

“여러 사람이 말하게 하는 거.”

“그것도 관리지.”

나는 잠깐 생각했다.

맞았다.

‘역사를 자유롭게 둔다’고 선언하는 것조차 내가 자리와 시간을 마련하는 순간 개입이다.

완전한 중립은 어렵다.

그래도 한 사람이 독점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느 날 아주 늙은 여자가 젊은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약속지기는 옛날에 성질 더러웠어.”

나는 항의했다.

“지금도.”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을 망가뜨리고, 사람 말 안 듣고, 자기가 다 하려고 했지.”

“그 정도는 아니었어.”

“맞아.”

“누가 더 기억해.”

여자가 말했다.

“내가.”

사람들이 다시 웃었다.

그런 목소리가 필요했다.

내가 ‘원래부터 현명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순간,

현재의 내 말이 너무 쉽게 권위가 된다.

실패했던 젊은 외지인.

사람들과 싸우고,

혼나고,

고친 사람.

그 모습도 남아야 했다.

그날 뒤 기록 담당자들에게 말했다.

“초기 기록 정리할 때 삭제하지 마.”

“뭘.”

“내 욕.”

사람들이 웃었다.

“진짜?”

“응.”

“왜.”

“나중 사람들도 봐야 해.”

젊은 기록자는 말했다.

“그래도 너무 사적인 건.”

“그건 빼.”

또 경계.

정치적 실패는 남긴다.

개인 험담은 굳이.

어디까지가 공적 실패인지도 애매했다.

그래도 논의를 시작했다.

새 세대는 나를 태어날 때부터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으로 봤다.

그 시선을 깨려면 내가 올라오기 전의 시간을 보여줘야 했다.

이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왜냐하면 사람은 복잡한 과정보다 시작부터 위대했던 이야기를 더 쉽게 기억하니까.

그날 기록에 적었다.

권력은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너무 오래 있을 때 먼저 굳는다.

그리고 그 아래.

세대별 기억 차이를 확인하려고 한 적도 있다.

같은 사건을 세 사람에게 물었다.

큰 가뭄 때 첫 공동 배급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노인은 말했다.

“약속지기가 창고 열라고 했지.”

중년은 말했다.

“아렘이 먼저 열었고 약속지기가 승인했어.”

젊은 사람은 말했다.

“공동 창고 규칙대로 한 거 아니야?”

셋 다 틀렸다고 하기도,

다 맞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며 사람의 행동이 제도의 행동으로 바뀌어 기억되고 있었다.

나는 그 변화가 좋았다.

아렘 개인 명령으로 기억되는 것보다 공동 규칙으로 기억되는 편이 구조가 오래갔다는 뜻이니까.

동시에 내 역할도 같은 방식으로 흐려져야 했다.

그날 밤 기록에 썼다.

좋은 제도는 창시자를 지워도 작동해야 한다.

쓰고 한참 봤다.

내가 정말 지워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굳은 것을 다시 움직이는 데는 더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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