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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11화 — 딸은 시장을 골랐다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111 / 37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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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딸이 성인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회의를 피하는 것이었다.

“오늘 같이 갈래?”

내가 물었다.

“왜.”

“하렌 쪽에서 사람 와.”

“그래서.”

“시장 얘기도 있을 텐데.”

딸은 세나를 봤다.

세나가 웃었다.

“가기 싫으면 가지 마.”

“안 갈래.”

나는 서운했다.

티가 났다.

세나가 말했다.

“표정.”

“뭐.”

“후계자 아니라고 제일 크게 말한 사람이 왜 저래.”

“후계자 말고 그냥.”

“그냥 뭔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딸은 이미 자기 일을 만들고 있었다.

시장 기록.

외지 상인과 말 맞추기.

물건의 수량과 품질 확인.

세나가 하던 일과 비슷했지만 그대로는 아니었다.

세나는 길과 사람을 함께 봤다.

딸은 물건의 흐름을 더 좋아했다.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로 나가고,

어느 계절에 무엇이 부족해지는지.

어느 날 딸이 내게 말했다.

“아버지는 사람만 봐.”

“무슨 뜻.”

“누가 뭐 원하는지.”

“그게 중요하지.”

“엄마는 숫자 봐.”

“응.”

“나는 길 봐.”

나는 웃었다.

“길?”

“물건 길.”

그녀는 흙 위에 선을 그었다.

라쿰 쪽 중심지.

우리 시장.

강 건너.

작은 마을.

더 먼 곳.

어디서 금속이 오고,

가죽이 나가고,

곡물이 움직이는지.

나는 놀랐다.

“이걸 다 알아?”

“몰라.”

그녀가 바로 말했다.

“대충.”

세나가 만족한 얼굴이었다.

딸은 내 `[추정]` 개념을 아주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다.

“그럼 왜 그려.”

“어디가 끊기면 문제 생기는지 보려고.”

나는 한참 그 그림을 봤다.

내가 정치에서 하던 것과 비슷했다.

사람과 약속의 길.

딸은 물건과 공급의 길.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세상을 보고 있었다.

며칠 뒤 금속 도구가 평소보다 늦게 들어왔다.

딸이 먼저 알아챘다.

“남쪽 길 문제 있는 것 같아.”

아렘은 웃었다.

“상인 늦은 거겠지.”

딸은 고개를 저었다.

“두 무리 다.”

며칠 뒤 소식이 왔다.

중간 길목에서 작은 무장집단이 통행을 막고 있었다.

딸은 자랑하지 않았다.

다만 기록에 표시를 하나 더 했다.

나는 괜히 자랑스러웠다.

그날 저녁 세나에게 말했다.

“잘하지.”

“응.”

“나 닮았지.”

세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그래서 잘해.”

나는 기분이 나빴다.

딸은 실제로 내 약속지기 자리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대표 회의는 지루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같은 말 반복해.”

정확했다.

시장도 반복은 많았지만 결과가 바로 보인다고 했다.

물건이 오고,

가격이 바뀌고,

길이 막히면 부족해진다.

정치보다 빠른 세계.

어느 날 외부 사절이 딸에게 말했다.

“아버지 일 배워야지.”

딸이 물었다.

“왜.”

“나중에.”

“뭐가 나중에.”

“아버지 뒤.”

나는 바로 끼어들었다.

“없어.”

사절은 당황했다.

딸은 오히려 웃었다.

“저 시장 할 건데요.”

사람들이 웃었다.

그 장면이 좋았다.

아이가 스스로 선을 그었다.

내 뒤가 아니라 자기 길.

그날 밤 딸에게 말했다.

“하고 싶은 거 해.”

딸은 이상한 얼굴로 나를 봤다.

“원래 그러는 거 아니야?”

나는 웃었다.

맞았다.

내가 평생 배운 걸 딸은 당연하게 말했다.

그게 세대가 나아지는 방식일 수도 있었다.

딸이 시장 일을 고르자 처음에는 아렘이 좋아했다.

“드디어 사람 하나 제대로 키웠네.”

내가 말했다.

“누가 키워.”

“세나.”

“나는?”

아렘은 나를 봤다.

“회의?”

나는 기분이 나빴다.

딸은 시장 기록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물건을 들고 다녔다.

어디서 온 물건인지 알려면 길도 봐야 한다며 상단을 따라 짧은 여행도 했다.

첫 여행 때 나는 따라가고 싶었다.

세나가 막았다.

“당신 가면 누가 주인공이겠어.”

“주인공?”

“다들 당신만 보잖아.”

맞았다.

딸이 처음 자기 일로 나가는 길에 내가 붙으면,

사람들은 그녀보다 약속지기를 볼 것이다.

나는 남았다.

돌아오는 날까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예정일보다 하루 늦었다.

나는 경비를 보내려고 했다.

세나가 말했다.

“하루.”

“길에서 무슨 일 있으면.”

“그러면 같이 간 사람도 있잖아.”

나는 참았다.

저녁 늦게 딸이 돌아왔다.

피곤해 보였지만 신나 있었다.

“왜 늦었어.”

첫 말이 그거였다.

딸 얼굴이 굳었다.

세나가 나를 봤다.

나는 바로 고쳤다.

“재밌었어?”

딸은 몇 초 뒤 웃었다.

“응.”

그녀는 길 이야기를 했다.

외지 시장.

바구니 크기.

어떤 지역에서는 우리 금속이 비싸게 팔린다는 것.

중간 길에서 가축이 느려져 하루 늦었다는 것.

나는 다 듣고 나서 물었다.

“무섭진 않았어?”

“조금.”

“그럼 다음에는.”

“또 갈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세나가 말했다.

“잘했네.”

“뭐가.”

“못 가게 안 해서.”

“성인이잖아.”

“알면서 매번 힘들잖아.”

맞았다.

내 아이가 자기 길을 고르는 건 항상 이론보다 어려웠다.

며칠 뒤 딸이 실제로 시장 회의에 들어왔다.

내 딸 자격이 아니라,

길·물자 담당 몇 사람 중 하나로.

나는 회의에 있었다.

딸이 의견을 냈다.

남쪽 금속 길이 한곳에 너무 의존한다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

아렘은 비용이 크다고 반대.

나는 딸 편을 들고 싶었다.

실제로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일부러 마지막까지 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토론했다.

결론은 즉시 새 길을 만들지 않고,

대체 경로 조사부터.

딸 안이 절반 채택됐다.

회의 끝나고 딸이 물었다.

“왜 아무 말 안 했어.”

“당신 일이라서.”

“내 편 들기 싫었어?”

“들고 싶었어.”

솔직하게 말했다.

딸이 웃었다.

“그럼 잘했네.”

그 말이 좋았다.

다만 그 뒤 나는 더 조심해야 했다.

내가 딸 의견에 찬성해도 ‘아버지라서’라고 보일 수 있고,

반대해도 ‘공정하려고 일부러’라고 보일 수 있다.

권력자의 가족은 아무 행동도 평범하게 해석되지 않을 수 있었다.

세나가 말했다.

“그러니까 완벽한 척하지 마.”

“그럼.”

“관계 있다고 말하고, 혼자 결정 안 하면 돼.”

우리는 딸 관련 안건에서 내가 최종 조정자가 되지 않는 경우를 늘렸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곧 자연스러워졌다.

딸은 오히려 좋아했다.

“아버지 없는 회의가 편해.”

“너무하네.”

“얼굴 보잖아.”

또 얼굴.

가족도 내 표정을 권력으로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할수록 조금 덜 위험해졌다.

딸이 고른 시장 길은 결국 몇 해 뒤 실제로 공동체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그걸 내 성과로 적지 않는다.

내 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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