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07화 — 물의 감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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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끝난 해,
사람들은 강가에서 큰 식사를 했다.
감사.
안도.
죽지 않았다는 기쁨.
어떤 집은 강에 곡물 조금을 던졌다.
어떤 사람은 물을 만지고 기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지역마다 믿음은 달랐다.
나는 참여는 했지만 중심에 서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불렀다는 것.
“한마디 해.”
“왜.”
“약속지기잖아.”
나는 싫다고 했다.
아렘이 말했다.
“맨날 회의에서는 말하면서.”
“이건 다르잖아.”
“뭐가.”
의례.
공동체 감정.
그 영역까지 내 직위가 들어가는 게 불편했다.
세나는 내 마음을 알았다.
“안 해도 돼.”
사람들은 기다렸다.
결국 나는 아주 짧게 말했다.
“강이 우리 걸 살린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 곡물 나누고 물 나눠서 버틴 거야.”
사람들 반응이 애매했다.
누군가는 좋아했다.
누군가는 강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바로 덧붙였다.
“강에도.”
사람들이 웃었다.
의례를 망친 것 같았다.
그날 한 늙은 여자가 내 손을 잡았다.
“당신도 강이 보냈나 봐.”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니.”
나는 바로 말했다.
“사람이야.”
여자는 웃었다.
“알아.”
그녀에게는 그냥 감사 표현이었을 수 있다.
나에게는 고향의 소문이 떠올랐다.
신의 축복.
저주.
사람이 아니다.
나는 세나에게 말했다.
“이런 거 싫어.”
“알아.”
“앞으로 의례에서 빼.”
“그게 더 이상해 보일 수도.”
맞았다.
계속 피하면 신비가 커질 수도 있었다.
우리는 평범하게 참여하되 특별한 자리 안 받는 쪽을 택했다.
물 감사 식사 이후 몇몇 사람은 내 건강을 강과 연결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장난.
“강물 많이 마셔서 안 늙나.”
“어릴 때 빠졌다 살아나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나는 웃지 않았다.
소문은 진실보다 재미를 좋아한다.
한 노인은 내가 가뭄 때 사람들 물을 나눈 일을 들어 말했다.
“강이 당신 말 듣는 거지.”
나는 화냈다.
“강이 내 말 들었으면 가뭄 안 왔어.”
사람들이 웃었다.
그 반박은 꽤 효과적이었다.
세나는 말했다.
“계속 그런 식으로 해.”
“뭘.”
“신비한 말 나오면 현실적인 말.”
나는 동의했다.
누가 내가 상처 빨리 낫는 걸 신의 축복이라고 하면,
“아프긴 똑같아.”
누가 안 늙는 것 같다고 하면,
“그냥 젊어 보이는 거.”
완전한 거짓말과 완전한 고백 사이.
사람을 평범한 설명으로 돌려보내기.
한동안 통했다.
그런데 의례 담당 비슷한 역할을 하는 노인이 어느 날 나를 찾아왔다.
“당신이 싫어하는 거 알아.”
“뭘.”
“사람들이 당신 특별하다고 하는 거.”
나는 긴장했다.
그는 웃었다.
“나도 신이라 생각 안 해.”
“그럼.”
“그래도 상징은 필요해.”
사람들이 가뭄을 버틴 기억.
나눔.
공동 물길.
그걸 대표할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 이름 말고.”
내가 바로 말했다.
“강이랑 창고 얘기해.”
그는 생각했다.
다음 식사 때 실제로 공동 창고 이야기를 했다.
각 집이 조금씩 내서 모두가 버틴 것.
죽은 사람도.
이주민도.
강 건너도.
내 이름은 거의 안 나왔다.
나는 만족했다.
의례가 꼭 지도자를 신격화할 필요는 없었다.
공동체 자체를 기념할 수도 있다.
이 방향을 적극 밀었다.
곡물 자루 모양 표식.
물길 세 갈래.
여러 손 그림.
사람들은 좋아했다.
문제는 그 세 갈래 물길 표식이 약속지기 지팡이에도 있다는 것.
상징이 다시 연결됐다.
피하려 해도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부터 지팡이 디자인을 바꿀까 고민했다.
세나는 말했다.
“바꾼다고 기억도 바뀌어?”
“아니.”
“그럼 너무 겁먹지 마.”
맞았다.
상징은 통제할 수 있지만,
사람 해석까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이야기도 계속 남기는 것.
그 정도였다.
감사 식사에서 지도자를 중심에 세우지 않으려 하자 다른 상징이 자랐다.
세 갈래 물길.
공동 곡물 바구니.
여러 손을 겹쳐 그린 표식.
아이들이 만들었다.
어른들이 따라 썼다.
나는 마음에 들었다.
특정 사람 얼굴이 없었다.
몇 해 지나 시장 입구에도 그 표식이 생겼다.
외부 상인이 물었다.
“왕 표시?”
나는 거의 화냈다.
“아니.”
“그럼.”
세나는 설명했다.
“같이 쓰는 길과 시장 표시.”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음 방문 때 또 다른 외지인이 말했다.
“약속지기 표시.”
사람 해석은 계속 개인으로 돌아왔다.
왜.
지팡이에도 비슷한 세 갈래가 있으니까.
우리는 지팡이 표시를 바꾸자는 논의를 실제로 했다.
아렘은 반대했다.
“다 알아보는데.”
하렌도.
“바꾸면 더 헷갈려.”
세나는 말했다.
“상징이 겹친다고 사람이 같은 건 아니라고 계속 보여줘.”
그래서 공동 표식을 지팡이뿐 아니라 창고,
길,
시장,
공공 물통에 더 많이 썼다.
개인 상징이 아니라 공동 표식이라는 걸 생활 속에 퍼뜨리기.
효과가 있었다.
어린 세대는 오히려 지팡이가 공동 표식을 가져다 쓴 것처럼 이해했다.
좋았다.
그날 감사 식사에서 한 아이가 내게 곡물 바구니를 건넸다.
“약속지기 먼저.”
나는 받지 않았다.
“여기 제일 나이 많은 사람 먼저.”
사람들이 웃었다.
가장 늙은 노인이 화냈다.
“왜 나를 늙었다고.”
더 큰 웃음.
결국 아이들이 먼저 먹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른다.
그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의례 순서를 권력 대신 아이에게 넘기는 것.
다음 해에도 반복됐다.
전통이 됐다.
훗날 이 의례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전통은 시작 의도와 다르게 자라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그저 아이들이 가장 먼저 곡물을 맛보는 날이었다.
나는 그걸 좋아했다.
다음 해 같은 식사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앉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먼저 보긴 했다.
하지만 혼자 말하지 않았다.
하렌.
작은 마을 대표.
피난민 출신 장인.
여러 사람이 한마디씩 했다.
좋았다.
그러다 아이들이 나를 흉내 내며 지팡이를 두드렸다.
웃음.
나는 같이 웃었다.
신격화는 아직 멀었다.
그래도 의례가 권력과 만나는 첫 접점은 이런 작은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위기에서 살아남으면 이유를 찾는다.
강.
신.
운.
지도자.
나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걸 막는 것과,
아예 없애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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